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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막에도 별이 뜨기를 - 고도원의 밤에 쓰는 아침편지
고도원 지음 / 큰나무 / 2016년 1월
평점 :
20여년전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리버리 선배들의 모습을 따라가던 때, 하늘같이 높은 선배님께서 점심시간에 성경을 필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 좋은 노트도 아니었고, 일반 중고생노트에 검정볼펜으로 뭔가를 보시면서 따라쓰고 계시기에 옆에가서 물었더니, 쑥스러워하시며 성경이라고 하셨다.
마음도 편해지고, 생각 정리도 된다고 하셨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어서 그 모습을 이해하기 좀 더 어려웠는데, 시간이 지나고 삶의 고비를 넘길때마다 나자신도 모르게 찾는 절마당과 불경을 들게 되는 내 모습에 그때 그 선배님의 모습이 겹치고는 했다.
예전엔 좋은 글이라며 스스로 공책을 사다가 필사를 했다면, 요즘은 필사하기를 위한 책으로 아예 출판을 해주니 거 참 시절 좋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아침마다 좋은 글귀를 읽으며 하루 시작을 잘 해보자는 다짐을 하는 거라면, 고도원의 밤에 쓰는 아침편지는 하루를 지내온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사랑하고 다독이는 마음으로 좋은 글귀를 필사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일기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기 힘들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글귀와 함께 명상하듯이 머릿속을 비워볼 일이다.
책의 표지에 부드러운 캘리그라피로 씌여진 '당신의 사막에도 별이 뜨기를'이란 제목이 가슴 한구석 막혀있던 수챗구멍을 뻥 뚫어주는 느낌이다. 누구나 지닌 자신만의 사막에서 빨리 헤엄쳐 나오라는 작가의 기도가 묻어있는 듯 느껴져 가슴 한켠이 따뜻해진다.
여러 사람들의 좋은 글귀를 인용해 씌여져 있기에 이생진, 박광수 등 반가운 이의 글도 눈에 띈다. 내가 좋아했던 글귀들이 많아서 빨리 펜을 들고 따라 써보고 싶을 뿐이다. 잘 못 쓰는 내 글씨체때문에 글쓰기를 망설여왔던 나이지만, 예쁜 메모지와도 같은 도톰한 오른쪽면에 왼쪽면의 좋은 글귀를 읽으며 슥삭거리는 연필심을 굴리던지, 연필심보다 더 슥삭거리는 펜촉을 들이밀고 싶어진다. 책장이 수없이 넘겨져 종이가 살짝 까슬까슬 보풀처럼 일어나더라도 자꾸만 넘겨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책을 아끼며 낙서도, 줄긋기도 못 하는 사람이라면 어쩜 필사하라는 이 책을 그저 모셔두기만 할수도 있겠다.
하루하루 전쟁같은 사회생활 속에서 소진되어버린 자신의 감성을 채우기에 딱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