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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들지 못하는 11가지 이유 - 모든 게 터지기 일보 직전인 4050 여성들을 위한 인생 카운슬링
에이다 칼훈 지음, 노진선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2년 2월
평점 :
어렸을 때 어른들은 ‘늙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고 했다. 그때는 불면증 같은 그 어떤 병인 줄로 생각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름투성이 말의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X세대는 인생의 진 맛을 보게 되는 그때 그들의 나이에 들어선 것이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X세대라고 불린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중년이라고도 한다. 역시나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한 것이다. 쉼 없는 흐름은 얼굴과 기억에 자글자글한 흔적을 남겼다. 앞으로도 그럴 게 분명하다. 싸이고 싸인 흔적은 ‘잠’이라는 필수적 일상 공간에서 나타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의 불안 속에, 지금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급격하게 밀려온다. 얽히고설킨 ‘삶의 속도와 무게’는 나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중산층 그리고 200명 이상의 동시대 아메리카 13세대 여성들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동지애를 간절함에 담는다.
미국의 X세대는 부모와 비교해 계층이 하강한 첫 세대이다. 마지막으로 옛날 방식으로 교육받았다. 인터넷 전후, 3차 산업혁명의 과도기 공간에 걸쳐 있어서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타이밍을 보았다. 적응을 능가하는 변화의 터닝 포인트를 찍은 물질문명은 앞을 향해서 질주하고 있었다. 정체성의 혼란이 있을 정도여서 명명도 ‘모르겠다’의 의미를 담았다. 선택지는 많아졌기에 기회도 많아질 것만 같았다.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고, 커리어와 가정 생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서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줄 알았다. 실상은 자꾸만 뒷걸음치고 있는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현재 중년의 문제들이 잔뜩 응축하고 있다가 팍 터진다. 꺾어진 인생의 꿈과 이상, 돈, 직장 내에서 남녀 불평등, 육아 문제, 이혼, 폐경, 인간관계의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얼핏보면 어느 시대에서나 그 나이에 고민하는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발짝 다가가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존재론적인 고민의 많은 부분은 시대의 흐름과 관련된 것이다. 살아가는 나라에서 생긴 사건들과 부모들의 만들어준 가정환경은 자신들이 부모가 되었어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천조국이 만들어낸 아메리칸 드림의 실험대상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베이붐 세대와 MZ세대의 낀 세대로서 그들만의 특수성이 존재하고 있다.
내가 지금 뭘 했지? 내가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나?(P81) 앞만 보고 달리며, 매사를 제대로 하려고 했다. 시련 앞에 좌절은 젊음 앞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로 치부했다. 줄곧 젊음과 함께 하는 줄만 알았다. 그렇게 시나브로 찾아오고 있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노화라는 것이 거울 속에서 보였다. 그것도 제일 먼저 남들이 다 알아볼 수 있도록 얼굴로 방문해서 갈 생각을 안 한다. 매일 쫓아낼 궁리만 한다. 매일 운동, 요가와 등산을 한다. 채식 위주로 먹는 것도 가리고 조절한다. 머리 염색을 하고 성형수술도 한다. 그런데도 중년티가 난다고 한다,
세상은 새로운 것을 찾아 변화의 속도를 내고 있다. MZ세대가 이끌 때가 왔다고 한다. 제대로 된 것 하나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은 생각에 허전하다. 작열한 여름 태양 아래 뜨거운 커피는 갑자기 식어 버리고, 가을 서리 만발하고 김빠진 맥주에 취한 기분이다.
<레옹(Leon, Leon) 1994. >
자유로운 선택이 왜 이렇게 김빠진 삶으로 이어졌을까?(p92) 선견지명이 없는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일까? 사회구조 탓일까? 자유의 국가에 살고 있다. 그 옛날 조상들이 못했던 많은 것들이 할 수 있는 시대이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백악관 홈페이지에 청원도 할 수 있고, 손안의 핸드폰으로 온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기회의 공간은 열려 있고 매 순간의 모든 것은 선택 가능성에 열려 있다. 그런데도 자신만은 시대에 뒤처지고, 변화의 혜택에서 소외된 것 같다. 날마다 무거운 등짐에 수족은 묶여 있어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굴뚝이다.
이제 그만 꿈을 포기해야 할 때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이 다들 ‘네가 널 속이고 있다’고 나무라는데도 절대로 굽히지 말고 끝내 성공하는 성공담 속의 주인공이 나인지, 이제 자신을 그만 속이고 현실을 직시하며 철이 들어야 할 얼간이가 나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p32) 한때 이 세상 모든 것이 나의 가능성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꿈만 꾸고 무대포로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여겼다. 심지어는 가난에 허덕이는 부모 세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천둥벌거숭이의 오만이었다. 삶이라는 것을 몰라도 너무 모른 것이었다.
지금은 달아나야 할 상황인지 배워야 할 상황인지부터 자문한다. 신새벽에 잠 못 이루고 삶에 대한, 삶을 향한 온갖 생각들이 십자로에서 갈피를 못 잡는다. 미래의 꿈은 불타올랐다가 사그라지고, 과거의 부끄러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난날의 놓쳐버린 많은 것들은 테트리스 게임의 블록들을 보고 있는 것 같게 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막대들이 점점 더 빨리 떨어지고, 결국에는 쌓이는 막대기는 화면 전체를 꽉 채워서 더 이상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다. 파고들면 끝이 없어서 ‘배우긴 쉽지만 정복하는 건 어려운(easy to learn, hard to master)’ 방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일상의 평범 속에서 날마다 허무하게 비석 하나 없이 무덤의 심연 속으로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존재론적인 생각들의 그물망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보게 된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k/y/kyung1974/QKSX3BSh.png)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All the Bright Places. 2021.>
내 인생의 영웅을 떠올려 본다(p305). 어려운 환경에서도 항상 지지해주던 부모님, 날 격려해 주던 선생님들, 따라 하고 싶던 작가들, 어릴 때 친절했던 친척들. 산 날과 살아갈 날이 비등한 시절에 하루에 몇 번이나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라올 때마다 견디고 또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된다. 그들이 걸었던 기대는 잠깐의 싸구려 기억에 부치지 못하겠다. 시간 앞에 죄인보다는 한 번 더 자신의 선택을 믿어 보려고 한다. 스스로 실패자로 낙인찍는 것보다는 버티고 또 버틴다. 지금까지의 추락에 의미를 부여한다. 인생이라는 게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건다. 기억뿐일지라도 가능성 앞에 ‘소명의식’을 갖는다.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만한 일이 있을까?(P85) 40대가 되면 적어도 가시밭보다는 꽃길이 많을 줄 알았다. 예상과 전혀 다른 현실을 무조건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방황만을 할 수는 없다.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고서 골몰한다.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른 관점으로 인식하거나 마음에서 훌훌 털어버리는 등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한다.
정신을 점검하지 않는 한 결코 자신을 구하지 못한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데에 앞세운다. 삶을 채울 온갖 즐거운 활동을 위한 몸부림의 꼼지락 한다. 날마다 배우려고 한다. 일주일의 세 번 수영을 배운다. 롤모델을 찾고 조언을 줄 책을 읽는다. SNS를 한다. 그에 따라서 행동하려고 한다. 아직은 희망 고문 수준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지라도 끈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버티고 온 것에 본전 생각도 있다. BTS의 ‘Life goes on’을 흥얼거린다.
잘 살아야 한다는 임무를 부정적이고도 자신을 벌주는 식으로 바라본다(p322). ‘’잘 산다‘는 것은 엄청 어렵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오만가지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좋은 시작이 영원하지 않듯이 힘든 시기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삶을 예상 밖의 무언가로 새롭게 보려고 한다. 시작은 과거의 철저한 재검토이다. ‘잘 늙는다’는 초등 시절의 버킷리스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때는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심지어는 아주 소심한 것이라고 여겼을 정도였다. 엄청난 오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투입과 산출이 일치하는 함수 관계를 넘어선다.
잘 늙는다는 것은 잠자리가 말해 준다. 잠드는 법과 깨지 않고 계속 자는 법은 중년의 여자들이 모였을 때 가장 흔한 주제 중의 하나인 이유이다. 일상의 필수 영역인 잠자리는 모두의 관심사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영역 같다. 손에 잡히지 않은 미완성의 진행형 상태를 즐기도록 하는 것 같다. 지구 중력을 서서 간신히 버티고 있음을 누워서도 근근이 감당할 정도의 수준에 있음이다. 새벽마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아도 되고, 뭔가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그립게 한다. 나사 하나만 느슨하게 풀려도 이불의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실패가 아니라 단지 완성을 향해 가는 중이라는 합리화는 내 영혼의 민낯을 오늘 새벽 4시에도 보게 한다.
11가지 다이내믹한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인생 서사문을 만든다. 고민과 갈등으로 점철되는 한편의 옴니버스 내러티브의 모습이다. 내면의 경험들은 삶을 다양한 각도이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 보나 아주 따분한 장면들만 연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재미없고 지루해서 인기 없고 배울 것 없는 글들로 가득 찰 것 같지만, 끈덕지게 끝까지 읽으면 뭔가를 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각이 만들어진다. 인생의 속도는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더라도, 무게를 견디고 꿈꾸던 선로로 가기 위해서 밤마다 잠 못 이루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