혹시 세한도(歲寒圖)의 작자가 찔레꽃이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헛소리 말라고요? 아녜요, 이 바쁜 세상에 제가 왜 헛소리를 하겠어요. 증거를 대보라고요? 사진에 보이시지 않나요? 제가 세한도 발문(跋文)을 쓰고 있는 모습. 이래도 제가 헛소리를 하고 있나요?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고요?
하하하. 농담한 것 다 아시죠? 사진은 세한도(歲寒圖) 미니어처에서 찍은 장면이에요. 주말에 안면도의 한 수목원을 찾았는데 세한도 체험 사진을 찍게 해놓은 곳이 있더군요. 재미있을 것 같아 얼른 찍었어요. 그러면서 아주 잠깐 세한도를 그리고 발문을 썼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마음 한 자락을 느껴 봤어요.
아시다시피,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 가 있을 당시 그를 잊지 않고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선사한 작품이죠. ‘세한’이란 말은 『논어』에 나오는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란 문장의 앞머리에서 따온 것으로, 문장 전체의 의미를 ‘세한’이란 두 글자로 압축 표현한 거예요. 문장의 뜻은 ‘차가운 계절이 돼서야 송백(松百)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로, 군자의 됨됨이를 송백의 생태에 가탁한 것이죠.
이 말은 공자가 한 말인데, 세한도 발문을 보면 공자가 이 말을 하게 된 것은 특별한 경험이 있었기에 한 말일 거라는 내용이 나와요. 바로 추사 자신과 이상적의 관계 같은 그런 특별한 경험이 있었기에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이 아닐까, 라고 추측한 것이죠. 추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저 말을 했던 공자의 마음을 추체험했던 거예요.
자, 그럼 세한도의 발문 전체를 한 번 읽어 볼까요? 문장이 길으니 단락을 나눠 읽어 보도록 하죠.
①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常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차개비세지상유 구지천만리지원 적유년이득지 비일시지사야)
②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趨 爲之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 如世之趨權利者(차세지도도 유권리지시추 위지비심비력여차 이불이귀지권리 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여세지추권리자)
③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以交疎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태사공운 이권리합자 권리진이교소 군역세지도도중일인 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불이권리시아야 태사공지언비야)
④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松柏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柏也 歲寒以後一松柏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공자왈 세한연후 지송백후조 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세한이전일송백야 세한이후일송백야 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⑤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然由前之君 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금군지어아 유전이무가언 유후이무손언 연유전지군 무가칭 유후지군 역가견칭어성인야야 성인지특칭 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⑥烏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如下邳榜門 迫切之極矣 悲夫 阮堂老人書(오호 서경순후지세 이급정지현 빈객여지성쇠 여하비방문 박절지극의 비부 완당노인서)
뜻을 알아 볼까요?
①지난 해(1843, 헌종9)에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집(大雲山房集)』 두 책을 부쳐주었고, 금년에 또 우경(藕畊)이 지은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을 부쳐주었다. 이들 책은 모두 세상에서 언제나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니,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이고 여러 해를 거듭하여 입수한 것이지, 한 때에 해낸 일이 아니다.
②그리고 세상의 도도한 풍조는 오로지 권세가와 재력가만을 붙좇는 것이다. 이들 책을 구하려고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힘을 소비하였는데, 이것을 권세가와 재력가들에게 갖다 주지 않고 도리어 바다 건너 외딴섬에서 초췌하게 귀양살이 하고 있는 나에게 마치 세인들이 권세가와 재력가에게 붙좇듯이 안겨주었다.
③사마천이, “권세나 이익 때문에 사귄 경우에는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그 교제가 멀어지는 법이다” 하였다. 그대 역시 세속의 거센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권세가와 재력가를 붙좇는 세속의 도도한 풍조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권세나 재력을 잣대로 삼아 나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마천의 말이 틀렸는가?
④공자께서, “일년 중에서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셨다. 소나무 · 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늘 잎이 지지 않는 존재이다. 엄동이 되기 이전에도 똑같은 소나무 · 잣나무요, 엄동이 된 이후에도 변함없는 소나무 · 잣나무이다. 그런데 성인께서는 유달리 엄동이 된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⑤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께서 유달리 칭찬하신 것은 단지 엄동을 겪고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키는 송백의 굳은 절조만을 위함이 아니다. 역시 엄동을 겪은 때와 같은 인간의 어떤 역경을 보시고 느끼신 바가 있어서이다.
⑥아! 전한(前漢)의 순박한 시대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도 그 빈객들이 그들의 부침(浮沈)에 따라 붙좇고 돌아섰다. 그러고 보면 하규(下邽, 세한도에는 下邳(하비)로 표기돼 있다. 추사가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 땅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방(榜)을 써 붙여 염량세태(炎凉世態)를 풍자한 처사 따위는 박절한 인심의 극치라 하겠다. 슬프다! (이상 번역 김동석)
핵심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權은 木(나무 목)과 雚(황새 관)의 합자예요. 무궁화 나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雚은 음(관→권)을 담당해요. 무궁화 권. 권세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가탁한 거예요. 권세 권. 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權門(권문), 權力(권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利는 禾(벼 화)와 刂(칼 도)의 합자예요. 곡식[禾]을 수확[刂]했다는 의미예요. 이로울 리. 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有利(유리), 利害(이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滔는 氵(물 수)와 㸓(쓿을 요)의 합자예요. 물이 물어서 넘친다는 의미예요. 氵로 뜻을, 㸓로 음(요→도)을 표현했어요. 창일할 도. 滔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滔滔(도도), 滔天(도천, 큰물이 하늘에 까지 이름.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업신여김. 죄악 등이 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蕉는 艹(풀 초)와 焦(그을릴 초)의 합자예요. 바래지 않은 마(麻)라는 뜻이에요. 艹로 뜻을, 焦로 음을 표현했어요. 생마 초. 야위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야윌 초. 蕉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蕉布(초포), 蕉萃(최췌, 憔悴와 통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萃는 艹(풀 초)와 卒(마칠 졸)의 합자예요. 잡초가 무성하다는 의미예요. 艹로 뜻을, 卒로 음(졸→췌)을 표현했어요. 모일 췌. 야위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 의미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많이 모인데서 시달려 야위었다란 의미로요. 야윌 췌. 萃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蕉萃(초췌), 萃聚(췌취, 모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超는 走(달릴 주)와 召(부를 소)의 합자예요. 뛰어 넘다란 의미예요. 走로 뜻을, 召로 음(소→초)을 표현했어요. 뛰어넘을 초. 超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超越(초월), 超然(초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凋는 冫(얼음 빙)과 周(두루 주)의 합자예요. 날이 차가워져 초목의 가지와 잎들이 시든다는 의미예요. 冫으로 뜻을 周로 음(주→조)을 표현했어요. 시들 조. 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凋落(조락), 凋枯(조고, 시들어 마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勁은 力(힘 력)과 巠(수맥 경)의 합자예요. 굳세다란 의미예요. 力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巠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힘차게 흐르는 수맥처럼 굳세다란 의미로요. 굳셀 경. 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勁卒(경졸, 강한 군사), 勁弓(경궁, 센 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세한도는 국보(180호)로 지정될 정도로 문인화의 절정을 보여준 작품이죠. 그런데 모든 작품은 돌출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향의 수승(受承, 받아 이음)관계에서 나오죠. 세한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박철상 씨 견해에 의하면, 세한도의 뿌리는 소동파의 ‘언송도(偃松圖, 누운 소나무 그림)’에 대한 옹방강의 시에 있다고 해요. “고목이 된 소나무는 비스듬히 나뭇가지 드리우고 집에 기대어 있네”라는 시구가 그것이라는 거죠. 세한도의 풍경과 맞아 떨어지잖아요? 이 시구가 추사의 마음속에 오랜 세월 무르녹아 있다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이 세한도라는 거죠. 일리 있는 견해예요.
그런데 세한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추사의 ‘유배 체험’이에요. 만일 그에게 유배 체험이 없었다면 제 아무리 그의 내면에 언송도의 시구가 무르녹아 있었다 해도 세한도 같은 작품이 나오기 어려웠을 거예요. 언송도의 시구가 준 영향이 씨줄이었다면 유배 체험은 날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양자가 만날 수 있었기에 세한도라는 한 필의 귀한 옷감이 만들어졌다고 봐야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