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융의 시.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air3308/3865352>

 


글쎄? 거기가

 

관광지에 가서 자신이 알고 있는 맛집을 현지 주민에게 물어보면 의외의 답을 듣는 경우가 있다. 거기가 맛집 맞나 하는 표정을 짓거나 심지어 장소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 관광객들에게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 현지 주민에게는 그다지 맛집이 아닌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고장의 맛집은 어디가 진정한 맛집일까? 관광객에게 알려진 맛집일까? 현지 주민이 잘 아는 맛집일까?

 

진주 촉석루. 논개의 장렬한 최후 장소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관광객에게 이곳은 의기(義妓)의 애국 향취가 묻어나는 곳이다. 촉석루에 오르기 전 이곳의 논개 사당을 먼저 찾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하지만 촉석루는 본래 전망 좋은 연회 장소였다. 이것이 촉석루의 본모습이다. 논개도 왜장(倭將)들과의 연회에서 그 장렬한 섬광을 발하지 않았던가. 촉석루를 의기의 장렬한 최후 장소로 생각하는 것은 관광객이 찾는 맛집과 같은 경우이고, 연회 혹은 경관 좋은 전망소로 생각하는 것은 현지 주민이 찾는 맛집과 같은 경우라 할 만한다.

 

사진은 촉석루에 걸린 편액들 중의 하나로 조선 세종 때 사람인 우당(憂堂) 박융(朴融, ?~1428)의 시이다.

 


晋山形勝冠南區 진산형승관남구 진주의 경치는 남녘 제일

況復臨江有此樓 황부임강유차루 여기에 있는 촉석루라니

列峀層巖成活畵 열수층암성활화 즐비한 산봉우리 층층의 기암괴석 살아 숨 쉬는 그림 같고

茂林修竹傍淸流 무림수죽방청류 맑은 물 흐르는 곳엔 무성한 숲과 청청한 대나무

靑嵐髣髴屛間起 청람방불병간기 아스라한 푸른 기운 병풍에서 흘러나와 숨을 쉬는 듯

白鳥依稀鏡裏浮 백조의희경리부 백조 또한 거울 위에 떠있는 듯

已識地靈生俊傑 이식지령생준걸 인걸은 지령이라 내 이미 알거니

盛朝相繼薛居州 성조상계설거주 아름다운 선비들 이 땅에서 나올 수밖에

 


촉석루의 아름다운 풍치를 그렸다. 흔히 아름다운 것을 볼 때 '그림 같다'라고 말하는데 이 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아 숨 쉬는 그림'같다고 말했다. 최상의 감탄사를 사용한 것이다. 시 마지막에 아름다운 선비의 연이은 출현이란 말로 또 한 번 이곳의 승경(勝景)을 찬미했다. 예로부터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고 좋은 땅에서여기서는 촉석루가 있는 진주일 것이다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고 믿었다. '인걸 지령'으로 승경을 한 번 더 강화해 찬미한 것이다.

 

이 시는 촉석루가 뛰어난 경관을 가진 연회에 좋은 장소임을 여실히 그린 작품이다. 사실 이 시의 내용이 촉석루의 진면목일 것이다. 여기서 논개를 기억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본래의 모습, 즉 승경만 감상하는 것도 그만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이곳의 편액들을 조사해본 적은 없지만 논개의 의사(義死) 이후로 이곳의 편액 내용은 양분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논개의 의사 이전 시는 승경에만 중점을, 논개의 의사 이후 시는 논개의 향취에 중점을 두었을 것 같다. 이 시는 논개의 의사 이전 시이다. 순수한 승경 감상에만 치중한 것. 현지인이 즐겨 찾는 맛집 같은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진주 촉석루. 사진 출처: http://www.jinju.go.kr/main.web>

 

 

낯선 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뫼 산)(단지 유)의 합자이다. 주변이 높고 가운데가 움푹한 단지처럼 산의 중앙에 생긴 동굴이란 의미이다. 산굴 수. 산봉우리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산굴 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峀居(수거, 산 동굴에서 삶), 峀雲(수운, 산의 암굴에서 일어나는 구름) 등을 들 수 있겠다.

 

(사람 인)(두루 방)의 합자이다. 이 사람과 저 사람 간의 간격이 멀지 않다란 의미이다. 곁 방.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傍觀(방관), 傍點(방점) 등을 들 수 있겠다.

 

(뫼 산)(바람 풍)의 합자이다. 산바람이란 뜻이다. 남기(저녁나절에 멀리 보이는 산 같은데 떠오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남기 람.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嵐影湖光(남영호광, 산의 그림자와 호수의 빛깔이란 뜻으로, 산수의 풍광을 이름), 嵐光(남광, 남기가 떠올라 해에 비치는 경치) 등을 들 수 있겠다.

 

(벼 화)(드물 희)의 합자이다. 모를 뜨문뜨문 심었다는 의미이다. 의미를 압축하여 '드물다란' 의미로 사용한다. 드물 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稀少(희소), 稀微(희미) 등을 들 수 있겠다.

 

은 쑥이란 뜻이다. (풀 초)로 뜻을 표현했고, 나머지는 음을 담당한다. 주로 사람의 성씨로 많이 사용한다. 쑥 설.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薛濤(설도, 당나라 중기의 유명 여류 시인), 薛誓幢(설서당, 원효 대사의 출가 전 성명)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위에서 이 시를 촉석루의 풍치 잘 그린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이 시가 사용하고 있는 수사(修辭)는 좀 진부하다. 이런 풍경 묘사는 어느 승경에도 어울릴법한 진부한 표현인 것. 촉석루만이 가지는 좀 더 산뜻한 풍경 묘사가 없는 점이 아쉽다. 여기에 설거주라는 인명― 『맹자에 나오는 인물로, () 나라의 훌륭한 선비로 명망이 높았다 을 직접 사용한 것도 그리 좋은 표현법은 아니다. 불만 많은 시를 굳이 글감으로 사용한 것은 순전히 이 편액의 글씨 때문이었다. 내용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촉석루에 어울리는 글씨라는 느낌이 든 것(박융이 직접 쓴 것인지, 후인이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더없이 답답하다. 코로나19에서 해금되면 이곳을 찾아 울울했던 마음을 풀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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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여러 부장님들과 함께 하는 첫 날이니, 오늘만 잔소리를 좀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하지 않을게요."


새로 부임한 장(長)은 전에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장이 되기 전 한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사람은 나쁘지 않았지만 부하 직원과의 소통이 전혀 없는 것이 큰 흠이었다. 일이란 사람이 하는 것인데, 부하 직원과 소통이 없으니 일 추진이 빡빡하기 그지 없었다. 그를 대하면 벽을 대하는 것과 같았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는데(건강 검진에서 모 부위의 암이 발견되었다), 아무도 그에게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그가 퇴원하여 출근하던 날, 사무실에 들어서며 고성을 내질렀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입원을 했는데 아무도 병문안을 안오는거야!" 듣는 직원들은 침묵 속에 서로 눈짓 대화만 할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에게 대꾸했다. '이보세요. 다 당신이 한대로 받은 거에요.' 재미있는 건 이런 그가 늘 강조하던 것은 '소통'이었다.


이제 장이 된 그가 한 첫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반신반의했다. '아니, 큰 병을 앓고 나더니 사람이 변했나?' 하지만 사람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하던가. 아니나 다를까 그의 예전 버릇은 다시 도졌다. 자신이 한 일성(一聲)을 잊어 버렸는지 시일이 좀 지나자 업무 관계로 부장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제 버릇 개 줄까?'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한 마디 더했다. '어휴, 차라리 말이나 말지.'


소통은 어렵다. 내가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가 나를 이해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는데 어떻게 상대와 소통이 쉽사리 되겠는가. 많은 경우 우리가 소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소통의 모양새를 갖춘 것이지 실제는 소통이라고 하기 어렵다. 소통은 나와 남의 이해를 바탕으로 열리는 제 3의 세계이다.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사진의 한자는 한글로 써있는 것과 같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고 읽는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백제 온조왕이 한수 이남으로 천도하고 궁을 세웠는데, 그 궁을 두고 일컬은 말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조에 나온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건물은 어떤 건물일까? 실물을 볼 길 없으니 더없이 아쉽다. 백제 문화 단지에 세트장처럼 지어놓은 건물을 보고 그것을 상상한다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그저 그 건축 미학을 생각해볼 뿐이다. 검소와 누추 그리고 화려와 사치의 중간 지점이란 단순히 그 중간을 의미하지 않고 양 극단을 넘어서는 제 3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소통'과 같은 경지라고나 할까? 양 극단을 넘어서는 제 3의 형태의 미는 가장 균형잡힌 미가 아닐까 싶다.


삼국 중 미적으로 가장 세련된 나라는 백제였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미의 아름다움은 바로 저 제 3의 형태인 '소통의 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 삼존불을 봐도 이를 확인하게 된다(아래 사진). 소통이 이뤄질 때는 앙금이 없기에 밝고 환한 미소를 짓게 된다. 마애 삼존불의 미소는 바로 그 미소이다.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儉은 亻(사람 인)과 僉(다 첨)의 합자이다. 검소하다란 의미이다.  亻으로 뜻을 표현했다. 僉은 음(첨→검)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어느 한 부분만 절제하는 것이 검소한 것이 아니고 전반적으로 절제하는 것이 검소한 것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검소할 검.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儉素(검소), 儉約(검약) 등을 들 수 있겠다.


陋는 阝(언덕 부)와 㔷 (더러울 루) 변형자의 합자이다. 좁다란 의미이다.  阝로 뜻을 표현했다. 㔷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좁은 곳은 대개 더러운 곳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좁을 루. 누추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누추할 루.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固陋(고루), 陋醜(누추) 등을 들 수 있겠다.


華는 꽃이 피었다는 뜻이다. 윗부분의 艹(풀 초)로 뜻을 표현했고, 아랫부분은 음을 담당한다. 꽃 화. 화려하다 혹은 빛나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화려할(빛날) 화.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華麗(화려), 榮華(영화) 등을 들 수 있겠다.


侈는 亻(사람 인)과 多(많을 다)의 합자이다. 사치스럽다란 의미이다. 亻으로 뜻을 표현했다. 多는 음(다→치)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과도할 정도로 많은 것을 과시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것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사치할 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奢侈(사치), 侈傲(치오, 우쭐하고 거만함)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위 문장에서 ‘而는 변증법적 기능을 담당하는 독특한 허사이다. 시공간의 극단을 넘어 이들을 상호 중재하는 기능을 한다. 단순히 '그러나'의 의미만으로 풀이되기에는 뭔가 허전한 그런 의미를 담은 허사이다. 저 문장에서 '而'를 빼고, 즉 '儉不陋 華不'라고 쓸 수도 있으나, '而'를 넣은 '儉而不陋 華而不侈'와는 그 어감이랄까 문장의 맛이 현격히 떨어진다. 이러한 맛을 번역으로는 도저히 전달하기 어렵다. 사진은 https://cafe.naver.com/sk1964/819 에서 얻었다. 부여의 백제 문화 단지에서 찍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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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 말 의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우매함을 탓하는 분노의 눈물.

 

춘추시대(B.C 722-468) 260년간 전쟁은 531회 있었다. 이런 전쟁 경험에 대한 이론적 총괄이자 철학서가『손자병법』이다. 손자는 말한다.

 

병법에는 다섯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첫째, 척도, 둘째, 물량, 셋째, 병력수, 넷째, 역량 비교, 다섯째, 승리상황이다. 

 

아군의 병력이 적군의 열 배라면 적군을 포위하고, 다섯 배라면 공격하며, 두 배라면 적군 역량을 갈라 놓아야 한다. 대등하면 싸울 수는 있으나, 적으면 도망을 해야 하며, 열세라면 피해야 한다. 열세이면서도 고집스럽게 버틴다면 강한 적에게 사로잡힐 뿐이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만한 여건을 만들어 놓고나서 전쟁을 하며,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벌여 놓고는 이기기를 구한다. 

 

칼과 창 기껏해야 화승총으로 무장한 오합지졸[의병]이 총과 기관총 대포 등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정예 일군(日軍)과 싸우는 것은 이미 패하고 싸우는 싸움이었다. 한신의 '배수진(背水陣)'처럼 『손자병법』의 원리를 응용하여 싸울수도 있었겠지만, 의병에게는 한신도 없었다. 구한말 의병의 전투는 우매함 그 자체였다. 그 우매함 때문에 금쪽같은 생명을 헌신짝처럼 내버렸으니, 어이 아니 분노의 눈물을 흘리랴!

 

사진의 시는 이런 승산없는 싸움을 벌인 우매한 의병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崔運先烈士詩 최운선열사시  최운선 열사의 시

 

光復兵幕雪夜 광복병막설야  광복을 위해 나선 싸움터 군막 눈 내리는 밤에

 

離鄕戰地春秋過 이향전지춘추과    집 떠나 싸움터에서 세월만 가니


孤燈幕窓漏樹柯 고등막창루수가    외로운 등불 군막 틈새로 빛이 샌다

靑天明月同故國 청천명월동고국    밝은 달은 고향과 같은 달인데

白雪廣野無宿家 백설광야무숙가    눈 덮인 들에는 잘 곳도 없다

折轍單戈糧絶極 절철단과량절극    수레도 창도 군량미도 떨어져도

齧指丹血盟誓多 설지단혈맹서다    손 깨물어 조국충성 피로써 맹서하네

必時倭賊伐征息 필시왜적벌정식    기필코 왜적을 무찔러

槿域安民平得和 근역안민평득화    조국의 평화를 이룩하리

 

최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충분한 군량미를 비축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싸워도 승산을 따지기 어려운 판에 수레도 창도 군량미도 떨어지고 몸 누일 공간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라니! 그것도 눈내리는 밤에! 이들에게 남은 것은 곧이어 닥칠 죽음의 핏빛 새벽 뿐이다. 왜 이런 무모한 싸움을 하는가! 우매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의병은 정말 자신들이 패할 것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일군의 막강함을 그들이 왜 몰랐겠는가! 눈멀고 귀멀지 않은 이상 일군의 막강함을 몰랐을리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처지도 알고 상대의 위상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손자는 말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안다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의병은 위태롭지 않을 수 있었다.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싸우지 않으면 될 것이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싸웠다. 왜? 싸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국권을 침탈당하는데 어찌 사태의 추이를 관망한단 말인가. 싸울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결코 우매해서 패한 것이 아니다. 현명했기에 패한 것이다. 시의 6~8구는 이런 의병의 처연(凄然)한 모습을  보여준다.

 

구한 말 의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처연한 의기에 흘리는 감동의 눈물. 


그들은 결코 우매한 이들이 아니었다. 현명한 이들이었다. 살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을 의연히 포기하고 죽음의 길을 택했다. 하나뿐인 생명을 기꺼이 국권의 수호를 위해 산화한 이들을 어찌 우매하다 탓하랴! 구한 말 의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처연한 의기에 흘리는 감동의 눈물이다.

 

주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離는 隹(새 추)와 离(산신 리)의 합자이다. 본래 꾀꼬리를 뜻하는 글자였다. 隹로 뜻을, 离로 음을 표현했다. 떠나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다. 꾀꼬리가 앉아있던 나뭇가지를 떠났다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떠날 리. 離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離別(이별), 分離(분리) 등을 들 수 있겠다.

 

幕은 巾(수건 건)과 莫(暮의 약자, 저물 모)의 합자이다. 장막이란 의미이다. 巾으로 뜻을 표현했다. 莫는 음(모→막)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저물면 사방에 어두움이 내리듯, 사방에 드리운 것이 장막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장막 막. 幕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幕府(막부, 장군이 집무하는 곳), 幕僚(막료) 등을 들 수 있겠다.

 

宿은 宀(집 면)과 夙(일찍 숙) 변형과의 합자이다. 쉬면서 잔다란 의미이다. 쉬면서 자는 곳이 대개 집이기에 宀으로 뜻을 표현했다. 夙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온밤을 지내고 이른 새벽까지 쉬면서 잤다는 뜻으로 본뜻을 보충한다. 잘 숙. 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寄宿(기숙), 宿食(숙식) 등을 들 수 있겠다. 

 

은 糸(실 사)와 刀(칼 도)와 㔾(節의 약자, 마디 절)의 합자이다. 칼을 가지고 실을 잘라 길고 짧음을 조절한다는 의미이다. 끊을 절. 絶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絶交(절교), 謝絶(사절) 등을 들 수 있겠다. 

 

齧은 깨물다란 의미이다. 齒(이빨 치)로 뜻을 표현했다. 나머지는 음을 담당한다. 깨물 설. 齧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齧破(설파, 깨물어 깨뜨림), 齧齒類(설치류, 쥐·토끼·다람쥐 따위의 동물) 등을 들 수 있겠다. 

 

槿은 무궁화란 의미이다. 木으로 뜻을 표현했다. 나머지는 음을 담당한다. 무궁화 근. 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木槿(무궁화), 槿域(근역, 우리나라의 이칭)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하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오늘 날 우리 사회가 이만큼 민주화된 것은 그만큼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에는 패할 줄 알면서도 싸웠던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구한 말 의병 정신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 수많은 민주 투사들의 일견 무모해보이는 저항을 이해할 길 없다.

 

여담 둘. 사진의 시를 지은 최운선은 면암 최익현과 함께 나라의 앞날에 대해 노심초사 걱정하다가 의병을 일으켜 경향각지를 전전하며 항일투쟁과 구국운동을 전개했으며, 1919년 3월 1일 천안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들불과 같이 일어나자 고향인 청양으로 돌아와 그해 4월 5일 청양 정산시장에서 지역주민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했다가 체포돼 일본 헌병의 악랄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순국했다(출처: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940338). 사진은 http://blog.daum.net/woncompark/10681015 에서 얻었다. 시 번역에서 故國(고국)을 고향으로 번역했다. 동어 반복을 피하기 위해 고향을 고국으로 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최운선은 조선을 떠난 적이 없다. 사진의 시비(詩碑)에서 故國을 그대로 고국으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다. 野가 시비에는 다른 모양으로 나온다. 野를 고자(古字)로 멋스럽게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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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좋아질거야!"


좋아지지 않았다.


아버지 생전에 용하다는 무당 집에 두 번 간적이 있다. 한 번은 (아버지)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돼서 갔고, 한 번은 병으로 앓아 누우셔서 갔다. 간 곳에서 모두 긍정적인 답을 해줬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눈은 더 보이지 않게 되었고, 병은 더 악화되었다. 그들은 나를 속인 것일까?


사진의 한자는 한글로 표기된 바와 같이 '천우장군(天愚將軍)'이라고 읽는다. 무당들은 저마다 모시는 신이 다르다. 저 펼침막을 붙인 무당은 장군신을 모시는 무당이다('천우'가 어떤 장군인지는 모르겠다). 펼침막을 붙인 것을 보니, 최근에 신내림을 받은 듯하다. 대개 신내림을 받은 초기는 영험이 있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 속설에 기대 광고를 한 듯 보인다.


많은 이들이 무속 신앙에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 대체로 방송 매체를 통해 형성된 것이 많다. 특히 범죄― 살인, 사기 등 ―와 관련해서 무속 신앙을 다룬 경우가 많아 그 영향이 큰 듯 싶다. 하지만 무속 신앙은 고등 종교의 원초 형태이다. 기독교를 믿는다고 불교를 믿는다고 잰 체할 이유가 없다. 고등 종교는 화려한 옷을 걸친 것 뿐이고, 무속 신앙은 소박한 옷을 걸친 것 뿐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었어도 그것을 벗으면 똑같은 나신(裸身)일 뿐이잖은가?


무속 신앙을 찾는 것은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이다. 고등 종교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무속인을 찾으면 비용을 지불한다. 고등 종교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외려 고등 종교는 의례화된 형식을 빌어 지속적으로 비용을 내게 만들지만, 무속인을 찾을 때는 그 때만 지불하면 되니 비용이 덜 든다고 할 수도 있다.


무속 신앙에 극력 반대하는 사람들을 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엑셀도 좋지만 주판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각자가 편한대로 쓸 뿐이다. 무속 신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것 뿐.


아버지 때문에 찾았던 무속인이 나를 속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절박한 심정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그 마음을 헤아려, 내게 해주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속였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어리석은 것이다. 어떻게 아버지의 삶을 그에게 의탁한단 말인가! 그의 말은 그저 참고로 받아들인 것 뿐이다. 참고 의견에는 긍정도 있고 부정도 있지 않던가! 


펼침막을 보면서 왠지 많은 이들이 '요즘 시대에 웬…'하는 생각을 하며 무속 신앙을 하찮게 여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횡설수설 해보았다. (위에서는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다.)


愚와 將이 낯설다. 자세히 살펴본다.


愚는 心(마음 심)과 禺(원숭이 우)의 합자이다. 원숭이같이 답답한 심사를 가진 사람이란 의미이다. 어리석을 우. 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愚鈍(우둔), 愚昧(우매) 등을 들 수 있겠다.


將은 寸(마디 촌)과 醬(장 장)의 약자가 합쳐진 것이다. 장수라는 의미이다. 장수는 원칙과 법도가 있어야 부하를 통솔할 수 있기에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寸으로 뜻을 표현했다. 醬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맛을 조화시키는 장처럼 부하들의 여러 요구를 잘 조화시켜 이끄는 이가 장수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장수 장. 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將軍(장군), 將星(장성) 등을 들 수 있겠다.


펼침막의 배치가 재미있다. 원초적 욕망과 불안을 다룬 것이 위 아래에 있고, 문명의 발달을 보여주는 것이 중간에 있기 때문. 문명의 발달이란 원초적 욕망과 불안을 해결하면서 쌓아온 것이란 메시지로도 읽히고,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원초적 욕망과 불안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재미있게 배치된 펼침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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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鄰, 먼 이웃이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

 

이웃의 소중함을 말하는 성어다. 명분보다 실질이 중요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니 '이웃 사촌'이라는 말도 생긴 것 아닐까? 마윈의 마스크가 도착했다. 100만장을 보냈다하니 마스크 해갈에 일조를 할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마스크를 보내며 자신의 메시지도 함께 보낸 것.

 

산수지린 풍우상제(山水之鄰 風雨相濟, 산과 물로 이어진 이웃, 비바람(어려움)을 함께 이겨 냅시다. 사진의 해석이 약간 조악해서 고쳐보았다).

 

우리 정부에 사전 통보없이 한국인 입국 금지를 선언과 일본과 극명히 대조된다. 물론 마윈이 개인 자격으로 마스크를 보낸 것이기에 일본과 대조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마윈이 공산당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중국 정부와 무관치 않을 것이기에 일본과 대조해도 큰 무리 없을 듯하다. 우한 사태가 극성을 부릴 당시 우리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점과 중국인 입국자에 대해 무차별 금지를 하지 않고 선별 금지를 하여 중국의 명예를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라고 해석하고 싶다. 어제는 시진핑 국가 주석의 한국에 대한 격려 메시지까지 더하여 한층 더 일본과 대조되는 이웃의 가치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감읍(感泣)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던가! 우리가 그만큼 했기에 받는 것 아닌가! 그러면 일본에게는 그만큼 하지 않았기에 못받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일본에 잘못한 것이나 베풀어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일본 내각은 그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자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중국인을 선별 입국시켰듯이 그들도 충분히 선별 입국시킬 수 있는데 한국인에 대한 전면 입국 금지를 내린 것은 그같은 강경한 조치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19에 대한 내각의 자세가 안이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만만한(?) 놈 골라 본때를 보인 것이라고나 할까? 코로나19가 창궐하여 하루 기백명이 죽는 이탈리아에 대해서 입국 금지를 내리지 않는 것만 봐도 일본 내각의 속내가 여실히 보인다. 중국과 일본, 둘 다 이웃이지만, 적어도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선 너무 대조된 모습을 보인다.

 

사진은 SBS 뉴스에서 캡쳐했다.

 

鄰과 濟가 낯설다. 간자체라 더욱 그렇다.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자.

 

鄰은 阝(邑의 변형, 고을 읍)과 粦(도깨비 불 린)의 합자이다. 고을이란 뜻이다. 주(周)나라때 지방 행정의 최소 단위로 다섯 가구를 묶어 鄰이라 했다. 으로 뜻을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도깨비 불처럼 모여있는 듯 흩어있는 듯 미미한 가구(家口)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고을 린. 이웃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이웃 린.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親鄰(친린), 交(교린) 등을 들 수 있겠다. 隣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阝의 위치가 바뀐 것.

 

濟는 氵(물 수)와 齊(가지런할 제)의 합자이다 물 이름이다. 하북성 찬황현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민수로 들어가는 물이다. 로 뜻을 표현했다. 는 음을 담당한다. 물이름 제. '건너다, 구제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제수를 건너다, 제수의 풍부한 수량이 가뭄을 극복하게 했다'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건널(구제할) 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救濟(구제), 濟民(제민) 등을 들 수 있겠다.

 

얼마 전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친서를 전했다. 그런데 그 전날에는 그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청와대가 북한의 합동타격훈련에 우려를 표한데 대해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고 막말을 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막말을 쏟아내고 뒤이어 위로와 격려의 친서를 보내니, 우리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하나? 근친불여근린(近親不如近隣, 가까운 친척이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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