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데 있다. 머무를 곳을 안 이후에 안정됨이 있고, 안정됨이 있은 이후에 고요함이 있고, 고요함이 있은 이후에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이후에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한 이후에 얻을 수 있다."

 

『대학(大學)』 첫 머리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대학(여기서는 책명이 아닌 큰 학문이란 의미)이 추구하는 바를 명시하고 있어요. 흔히 이 명시 내용을 삼강령(三綱領)이라고 하죠. 그런데 위 인용문에서 관심있게 볼 부분은 삼강령도 삼강령이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삼강령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죠. 중에서도 더욱 관심있게 볼 부분은 '머무를 곳을 안다'란 대목이에요. 구현 방법론 중에서도 가장 밑바탕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머무를 곳을 안다'란 대목을 『대학』 에 나오는 용어로 표현하면 '치지(致知)'라고 할 수 있어요. 『대학』에서는 삼강령의 실천 덕목으로 팔조목(八條目,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을 들고 있는데 치지는 그 두 번째 덕목이에요.

 

그런데 치지를 하기 위해서는 '격물(格物)'이 선행돼야 해요. 격물은 흔히 사물을 탐구한다란 의미로 풀이하는데, 이는 약간 모호한 풀이예요. 자칫 자연과학적 탐구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보다는 '처(處事, 일을 처리함)와 접(接物, 타인을 대함)을 탐구한다'로 풀이하는 것이 좋아요. 인문과학적 탐구의 의미로 풀이하는 거죠. 그래야 『대학』의 내용과도 상통해요. 『대학』은 천하 경영을 위한 마음 자세를 논한 책이거든요.

 

정리해 볼까요? 삼강령을 구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격물치지예요. 격물치지란 부단한 처사 접물을 통해 머무를 곳을 아는 거예요. 달리 말하면, 많은 일과 사람을 접하면서 이들을 일관되게 처리할 수 있는 가치관을 획득한다는 뜻이에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가치관의 자득(自得)'이라고 할 수 있어요(이상 격물치지에 관한 내용은 이광호 씨의 주장을 참고했어요).

 

사람이 혼자 살고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며 생사고락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 없다면 가치관의 자득이 필요없을 거예요. 그러나 사람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고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문제를 안고 있으며 생사고락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있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치관의 자득을 고민하게 되지요. 격물치지는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야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천하를 경영할 사람이야 더더욱 말할 필요 없겠죠(사실 『대학』에서 언급하는 격물치지는 제왕(帝王)을 염두에 둔 것이에요).

 

사진은 '다여인생 인생여차(茶如人生 人生如茶)'라고 읽어요(茶은 앞머리에 올 때는 '다'로, 뒤에 올 때는 '차'로 읽어요). '차는 인생과 같고, 인생은 차와 같다'란 뜻이에요. 동어반복이지만 미묘한 의미 차이가 있어요. 앞 구절은 차를, 뒷 구절은 인생을 강조했어요. 차 제조 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채엽(採葉, 따기) - 살청(殺靑, 덖기) - 유념(揉捻, 비비기) - 건조(乾燥, 말리기)'의 과정을 거치죠. 야생의 차가 본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삶을 마감한다면 이런 과정이 필요없겠죠. 그러나 한 잔의 기호 음료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하죠. 마치 사람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격물치지라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 처럼 말이죠. 이런 점에서 차는 인생과 같고, 인생은 차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진은 아내 친구 분이 준 포장지에서 찍은 거예요. 비록 포장지 문구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

 

茶와 如 두자가 약간 낯설죠? 자세히 살펴 볼까요?

 

茶는 艹(풀 초)와 余(나 여)의 합자예요(지금은 茶를 쓸 때 余에서 一을 빼고 쓰죠). 쌉싸름한 풀 혹은 그 풀로 우려낸 음료란 뜻이에요. 艹로 뜻을 표현했어요. 余는 음(여→다)을 담당해요. 차 다(차). 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茶道(다도), 綠茶(녹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如는 본래 '따른다'는 의미였어요. 과거에 여성은 순종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女(여자 녀)를 사용했고, 여성이 따르는 것은 부모와 남편의 말이기 때문에 口(입 구)를 사용했어요. 같다라는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부모나 남편이 말하는 대로 똑같이 행동하고 따른다는 의미로요. 같은 여. 如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如一(여일), 如此(여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차 맛을 차별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어떤 차 맛이든 그건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만의 격물치지 과정을 겪어 나온 맛이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인생도 성공과 실패로 재단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만의 격물치지 과정을 겪어 이룩한 삶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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