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퇴사는 가능할까? ----- 126페이지
내가 원하는 .... 퇴사 방법
아무도 나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게
조용히 자리를 비우고 싶다.
보통.... 3년 차는 10일.... 5년 차는 15일.... 10년 차는 한 달... 정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열나게 일을 해야 한다.
나의 19년은... 몇 개월일까...
등 떠밀린 육아휴직이 이렇게 내게 큰 변화를 가져올 줄
몰랐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로잡아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잠깐 멈추는 여유는 꼭 필요한 여정이었다. ----- 133페이지
출산 전날까지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했다. 그리고
딱 6개월 만에 복귀를 했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 모든 직원이
15개월을 꾹꾹 채우고 복직을 하는데
나의 차이는 없다. 돈 시급 500원.... 더 자유로운 재택근무....
나는 뭐 때문에 이 고생을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의 "엄마같이 있자."라는 말에
"엄마 회사 가야 해."라는 말을 하는가.
일은 2배는 더 많고... 전 직원들의 업무를 관리해야 하고
그러고도... 다를 게 없는 개 같은 삶...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나.
한심하다 못해 답답하다는 말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머릿속을 맴돌고 다닌다.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 "처럼
여유가 두려운 나에게 힘이 되는 내용이 ....
결심했어 ~~
닥쳐서 아이템이 바뀌는 사고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터졌다.
그럴 때면 내리 나흘을 야근하고도 주말에 원고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예측할 수 없는 일상은 피로도를 높였다. ----- 147페이지
일, 육아, 일, 육아, ,,,,, 토할 것 같던 순간
사고가 펑펑 터지던 그때가 생각난다.
지금도 ... ing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회사를 위한 내 노력이 희망 없는
짝사랑 같았다. 시간과 열정을 모두 회사가 뺏어간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복직한 뒤 야근에 저항하면서도
결국 굴복했던 건 일을 계속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놓아지지
않아서였다. ----- 151페이지
복직한 뒤 1년이 지나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야근이 자연스럽게 재택근무처럼 되어버렸다.
퇴근을 하고 육아를 하고 육퇴가 끝나고 다시 출근 .....
이미 회사의 감언이설에 속을 대로 속아
매번 회사의 기대에 맞춰 무리했다. 무리하기
싫다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할 때는 무리해도 된다고 했으면서, 너무 늦은 회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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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언이설에 .... 십팔 년을 .... 회사에 몸을 갈아 넣고
십구 년이.... 지나는 지금....
여유가 생기자 '잘해야 한다.'라는 압박, '빨리해야 한다.'
라는 강박에 빡빡하던 마음이 느슨해졌다. '잘'이라는 기준이
뛰어난 성과를 의미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선을 갖게 됐고, '빨리'라는 속도는 최대한 대신 '버겁지 않은'
이라는 선을 갖게 됐다. ----- 167페이지
나의 속도대로 천천히 달려가고 싶다.
누구의 속도로 가 아닌 오롯이 나의 속도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달려가고 일하는 순간....
회사 일을 하면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1주일 넘게 감기에 온몸이 흐물흐물해진 지금도
나의 행복을 위해 서평을 쓴다. 나의 유일한
행복마저 버리면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하나라도 부여잡고 살고 싶다.
이렇게라도 숨통을 틔우고 싶다.
내 나이 마흔이 돼서야 운전을 시작했다. 사실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끝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여덟 살 때 횡단보도를 건너다 음주운전
트럭에 치인 기억 때문이었는데, 강렬한 빛에 부딪혀 하늘로 튕겨 올랐던
경험은 버스나 트럭이 다가오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 184페이지
교통사고... 3번
여섯 살 달려오는 차에 정면으로 꽝
고등학교 3학년 때 버스 전복 사고
대학교 1학년 때 삼촌과 함께 엄마 집을 가던 중 사고....
그런 나 또한 ....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죽을 때까지 핸들은 잡고 싶지 않았지만
10년 차부터 외근 업무로 갈 수 있는 게 한계가 되어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핸들을 잡았다.
무섭고 무섭고 ... 떨린다. 아직도 고속도로를 달리면
손바닥에 땀이.... 하지만 모두 다 하는 건데
이것도 못하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 남편은 "즐겨"라는 말을 해준다.
처음엔 포기하라는 얘기를 했지만
지금은 즐기면서 하면 괜찮아.라고 나를 응원한다.
컴퓨터가 푸팅 되는 동안 어제 써둔 다이어리의 To Do 리스트를 확인했다.
이미 OX 표시는 되어 있었고, 나는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어제의 점수를
매겼다. 스스로 하는 채점이어도 점수는 박하기만 했다. ----- 235페이지
매일 아침 나의 일상을 보는 느낌에.... 등골이 서늘
모든 직장인이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2시간 넘어서 집을 가서
한참을 복통으로 잠을 못 자다가
택시를 타고 응급실을 가서 맹장수술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이 2019년 4월 19일....
그날 나는 수술을 마치고 회사에 전화를 해서는
"나의 수첩에 적힌 업무 내용 확인해서 진행하시면 됩니다."라는
업무보고를 했던 기억이 난다. 1시간이면 깨어날 사람이
3시간이 되어서야 정신이 차려서 병원에서 깜짝 놀랐다고 하셨다는...
며칠 야근에 수면 부족을 수술을 통해.... 잠을 잘 수 있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아기를 출산하던 날도..... 출산과 근종 제거 수술을 같이 하던 중...
2시간 넘게 나오지를 않아 수술방 밖에서 남편이 많이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너스레를 치며 "아마도 숙면을 취했을 거야"라고
웃으며 넘긴다.
내가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갱신하는 삶이 성장하는
삶이라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삶이 맞겠지만
내게는 맞지 않았다. 매번 나를 열등생으로 평가했으니깐.
우등생, 열등생의 구분 없이 나를 너그럽게
바라보는 삶은 자유로웠다. ----- 240페이지
고등학교 이후로는 없을 줄 알았던
우등생, 열등생.....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더 극심해진 것 같아서
더 힘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