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부의 원칙 - 행동투자학의 최전선에서 밝혀낸
대니얼 크로스비 지음, 조성숙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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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시장은 철저히 제로섬(zero-sum) 공간이다. 수익을 내는 사람이 있으려면 반드시 손실을 보는 호구가 있어야 한다. 폭탄 돌리기 시장에서는 누군가는 호구가 되어서 반드시 폭탄을 안고 터뜨려서 쓰러져야 한다. 주식투자자에는 크게 기관, 외국인, 개미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호구는 개미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개미는 현금 보유량에도 딸리지만, 사고파는 시점을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에 엄청난 상승을 보여준 삼성중공업우를 보자. 주가가 5만원 하던 게 90만원까지 올랐었다. 5만원에 팔고 나간 사람이 있는 반면에 90만원에 들어와 매수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이다. 초장에 팔고 나간 사람은 손가락만 빨았고, 끝물에 들어온 사람은 상투를 잡은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들은 지금 엄청 후회를 하고 있겠지만, 반면에 그 반대로 초장에 들어와서 꼭대기에서 나간 사람은 엄청난 호재를 부리고 있을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제로섬 시장에서 엄청난 차이를 불러 왔다. 이들에게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뛰어난 투자자가 되는가?(65페이지)어떻게 하면 호구 투자자가 되지 않는가?는 동전의 양면 같은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그 여정의 끝에는 심리학적 기반 위에 만들어진 분산투자를 통한 소위 제3의 투자, 즉 행동투자 방법의 시작과 끝,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심리학에서 제기되고 있는 일상의 위험을 관리하는 기법까지 들여와 있기 때문에 생활 전반에 재미를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주식시장에서 투자 위험 관리 기법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대조실험과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증명하고 있다. 다 죽 쑤는 악재의 구간에서도 재미, 호재의 구간에서는 더 큰 재미를 볼 줄 아는 미학을 찾을 수 있게 한다. 아무리 시장이 안 좋아도 호재의 상승 종목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매수하는 것만큼 매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이는 어느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투자자의 감각에 의해야 한다. 말하기도 배우기도 어려운 매수와 매도의 기법에 관해서 알려진 모든 방법을 총합적으로 융합해서 만들어진 행동투자 기법이 있다.

 

투자자의 재미에 찬물을 끼얹는 투자의 위험(손실을 볼 가능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체계적 위험(시장위험) 비체계적 위험(기업위험)이 있다. 이 위험들은 투자 기업의 내적, 외적 환경으로부터 오는 위험들이다. 모든 투자자들에게 공통으로 다가오는 위험들이기 때문에 행동 투자학의 관심 밖에 있다. 이 위험들과는 달리 투자자의 개인적 성향 때문에 투자로부터 수익을 얻지 못하는 위험이 있다. 그 위험은 행동 위험이 중심으로 들어온다. 이는 시장이나 기업의 상황과는 관련 없이 오로지 투자자 개인의 역량에서 오는 위험이다. 호재의 상황에서 일찍 매도, 저가 매도하거나 악재의 상황에서 일찍 매수, 고가 매수하는 것과 관련 되는 위험이다. 이 위험들을 관리하는 방법은 인간의 심리를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새로운 길, 3의 길로 들어간다.

 

 

투자자의 일은 오늘의 시장을 내일의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153페이지

 

투자의 방법에는 정답이란 것이 없다. 굳이 있다면 무조건 손실을 줄이고 수익을 크게 하는 것이다. 수익의 정도는 각자의 능력에 맡겨질 뿐이다. 그런데 수익은 어렵고, 손실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원칙의 제일 목표는 위험의 관리이다. 특히 불확실성하에서의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자본시장 투자자의 최소한의 방법이다. 그 관리되어야 할 위험은 매수와 매도로 매칭되는 거래 시장에서는 항상 잔존한다. 특히 행동 위험은 시장이 매우 좋은 호황기에는 더 크게 존재한다.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 심리학의 방법론이 인간으로서의 마음이 아니라 투자자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투자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투자자의 심리학적 요소로서 행동위험에는 크게 에고, 보수주의, 주의 집중, 감정이 있다. 이 네 가지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이 주로 제기되는 것은 우리의 뇌가 진화론적으로는 생존에는 적합하게 진화되었지만 투자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된다.

 

에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자아 동조적 만족, 확증 편향, 선택 지원 편향, 후회 회피,

심지어 어리석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은 과잉 확신으로 몰아낸다. 보수주의는 보유효과, 매몰비용의 오류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안전하고 익숙한 것에 기대려는 보수주의 편향은 손실회피 경향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지나친 손실 회피 경향은 두려움이 현실이 되어버리고 만다. 가만히 있다가 나쁜 결과가 초래하는 것보다 뭔가를 해서 나쁜 결과가 초해하는 것을 훨씬 후회하게 된다. 주의 집중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확률보다는 쉽게 떠오르는 스토리에 의존해서 판단하게 한다. 투자의 공간에 흐르는 두려움과 탐욕의 감정휴치스틱에 익숙하게 하고, 규칙은 이방인으로 만들어서 확률을 변질시켜서 합리적 투자를 방해한다.

 

행동투자는 규칙에 기반한다(261페이지). 우리의 일상에서는 아주 풍요로운 생활을 만들어주는 네 개의 기둥을 투자의 공간에서는 극복의 대상이 된다. 성공한 투자로 가는 길에서는 겸양의 마음으로 에고를 잠시 쉬게 하고, 자신과는 철저히 이질적인 투자의 시장을 꼼꼼히 살펴보고 자신을 지극히 평범한 존재로 인식하는 데서 움튼다. 끊임없는 공부와 질문은 계속되고 분산투자라는 방법으로 이어진다. 익숙함에의 고집은 혼란스러운 위험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오늘보다는 내일을 생각하고 낯선 종목에도 관심을 갖고 보유 종목에는 무지의 베일 감정을 두르고 최악을 준비하는 자세로 극복한다. 스토리에 의존 경향은 데이터, 합당한 이론과 시간을 통해서 확률과 평균에 의존으로 대체한다. 감정은 명상을 통해서 이해하고 다스린다. 일상의 공간에서는 삶을 풍부하게 하지만 투자의 공간에서는 오류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네 가지 기둥을 냉철하고 명민한 눈으로 위험과 불확실성을 관찰하여 삶을 더 재창조하게 만들려는 투자의 길목에 행동투자 기법이 있다.

 

지식이 곧 행동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행동의 결정에 착오가 적어도 일부나마 면역력이 있는 투자 과정을 설계하고 채택하는 것만이 답이다.---334페이지

 

행동투자는 위헌 우선 투자다(290페이지). 위험 회피보다는 위험에 적극적으로 선호하며 데이터, 이론, 행동의 시험대를 통과해서 하나의 투자 이론은 빛을 보게 된다. ‘이 주가가 옳은가?’가 아니라 가격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행동투자자들은 시장의 효율성과 비효율성을 동시에 인정하여 가치 투자와 모멘텀 투자, 그리고 재귀성을 결합한다. 그리고 불완전하지만 주관적 해석도 하고 긍정적 피드백 고리도 주면서 적정 가치를 향해 가는 포트폴리오를 꾸린다. 즉 펀더멘털, 추세는 편파적 시각의 자기 강화를 통해서 하나의 모델로 자라 잡는다. 직관과 자유의지, 스토리와 확률로 균형을 유지하고 역발상 투자와 장기간의 보유로 두려움을 극복한다. 이렇게 연습이나 실력의 일상과는 다른 규칙 속에서 무수한 반복 속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행운도 나름으로는 당연한 것으로 다가오게 한다. 두 가지의 틈바구니 사이에 흠을 찾아서 태어난 제3의 투자는 편파적으로 왜곡된 세계관의 투자자들이 자기 견해를 강화하는 공간에서 투자자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인간의 착오를 이용하고 공포를 피하는 것(281페이지)으로써 과제는 끝난다.

 

끝날 때가지 참아야 진짜 승리하는 것이다(333페이지). 우리 일상은 수많은 위험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속의 자본시장, 특히 미국의 주식시장에서 조정장은 평균적으로 매년 발생하였고, 대규모 침체장은 평균적으로 36개월마다 있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상승 곡선을 보여주는 곳에서도 위험은 봄철의 벚꽃마냥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하물며 지수가 횡보를 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에 조정과 대침체는 더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미국의 시장보다도 더 위험과 불확실성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가지 이르렀다면, 이런 상황을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반복되는 위험의 패턴을 찾았으면 관리를 위한 규칙 시스템을 마려하는 것이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한다. 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도 알아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심리학적 의미를 알고서 시장이 굴러가는 모습을 공부하면서 투자의 길에 서있어야 호구가 되지 않게 된다. 11번의 상한가를 치기까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횡보를 보여 계속된 전투 속에서 승리와 패배는 교차하였다. 우연한 호재에 창사 이래 처음이었던 1600%의 초과 이익의 대 전쟁에서 제일 꼭대기까지 참았다가 나왔을 때에 진정한 승리가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찍 퇴장과 늦은 등장에 호구 딱지를 양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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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분기점 - 8인의 석학이 예측한 자본주의와 경제의 미래
폴 크루그먼 외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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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포스트 자본주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144페이지).”는 확정적 말로 시작하고 싶다. 코로나19는 세계 대공황이후 엄청난 대 환란(患亂)을 일으킬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런데 어느새 세계사 흐름에 그저 재채기 정도, 확인 사살해 주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 같다. 수많은 촉진 변수 중의 하나로서의 역할 수준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것 같다는 인식에 이르고 있다. 그로 인한 경제 활동의 장애가 발생한 빈부격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저 그런 현상에 진폭을 더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 이름 없이 흘러 다니고만 있던 경제현상에 K.마르크스와 M.베버가 명칭을 붙인 이후 200년이 넘었지만 아직 그대로이다.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많은 사람이 힘들어 하는 코로나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조에 어떤 억제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세계에 중국과 북한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나라가 자본주의로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마르크스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이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자본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생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데올로기이다. 오직 이 기조에서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가 지구 시계 12시를 향하고 새로운 방향에서 시작된 인류의 꿈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만 남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설명하고, AI가 앞으로 인류에게 미칠 영향과 그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7명의 서양 경제학자의 인터뷰가 있다. 이들은 요즘의 코로나19를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아서 인터뷰 시기가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비판적으로 총평하며 자신만의 생각으로 마무리하는 또 한 고견이 실려 있다. 현재의 설명과 미래의 예측으로 시대 변화의 거시적인 화두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 속에서 미시적인 한 개인이 자신의 소망과 행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경제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사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개인들에게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자유와 정의와 행복이 더 중요하고 자본주의든 포스트 자본주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여러 논객들의 이야기에서 포스트 코로나19의 흐름을 미리 땡겨서 자신만의 틀을 만들고 준비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

 

다만 일본 저널리스트가 인터뷰를 진행한, 원제 <未完資本主義>를 번역하고 한국의 진보 경제학자의 내용을 첨부한 것이기에, 일본 경제에 관한 질문이 많다. 이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찬성하는 사람에게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팔로워(follow) 경제였던 우리나라와 일본에게 특수성을 넘어서 보편성이 존재하는 문제들이기에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여기며 귀담아 들을 수도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 다만 폴 크루그먼의 인용실수(?)에서 오는 부담감은 줄이기에 유쾌하지는 않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시스템은 없습니다(28페이지). 자본주의는 변한다는 사실입니다(100페이지). 비록 지금은 문제투성이 이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넘쳐난다. 민주주의처럼 자본주의라는 것은 소수 몇몇의 혁명가들이 어두운 방 안에서 창안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제 이데올로기는 시시때때로 모난 부분을 수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데올로기의 창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인류의 경제적 상황. 직면한 문제에 따라서 정부와 시장의 역학관계에서 아주 다양한 모습을 띠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도, 새롭게 맞이하는 4차 산업혁명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 모습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지칭되었던 가격의 자리를 데이터가 그 자리를 대신하여 돈과 권력이 되는 모습의 자본주의가 될지도 모른다. 자유무역으로 자본이 연결되고, 인터넷으로 기술이 연결되고, 데이터로 사람들끼리 그리고 사람과 사물이 연결로 이어지면서 정부와 시장의 역학 관계도 나날이 변하는 새로운 모습은 우리의 생존 방식에도 변화를 불러 오고 있다. 정부와 시장 간의 신뢰, 자기 책임과 도덕적 감정을 바탕으로 한 협력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경제학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경제 예측은 아니지요(40페이지). 경제학자가 반드시 경제 예측이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143페이지).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셀 수 없이 예측을 하지만 대부분의 예측의 정확도는 올해 프로야구 우승팀 맞히는 확률과 비슷하다. 2020년을 코로나19가 휘젓고 다닐 것을 예측한 기업인은 있었지만, 경제학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도 못 찾고 있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이유에 대해서도 학파별로 견해가 나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이미 지난 간 과거의 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취약한 경제학에게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부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소수일수록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심정으로 브레인스토밍으로 제기되는 다양한 견해를 보게 된다. 특히 현재 발생하고 있는 아주 똑같은 상황을 보고서도 대책은 비슷한 것도 있지만 여러 갈래를 보여 주는 것도 있다. 또한 미래의 일자리에 대해서는 아주 딴판의 분석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는 요즘 우리에게 핫했던 기본 소득제도에 대한 입장도 대립되는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민 정책에서 개방주의 지지는 우리 20-30대의 생각과는 편차가 있어서 관심 있게 읽힌다. 경제학자들의 다양하면서도 색다른 관점으로 제기된 문제들이 확률성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현실의 벽을 뚫고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게 한다.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존재 의의를 느끼게 해 주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120페이지). 누구에게나 이상이 있고 어떤 분야나 원하는 목표가 있다. 그 이상과 목표들이 딛고 숨 쉬고 있는 자본주의는 경제학은 경쟁하는 인간을 전제로 하고 경제를 성장의 관점으로만 본다. 이는 경제가 일, 성장, 생산 같은 양적 개념화가 가능한 부분에만 치중하게 한다. 반면에 인생의 의미, 행복, 도덕, 우정 같은 질 질적 개념의 질서에는 눈을 감게 하고 있다. 편향된 치우침은 출산, 혁신, 창조성으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자본주의의 시발점인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 공정하지 않은 시장의 경제를 추구하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손을 넘어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와 어쩐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적 경험을 보거나 시장도 한 사회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이 아니라 사회에 존재한다(109페이지)는 생각이 더 현실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서민,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이 올바른 학습도구와 규제, 정치시스템을 통해 잠재 능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그 나라는 틀림없이 반영하고 산적해 있는 문제도 사라질 것입니다.(67페이지)

 

격차에 관해서는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19페이지)라는 것에 표를 주고 싶다. 경제학자들의 예측이나 전망이 어떠하든지에 상관없이 테크놀로지는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주의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와 정치가 이질적이기는 하지만 한 국가 안에서는 따로 놀 수는 없다. 깜깜이처럼 흘러가는 우리의 미래 경제를 좌우하는 한 가운데에 정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 K.마르크스는 정치는 경제의 상부구조라고 했지만, 아주 심각한 오판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목에 만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그 말에 오류가 있다는 훨씬 강하게 각인시켜 준다. 지금 허우적거리고 있는 미국과 브라질, 갈피를 못 잡고 ‘30째 잃어버림 속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못나가고 있는 일본을 보면 정치 지도자의 중요성을 백골난망(白骨難忘)한다. 어떤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느냐에 따라서 자신들의 미래가 바뀌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낫 놓고 자 읽기가 된 것 같다. 브렉시트(Brexit) 같은 상황을 한 걸음 더 거슬러서 생각하면, 아무리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각 개인의 허투로의 투표가 얼마나 자신의 미래를 구렁터기로 몰아넣는다는 생각도 앞서게 한다. 기술혁신에 발맞춰 정치혁신과 사회혁신이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혁명이 주는 혜택을 최고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 방식과 내용이 그 출발점에 있다.

 

저는 항상 인간을 주목합니다. 굴욕적인 상황을 물리치고 모든 가능성을 발휘하는 힘, 그곳에서 생겨나는 존엄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67페이지)

앞으로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평생 학습자(Lifelong learner)라는 능력이 가장 중요해집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학습 도구를 얻는 힘입니다(51페이지).

 

우리는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는 거죠(187페이지). 분기점, 한복판은 위기이면서도 가능성이 맥시멈(maximum)으로 열려 있는 공간이다. 선택이 아주 열려 있는 갈래갈래 갈린 길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잘 된 선택은 최댓값을 얻게 하지만 잘못된 선택은 최솟값을 취하게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길로 가야할 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 산업혁명의 종착지는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우리가 한 마디 고언을 듣고 싶어서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것 같다. 그들은 단지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그 상황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예측은 할 수 있지만 그게 맞을 확률은 경험적으로 매우 낮았다는 데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것의 제일가는 이유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에 오류가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에 대안을 찾은 것도 아니다. 오직 미래는 우리가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우리 자신이 책임질 뿐이라는 사실만이 아주 명확하게 남아 있었다. 다만 간절한 마음을 담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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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 새하얀 밤을 견디게 해준 내 인생의 그림, 화가 그리고 예술에 관하여
이세라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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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기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상상력을 키워 주는 것에는 미술만한 것이 없다. 그렇게 미술관과 작품에는 항상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작가보다는 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는 제목이 많은 매혹을 뿜고 있었다.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는 책의 겉표지를 보고서야 알았다. 모방송사의 도도한 영화에 나왔었고, 지금은 토요일 그 시간마다 그 목소리가 떠오른다. 책 한 권을 통해서 미술품으로 보게 되는 상상 속에서 덤으로 따라와서 알게 되는 근황 너머로 당당했던 그 목소리를 연상한다. 그녀가 보여 주는 세상 속에서 그림들이 보여 주는 삶의 모습을 만난다. 그 옛날 것에서 요즘의 것까지 망라하는 공간에서,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기에 당연히 변해야 하는 것이 있고, 그러지 안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반대 현상이 발생하면 갈등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란 것 쯤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틈새 사이로 그녀만의 가장 강력한 최후의 발언권(19페이지)을 찾아본다.

 

인생의 어느 시기를 지날 때 나를 구하고 위로 해준 작품(8페이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과 영화가 주는 최대의 혜택을 보여 준다. 예술을 통해서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사이의 접점을 찾아 슬픔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 보여 지고 있다. 그 과정에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 아름다움은 때로 사람을 눈멀게 한다는 것을(45페이지). 아주 익숙하지만 들을 때마다 다시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말이다. 방송 이미지만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에서 미술의 자리와 인간의 자리라는 뜻밖의 원초적인 질문을 만나게 된다. 미술사, 그것도 익숙함보다는 생소함이 더 진하게 우려 나오는 미술가와 그 속에 담긴 인생과 현재 우리 사회, 정치에 대한 자기만의 비판적 고찰, 그리고 연애담과 때로는 거칠고 격정적인 어조는 보이는 게 다는 아니지만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도 뼈대 있게 들려온다. 내 남자의 연대기, 웃음과 슬픔, 웃픔의 얘기가 백김치 속의 고춧가루처럼 꽂아 있어서 진지함이 갈피를 못 잡게 한다. 그렇게 삶의 가벼움과 무게를 느끼게 하는 36개의 일화로 채워져 있는 에세이에는 사람 냄새 나는 감흥을 찾아 가는 자신만의 인본주의적인 삶의 몸부림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모자이크 그림은 소개되고 있지 않지만, 그녀의 글쓰기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표지를 덮고 모자이크를 완성하고 보니, 웃음은 웃음이 아니라 헛깨비였고 삶의 문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거기에 버티고 있었다. 미술 작품이 주는 감상(感想)은 현실의 감상(感傷)1밀리미터도 넘지 못했다.

 

미술품을 자기 나름대로 감상하려면 자신은 철저하게 맨 얼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속 시원하게 보기가 어렵다. 그렇지 않으려면 남이 소개해 놓은 책이나 인터넷을 뒤지면 된다. 이미 거기에는 백과사전이라는 이름과 블로그 속에는 누군가 이미 내 고향 7월의 포도처럼 주저리주저리 적어서 해석의 딱지를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보려고 한다면, 자신만의 감정과 이해로 접근하려고 한다면, 그런 것들은 이미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그녀가 보여 주는 공간에는 두 개의 세상이 있다. 하나는 그녀의 눈에 비춰진 그림과 영화 등의 세계와 그녀 자신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 별개의 다른 두 개의 세상은 연결되어 공유의 과정으로 만들어 간다. 두 개의 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을 통해서 그림과 교감하면서 우리도 그 세계로 끌어들인다. 거기에는 작가만의 현실관과 인생관이 중요한 몫을 한다. 그 어딘가에 필히 읽는 이도 마음을 비빌 언덕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 텐트) ; 트레이시 에민. 1995作. 20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함. 책(231페이지)에 설명은 되어 있으나 소개되어 있지 않아서 인터넷 검색으로 펌.>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은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닌가? 언제나 마음에 오래 남는 건 사람과 삶을 말하는 작가이고 작품이다.----247페이지

 

그림은 말이 없다. 설명하는 글자 하나도 없다. 심지어 제목은 그림과 별도로 붙어 있다. 그것도 말해지 않으면 절대 알기 어려울 정도로, 그저 보여 주기만 할 뿐이다. 그 보여줌이 무슨 의미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비슷하게 해석하고 이해되기도 한다. 공통의 관점이 생겼다는 것에서는 나도 그들의 일부라는 안도감과 씁쓸함이 함께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게 진짜로 그린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글로 표현되는 시의 경우도 작가 자신도 모르는 해석이 붙는 경우가 허다한데, 말도 글도 없이 그저 모습만을 보여 주는 것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을 것인가는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그림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오직 보는 사람의 가슴 속에만 있어서, 수 십 가지의 의미를 보여 줄 수도 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보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보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아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상상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예술품이나 문학보다 보기 편하다. 객관적인 세상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그리고, 감상하는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에는 나만의 세상이 있다. 공통의 관점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161페이지]


나는 보다 분명한 나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7페이지).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한두 건의 사건으로 한 인생을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단초를 찾아가며 생각의 연결 괴를 찾는다. 초등 시절에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기를 좋아했던 소녀는 지금은 인생이라는 외줄에 매달려서 자신만의 색깔로 그림을 보며,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려고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는 대부분의 그림과 얼마간의 영화, 그리고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매달렸을 경험이지만, 머릿속에 많이 각인되어 않아 그저 흔한 일상쯤 이상으로 라고 생각되는 것 이상으로 색다른 경험의 기억을 주고 있다. 그 기억은 이제는 그림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있다. ‘그림 앞에 서는 시간’, ‘나의 모든 시작의 순간들’, ‘다시는 망설이지 않겠다’, ‘아름다운 날들은 언제라도 온다는 네 개의 소제목은 그저 허투루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생소한 화가들이 아주 많이 나온다. 아니 대부분이 생소한 작가들이다. 이미 봤던 작품,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보다는 그녀만의 전문성이 깃들여진 작품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모르지만 각각의 자리에서 빛내고 있는 미술품들은 그 내용에 맞게 제 자리에 서서 그녀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회문제에 포커스를 다루기도 한다. 미술의 세계는 또 하나의 판박이 세상이다. 두려워하면서도 끝까지 미술과 영화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의 연속선을, 세상과 현실을 자신과의 접점을 찾아간다.

 

지난 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러가게 두고, 넘어진 지금 이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지나이다의 그림을 통해서 배운다.(203페이지)

 

현실보다 더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은 없다(68페이지). 멀쩡한 남자들이 나한테 오면 어딘지 이상해지는 건가. 아니면 내가 그런 놈들만 골라 만나는 건가(240페이지). 모자이크를 완성하기 전에는 웃음이 나오는 장면 중의 하나였다. 후자의 문장에 더 관심을 주었고, 그저 그런 연애생활의 푸념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직장 생활에서, 남자로부터 생채기를 많이 받은 그녀를 만나게 되는 순간에는 독립심이 강한 그녀도 인간관계가 거의 블랙홀 수준이다. 특히나 어떤 시람을 만나고 어울리느냐에 따라서 현재의 기쁨이 달라진다는 것을 익히 알기에 허투루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현재를 밟고 서 있는 과거, 지나온 과거도 하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만남에서도 그렇다. 그럼에도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가장 일반론적인 얘기로도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만의 특수한 얘기라면 또 다른 느낌으로 읽힌다. 현재를 이겨내려는 자기만의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할 수 있다. 자신만의 자기 고수하는 비법이 여기에 있었다. 그림 너머 어떤 것에서 느껴지며 배워지는 것들은 아련하기만 하다.

 

한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힘은 대단하고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일상을 꾸준하게 살아내는 반복학습에서 나온다(62페이지). 그림 너머로 불가해하고 새로운 것과 그 옛날의 것이 혼재하는 것들을 일상 속에서도 만난다. 그렇게 방점은 미술관이 아니었다. 일상의 맨얼굴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 왔으나 갈수록 무거운 마음이 자라 잡게 하고 있었다. 개인의 감정으로 왔으나 구조의 감정으로 변했다. 미술은 조연이었고, 슬픔이 주인공으로만 몰아가고 있었다. 제목과 분량과 비례하지 않은 분위기이다. 미술, 그녀, 세상. 리뷰의 초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아직도 100년 전 문화를 지키려는 자와 나 자신을 고수하려는 그녀 사이에서는 특히 그랬다. 사실 과거를 부정하고 현재를 새로 시작하려는 출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반갑지만은 않은 이야기는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야마시타 기요시<나이아가라 불꽃과 구경꾼들> 306페이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 혹은 그런 상태(219페이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시간과 간절함은 수시로 찾아온다. 삶은 익숙해지기 어렵고 엇박자를 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문명의 변화가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나라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그에 동반하여 정신문화도 그런 것 같다. 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저 덜떨어진 일부 사람들만이 그러는 상상속의 구닥다리 퇴물로 여겨졌던 ‘1982년생 김지영‘1987년생 김지영을 직면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개인의 복이라는 생각이지만, “결국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살 뿐(332페이지)”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무겁고 잔인하게만 다가온다. 감히 인생을 즐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어디서 베낀 듯, 표절 아닌 표절로 끝맺음을 하려고 하였으나, 그녀의 현실 앞에 오만이었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녀가 숨겨둔 맨얼굴의 모자이크는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게 한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오직 나만의 생각 비뚤어진 감상(感傷)이길 바랄 뿐이다. 극복되어야 할 상황이 아니라 극복된 상황으로 인도하여 나이아가라 불꽃과 구경꾼의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공간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자리에 있을 그녀만의 자화상이 어떤 세상을 보여 줄지 궁금해진다. 인생에 내려진 저주를 걷어내고 마침내 행복해진, 그 기적 같은 순간(339페이지)은 고르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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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생산성, 창의성, 혁신성을 높이는 6단계 생각법
팀 허슨 지음, 강유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매일 매일을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생각을 안 하고는 살 수가 없다. 생각의 양태는 직면하는 상황에 따라 아주 단판이다. 그런데 아즈 희한한 상황에서는 그에 맞는 생각이 필요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무릎을 !’ 칠정도로 창의적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보면 엄청 부럽다. 만날 진부하고 판에 박힌 생각만 하는 사람은 은근 슬쩍 시샘하다 못해서 내 자신에게 책망을 하기가 일수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부질없는 몸부림이며, 심지어는 자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그만두고 그냥 포기할 뿐이다. 그래도 흙수저에게는 가진 것이 몸뚱아리가 전부인지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민만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생각이 무기가 되는 산업 혁명의 시기, 남들보다는 틈새 생각을 잘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생각 적응을 하려고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는 방법을 배워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생각이지만, 누가 봐도 아주 시원한 생각을 할 수 능력은 무기가 되는 시대에 생각의 연습 기회를 맞이해 본다.

 

생각을 잘하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347페이지). 산만하고 본능적이고 패턴을 즐기는 우리의 뇌에 점 하나를 찍어서 획기적인 변화의 공간으로 이끈다. 50년 이상의 인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에는 생각의 변화를 통해서 인생 변화의 간절함을 몸소 느끼게 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그 길목에 재생적 사고라는 일상적인 생각을 거부하고 생산적 사고라는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체화하는 과정을 전문적으로 보여 준다. 생산적 사고를 단순히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생활에서 다양한 도구로써 적용하는 틀이 되게 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매우 전문적인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어서 자기만의 용어를 쓰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식의 바다에 빠져서 생각하는 패러다임을 들여다보는 것을 체험하게 한다, 그 체험은 상아탑의 진수를 보여주며 엄청 디테일하고 논리적으로 꾸며져 있다. 가볍게 생각하며 신변잡기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결코 아니기에 자세하고 꼼꼼하게 읽어나가야 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부분 하나 하나가 우리 삶의 한 가닥을 이루는 것들이다. 바로 우리의 인생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장난이 아니며 만만찮기 때문에 변화에 있어서도 그렇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우공이산(愚公移山)만큼의 노력을 요하지 않는다는 것에 다행이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밑줄치고 그대로 실천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읽어 나간다.

 

상상력은 창조의 출발점이다.

당신은 원한 것을 상상하고,

상상한 것을 행동에 옮기며,

그렇게 행동에 옮긴 것을 창조한다.----------(25페이지)

 

 

미래를 창조하려면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41페이지). 상상은 매우 고차원적인 두뇌활동이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멍을 때린다고 생겨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모든 상상이 창조와 연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 상상의 거탑으로 가는 모든 수단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생각은 기술의 일종이기에 배우고 연습하면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다는 내용으로 풀어가는 서문은 노력만이 전부인 흙수저에게는 매우 솔깃한 내용이다. 아주 높은 흡인력을 발휘한다. 행렬털애벌레처럼 매일 판에 박히고 진부한 생각으로 삶을 산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덜 나은 삶도 아니다. 일상으로 점철되는 것은 오히려 따분하기만 할 수도 있다. 한편 요즘처럼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는 생존의 수단으로서 큰 의미가 없게 된다. 변화의 시기에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느 누구로부터 비난받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아쉬운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일 뿐이며, 변화의 책임과 결과는 오직 나 자신에게 있으며, 그 간절하고 유혹적인 말로 도구의 상자가 있다. 어떤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느냐보다는 생각하는 방법이 더 중요해진 시기에 생각의 자유가 거기에 있었다.

 

생산적 사고는 과제 해결에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338페이지). 익숙한 것들은 익숙한 방법으로 대하는 것이 신간(身幹)이 편하기는 하다.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기보다는 익숙한 패턴으로 대하는 것이 신속하고 능률적이기도 하다. 기억하기에도 편해서 공부에도 좋은 방법이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이 삶의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미래와 상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과거와 관련된 것도 있고, 심지어는 하고 싶지 않은 잡념도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항상 반복, 재생적인 생각으로 일정한 패턴 속에서 생산적 사고 모델은 생각을 더 훌륭하게, 더 효과적으로, 더 강력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프레임(319페이지)은 생각이 완성되어 실행이 되는 데에는 여섯 단계가 있다.

 

생산적 사고 모델

1단계 ;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단계 ; 무엇을 성공으로 삼을 것인가?

3단계 ;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4단계 ; 답변 형성

5단계 ; 해결 방안 벼리기

6단계 ; 자원 조정

 

 

창의성은

훈련된 사고에서 탈출하는 일이 아니라

훈련된 사고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일이다.------(136페이지)

 

현실의 목마름에서 시작되는 생산적 사고는 생각을 분리하고, 질문 안에 머물고, 생각의 세 번째 수준을 지향하고, 뜻밖의 연결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직접 사용해 보아야 한다(347페이지). 생산적 사고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질문의 홍수 속에 빠져야 한다. 반사적인 반응과 반복적인 패턴을 피하며 계속, 끊임없이 질문의 질문을 나열한다. 문제에 답이 보이는 것처럼 보여도 성급하게 답을 내지 말고 한 발짝 물러서서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질문에 질문을 거듭한다. 그리고 맘껏 적는다. 각 단계마다 목록을 만들어서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 아무거나 적는다. 계속되는 질문으로 뇌를 비우고 또 비우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뇌의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생산적 사고하기의 기초이자 출발점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훌륭하고 유익한 결과물일지라도 자기 체화가 이루어져야 써 먹을 수가 있고, 더 나은 삶의 길에 노잣돈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은 생각의 질과 수준에 따라서 3단계를 나누어서, ‘그 밖에(else)’라는 말이 나올 때가지 계속한다. 생각의 한계를 돌파하여 생각 가능 수준은 이미 사회적 통념을 쓰레기통에 쳐 박아버리는 수준에 까지 이른다. 역사적으로도 폴라로이드 즉석카메라 탄생, 고어텍스(Gore-tex)라는 섬유회사의 다시 성장의 길목으로 들어서는 과정도 거기에 있었다.

 

도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해냈을까? 진짜로 창조적 생각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인가? 인생이라는 것은 자연과학처럼 실험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관찰하며 결과를 피드백하거나 오류의 과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인생의 변화라는 거대하고 절대적인 프로젝트에는 창조와 변화라는 화두로 시작하는 생산적 사고는 미래 인력(Future Pull), 상상 미래(Imagined Future), 드라이브(DRIVE), 촉매질문 등 생소하면서도 창의적인 용어들도 등장한다. 실제의 역사적 사실이 기반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행위 당시에 논리적 과정이라는 연역적으로 실행된 것이 아니기에, 이 일련의 과정에는 아주 철두철미한 계획과 과정으로 많은 에너지가 필수적으로 동반되는데, 결국 원래의 의도를 실현하기에는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응축되어야 있어야 도달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래되어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인식하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아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창조적 생각의 대가는 엄청나게 커야 한다는 경제논리에도 이르게 된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최고의 방법은 먼저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그런 후 나쁜 아이디어를 버리면 된다.-----(112페이지)

핵심은 확산적 · 창의적 사고를 거치며 긴 목록을 만들고 수렴적 · 비판적 사고를 통해 선택하는 것이다---------(242페이지).

 

악어의 뇌로 일단 대응하고, 포유류의 뇌로 감정 반응을 키우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뇌로 생각을 한다(49페이지). 우리의 일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에는 적절한 생각의 모양이 있다. 그 가양한 삶의 방법에서 창조적 사고의 방법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관문이 있다. 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숙성이 이루러져야 한다. 생각 자체로 인한 실패는 어떤 손해도 발생하지만 생각의 실행의 실패는 엄청난 피해가 오기 때문이다. 생각은 연습이 있지만 삶에는 연습이 없다. 삶은 매 순간이 실전이다. 매 순간에 더 나은 순간을 위한 질문 속에서 생각을 이어 간다. 생각은 타고난 천성대로, 타고난 재능을 따라서 무난하게 사는 길에 무난하게 있는 반면에 배우고 연습하고 노력하며 발전하는 길로 살아가는 방법에는 또 다른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모두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방향은 동일하지만 현재의 상태에 만족도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는 데에는 아주 많은 기회비용이 필요하다,


변혁기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방법이다(33페이지). 꼭 무한한 생각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양태가 달라진다. 그 생각이라는 것의 깊이는 에베레스트보다 높고 마리아나 해구보다 깊은 것 같다. 생각은 이미 태양계 너머를 수 십 번 왔다 갔다 했고, 타임머신을 타고 태초의 아담과 이브를 만나고 왔을 것만 갔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도 마르지 않고 바닥을 보여 주지 않는다. 혹시 바닥이 보일 것 같으면, 바로 그 대안이 자리 잡고 있기에 전혀 고민하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단지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모르는 게 자신의 무능의 극치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현재를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생각의 소유자들은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현재를 맞이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생산적 사고라는 시스템은 혁신적으로 살아가는 길에 삶을 바꿀 수 있는 단초가 되어 변화의 갈증을 풀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아 두고두고 생각나게 할 것 같다. 50년의 결과물의 무게는 엄청나다.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획득될 수 있는 기술이 결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 한 마디는 가슴에 꼭 새기고 싶다. 이것이 이 번 기회를 낭비하지 않는 최소한의 결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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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움직이는 손 - 나스닥 CEO겸 회장 로버트 그리필드의 미래를 위한 10년의 기록
로버트 그리필드 지음, 강성실 옮김 / 아이템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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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혁명이라는 변혁의 시대에 시장을 움직이는 손!’을 알아본다는 것은 아주 흥미진진하다. 특히 코로나19까지 와서 기하급수로 변화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도 아직은 시장에서 생존법의 갈피를 잡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욱 아주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을 알고서 나의 생존법을 찾고 싶어 하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를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의미에서 호기심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두 어장 읽고 보니, 나스닥에 관한 이야기였다. 여기서의 시장은 일반적 의미의 시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변화에 대한 새로운 상상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 선행 지수 중에서도 최전선에 서 있는 자본시장의 선두 기업의 혁신 과정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여간 심쿵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미국 자본시장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은 알지 못하는 자본시장 꿈나무들에게는 아주 구미가 땡길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변혁의 시대에 당신은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203년부터 2016년까지 나스닥의 CEO로 재직하면서 조직개편, 거래의 속도와 안정성을 위한 신기술의 도입, 외국 증권 기업의 인수, 정계 인사들과의 접촉에서 미지의 공간으로의 모험과 미래에 대한 도약의 과정을 통하여 경쟁하고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생존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 준다. 적나라한 변혁의 시대에 글로벌 기업의 성공한 리더가 되가 보여 주는 산지식에의 간접적 경험은 또 하나의 흥분감을 얻을 수 있게 한다. 또한 글로벌 기업보다, 꼭 리더는 아니더라도, 더 원초적으로 변혁의 시대에 생존을 위한 시장을 움직이는 힘에 대한 접근을 찾을 수도 있다. 나스닥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리더를 바라보면서 시장을 움직이는 힘보다는 온몸으로 그 힘에 버텨내고 생존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힘을 바라보고 싶었다. top down의 하향식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으나 bottom-up의 상향식 관점에서, 조직론의 관점이 아니라 행위론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였다. 혁신은 기득권 조직의 경계선에 일어난다(321페이지)는 말보다는 창조적 천재는 인상적인 뛰어난 발명품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아이디어들을 창조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융합하는 데에서 탄생한다(99페이지)는 말이 훨씬 심쿵하게 한다.

 

나스닥이 주식 거래 시장에서 점유율이 계속 하락하여 경쟁사인 뉴욕 증권거래소에 맥을 못추는 상황에서 논픽션은 시작된다. 밀레니엄의 문을 열고 21세기라는 들어서자마자,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국 경제는 흔들렸다. 미국 경제의 중심에 있는 나스닥은 흔들림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2003년 닷컴 거품 붕괴, 2008년 리먼브러더스 은행의 파산을 불러온 세계금융 위기가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있어서 점 하나에 불과한 것이었다.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행사 같은 것이었다. 시장은 끝임 없이 변했고 기업체는 호황과 몰락을 번갈아 가며 주인공만 달리 했다. 자본주의의 냉정한 효율성은 기업의 유구한 역사와는 상관없이 변화시켰다. 그 속의 모래알 같은 개인들은 더 간단명료하게 변화의 굴레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나스닥도 시대의 흐름 한 가운데에 있었다. 경제 뉴스에 주가 데이터 제공하거나 나스닥 인덱스 100과 같은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판매 허가를 하는 데이터 및 인덱싱 사업, 기업들이 주식 시장에 상장할 수 있는 시장을 제공하는 상장 사업, 그 상장 기업들의 주식이 거래될 수 있도록 하는 전자 거래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나스닥은 그 사업들은 주주와 기업 사이의 거래를 중재자이며 자본 사이의 연결 지점을 제공한다. 경제의 혁신과 기업가 자본주의를 충전해 주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나스닥이 보여주는 변혁의 속살에서, 혁신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달한 미국의 어느 기업에만 해당하는 얘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기업은 다른 기업들이 아니라 과도기에 놓여 있는 시장과 싸우는 것이다.---(74페이지)

 

규정에서 코스피와 코스닥이 자기 자본금을 기준으로 두 시장에 상장될 수 있는 기업을 구분하고 있어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증권거래소와는 달리, 미국의 다우지수의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지수의 나스닥은 철저한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서 경쟁관계에서 움직이고 있다. 즉 기업체가 자신의 유불리를 고려해서 상장하고 싶은 곳에 상장하는 구조이다. 기업이 자의적으로 거래소를 바꿀 수 있고, 심지어는 이중 상장도 가능한 구조이다. 거래소는 유도전망한 기업들을 자신의 거래소에서 상장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체와 경제적 인연 이상을 맺어야 하고 다른 거래소와 치열한 경쟁을 벌어야 한다. 기업에게 매력 포인트를 줄 수 있도록 하는 주식 거래가 이루어지게 하여야 한다. 곧 얼마나 많은 기업을, 그것도 투자자에게 많은 구미를 주는 기업을 상장 유치하느냐가 하나의 마켓팅이고 수익이 되는 것이다. 주식 거래소인 나스닥이 수익을 내려면, 많은 기업이 상장해야 하고, 투자자는 수익을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장 기업이 호황을 누려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기업이 불안하고 망하는 기업이 많고 손실 투자자가 많아서 시장을 떠나게 되면 나스닥의 수익도 그만큼 하락하게 된다. 결국 나스닥과 주식회사와 투자자들은 순망치한(脣亡齒寒)3각관계를 이룬다.

 

나스닥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애플, 구글, 아마존, 스타벅스. 페이스북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벤처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의 첨단 정보통신 업체들이 많이 등록되어 있어 첨단 벤처 기업의 활동 기반이 되고 있다. 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지수 등 세계 증시의 주요 지표가 되는 지수들을 산출하는 뉴욕증권거래소의 경쟁사이기도 하다. 국제시장에서는 런던 증권거래소, 홍콩 증권거래소와도 경쟁해야 했다. 워싱턴 정가 사람들과도 친해야 했다. 증권거래 위원회의 규제 때문이었다. 나스닥에 변해야 하는 길목에 항상 그들과 만나게 된다. 아주 많은 이해관계인들이 자신만의 입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러나오는 자신만의 원칙은 하나의 역사적 교훈이 된다.

 

발전의 당위성은 시장 생태계 내에서 일어나는 이른바 도태 압력에 의해서 실현된다(308페이지). 기업들이 성장할 기반을 제공하고, 주식투자자들은 만족도를 유지하여 다른 거래소로 옮겨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거래 플랫폼이 아주 중요하다. 그 당시에는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인간 중개인을 통해서 거래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전자 주식 거래 시스템 관한 전자거래 플랫폼으로의 전환이 혁신의 과심 한가운데에 있었다. 기계의 결함으로 투자자의 주식 거래 계약이 제대로 체결되지 않으면, 투자자는 엄청난 손실을 볼 수가 있고 거래소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는 실추된다. 20125월의 페이스북 기업공개 날에 문제가 터졌다. 그 여파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나이다. 월스트리트 시스템의 거미줄 망을 타고 거래 황동에 영향을 준다. 2년 후에 알리바바를 유치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나 은행과 상장 주간사들의 압박으로 따내지 못했다. 시대 변화의 핵심은 돌고 돌아 속도가 아니라 안정성이 되고 있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가 절대로 완벽할 수 없는 세상에서조차 완벽해야만 했다(298페이지). 주변부 아웃사이더에서 시작된 전자 거래의 혁명은 변화와 괴리되어 있던 인사이더 클럽에 치명타를 주기에 충분했다. 한 시대의 종언은 작은 동네의 차고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전설이라고 하기에는 변화의 패러다임이 되다.

 

변화는 위기의 순간과 시장의 압력이 커지는 시기를 위해 미뤄 두어서는 안 된다(309페이지). 자신의 변화는 시대의 변화와 동행이 되어야 한다. 실패하고 있든 성공하고 있든,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는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은 상황으로 옮아가는 변화를 예견하고 미리미리 앞을 바라보며 다음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볼 수 있다(344페이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학습된 지식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되는 산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산지식은 인생의 추세선을 추정해서 굴곡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그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물러날 때를 알고서 변화의 시점과 변해야 하는 모습으로 사회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과감히 재설정하는 것은 인생의 다음 모퉁이를 알고, 그 모퉁이에서 할 일을 미리 준비하되, 이전의 경험을 해석하던 렌즈로 현재의 변화를 해석하려는 것 또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위기는 위기를 낳으며 앞으로 가는 상황에서 보수적 권위와 혁신적인 정신, 무용수의 우아함과 군인의 절도(302페이지)라는 중용을 겸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간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회비용은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남아 있다고 가정하는 날짜 수가 줄어듦에 따라 로그함수처럼 증가한다는 것입니다(349페이지). 나이를 먹을수록 남겨진 시간이 산술급수적으로 줄어듦에 따라서 남겨진 시간의 소중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지금이 순간의 가치는 방금 전의 가치보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오늘의 생각은 내일의 행동에 있어서 특이점이 됨에 부족함이 없다. 요즘의 코로나19의 팬데믹은 다른 위기처럼 곧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변혁은 오히려 더 빠르게 계속될 것이다. 지금은 활동에 있어서 제약은 약간은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우리의 생활문화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반강제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지만, 생각의 공간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황이다. 미래 언젠가 오늘을 되돌아 보면서, ‘4차 산업혁명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난 2020년에 생존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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