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장교님, 아무리 하찮은 기생이라도 그렇게 흩어진 마음과 몸으로 만나는 일은 없습니다. 당신들은 진주기생을 잘못 보고 있어요. 나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고 그렇게 천하게 굴지도 않습니다." (이영희,『역정』(창작과 비평사: 1988), 183쪽)


기생의 이미지는 몸파는 여인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기생은 예인(藝人)에 가까운 이들이었고, 이들은 예기(藝技)를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다. 더불어 시문(詩文)까지 학습했기에, 대부분의 가정 여인네들이 반문맹이었던 시절, 이들은 최고의 여성 엘리트였다. 사대부들이 기생을 찾았던 것은 그네들의 몸을 탐해서라기보다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반문맹의 부인에게서 느끼는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한 점이 더 컸다. 


인용문은 이영희 선생이 한국전쟁 당시 진주에서 만났던 한 기생과의 일화를 적은 글에서 인용한 것인데, 전통적인 기생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특정한 한 기생의 말이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기생들이 가졌던 면모를 대변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생의 이미지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왜곡된 것이다.


사진은 부안(扶安)의 시기(詩妓)로 이름이 높았던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의「규원(閨怨)」이란 시이다.


相思都在不言裏 상사도재불언리   애끓는 정 말로는 할 길이 없어

一夜心懷半絲 일야심회빈반사   밤새워 머리칼이 반 남아 세였고나

欲知是妾相思苦 욕지시첩상사고   생각는 정 그대도 알고프거든

須試金環減舊圓 수시금환가구원   가락지도 안맞는 여윈 손 보소


밤새 하얗게 쇠어버린 머리와 야윈 손마디로 애끓는 상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 애절한 상사의 마음을 전해받은 이는 누구일까? 그녀와 시문으로 교류했다고 전해지는 유희경이나 이귀 혹은 허균이나 서우관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그 누구이든 이 애절한 상사의 시를 전해받은 이는 평생 그녀의 포로가 되었을 것 같다. 애절한 상사의 마음을 이렇듯 아름다운 시문으로 표현할 줄 아는 여인에게 어느 사내가 매혹되지 않으랴. 외면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갈수록 감쇄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갈수록 증강된다. 만일 매창이 외면의 아름다움만 간직한 기생이었다면 이런 일은 어려웠을 것이다(실제로, 허균의 기록에 의하면, 매창은 미모가 아니었다하니 이 말은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매창이 노래하는 애끓는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그들의 정신적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몸의 사랑도 있었겠지만 그건 부차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이영희 선생이 만났던 진주 기생의 말이 이를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선생은 진주 기생이 자신과의 사적 만남을 어긴데 대해 분함을 토하며 차고있던 권총으로 공포탄을 쏘면서 그녀의 굴종을 압박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 번 조용히 이렇게 말한다.


"젊은 장교님, 잘 들어두세요. 아무리 미천하고 힘없는 사람이라도 총으로 굴복시키려 들지 마세요. 여자란 마음이 감동하면 총소리 내지 않아도 따라갑니다. 당신도 차차 사람과 세상을 알게 될 겁니다. 돌아가세요.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위와 같은 책 같은 곳)


당대 천시받던 직종에 있었지만 기꺼이 그네의 가치를 인정하고 대우했던 그들에게 매창 역시도 기꺼운 마음으로 사모의 정을 표했을 것이다.


鬢과 環이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鬢은 髟(머리털 드리워질 표)와 賓(손님 빈)의 합자이다. 살쩍(귀 앞에 난 머리털)이란 뜻이다. 髟로 뜻을, 賓으로 음을 표현했다. 살쩍 빈. 鬢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鬢雪(빈설, 살쩍이 흼), 鬢絲茶煙(빈사다연, 노후의 조용한 생활) 등을 들 수 있겠다.


環은 고리라는 뜻이다. 王(玉의 변형, 구슬 옥)으로 뜻을 나타냈다.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한다. 고리 환. 環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環境(환경), 環繞(환요) 등을 들 수 있겠다.


인정이나 이해는 씨앗을 품은 흙과 같다. 매창이 남긴 아름다운 시편을 읽을 때 그네만의 공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네를 보듬어준 당대 문인들의 넉넉함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매창의 절창 하나를 더 읽어보자.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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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질적인 변화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누드화와 춘화를 구별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없는 것 같다. 똑같이 벌것벗은 몸을 그린 것이지만 예술로 승화됐으면 누드화요, 그렇지 못했으면 춘화라 할 것이다. 승화에는 화룡점정과 같은 신의 한 수가 필요하다.


사진은 익히 알려진 혜원 신윤복의「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이다. 으스름 달밤 두 남녀의 밀회를 그린 이 그림은 관음증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런데 이 질펀한 냄새를 유지하면서도 그림 전체를 유쾌하게 만드는 신의 한 수가 그림 속에 들어있다. 춘화에 가까운 그림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신의 한수는 무엇일까? 바로 화제(畵題)이다.


월침침 야삼경 양인심사 양인지(月沈沈 夜三更 兩人心事 兩人知). 달빛 침침한 한밤중 (몰래 만난) 두 사람의 심사는 두 사람만이 알리라.


이 화제가 빠지면 이 그림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기 어려웠다. 고수의 절묘한 화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절묘한 솜씨의 다른 버전이, 역시 익히 알려진,「단오풍정도(端午風情圖)」이다.





이 그림에서는 화제 대신 직접 그림을 그려 넣었다. 「단오풍정도」의 신의 한수는 남몰래 숨어서 엿보는 동자승이다. 이 동자승이 없었다면 이 그림은 그저 농밀한 그림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엿보는 동자승으로 하여 이 그림은 농밀하면서도 유쾌한, 예술작품이 되었다.


沈과 事가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沈은 물에 잠겼다는 의미이다. 氵(물 수)로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한다. 잠길 침. 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浮沈(부침), 擊沈(격침) 등을 들 수 있겠다.


事는 자원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 旂(깃발 기)의 약자와 冊(책 책)의 약자와 又(手의 원형, 손 수)의 합자로, 손으로 깃발을 잡거나 간책(簡冊)을 들고 기록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둘. 史(역사 사)와 之(갈 지)의 약자가 결합된 글자로, 순리와 정도에 따라[之] 치우치지 않게 기록하는[史]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일 사. 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事態(사태), 事跡(사적) 등을 들 수 있겠다.


예술 작품은 시대와 관계를 맺는다. 혜원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질펀하면서도 유쾌한 혜원의 작품은 그가 활약한 정조 연간(年間)의 활발발(活發發)한 시대 분위기와 맞닿아있다. 정조 사후 폐색된 정치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다. 혜원의 그림에서 정조 연간의 시대 분위기를 읽는 것도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중요 포인트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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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가 길을 가고 있었다. 중간에 내를 건너지 못해 발을 구르는 여인네를 만났다. 스승은 덥석 그 여인네를 안아 내를 건네 주었다. 제자는 뜨악한 눈으로 스승을 바라 보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제자가 스승에게 항의조로 말했다. "어떻게 낯모르는 여인네를 그렇게 덥석 안아 건네주실 수 있습니까?" 제자의 힐문에 스승이 웃음 띈 얼굴로 말했다. "아니, 자네는 아직도 그 여인을 안고 있나?"

 

최치원은 우리 한문학의 비조(鼻祖)로 꼽히지만 최고봉이기도 하다. 자의(字義)와 표현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표음문자 표기의 문학과 달리, 자의와 표현이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성을 유지하는 표의문자 표기의 문학은 과거의 문학 작품과 현금의 문학 작품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평가가 가능하다. 나말(羅末)에 지어진 최치원의 한시는 고려나 조선조에서 지어진 한시 작품과 동일선상에서 비교가 가능하며 이에따라 그 우열을 가릴 수 있다. 이런 동일선상 우열 비교를 해볼 때 최치원의 작품은 단연 수위(首位)를 차지한다.

 

탁월한 문학 창작 능력이 출세의 보증수표였던 시대, 최치원은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는 자격을 갖췄건만 시대가 그를 수용하지 않아(못해), 슬프게도 세상을 등졌다. 보증수표가 공수표로 취급되는 세상을 바라보며 최치원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진은 최치원의「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으로, 은둔 군자의 재치 넘치는 시로 널리 회자(膾炙)된다.

 

狂奔疊石吼重巒 광분첩석후중만   첩첩이 쌓인 돌 위로 미친듯 내달으며 굽이굽이 장쾌한 소리 내지르니

人語難分咫尺間 인어난분지척간   사람들 말소리 지척서도 분간하기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 상공시비성도이   옳으네 그르네 찌그럭대는 소리 듣기 싫어

故敎流水盡籠山 고교유수진롱산   내닫는 폭포로 온 산을 감쌌다오

 

이 시의 표면적 주체는 사람이 아닌 '가야산 독서당'이라는 사물이다. 그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면의 주체는 시인 자신이다. 가야산 독서당이 시비소리를 싫어하여 폭포 소리로 가야산을 둘러싸게 했다는 것은 곧 시인이 시정(市井)의 시비논란이 싫어 산중에 은거했노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세상을 완전히 잊은걸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한참전의 여인을 계속 생각하는 스승의 제자처럼, 여전히 세상을 잊지 못하고 있다. 시인이 진정으로 세상을 잊었다면 시정의 시비소리를 애써 피할 이유가 없다. 시정의 시비를 의식한다는 것은 여전히 세상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건네준 여인의 존재 자체를 잊었던 제자의 스승처럼 될 때, 시인은 진정으로 세상을 잊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시인은 보증수표가 공수표로 취급되는 세상에 등을 돌렸지만 공수표가 다시 보증수표로 환원되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은둔군자의 재치 넘치는 작품만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당대(當代) 버림받은 인재의 인간적 나약함을 드러낸 작품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낯선 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疊은 도마 위에 식재료가 겹쳐있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겹칠 첩. 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疊疊(첩첩), 重疊(중첩) 등을 들 수 있겠다.

 

吼는 口(입 구)와 孔(구멍 공)의 합자이다. 큰[孔, 孔에는 크고 넓다란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소리로 운다[口]는 뜻이다. 울 후. 吼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獅子吼(사자후), 吼怒(후노, 성내어 으르렁거림) 등을 들 수 있겠다.

 

巒은 작은 봉오리가 연이어 있는 산이란 뜻이다. 山(뫼 산)으로 뜻을 표현했다.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한다. 뫼 만. 巒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巒峰(만봉, 산봉오리), 巒岡(만강, 작은 산) 등을 들 수 있겠다.

 

籠은 竹(대 죽)과 龍(용 룡)의 합자이다. 삼태기란 의미이다. 竹으로 뜻을 표현했다. 龍은 음(룡→롱)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용은 본시 변화무쌍한 존재인데, 그같이 흙을 퍼나르기에 손쉽게 활용하기 편한 도구가 삼태기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삼태기 롱. 싸다, 싸이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쌀(싸일) 롱. 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籠球(농구), 籠城(농성) 등을 들 수 있겠다.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가야산은 일반적으로 경남 합천의 가야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동명(同名)의 산이 내포 지역에도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최치원이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석각들도 있다. 그래서 이곳이 바로 최치원이 은거한 가야산이라는 주장을 한다. 게다가 최치원은 내포 지역에서 군수를 지낸 적도 있기에 더더욱 신빙성이 높다고 말한다. 어느 것이 맞을까? 「제가야산독서당」의 내용으로 보면 경남 합천의 가야산이 맞을 것 같다. 내포 지역 가야산에는 '광분첩석후중만'할만한 폭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각 등의 흔적을 보면 내포 지역의 가야산이 맞을 것도 같다. 그러나 중요한 건 어느 지역의 가야산이 최치원이 은거한 가야산이냐가 아닐 것이다. 은거란 인재가 사장됐다는 의미이고, 인재가 사장된 시대는 불행한 시대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일 터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러한 시대가 없기를 희구하는 것이 정작 더 중요한 사안일 터이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취득했는데, 출처를 잊었다, 사진을 올린 분께 고마움과 함께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 글씨가 내용과 잘 어울려 매우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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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작은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신다. 술이 들어가면 웃음과 말수가 많아진다. 그런데 술을 드시지 않을 때는 꼭 화난 사람같다. 웃음기도 없고 말수도 적다.

 

『명심보감』에 '취중불언 진군자(醉中不言 眞君子)'란 말이 있다. '취중에 말 없는 이가 진짜 군자'란 뜻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취중엔 으레 말수가 많아지고 그 말도 대개는 허풍기가 있어 실수가 잦다는 말이 된다. 술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을 대범하게 만든다.

 

한시중에 이백의 시만큼 호방한 시가 없다. 그런데 그의 시는 두주불사 음주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만일 두주불사의 음주 습관이 없었다면 그의 호방한 시는 세상에 선을 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백은 소심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두주불사의 음주 습관으로 호방한 시를 지었다는 것은 두주불사의 음주습관이 없었다면 호방한 시를 짓기 어려웠을 거라는 역설이 가능하다. 술이 있어야 호방한 시작(詩作)이 가능했다는 것은 그가 본래 호방한 사람이 아니고 소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왠지 이백은 평소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우리 처 작은 아버지처럼 화난 사람같이 말수도 적고 웃음기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처 작은 아버지를 본의아니게 흉본 격이 됐는데 이백과 동급으로 대했으니 화내시진 않을 것 같다).


사진은 천생아재필유용(天生我材必有用)’이라고 읽는다. ‘하늘이 나를 냈으니, 반드시 쓸데가 있을 것이다란 뜻이다. 이태백의 유명한 권주가「장진주(將進酒)의 한 구절이다. 하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고 일상의 쇄사(瑣事)에 골몰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런 활달한 기상의 시는 술기운을 빌었을 때 가능하다. 맨 정신에 이런 기상을 갖기란 쉽지 않다. 다시 한번, 이백은 술기운을 빌지 않으면 더없이 조용한 소심한 사람이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장진주는 언제 읽어도 유쾌하다. 일상의 자잘한 근심을 보물처럼 껴안고 사는 우리네 소시민도 이 시를 읽다보면 이백 못지않은 호방한 기분을 맛본다. 굳이 술을 마시지 않고도 호방한 기운을 맛본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숨죽여 읽지 않고 큰소리로 읽을 때 한결 더 호방한 기운을 맛볼 수 있다. , 우리 시 한 잔~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지수천상래   황하의 물이 천상에서 오는 것을

奔流到海不復回 분류도해불부회   바다로 쏟아져 내려 다시 돌아오지 않는도다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高堂明鏡悲白髮 고당명경비백발   좋은 집 명경 속에 백발을 슬퍼하는 것을

朝如靑絲暮成雪 조여청사모성설   아침에는 푸른 실, 저녁때는 눈이어라

人生得意須盡歡 인생득의수진환   인생을 마음껏 즐길지니

莫使金樽空對月 막사금준공대월   금 술동이 비우지 않고 거저 달을 대하지 말라

天生我材必有用 천생아재필유용   하늘이 나를 낳았으니 반드시 쓰일 데가 있으리라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산진환부래   천금을 다 뿌리면 다시 또 오리로다

烹羊宰牛且爲樂 팽양재우차위락   양을 삶고 소를 잡아 아직은 즐겨보자꾸나

會須一飮三百杯 회수일음삼백배   모름지기 단번에 삼백 잔을 마실지라

岑夫子丹丘生 잠부자단구생   잠부자 단구생

將進酒君莫停 장진주군막정   술을 드리니 그대들 막지 말라

與君歌一曲 여군가일곡   그대와 함께 한 곡조 읊어보리라

請君爲我側耳聽 청군위아측이청   그댄 날 위하여 귀 기울여 들어주오

鐘鼓饌玉不足貴 종고찬옥부족귀   멋진 음악과 맛있는 음식도 귀할 게 못되는도다

但愿長醉不愿醒 단원장취불원성   장 취하기만 하고 깨는 건 원치 않는도다

古來聖賢皆寂寞 고내성현개적막   예로부터 성현들은 모두 다 적막하였으나

惟有飮者留其名 유유음자류기명   술 마시는 사람만이 이름을 남기게 되리로다

陳王昔時宴平樂 진왕석시연평락   진왕은 그 옛날 평락관에서 잔치를 벌여

斗酒十千恣歡謔 두주십천자환학   말술 십천으로 마음껏 즐겼더니라

主人何爲言少錢 주인하위언소전   주인이여 어찌 돈이 적다고 말하는가

徑須沽取對君酌 경수고취대군작   모름지기 술을 사서 그대와 마시리로다

五花馬千金裘 오화마천금구   오화마와 천금구로

呼兒將出換美酒 호아장출환미주   아이야 나가 맛있는 술을 바꿔 오너라

與爾同銷萬古愁 여이동소만고수   그대와 함께 만고의 수심을 녹여 보리로다 


(번역: 신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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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m.cafe.daum.net/yonggo20/j7sS/185>



21대 국회 원 구성을 놓고 여야간 대치가 심각하다. 여당(민주당)에 힘을 몰아준 국민의 열망을 생각하면 야당(미통당)이 여당의 협상에 순순히 응해 원만한 원 구성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금의 상황을 보면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본래 모습이고, 뜻대로 되는 것은 의외의 덤이란 생각이 든다. 


조선조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로 평가받는 다산 정약용 선생은 10년 넘는 세월을 귀양살이로 보냈다. 자신의 경륜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도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본래 모습이고, 뜻대로 되는 것은 의외의 덤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사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가 있는 용문산을 바라보면 지은 시이다. 시제는「망용문산(望龍門山)」이다.


龍門色 표묘용문색   아득한 저 용문산 산색이

終朝在客船 종조재객선   아침 내내 나그네의 배를 비추고 있네

洞深惟見樹 동심유견수   골 깊어 오직 나무만 보이고

雲盡復生煙 운진부생연   구름 그치자 이어서 안개가 일어난다

早識桃源有 조식도원유   무릉도원이 있는 줄 진작에 알고서도

難辭紫陌緣 난사자맥연   서울 거리와 인연을 끊기 어려워라

鹿園棲隱處 녹원서은처   절이 숨어있는 곳

望好林泉 창망호림천   아름다운 숲과 물을 슬프게 바라보네


이 시를 표면적으로 보면 은둔을 원하지만 세사에 얽매여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왠지 이 시를 위에서 언급한 세상의 본래 모습을 그린 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시제「망용문산(望龍門山)」은 '용문산을 바라보며'란 단순 풀이보다 '새로운 비상을 꿈꾸며'로 해석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용문산의 용문을 등용문(登龍門)의 용문으로 보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시제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이지만 이 시의 주된 뜻은 그런 세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런 세상이 뜻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을 드러낸데 있다(시제와 내용의 불일치를 통해 자신의 소회를 역설적으로 더 강조한 것이다). 무릉도원같은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지만 그런 세상은, 바램과 달리, 이루기 어렵다. 마지막 구의 '슬프게 바라보네'는 바로 그런 세상에 대한 원망과 슬픔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견강부회한 해석처럼 보일 것 같다. 그렇지만 왠지 이런 무리한 해석으로 이 시를 보고 싶다. 선생의 펼치지 못한 경륜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후인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당사자야 오죽했겠는가. 선생을 위무(慰撫)하는 차원에서 벌인 엉뚱한 발상으로 이해들 해주시길!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縹는 糸(실 사)와 票(漂의 약자, 뜰 표)의 합자이다. 옥색(의 비단)이란 의미이다. 糸로 뜻을 표현했다. 票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떠있는 물체처럼 청색과 백색이 섞인 짙지 않은 청백색이 옥색(의 비단)이란 뜻으로 본뜻을 보충한다. 지금은 비단이란 의미는 떨구고 주로 옥색이란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옥색 표. 휘날리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휘날릴 표. 縹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縹靑(표청, 옥색), 緲(표표, 휘날리는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다.


는 糸(실 사)와 眇(아득할 묘)의 합자이다. 아득하다란 의미이다. 본래 眇로만 표기했는데 후에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가늘어 찾아보기 어렵다는 의미가 함유된 糸로 뜻을 보충했다.아득할 묘. 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縹緲(표묘, 높고 먼 모양), 緲漫(묘만, 끝없이 멀고 아득함) 등을 들 수 있겠다.


紫는 糸(실 사)와 此(이 차)의 합자이다. 자줏빛(의 옷감)이란 의미이다. 糸로 뜻을 표현했다.  此는 음(차→자)을 담당한다. 자줏빛 자. 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紫錦(자금, 자줏빛의 비단), 紫蕨(자궐, 고사리) 등을 들 수 있겠다.


陌은 阝(阜의 변형, 언덕 부)와 百(일백 백)의 합자이다. 도로란 의미이다. 도로는 중심부가 양쪽 가장자리보다 약간 높기에 阝로 의미를 표현했다. 百은 음(백→맥)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길은 대개 여러갈래[百]로 갈려져 있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길 맥. 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陌頭(맥두, 길가), 陌上塵(맥상진, 거리의 먼지. 정착하지 아니하고 떠돌아 다님의 비유) 등을 들 수 있겠다.


悵은 忄(心의 변형, 마음 심)과 長(긴 장)의 합자이다. 원망하고 슬퍼한다란 의미이다. 忄으로 뜻을 표현했다. 長은 음(장→창)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원망하고 슬픈 감정은 길고 복잡하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원망할 창. 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悵望(창망, 슬퍼하며 바라봄), 悵悔(창회, 원망하고 후회함) 등을 들 수 있겠다.


견강부회한 해석을 한 김에 이 시의 작시 연대에 대한 무리한 짐작도 해본다. 이 시는 다산의 생애 어느 시점에 지어진 것일까? 대개 생애 초반은 수학기이고, 중반은 성취기이며, 말년은 정리기이다. 새로운 비상을 꿈꾸는 것과 그것의 좌절은 대개 생의 중반에 맛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다산의 생애 중반에 지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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