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트한테 이 차도 팔 수 있었을지 몰라. 내가 왜 안 팔았지? 열 명은 더 구했을 거야. 열 명... 열 명은 더 살릴 수 있었는데.”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대사이다. 쉰들러는, 주지하는 것처럼, 본래부터 유대인 구조에 뜻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사익 추구를 위해 불가피하게 유대인을 고용했다 회심하여 진심으로 유대인을 구하기에 나선 사람이다. 본의 아니게 선행을 하게 된 사람, 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물려줄 건 가난밖에 없어요.”
장 외조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분란만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감하면서도(그런 사례를 많이 봤기에) 마음 한구석에 의문이 인다. ‘혹시 가진 재산이 많지 않고 자녀도 많기 때문은 아니시고?’ 그러나 분명한 건 장 외조카가 본의 아니게 선행을 하게 된 사람, 이라는 점이다. 부(富)의 대물림이 없어 사회의 공익 증가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 기세를 떨쳤던 묵가 사상이 일순간에 사라진 것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는다. 그 원인을 추정하는 언급 중에 사적 정서와 이익을 과도하게 억제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공감이 간다. 공익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개인의 정서와 이익을 억제하면 그 어떤 주장도 오래가기 어렵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를 압도하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상이라 해도 그 정신 자체가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묵가 사상이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강조하는 공익의 가치를 그 누가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 정신은 길이 남을 터이다.
사진은 ‘대대손손(代代孫孫)’이라고 읽는다. ‘자손에서 자손으로 대를 이어’라고 직역할 수 있겠고, ‘영원히’라고 의역할 수 있겠다. 전통시장에서 산 뱅어포 포장지에 쓰여있는 글씨이다. 1950년에 가게가 시작됐다는 내용을 덧붙여 전통 있는 가게의 믿을만한 제품이란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
‘대대손손’ 문구 자체의 의미는 무애무덕하고 외려 긍정적인 의미도(전통의 계승이라는) 있으나, 이 말이 사익과 연결되면 일순간에 부정적인 의미로 전락한다. 비아냥 혹은 욕설로 사용하는 “대대손손 잘 먹고 잘살아라!”가 그것이다. 이 말은 공익의 가치를 무시하고 사익의 추구에만 혈안이 된 이들을 질타하는 말이잖은가. 공익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익의 과도한 추구 역시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대를 이어 지속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사회에는 재화의 양이 한정돼있는데 그것이 소수에게만 지속해서 집중된다면 사회가 안정을 잃고 불안이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일개 점포 주인이 대를 이어 장사한다고 사익에 혈안이 된 이들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 장 외조카에 비해 의도치 않은 공익 기여에는 한 걸음 뒤 쳐진다는 점이다. 장 외조카의 본의 아닌 선행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하기까지 하지만 대를 이어 사익을 추구하는 이와 대조하면 큰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代와 孫을 자세히 살펴보자.
代는 人(사람 인)과 弋(문지방 익)의 합자이다. 중간에 있으면서 내외를 이어주는 문지방처럼 내용과 형식을 바꿔 이어간다는 의미이다. 대신할 대. 代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代身(대신), 代理(대리) 등을 생각할 수 있겠다.
孫은 子(아들 자)와 系(이을 계)의 합자이다. 아들 뒤에 계속되는 존재, 즉 손자라는 의미이다. 손자 손. 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子孫(자손), 孫婦(손부)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대는 자녀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귓가에 들린다. 하하, 인터넷에 글 따위나 끄적거리는 백면서생에게 무슨 물려줄 재산이 있겠는가! 얘들아, 그러나 이 아빠는 본의 아니게 공익의 가치를 높이는 매우 훌륭한 행동을 하고 있단다. 아빠를 너무 무시하지 말렴.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