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을의 선한 선비는 그 고을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고, 한 나라의 선한 선비는 그 나라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으며, 천하의 선한 선비는 천하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는다. 천하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면 위로 올라가 옛사람에 관해 논하게 된다. 그런데 옛사람이 지은 시를 외우고 옛사람이 지은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에 대해 모른다면 그 시와 내용이 요해(了解) 되겠는가. 이 때문에 그가 살던 시대를 논하게 된다.”

 

  맹자가 한 말이에요. 현실에서 만족스러런 사람을 만날 수 없기에 옛사람을 찾는 것이며,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 시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어요. 문학 연구 방법 중에 작가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는 방법이 있는데, 맹자의 이 언급은 그런 문학 연구 방법론의 선구적 언급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 맹자의 언급에서 중요한 사항은 사람과 시대의 관계를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현실에서 만족스러운 사람을 만날 수 없을 때 옛사람을 찾게 된다는 점이에요. 시대의 고찰은 옛사람을 잘 만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된 내용일 뿐이죠.

 

  현실에서 만족스러운 사람을 만날 수 없을 때 옛사람을 찾게 된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에요. 인간 사회에 살면서 이 이상의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옛사람에게서도 만족스러운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사진은 청산여고인 강수사미주 금일중상봉 파주대양우(靑山如故人 江水似美酒 今日重相逢 把酒對良友) 석정(石井)’이라고 읽어요. 해석해 볼까요? ‘청산은 오랜 친구와 같고 / 강물은 미주(美酒)와 같아라 / 오늘 서로 다시 만나니 / 술잔 들고 양우(良友)를 대한 격이로다 / 석정 쓰다.’ 시인에게 청산은 오래되어도 늘 한결같은 좋은 친구와 같고, 강물은 깊은 풍미를 전해주는 좋은 술과 같아요. 세속의 잡사에 시달리던 시인은 어느 날 이 둘을 함께 마주했고, 그 기쁨은 오랜 지기(知己)와 모처럼 나누는 대작에 비견할 만하다는 내용이에요.

 

이 시를 읽으며 문득 위 물음이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자답(自答)을 하게 됐어요. “옛사람에게서도 만족스러운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사람의 범위를 넘어서서 찾을 수 밖에 없고, 그것은 바로 자연 아니겠는가! 시인은 이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옛사람을 넘어 자연을 만족스러운 벗으로 찾은 시인이라니! 갑자기 이 시를 지은이가 범상치 않게 여겨지더군요. 물론 이 시의 작자를 현실에서 상처받아 자연에서 위안을 찾은 이로 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시 전체에서 풍기는 온화한 느낌은 그렇게 보기보다는 옛사람을 벗 삼는 단계를 넘어 그 이상의 경지에 다다른 것으로 보게 만들어요. 이 시를 지은이는 명말 청초의 시인 문점(文點, 1633-1704)이고, 시제는 도강(渡江)이에요. 글씨를 쓴 분이 시인의 이름과 제목을 빼놓았어요.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사람 인)(써 이)의 합자예요. 사람의 모습은 피차 비슷하다는 의미예요. 으로 뜻을 삼았어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에는 부터라는 의미가 있는데, 사람의 모습이 비슷한 것은 그 출생부터라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비슷할 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類似(유사), 似而非(사이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걸을 착)(거스를 봉)의 합자예요. 양쪽에서 걸어와 만나다란 의미예요. 만날 봉.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相逢(상봉), 逢着(봉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손 수)(땅이름 파)의 합자예요. 손으로 꽉 잡는다는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잡을 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把握(파악), 把持(파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처음에는 이 시를 엉뚱하게 봤어요. 1 · 2구를 시의 배경으로 보고, 3 · 4구를 시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실제 친구를 만난 것으로 본 거예요. 그런데 의미가 확연히 와닿지 않더군요. 그래서 1 · 2구의 청산과 강수를 시의 배경이 아닌 실체로 보고, 3 · 4구를 이들을 만난 기쁨을 표현한 것으로 보니 의미가 확연히 와닿더군요. 시를 읽을 때 선입견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선경후정(先景後情)이라는 공식으로 이 시를 읽었더니 오해를 했던 거예요.

 

여담 둘. 사진을 찍은 곳은 지난 번에 소개했던 짬뽕집이에요. 물컵에 써있는 글씨인데, 시인이 느낀 상봉의 기쁨처럼 맛있는 음식을 만난 기쁨을 누리라는 의미를 담아 써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걸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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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에 이 가격이면.”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맛과 가성비의 조화예요. 이 프로에 등장했던 업소 중 가장 유명해진 포방터 시장의 돈가스 집은 이를 구현했기에 백종원에게 상찬을 받았죠.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은 생각은 이런 순일 거예요. “부자가 되고 싶다 식재료를 싸게 사서 많이 팔아야 한다. 가격은 높은 것이 좋겠지?” 반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거예요. “좋은 음식을 팔고 싶다 가격에 상관없이 좋은 식재료를 사서 적정한 수만큼 팔아야 한다. 가격은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가급적 낮추는 것이 좋겠지?”

 

  성리학에서 심()은 성()과 정()으로 구분된다고 말해요. 성은 다시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는데, 기질지성을 정으로 봐요. 본연지성은 본래의 마음이고, 기질지성은 외물과 접하여 발하는 마음이에요. 기질지성은 부여받은 기의 상태에 따라 청탁(淸濁)이 있다고 봐요. 청의 발현을 사단(四端)으로 보고, 탁의 발현을 욕()으로 보죠. 사단을 발현하여 끊임없이 확충하면 성인이 되고, 욕의 발현에 끄들리면 범인(凡人)이 된다고 하죠.

 

위에서 예로 든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전자는 기질지성의 탁이 발현된 것일 터이고, 후자는 기질지성의 청이 발현된 것일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요. 기질지성 청의 발현과 탁의 발현을 가늠 짓는 조종대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바로 ()’이에요. 한국 성리학의 금자탑을 쌓았던 퇴계가 가장 중시했던 것도 이 경이죠청탁의 갈림길에서 탁의 길을 포기하고 청의 길을 택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은 경에 달렸어요.

 

포방터 돈가스 집의 주인은 바로 이 경으로 청의 길을 택했던 거죠. 그가 지속적으로 이 길을 걷는다면 그는 적어도 요식업계에서는 성인이라는 명칭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이런 사람이 요식업계에 얼마나 되겠어요? 대부분은 탁의 길을 걷는 범인이죠. 제게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요식업계의 성인을 찾는 프로그램으로 보여요.

 

사진은 당진에 있는 한 음식점에 들렸다 찍은 거예요. 식기에 쓰여 있는 것인데, 한 번 읽어 볼까요? 심지감이동 위지정 정유선유악이성우분언(心之感而動 謂之情 情有善有惡而聖愚分焉) 석정(石井). 해석해 볼까요? 마음이 외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 그것을 정이라 한다. 정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는데 성인과 범인[]의 구분은 여기서 나뉜다석정(글씨 쓴 이의 아호) 쓰다. 위에서 관련 내용을 말했으니 다시 의미 풀이를 할 필요는 없겠죠?

 

음식을 대하며 이 식당의 주인은 어떤 마음을 발하며 장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이곳은 짬뽕을 파는 곳인데, 한 그릇에 8천원 하고, 항아리 짬뽕이라는 것을 시키면 2만원을 받아요. 분량은 2~3인 정도가 먹을 수 있고, 보너스로 밥과 피자 작은 것 한 판을 줘요. 맛은 그다지 나쁘지 않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두어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마음 심)(다 함)의 합자예요. 대상과 일체가 되어 일어나는 마음이라는 의미예요. 느낄 감.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感情(감정), 感動(감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힘 력)(무거울 중)의 합자예요. 행동한다는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행동할 적에는 신중(愼重)하게 행동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로요. 움직일 동.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作動(작동), 動作(동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마음 심)(푸를 청, 선명하다란 뜻 내포)의 합자예요. 사람이 갖고 있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마음이란 의미예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외물에 반응하여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이란 의미로요. 뜻 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戀情(연정), 心情(심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귀 이)(드러날 정)의 합자예요. 사물과 사태의 이치를 꿰뚫고 있다란 의미예요.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사물과 사태의 이치에 통했다는 의미로 를 가지고 뜻을 삼았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뭇 사람 가운데 두드러진 이가 聖人이란 의미로요. 성인 성.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神聖(신성), 聖物(성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마음 심)(원숭이 우)의 합자예요. 원숭이 같이 답답한 심사를 가진 사람이란 의미예요. 어리석을 우.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愚鈍(우둔), 愚昧(우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음식 장사를 하는 분도 경의 자세를 가져야겠지만, 음식을 사먹는 소비자도 경의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비록 돈 내고 먹는다 해도 음식 먹은 뒤처리를 깨끗하게 하고 가급적 시킨 음식은 다 먹는 자세. 범인이 되기보다는 성인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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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이단인데…."

 

맞선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교회 얘기가 나왔어요. 상대 여성은 감리 교회에 다닌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맞선을 주선했던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났어요. "그 색시 신심이 깊어!" 당시 종교가 없던 저는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나 고민하다 어렸을 적 잠깐 다녔던 안식 교회가 생각나 다소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어요. "저는 안식 교회에 다닌적이 있어요." 그러자 상대 여성은 얼굴빛이 변하며 저 말을 하더군요. 30년 전 일이에요.

 

종교가 없는 이에게 '이단'이란 말은 별 충격이 없지만, 종교가 있는 이들에게 '이단'이란 말은 충격이 큰 말 같아요. 당시 그 여성의 안식 교회에 대한 혐오스런 표정은 지금도 생생해요. 그런데 무신자의 입장에선 솔직히 뭐가 이단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정통이니 비정통[이단]이니 구별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은 거죠. 정통이나 비정통의 구별은 교리의 해석을 두고 벌어지는 일 같은데, 외람된 말이지만, 무신자의 입장에선 와각지쟁(蝸角之爭)으로 밖에 안보여요.

 

오래 전에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가 생각나요. 한 작가가 우연히 자신의 작품을 두고 해석 논쟁을 하는 자리에 가게 돼 논쟁자들이 자신[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을 해석하는 것을 봤어요. 작가는 신분을 감춘 채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지만 참석한 논쟁자들에게 면박만 받았어요. 정통과 비정통 논쟁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통이든 비정통이든, 무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하나님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사진은 방콕에서 찍은건데, 침례교의 한 지파 건물 사진이에요. 침신회회은당(浸信會懷恩堂)이라고 읽어요. 침신회회은당은 아래의 영문 표기 Grace Baptist Church를 한역(漢譯)한 거예요. 침신회 즉 침례교는 신교의 한 파로 세례시 침례를 중시하는 교파예요. 속죄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일반 침례교파와 선택받은 이들만 속죄를 받는다는 속죄의 특수성을 주장하는 특수 침례교파로 나뉘어요(이상 침례교에 관한 내용 Daum 백과사전 참조). 이 교파의 건물은 침례교회라는 의미의 Baptist Church 앞에 은혜라는 의미의 Grace를 덧붙인 것으로 보아 침례교파중 특수 침례교파에 속하지 않나 싶어요. 이 지파의 교회는 정통으로 인정받을까요, 비정통으로 취급될까요?

 

낯선 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浸은 담그다, 배어들다란 의미예요. 氵(水의 변형, 물 수)로 뜻을 표현했고,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담글 침. 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浸透(침투), 浸水(침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懷는 잊지 않고 늘 생각한다는 의미예요. 忄(心의 변형, 마음 심)으로 뜻을 표현했고,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품을 회. 懷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懷疑(회의), 懷抱(회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恩은 은혜란 뜻이에요. 心(마음 심)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因은 음(인→은)을 담당해요. 은혜 은. 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恩惠(은혜), 施恩(시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전국민의 95%가 불교도인 국가[태국]의 수도에 있는 저 교회를 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불교를 믿는 이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더군요. 모쪼록 상호간의 교리를 존중하고 비토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 어떤 종교이든 사람에게 안심입명(安心立命, 마음을 편하게 하고 삶의 목표와 가치를 세움)을 안겨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진데, 거기에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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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오후. “학교 다녀왔습니다~”를 외치며 방문을 와락 열었다. 그러나 평소 반갑게 맞아 주던 어머니는 안계시고 뒷문에 비친 오후의 긴 햇살만이 방안에 드리워 있었다.

 

늦가을 오후. 하숙방에 들어서니 책상 앞 큰 창문을 통해 오후의 햇살이 방안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주인은 집을 비웠는지 안채는 고요했다.

 

한겨울 오전. 거실 유리문을 통해 따뜻한 햇살이 탁자에 쏟아졌다. 식구들은 모두 집을 나갔고, 유리문 앞에선 고양이가 졸고 있었다.

 

사진의 시를 대하면서 떠올린 제 기억 속의 장면이에요. 평온하고 고즈넉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를 전해줘요. 가을과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 그리고 주로 오후라는 시간적 배경 여기에 홀로 있다는 고독감이 빚어낸 장면이란 생각이 들어요.

 

사진의 시는 향잔숙묵임신첩(宿墨臨新) 일영허창감구시(日永虛窓勘舊)’ 라고 읽어요. 일영허창감구시(日永虛窓勘舊)는 사진에 거의 보이지 않죠? 사진에 보이는 부분만 읽을까 하다 시의 분위기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보완해서 읽었어요. 이렇게 해석해요. ‘향이 남아 있는 갈아놓은 먹으로 새 법첩을 임서하고 / 햇살 긴 텅 빈 창가에서 구시(舊詩)를 매만지네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은 둘째구로 추측해 보건데 가을 무렵이 아닐까 싶어요. 햇살이 길게 뻗는 때는 봄 · 여름 · 겨울에도 있겠지만 여기는 가을의 햇살로 추측돼요. 그 이유는 다음에 나온 텅 빈 창가 때문이에요. 텅 빈 창가는 봄날의 화사한 꽃그늘이 비치는 창가도 아니고 여름날 통풍을 위해 열어놓은 창가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겨울날의 차가운 북풍을 맞는 창가도 아니고요. 가을날의 창가가 어울려요. 그래서 계절 배경을 가을로 추정해 본 거예요. 아울러 둘째 구 끝부분 내용도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이 가을이란 점을 추측케 해줘요. 화사한 꽃그늘이 비치는 창가에서나 혹은 통풍을 위해 열어놓은 창가에서나 또는 차가운 북풍이 부는 창가에서 과거에 지은 시를 매만진다는 것은 그리 어울리지 않아요. 가을날이 적당하죠.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햇살이 긴 것으로 보면 오후예요. 그리고 시인은 그 계절과 시간대에 홀로 있어요. 시속엔 주변의 기척을 드러낸 내용이 없어요. 이 시는 평온하고 고즈넉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기 충분한 조건을 갖췄어요(첫째 구의 내용은 둘째 구에 비해 계절이나 시간적 배경이 추측하기 어렵게 돼있어요. 그러나 시의 전체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충분히 일조하고 있어요. 고요하고 텅 빈 방안에서 글씨를 쓰는 모습은 둘째 구의 오후의 햇살이 길게 드리운 창가에서 시를 고르는 모습과 짝을 이뤄 이 시의 전체적 분위기를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러한 계절과 시간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라고 모두 슬프거나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는 않을 거예요. 외려 충만한 분위기를 전해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시에서는 충만한 분위기 보다는 조금은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가 강해요. 이것은 객관적 설명이 다소 어려운데, 이 점은 이 시를 지은이에 대한 평가로 설명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주련(柱聯)의 시를 지은 이는 이서구(李書九, 17541825)예요. 실학 4대가의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죠. 그는 5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17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어요.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외로움은 일생동안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 “벼슬보다는 은거(隱居)에 미련을 가졌어요. 그의 시는 혁신적이거나 현실에만 치우치기보다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인정이 두텁고 더불어 사색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요(이상 인용문 encykorea.aks.ac.kr. 참조). 이서구에 대한 평가를 배경으로 위 시를 대하면 이 시가 왜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를 전해주는지 조금은 납득이 되죠?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부서진뼈 알)(해칠 잔)의 합자예요. 상해를 입었다란 의미예요. 상할 잔. 나머지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주로 에서 의미 연역이 됐죠. 남을 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殘酷(잔혹, 殘飯(잔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수건 건)(차지할 점)의 합자예요. 백서(帛書)에 쓴 표제(標題)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표제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한다는 의미로요. 표제 첩. 탑본(搨本)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탑본 첩.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標書(표첩), 法帖(법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힘 력)(심할 심)의 합자예요. 두 번 세 번 살펴 정확성을 기한다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삼았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세밀하게 살필 적에는 평범해선 안 되고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함이 요구된다는 의미로요. 헤아릴 감.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校勘(교감), 戡定(감정, 생각하여 정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부엉이 환)(절구 구)의 합자예요. 수리부엉이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수리부엉이 구. 옛날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뜻을 가차한 거예요. 옛 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新舊(신구), 舊態(구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주련 시가 있는 곳은 한국의 집’ ‘녹음정(綠吟亭)’이에요. 사진은 보다시피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표지 사진이에요. 한국적 분위기를 드러내기 위해 이곳에서 찍은 것으로 보여요. ‘한국의 집에서 찍었으니 표면적으론 무리 없지만 주련의 내용이나 장소가 방탄소년단과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아요. 그들의 활달한 안무와 노래를 생각하면 역동적인 면이 강조된 장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한국은 결코 고요한 은자의 나라가 아니에요. 그것은 그저 서양인들의 눈에 설 비친 모습일 뿐이죠. 고요한 은자의 나라 국민이 어떻게 방탄소년단 같은 역동적인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 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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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1-3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탄소년단 사진이 걸려있어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주련의 글귀 내용이 쓸쓸하네요. 이렇게 다소 쓸쓸한 내용의 글귀를 주련에 담는 예가 흔했는지 모르겠어요.
전문을 보니 앞의 두 구절에 버들강아지와 복숭아꽃이 나와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찔레꽃 2019-01-31 14:42   좋아요 0 | URL
하하. 그렇군요. 엉터리 해몽을 했네요. 역시 단장취의는 위험해요 ㅠㅠ 다음엔 좀 더 세밀히 자료를 찾아보고 글을 써야 겠습니다. 에두른 세심한 지적, 감사합니다. 꾸벅.
 

 

 

"생선 요리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곰 발바닥 요리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득이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나는 생선 요리보다 곰 발바닥 요리를 택할 것이다."

 

『맹자』에 나오는 이 구절은 맹자가 생(生)과 의(義)의 선택점에서 생을 버리고 의를 택하겠다는 말을 하기 전에 내놓은 말이에요.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내세운 비유죠. 재미있는 것은 이 구절에서 맹자 당시 요리의 일부분을 알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 구절에 등장한 곰 발바닥 요리는 지금도 특별하고 값비싼 요리로 취급되는데 이것이 기원전 3~4세기에 있었다는게 경이로워요. 

 

맛을 추구하는 요리란, 다른 것이 대개 그렇듯, 양적인 충족 위에서 등장하는 거예요. 배고픈 처지에선 찬 밥 더운 밥 가릴 겨를이 없잖아요? 이런 점에서 맹자가 살던 시대에 특별한 맛을 추구하는 음식이 있었다는 것은 음식의 양적인 충족이 이미 달성됐다는 것을 반증하고, 나아가 요리 수준이 상당했다는 것을 말해줘요. 하지만 이것이 당시의 보편적 음식 문화였던가 하는 점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어요. 『맹자』에 보면 굶어 죽는 백성들의 참상을 말한 내용도 있거든요. 귀족층을 중심으로 한 음식 문화로 보는게 타당할 거예요.

 

요즘 행사장의 음식은 대부분 뷔페식이죠. 이는 우리의 음식 문화 수준이 양적인 충족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줘요. (물론 여전히 한 끼 식사를 걱정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 그럴까요?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등장했던 어떤 돈까스 집은 손님이 하도 많아 대기실까지 차렸더군요. 이렇게 음식 맛을 탐하는 행위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탐(貪)이란 것 자체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니 부정적인 평가가 앞설 수 있지만 긍정적 평가도 가능할 것 같아요. 참맛을 찾기 위한 여정의 일환으로요.

 

사진은 심미(尋味)라고 읽어요. 맛을 찾다, 란 뜻이에요. 태국 치앙마이에서 찍었어요(이곳은 중국 자본과 관광객이 넘쳐 나더군요. 그들을 위해 간판 대부분에 한자가 병기되어 있더군요). 심미 옆에 '융합채(融合菜)'라는 말이 있는데, 다양한 채소를 이용하여 요리를 하는 곳 같아요. 끼니 때 였으면 들어가 봤을텐데, 끼니를 비낀 때라 그냥 사진만 찍고 말았어요.

 

사진의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尋은 工(장인 공)과 口(입 구)와 又(手의 변형, 손 수)와 寸(마디 촌)의 합자예요. 손으로[又] 거리를 측정하듯[寸] 정교한[工] 근거와 말솜씨로 문제 해결책을 찾는다란 의미예요. 찾을 심. 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尋訪(심방), 尋常(심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味는 口(입 구)와 未(아닐 미)의 합자예요. 맛이란 의미예요. 口로 뜻을, 未로 음을 표현했어요. 맛 미. 味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吟味(음미), 調味(조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뷔페에 가보면 대부분 새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새 접시를 사용하는 것을 보게돼요. 굳이 새 접시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군요. 자신이 먹던 음식을 담았던 접시이니 위생상의 문제도 없고, 사용했던 접시라고 음식 맛에 특별히 지장을 줄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죠. 미관상 좀 그렇긴 하지만 어차피 흐트려가면 먹을 것인….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여담 둘. 음식의 참맛은 어디에 있을까요?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 소박한 요리에 있지 않을까요? '반자 도지동(返者 道之動, 돌아오는 것, 그것은 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이라고 화려한 맛의 끝은 소박한 맛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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