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산을) 밀어버릴 거에요!”
수련회를 다녀온 딸 아이가, 산행을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며 하이톤으로 말했다. “그려∼”웃으며 대답했다. 수년 전 일이다.
유가에서는 ‘시’ 교육을 중시한다. 정서 함양에 요긴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교 영향을 짙게 받은 우리나라에서 초학자 교재로 사용한 것 중에 『추구(抽句)』가 있다. 오언(五言)의 가언(佳言) 대구(對句)를 모아놓은 것인데, 첫머리에 “천고일월명 지후초목생(天高日月明 地厚草木生)”이란 구절이 나온다. “하늘은 높아 해와 달이 빛나고, 땅은 두터워 초목이 생겨나네”란 뜻인데, 대구를 잘 맞춘 그 이상의 의미를 느끼게 된다. 뭘까?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을 그렸으니 자연스럽게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고, 이는 확대하여 ‘사람 역시 천지간의 존재로 천지를 부모로 하여 생겨난 존재다’라는 생각이나 정서가 자연스럽게 우러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학습자가 이런 지경까지 이르겠는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해도 은연중 이와 같은 생각이 내면에 씨앗처럼 뿌려져 결국은 그렇게 발화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은“청산불묵만고병 유수무현천년금(靑山不墨萬古屛 流水無絃千年琴)”이라고 읽는다. “청산은 먹으로 그리지 않은 만고의 병풍이요, 유수는 줄이 없는 천고의 거문고라네”라는 뜻이다. 『추구』의 내용과 흡사한데, 이 글귀를 되풀이하여 읽으면 어떤 정서가 함양될까? 청산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유수를 훌륭한 가락으로 여기는(여기려는) 심미감이 함양되지 않을까? (사진은 길거리 전봇대에 붙어 있는 것을 찍은 것인데, 길거리 예술 작품의 일환으로 붙여놓은 것이다. 취지는 좋은데, 한자 문맹이 대다수라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 싶었다. 작게라도 해설을 덧붙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교(詩敎)는 전통 교육 방식이지만 한 번 되돌아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환경의 위기가 문제시되는 오늘날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파한 시를 되풀이 읽다 보면 자연스레 자연 애호의 마음이 싹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과학적 분석과 관찰만으로는 자연 애호의 마음을 싹틔우기 어려울 것 같다. 딸 아이의 저 말은 우리 교육의 자연을 대하는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웃었지만, 그저 웃고 말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墨, 屛, 絃, 琴이 낯설다. 자세히 살펴보자.
墨은 黑(검을 흑)과 土(흙 토)의 합자이다. 서사(書寫)의 재료가 되는 검은 색의 안료[土]라는 뜻이다. 먹 묵. 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墨刑(묵형, 죄수에게 죄목을 새기는 형벌), 墨畫(묵화) 등을 들 수 있겠다.
屛은 尸(屋의 약자, 집 옥)과 幷(나란할 병)의 합자이다. 집 내부를 가리는 물체라는 의미이다. 尸으로 뜻을 표현했다. 幷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병풍은 집과 함께 있을 때 의미 있는 물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병풍 병. 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屛風(병풍), 翠屛(취병, 꽃나무의 가지를 이리저리 휘어서 문이나 병풍 모양으로 만든 물건) 등을 들 수 있겠다.
絃은 糸(실 사)와 玄(검을 현)의 합자이다. 현악기에 사용되는 줄을 뜻한다. 糸로 뜻을 표현했다. 玄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현악기의 줄이 내는 소리는 그윽하고 미묘하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악기줄 현. 絃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管絃樂(관현악), 弄絃(농현, 거문고나 가야금 따위 한국 전통 음악의 현악기 연주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어 원래의 음 이외의 여러 가지 장식음을 내는 기법) 등을 들 수 있겠다.
琴은 거문고를 그린 것이다. 아랫부분은 판, 윗부분은 안족과 줄을 그린 것이다. 거문고 금. 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伽倻琴(가야금), 琴瑟(금슬) 등을 들 수 있겠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즐거움을 잘 그려낸 시 한 편을 읽어 본다. 되풀이 읽으면 뭔가 형언(形言)하기 어려운 미감을 느끼게 된다. 최충(崔沖, 984-1068)의 시이다.
滿庭月色無煙燭 만정월색무연촉 뜰에 한가득 달빛 켜고
入座山光不速賓 입좌산광불속빈 산 그늘을 손님으로 맞았네
更有松絃彈外譜 갱유송현탄외보 솔바람 반갑다 연주하니
只堪珍重未傳人 지감진중미전인 이 맛을 그 뉘가 알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