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 1956. 1968.

 

난수표가 아니다. 가게 창립일이다. 1939는 경주 황남빵, 1956은 대전 성심당, 1968은 위 사진의 가게. 모두 한 세기 전에 시작한 가게들이니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유지된 가게들이다. 가게를 내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가게가 오래유지되길 원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조변석개하는 시대에 그런 바램은 무망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가게가 있다는 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벌어지던 춘추전국 시대, 시대를 진단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두 사상가 집단이 있었다. 법가와 유가. 법가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전통이 무력해졌다는 증거인만큼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며 과감한 개혁을 주장했다. 유가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전통을 상실했기 때문인만큼 옛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며 위정자의 도덕적 자각을 주장했다. 

 

춘추전국 시대를 서로 다르게 진단했던 두 사상가 집단의 승부는 법가의 승리로 끝났다. 법가를 채택했던 진(秦)이 천하통일의 대미를 장식했기 때문. 개혁의 승리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진은 천하통일 후 2대 만에 망했다. 그리고 들어선 한(漢)은 유가의 사상을 국시로 삼았다. 전통의 승리라고 할 만했다. 그렇다면 최종 승자는 유가일까? 확답하기 어렵다. 비록 표면으로는 유가를 중시했지만 이면으로는 법가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한 선제는 독존유술(獨尊儒術)을 주장하는 태자를 질책하며 이런 말을 했다. "장차 한을 어지럽힐 자, 태자로다." 법가를 중시했다는 반증이다.

 

보수와 개혁은 갈등 관계이다. 조화를 이루는게 가장 좋지만 쉽지 않다.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지키려는 쪽이고, 개혁은 바꾸려는 쪽이다. 입장이 상반되니 조화를 이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저 지난 세기에 창립했던 가게들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며 여전히 호응받고 있는 것은 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록 한 가게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성공 사례는 한 국가를 운영하는데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의 한자는 '황원당우알당(黃元堂牛軋堂)'이라고 읽는다. '황원당'은 상호명이다.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황씨가 만드는 최고의 (펑리수) 가게' 란 뜻이 아닐까 싶다(황원당은 파이애플 과자인 펑리수로 유명하다). '우알'은 누가(Nougat, 사탕의 일종)의 가차 표기이다. 중국음으로는 '뉴야'라고 읽는다. 당은 사탕이란 뜻이다. 결국 이런 의미가 되겠다. 황원당에서 만든 누가 캔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표기 밑에 영어로 표기된 것은 누가 캔디에 관한 표기가 아니고 펑리수 표기란 점이다. 비록 펑리수로 유명한 가게이지만 상호에 나타난 것은 누가 캔디이니 거기에 맞게 영어 표기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왼쪽의 한자는 '연첨면밀(軟甛綿密)'이라고 읽는다. '부드럽고 달콤하며 조밀하다'란 뜻이다. 오른쪽의 한자는 '첨이불이(甛而不膩)'라고 읽는다. '달달하지만 느끼하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먹어보니 설명과 크게 틀리지 않았다. 황원당우알당 아래 있는 한자는 '하문 자호(廈門 字號)'라고 읽는다. 하문(중국음으로는 샤먼)은 지역이름이고, 자호는 상호(商號)와 같은 뜻이다. 아들 아이 친구가 이곳을 여행하고 선물로 사온 것을 찍은 것이다.

 

낯선 한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보자.

 

軋은 車(수레 차)와 乙(새 을)의 합자이다. 삐걱거린다는 뜻이다. 車로 뜻을 표현했다. 乙은 음(을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乙은 본래 초목의 싹이 비뚤비뚤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여기서는 그같이 수레가 지나가고 나면 지면이 울퉁불퉁해진다는 의미로 사용됐고, 이 의미로 삐걱거린다는 본뜻의 의미를 보충한다. 삐걱거릴 알. 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軋轢(알력), 알알(軋軋, 수레바퀴가 구르는 소리) 등을 들 수 있겠다.

 

軟은 거(수레 차)와 欠(빠질 결)의 합자이다. 수레가 부실하다는 의미이다. 車로 뜻을 표현했다. 欠은 음(결연)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결함이 있기에 수레가 부실하다는 의미로. 연하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연할 연. 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軟弱(연약), 柔軟(유연) 등을 들 수 있겠다.

 

甛은 舌(혀 설)과 甘(달 감)의 합자이다. 혀가 느끼는 특별한 맛[달콤함]이란 의미이다. 舌로 뜻을 표현했다. 甘은 음(감첨)을 담당하면서 본뜻을 보충한다. 달 첨. 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甛瓜(첨과, 참외), 甛言蜜語(첨언밀어, 남을 꾀기 위한 달콤한 말) 등을 들 수 있겠다.

 

膩는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貳(두 이)의 합자이다. 기름[비계]이라는 뜻이다. 月으로 뜻을 표현했다. 貳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貳는 거듭되다란 의미도 있다. 기름[비계]이란 그같이 살에 덧보태져 있는 부분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기름 이.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膩理(이리, 살결이 곱고 반들반들함), 膩脂(이지, 비계) 등을 들 수 있겠다.

 

황원당은 창업한지 반백년이 넘었다. 다시 언급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가게다. 앞으로도 계속 잘 유지되었으면 싶다. 단순히 한 과자 가게로서가 아니라 보수와 개혁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준 한 표본으로서! 우리의 황남빵이나 성심당도 그렇기를!! 우리 정치도 그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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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나무와 흙을 사용한 다리→콘크리트 다리→복개.

 

고향 집 앞에는 개울이 흘렀다. 개울을 중심으로 동네가 둘로 나뉘었다. 둘을 이어주는 것은 징검다리였다. 그후 개울이 넓혀지고 둑이 생기면서 정식(?) 다리가 놓이기 시작했고, 결국은 복개로 종결되었다. 나무와 흙을 사용한 다리 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았고 물이 많을 때는 헤엄을 치기도 했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빨래를 하고. 살림은 어려웠지만 인심은 순후(淳厚)했다.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면서 이런 일들이 없어졌다. 아니, 물이 더러워져 할 수 없게 되었다. 살림은 나아졌지만 인심은 각박(刻薄)해졌다. 

 

사진은 '도둔굴(道遁堀)'이라고 읽는다. 일본어로, 일본 발음으로는 '도톤보리'라고 읽는다. '도톤 수로(운하)'라는 의미로, 야스이 도톤(安井道頓)이란 이가 처음 착공했고 후계자가 이어받아 4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한(1615년) 길이 3km의 인공 하천이다. 본래 있던 작은 물줄기들을 연결시킨 것으로,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통상 이 강을 따라 동서로 500m 가량 이어지는 거리를 도톤보리라고 부른다. 남쪽의 센니치마에와 난바, 북쪽의 신사이바시를 잇는 중심가로 식도락 천국 오사카를 대표하는 거리이다. 사진은 일본에서 찍은 것이 아니다. 서울에 갔다가 찍었다. 다양한 일본 요리를 선보인다는 의미에서 내건 간판명 같았다.

 

간판을 보니 문득 고향집 앞 개울이 떠오르고 부질없는 상념이 오갔다. 도톤보리는 1615년에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고향집 개울은 30년이 채 안되어 본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도톤보리가 없었다면 도톤보리가 과연 오사카의 명소가 될 수 있었을까? 개울이 복개되고 그 밑으로 썪은 물이 흐르는데 그곳을 과연 고향이라고 찾고 싶을까? 상념은 뜬금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이제라도 복개를 걷어내고 원모습을 되살려낼 수는 없을까? 음식보다 고향 집 앞 개울을 생각하게 한 사색적인 간판이었다.

 

遁과 堀이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遁은 辶(걸을 착)과 盾(방패 순)의 합자이다. 달아난다는 의미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盾은 음(순→둔)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상대의 무기로 인해 생길 상처를 피하기 위해 방패를 사용하듯 그같이 어려운 일을 피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달아나는 것이라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달아날 둔. 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隱遁(은둔), 遁世(둔세) 등을 들 수 있겠다.

 

堀은 土(흙 토)와 屈(굽을 굴)의 합자이다. 굴이란 의미이다. 土로 뜻을 표현했다. 屈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몸을 반듯이 펴지 못하고 구부정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곳이 굴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굴 굴. 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洞窟(동굴), 石窟(석굴)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은 인간의 개발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개발 행위로 인해 야생 동물[박쥐] 서식지와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고 물류 이동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 이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됐다는 것. WHO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진 뒤에는 또다른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업보인지 모른다. 근본적 해법은 예방이나 백신 개발이 아니라 개발 행위의 재고와 복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역시 저 사진의 간판이 안겨준 생각. 이래저래 사색적인 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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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대나무가 있는데 여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곧고, 그것을 잘라서 쓰면 견고한 갑옷과 투구도 뚫을 수 있소이다. 이런 것으로 말한다면 도대체 배움이 무슨 필요가 있겠수!"


"대나무 화살에 깃털을 꽂고 화살촉을 숫돌에 갈아서 쓴다면 그 뚫는 것이 더 깊어지지 않겠는가?"


자로가 공자를 처음 찾아와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의 일부분이다(출전: 『공자가어』). 배움의 무용과 유용을 두고 불꽃튀는 진검 승부를 겨뤘다. 승부는? 알다시피, 공자가 이겼다. 이후 자로는 긴 세월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한 몇 안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고, 정적의 칼에 맞아 죽을 때도 "선비는 관(冠)을 벗어서는 안된다"며 떨어뜨린 관을 찾아쓰고 죽었다. 스승의 교화와 교육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그런데, 만일 자로가 원래 자신의 생각대로, 공자의 견해에 무릎을 꿇지 않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1563-1589)는 요절한 천재 여류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사후 문집인『난설헌집(蘭雪軒集)』은 조·중·일의 베스트셀러였다. 여성교육이 등한시되던 중세에 그녀는 당대 어느 사족(士族)의 남성못지 않은 수준높은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 허엽과 오빠 허봉의 영향이 컸다.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린 이달의 지도를 직접 받기도 했다. 자로처럼 화살에 깃털을 꽂고 화살촉을 숫돌에 간 격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삶은 어떠했나? 그녀는 생전에 세가지 한을 말했다고 한다. "어째서 여자로 태어났는가? 어째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 어째서 조선 땅에 태어났는가?" 불행한 삶을 조목조목 들먹이지 않아도 그녀의 삶이 어땠을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전해지는 말이니, 진위를 확실히 가릴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은 방증한다). 만일 그녀가 수준높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즉 자로가 말했던 '남산의 대나무'처럼 그냥 살았다면 어땠을까?


사진은 난설헌 허초희의「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 꿈에 광상산에서 노닐다)」이다. 이 시는 꽤 긴 서문(序文)을 갖고 있다. 시의 이해를 위해 읽을 필요가 있다.


을유년(1585) 봄에 나는 상을 당해 외삼촌 댁에 묵고 있었다. 하루는 꿈속에서 바다 가운데 있는 산에 올랐는데 산이 온통 구슬과 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많은 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렸는데 흰 구슬과 푸른 구슬이 반짝였다. 눈이 부셔서 똑바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산봉우리 사이로 오색빛 영롱한 무지개 구름이 서려 있고 그 아래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니 갖가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과 풀이 피어 있고 난새와 학, 공작과 물총새들이 좌우로 날며 춤을 추었다. 숲속 나무들의 온갖 열매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가 산속에 가득했고, 기암절벽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져 내렸다. 구슬 같은 물방울들이 부딪치면서 옥쟁을 타는 듯한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산정에 도착하니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온통 푸른빛이었다. 홀연히 붉은 해가 바다 위로 쑥 솟아올랐다. 산봉우리 꼭대기에는 맑은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피어있었다. 신묘한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다가가니 우산처럼 큰 연잎이 서리를 맞아 시들고 있었다. 붉고 푸른 무지개 치마를 입은 선녀 둘이 나타났다. "여기는 광상산이옵니다. 신선 세계 십주(十洲)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옵니다. 낭자에게는 신선의 인연이 있어 이곳까지 오신 것이니 시를 지어 이 일을 기록하소서!" 그 말에 절구(絶句) 한 수를 읊자 두 선녀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한자 한자 모두 신선의 글이나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붉은 구름이 떨어져 산봉우리에 걸리고 둥둥 북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일어나니 선녀는 간데없고 싸늘한 이불 속이었다. 베개 밑에는 여전히 아지랑이 기운이 서려 있었다. 태백의몽유천모음유별(夢遊天姥吟留別)」에 비견하긴 어렵겠지만 그런대로 써본다. (번역 출처: https://blog.naver.com/leesobia/221307008861 및 윤지강,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예단:2009) )


사진의 시를 읽어보자.


碧海浸瑤海 벽해침요해   푸른 바닷물이 옥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청란의채란   푸른 난새가 오색 난새와 어울리네

芙蓉三九朶 부용삼구타   연꽃 스물일곱 송이

紅墮月霜寒 홍타월상한   붉게 떨어지니 달빛이 서리 위에 차가워라 (번역 출처: 윤지강,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예단:2009) )


작시의 배경이 서문에 자세히 나와 있기에 굳이 사족을 달 필요가 없다. 이 시는 유선시(遊仙詩)이다. 유선시는 현실도피적인 시인데,『난설헌집』에 수록된 상당수가 유선시이다. 허난설헌이 현실도피적인 유선시를 다수 지었다는 것은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자신의 삶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반증한다. 앞서 인용한 그녀의 세 가지 한탄과 맥을 같이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질문을 해본다. 만일 그녀가 수준높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성급히 어떤 답을 찾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교육이 삶의 행복과 얼마나 상관성이 있는지 한 번 되짚어보고 싶은 것 뿐이다. 만일 그녀가 수준높은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鸞, 朶, 墮가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鸞은 鳥(새 조)와 變(변할 변)의 약자가 합쳐진 것이다. 봉황과 유사하나 성장하면서 털 빛깔에 변화가 생겨 봉황과 다른 모습이 되는 새란 의미이다. 난새 란. 상상의 새이다. 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鸞鳳(난봉, 난새와 봉황. 뛰어난 선비를 비유), 鸞駕(난가, 난새가 끄는 수레. 천자가 타는 수레를 비유) 등을 들 수 있겠다.


朶는 木(나무 목)과 꽃이나 열매 가지가 늘어진 모양을 표현한 乃의 합자이다. (꽃이나 열매) 가지가 늘어졌다는 뜻이다. 가지라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늘어질(가지) 타. 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花朶(화타, 꽃이 핀 가지), 紅雲朶(홍운타, 빛이 붉고도 두꺼운 국화) 등을 들 수 있겠다.


墮는 土(흙 토)와 隋(제사고기 나머지 수)의 합자이다. 성벽이 무너졌다란 의미이다. 성벽 소재인 토석(土石)의 의미를 담은 土로 뜻을 표현했다. 隋는 음(수→타)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제사지낸 고기 부스러기처럼 성벽이 허물어진 상태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무너질 타. '떨어지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떨어질 타. 墮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墮落(타락), 墮淚(타루, 눈물을 흘림)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혹 여성 교육을 무시하자는 의견으로 이 글을 읽으신 분이 없기를(당연히 없을 것으로 믿지만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말씀드린다)! 한 불행했던 천재 여류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문득 배움과 행복의 상관성을 한 번 떠올려 본 것 뿐이다. 유달리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이기에 더더욱 이 질문을 던져본 것이다. 사진은 다음 사이트에서 빌렸다. https://www.pinterest.co.kr/choi7shinc0291/%ED%95%9C%EC%8B%9C%EB%AA%A8%EC%9D%8C/ 글씨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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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왔다 간다."


걸레 스님 중광(重光, 1934-2002)의 비명(碑銘)이다. '괜히'라는 부사의 사용이 절묘하다. 덕분에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말이 되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한 세상 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을 뜨는 것이 인생이다. 한 세상 사는 동안은 우리 의지대로 사는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얼마만큼이나 우리 의지대로 살았는지 회의감에 젖게 된다. 이래저래 인생은 아무런 실속이 없는 공허한 것이다. 그러니 '괜히'라는 말을 붙여도 대과없다. 농담같이 들리지만 삶의 본질을 꿰뚫는 비수같은 말이다.


언젠가 나도 세상을 뜰 것이다. 나도 멋진 비명, 아니 유언을 한 마디 남기고 싶다.


사진은 베트남 응우옌 왕조 말기 황제 카이딘(啓定, 재위 1916-1925)의 황릉 명문(銘文)이다. 묘비명이라해도 무방하다. 그가 직접 남긴 것은 아니고, 신하들이 남긴 걸게다. 무슨 내용일까?



四面獻奇觀風景別開宇宙 사면헌기관풍경별개우주   사면 풍경 기이하니 신천지 열린 듯하고

億年種旺氣江山張護儲胥 억년종왕기강산장호저서   영원할 늠름 강산 서있으니 이 궁은 영원토록 보호되리



황릉이 오래도록 유지되길 기원하는 소원문이다. 그러면 묘비명이 아닐까? 소원문이지만 묘비명이라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면 뭐라 해석해야 할까? 영원히 살고지고이다. 죽어서도 명전(冥殿)이 지속되길 원했다면, 살아서는 오죽했을까? 비영속의 삶이 영속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과욕이다. 과욕은 추하다. 소화불량에 걸린 이의 똥빛 안색과 같기 때문. 자신들이 섬긴 황제에게 올린 최대의 공사(恭辭)였겠지만 최대의 허사(虛辭)란 생각이 든다. 설령 황제 자신이 생전에 원했다 해도 말이다.


삶은 왔다 가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이를 거스르는 것은 추하다. 카이딘 황릉은 화려하다. 그러나 화려하기에 더 추하다. 자연스러움을 어겨 영속을 원했기 때문. 당장도 편히 쉬어야 할 유택(幽宅)에 이국의 관광객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추함이 초래한 업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儲, 胥가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儲는 亻(사람 인)과 諸(모두 제)의 합자이다. 쓰임에 대비한다는 의미이다. 亻으로 뜻을 표현했다. 諸는 음(제→저)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쓰임에 대비하기 위해선 여러가지를 준비해 둬야 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쌓을 저. 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儲輔(저보, 왕세자), 儲積(저적, 저축) 등을 들 수 있겠다.


胥는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疋(발 소)의 합자이다. 게살을 이용해 담근 장(醬)이란 의미이다. 月으로 뜻을 표현했다. 疋는 음(소→서)을 담당한다. 게장 서. 지금은 '돕다'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유추된 의미이다. 게살장은 입맛을 돋는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도울 서. 胥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胥吏(서리), 象胥(상서, 역관)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신천지 교단이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몰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여러 정보를 취합해 보면 정상적인 교단이라 보기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이 교단의 주된 주장이 '영생'이라는 것. 그것도, 살아서! 비영속의 존재가 영속을 바라는 건 과욕이다. 과욕을 부리면 추해진다. 추해지면 (常道)를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된다. 신천지의 비정상적 교단운영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런만큼 이 교단에 대한 해법 또한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영생의 과욕 포기가 그것. 신천지 교단에 대한 표면적 해결책은 사법 혹은 행정적 조치이겠지만 심층적 해결책은 이 간단한 '인식 전환'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간단하다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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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수사의 기초는 범인이 남긴 흔적이다. 수사의 발달사는 흔적의 추적사라고해도 무방하다. 흔적을 통해 전체를 파악하려는 것은 비단 수사만이 아니다. 많은 연구가 그러하다. 이른바 '분석'이라는 이름을 단 연구물들이 그것. 영화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에 사용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그 영화를 평가/파악하려 하니까. 


사진은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기생충」의 초반부 한 장면이다. 기우(최우식 분)가 유투브에서 피자 박스 빨리 접는 영상을 찾아 가족들에게 소개하러 가는 장면이다. 그런데 왼쪽 벽면에 한문 액자가 눈에 띈다. 「기생충」을 감독한 봉준호 감독은 디테일에 강해 별명이 '봉테일'이라고 한다. 문득 그의 디테일을 저 액자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진다. 특히나 요즘은 한문을 모르는 이들이 많으니 더더욱 그런 마음이 생긴다. '어차피 사람들이 모를텐데 아무거나 붙여 놓아도…'라는 마음으로 영화와 무관한 액자를 사용했다면 '봉테일'이란 별명은, 적어도내게는, 동의하기 어려운 별명이다. 한문 액자를 통해서도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까?


액자의 내용은 이렇다(○ 부분은 사진에서도 영화에서도 글자 판독이 어려웠다).


忠孝大節 충효대절   충효의 큰 절개를 지닌다.

好學不倦 호학불권   배움을 좋아하고 남을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는다.

忠○心○ 충○심○   성실한 마음으로 ○하고 ○한다. 

公先私後 공선사후   공을 앞세우고 사를 뒤로 한다.


요즘은 벽면에 장식물을 많이 걸어두지 않는다. 걸어 논다 해도 글자류 보다는 그림이나 사진류를 걸어 놓는다. 설령 벽면에 글자가 들어있는 장식물을 걸어놓는다 해도 고가의 운치있는 내용의 액자나 족자를 걸어놓지 구호성 내용의 액자나 족자는 걸어놓지 않는다. 기택(송강호 분)의 집과 대비되는 박 사장(이선균 분)네 거실에는 박 사장 가족의 대형 사진과 다송(정현준 분)의 그림만 걸려있다. 기택네 액자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다분히 구호성 내용이고 시대와 동떨어져 보인다. 한마디로 저 액자는 기택네가 시대의 주류에 뒤떨어져 있거나 현실에서 낙오됐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택네는 반지하 집이고, 가족은 전부 실직 상태이며, 욕설이 상투어이고, 사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벽면의 한문 액자는 섬세하게 마련한 소품이라 평가할 만하다. 소품을 통해서도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기생충」이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는 것은 극적 재미에 보태 세심하게 배치된 상징적 장면 때문인데, 섬세하게 마련한 소품도 한 몫 하는 것 같다(기택네가 박 사장 집을 점령하고(?) 벌인 파티에서 한 스페인산 고급 감자칩 통이 나오는데, 이 또한 그런 한 예이다). 역시, '봉테일'이다.


節과 倦이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節은 竹(대 죽)과 卽(가까이할 즉)의 합자이다. 대나무 줄기의 중간중간에 생긴 마디란 의미이다. 마디는 윗 줄기와 아랫 줄기가 서로 가까이 만난 곳에 형성된다. 하여 竹과 卽을 합쳐 '마디'란 뜻을 표현했다. 마디 절. '절개'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마디처럼 한계를 짓는 명분있는 행동과 마음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절개 절. 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節氣(절기), 忠節(충절) 등을 들 수 있겠다.


倦은 亻(사람 인)과 卷(굽을 권)의 합자이다. 피로하다란 의미이다. 亻으로 뜻을 표현했다.  卷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일을 대충대충[卷] 해야 할 정도로 피로하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게으르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피로할(게으를) 권. 倦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倦色(권색, 피곤한 기색), 倦怠(권태) 등을 들 수 있겠다.


기택네 집에 건 액자와 같은 것을 걸어 둔 가정이 있을 것이다(우리 형님 집에도 있다). 그분들이 혹 이 글을 읽고 분개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그분들을 얕잡아 보려고 쓴 것이 아니다(내가 어떻게 우리 형님을 얕잡아 보겠는가!). 다만 일반적 현실의 모습을 기술했을 뿐이다(우리 형님네도 살림이 매우 곤궁하다). 봉준호 감독은「기생충」을 통해 빈부의 양극화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고 말한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 직시가 우선이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는 것. 형편이 어려운 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생각과 형편이 넉넉한 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생각 그리고 이 양자의 중간에 있는 이가 보고 느끼는 생각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 생각의 공통 분모가 양극화 문제의 해결 혹은 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생충」, 정말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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