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 생명과학자 김성호 교수와 함께하는
김성호 지음 / 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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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늘 보던 새는 참새였습니다. 집 근처에서 언제든 볼 수 있었는데 작은 몸에 그리 빠르게 날지도 않아 잡아보려고 쫓아다니기도 했었지요. 잡은들 참새를 키울 수도 없었을 텐데 그때는 왜 그리 잡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네요. 참새를 보다가 저 멀리 열을 지어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새들은 V자 형태로 날아가기도 하고 그냥 하늘을 까맣게 덮은 채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저 새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참 궁금했지요.

어릴 때의 궁금함을 떠올리며 <우리 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우리나라에서 10년 동안 만났던 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 년 내내 볼 수 있는 새들도 있고 각 계절에만 볼 수 있는 새들도 있는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이 책을 보면서 새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은 새들이 둥지를 새로 단장하느라 바쁜 시기입니다. 숲에 가면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지요. 누구보다 나무를 잘 파서 둥지를 근사하게 짓는 딱따구리지만 다른 새들이 이 둥지를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일이 잦아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재주가 너무 뛰어나도 평탄하게 살지는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5월 중순이 되면 텃새와 여름철새의 둥지 쟁탈전이 벌어져 숲이 무척 부산해집니다. 파랑새, 호반새, 꾀꼬리 등이 우리나라의 숲에 찾아와 텃새인 까치나 딱따구리의 둥지를 공격합니다. 둥지를 쉽게 내줄 수는 없으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요. 새들은 이렇게 둥지를 틀고 짝짓기를 하고 어린 새들이 둥지를 떠날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지요.

우리나라 텃새들은 6월 초가 되면 대부분 번식을 끝냅니다. 그 이후로는 장마기간이라 새끼들을 키우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름철새들은 그 기간에만 우리나라에 머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름에 번식을 합니다. 그 중 호랑지빠귀와 꾀꼬리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보통 부모 새는 어린 새의 냄새가 멀리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어린 새의 배설물을 물고 멀리 날아가는데 이 두 새는 부모 새가 배설물을 먹어버리거든요. 영양가 있는 먹이를 열심히 물어다 자식의 배를 채우고 정작 자신은 어린 새들의 배설물에 남은 영양분으로 허기를 채웁니다. 사람이나 새나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건 똑같은 것 같네요.

한여름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새들은 계곡에서 목욕을 합니다. 차가운 물에서 목욕을 하면 체온을 떨어뜨리고 날개를 깨끗하게 할 수도 있지요. 저자가 만난 지빠귀 종류와 노랑턱멧새, 때까치, 노랑할미새, 어치 등 작은 새들이 물에 젖은 모습이 귀엽습니다.

가을은 여름철새가 우리나라를 떠나고 겨울철새가 찾아오는 시기로, 물수리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독수리, 매 등의 맹금류는 곤충, 조류, 포유류 등을 먹이로 삼지만 물수리는 오직 물고기만 먹는 특징이 있어요.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참수리 등은 물 위에 떠있는 물고기만을 잡지만 물수리는 수심 1m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눈팔지 않고 목표한 먹이를 잡는 물수리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칩니다. 11월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면 물수리는 더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몇 달을 지낸 곳을 떠나 또다시 멀리 떠나는 모습이 힘차 보이기도 하고 고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겨울은 겨울철새들의 계절입니다. 오리, 기러기, 두루미 종류, 맹금류와 산새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지요. 장거리를 이동하는 겨울철새는 보통 V자 모양이나 W자 모양의 대열을 이루는데 기러기 종류와 두루미 종류, 고니 종류가 편대비행을 잘 활용합니다. 이들의 V자 대형을 보면서 우두머리가 참 잘 이끌고 간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보니 선두를 지키는 새는 한 마리가 아니더군요. 힘들고 위험한 선두 자리는 몇 마리가 번갈아가며 지키고 늙은 새나 어린 새를 중간에 배치하는 배려심을 발휘합니다. 먼 거리를 날다보면 힘들기 마련인데 각자가 소리를 내면서 서로를 격려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철저하게 민주적이라는 새무리를 보니 저 세계에서는 인간세상처럼 불협화음이 많지 않겠구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새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텃새와 철새의 삶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새를 보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산에 가게 되면 나무 위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다양한 새들을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팔색조, 긴꼬리딱새, 황새, 두루미, 물수리 등 멸종위기에 처한 새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이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깨끗한 환경을 가꾸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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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느린 책
에이프릴 풀리 세이어 지음, 켈리 머피 그림, 민지현 옮김 / 그린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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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표지에 나무늘보와 달팽이, 거북이가 보입니다. 숨 막히게 느린 동물들이네요. 왠지 숨을 멈추고 다음 동작을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표지를 보니 알 것 같네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책>은 우리 주위를 둘러싼 환경을 천천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책에는 639년이 걸리는 오르간 연주와 500년이 걸려 완성된 성당이 나옵니다. 150년 된 선인장, 5천 된 나무, 6백 만년에 걸쳐 만들어진 그랜드 캐니언도 볼 수 있지요. 책장을 넘기다보면 자연과 사람의 몸, 예술과 일상, 우주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대상에 대해 느리게 오랫동안 생각해 볼 수 있는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속도가 느리다는 것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대상들이 거쳐 온 시간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짚어주고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과학현상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서술해 놓아 아이들이 흥미 있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을 끓일 때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죠. 어떤 사람에게는 오늘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고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느려 지겹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각자 다르게 느끼는 시간을 곤충들은 어떻게 느낄까요? 동물들은 몸의 크기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정도를 다르게 느낀다고 합니다. 하루살이에게는 1분이 아주 긴 시간이 되는 것이죠. 사람의 1분이 하루살이에게는 몇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하루를 충실히 살다 가는 하루살이를 더 이상 불쌍해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설란은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 식물이라는 전설이 있지요. 전설과는 달리 10년에서 25년 사이에 꽃이 피기도 해요. 2014년에 80년 된 용설란이 있었다는 글을 보니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우기도 하나 봅니다. 꽃이 핀 뒤에는 용설란은 죽고 맙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용설란. 가장 찬란한 순간에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잘 된 것 같기도 하고 한 번의 순간을 위해 몇 십 년을 기다렸다는 점이 슬프기도 합니다.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드디어 멋진 작품을 만든 소설가나 예술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관심가는 대상을 오랫동안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눈이 휙휙 돌아가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세상에 살고 있지요. 음식을 주문하면 10분 안에 나오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답문이 옵니다. 문제는 음식이 늦게 나오면 화를 내고 메시지를 보낸 지 1분도 안 되어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본다는 것이지요.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급할수록 이상하게도 시간은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이런 일이 반복되니 성격은 점점 급해집니다.

 

이런 악순환을 끊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늘 똑같이 빛나고 있는 태양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평온해지거든요. 가끔씩은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 있게 지내보는 것만으로도 피곤이 풀리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느낌이 좋습니다. 다시 마음이 급해져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게 되더라도 '이 세상의 느린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은 잠시 내면서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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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도 무섭지 않아! 똑똑 모두누리 그림책
엘리자베스 데일 지음, 폴라 멧칼프 그림, 박종석 옮김 / 사파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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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밤에 화장실 가는 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것 같아 긴장하면서 걷다가 뭔가를 밟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르곤 했지요.

<어떤 것도 무섭지 않아!>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자라면서 어둠 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됐지만 어릴 때는 왜 그렇게 무서웠나 싶기도 하네요.

 

 

곰 가족은 안락한 집에서 곤히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무서운 소리가 들려 아기 곰이 울음을 터트리고 괴물이 무섭다는 아기 곰을 위해 온 가족이 괴물을 찾으러 나섭니다.

 

아빠는 세상에 괴물은 없으며 곰은 어떤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요.

갑자기 튀어나온 아기 사슴, 개구리, 까마귀에 놀라기도 하지만 괴물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계속 앞으로 걸어갑니다.

 

앞만 보고 가느라 뒤에서 가족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눈치 채지 못하는 아빠와 아기 곰!
오래 걸어 멀리까지 가면서 피곤해진 아기 곰은 집에 가서 자고 싶다고 하고 그제야 아빠는 뒤를 돌아보죠. 가족들이 모두 어디에 갔을까요?

놀란 아빠는 두리번거리다 저 멀리서 커다란 검은 그림자 몇 개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더 놀랍니다.

 

 

무시무시한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사라진 가족들이었어요.
나뭇가지에 걸리고 시냇물에 빠지고 진흙탕에 빠져서 엉망이 된 모습을 멀리서 보면 누구라도 겁에 질릴 것 같아요.
손가락을 쪽쪽 빨며 겁에 질린 아빠 곰이 왜 이렇게 귀여워 보이는지 모르겠네요. 아빠는 무서운 건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괴물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갑자기 어린 시절에 들은 무서운 이야기가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네요.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 곰 가족은 다시 잠이 들었어요.

이제는 푹신한 침대에서 좋은 꿈을 꾸며 아침까지 잘 수 있겠지요.

아! 그런데 또 무서운 소리가 들려요. 이 소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아기 곰은 또 울먹이겠지만 이제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깨달을 수 있을 거예요.

 

낯선 것을 볼 때마다 무섭다고 이야기하는 우리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인 것 같아요. 책 속의 아기 곰처럼 이유를 모르고 무섭다고 느끼겠지만 점점 그 마음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언제나 가족들이 옆에 있으니 든든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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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
황주리 지음 / 노란잠수함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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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는 화가 황주리의 그림소설입니다. 7편의 단편이 저자의 그림과 함께 펼쳐집니다. 그림과 글 모두에 재능이 있는 저자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여러 가지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책 표지에는 활짝 핀 해바라기와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꽃잎의 색깔이 제각각인 꽃 안에서 사람들은 놀고 생각하고 노래하고 사랑합니다. 이 장면은 삶의 다양한 부분을 다채롭게 풀어낸 그녀의 이야기들과 잘 어울려 보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일을 겪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선택을 하며 때에 따라 감정은 수시로 변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싸우고 이혼하고 다시 만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외로워서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사랑하지만 헤어지기도 합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잊지 못해 현재의 사랑을 아프게도 하고 기억을 잃은 채 옛 사랑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들은 사랑을 하면서 설레고 행복하고 아파합니다. 동시에 무엇인가를 그리워합니다. 나를 떠난 소중한 사람들, 두고 온 나라, 지나간 순간들에 이르기까지 그리움의 대상은 다양합니다. 외로울 때나 행복할 때나 이 그리움을 놓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지만 외로워하고 다시 그들과 떨어지게 되면 그리워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쯤 되면 사람은 지나간 모든 순간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치매나 신체적인 장애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상처만으로 한없이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아내에게 맡기고 떠나는 남편이나 한쪽 팔을 잃은 딸에게 애정을 쏟지 못하는 아버지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들 곁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은 상처를 받게 되지요. 그런데 상처 받으며 살아가던 주인공들은 문득 어떤 순간에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알게 되고 그들조차 차츰 그리움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나름의 자기방어였다 해도 말입니다. 그들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사람들이었다는 생각만 듭니다. 세상을 사는 것이 너무나 서툴기만 한 그들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혼자만 행복하게 산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랑과 다양한 그리움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오늘 함께 하는 사람과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오늘 행복하다고 해서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에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평탄하게 살다가도 한두 번쯤, 어쩌면 몇 번쯤은 굴곡을 겪게 되는 게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사랑과 그리움,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저 담담하게 그려낸 이야기들이 가슴에 남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나의 모습,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씩 비쳐보면서 사람 사는 것이 어느 부분에서는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들이 많겠지요.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더 힘들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나의 삶은 이어질 것이고 나의 사랑과 그리움 또한 그러하겠지요. 그러니 나중에 후회하며 그리워하기보다는 지금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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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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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은 식물학자인 호프 자런의 인생이 담긴 책입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여성 과학자가 권위적인 과학자들 틈에서 생존하려 노력한 생생한 경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 흥미진진합니다. 또한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나무, 풀, 꽃, 이끼 등의 식물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읽는 내내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게 느껴지기는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과학자가 쓴 글이라 지루한 부분이 있을 테니 감수하고 읽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몇 장 읽기도 전에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과학자라는 말을 들으면 흰 가운을 입고 연구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저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과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무언가를 위해 야외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연구실에서 크고 작은 기계들을 이용해 쉼 없이 실험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3년에 한 번씩 연방정부로부터 계약을 따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식물을 연구하는 것이 엄청난 인내력과 체력을 요하는 일이라는 것과 멋져 보이기만 하는 과학자들의 삶이 험난한 여정을 거친 결과라는 사실도 더해서 말입니다.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요? 저자는 팽나무의 씨를 강화하는 물질이 오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진정한 연구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실험 결과표를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증명했다는 사실에 행복해합니다. '나의 오팔'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그녀를 보니 과학자들은 이런 순간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는 그 뒤로 많은 이론을 제시하고 수없이 많은 탐사여행과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합니다. 땅을 파고 숲을 헤매면서 샘플을 채취합니다. 옻이 올라 응급실에 가고 사고를 몇 번이나 겪으면서도 연구를 계속해 나가지요. 처음으로 과학적 발견을 했던 가슴 벅찬 그 순간이, 지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듯 보입니다.

 

저자는 종신 교수가 될 때까지 오랜 기간을 힘들게 살아갑니다. 새벽까지 연구를 하고 낡은 집으로 돌아가 몇 시간 눈 붙이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전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고 탐사 여행까지 다녔던 걸 생각하면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해냈나 싶은데 그녀는 친구인 빌 덕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석박사 조교시절에 운명적으로 만난 빌과 모든 일을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지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빌은 저자를 걱정의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려주고, 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그녀는 신체적인 장애 때문에 냉소를 발산하는 빌이 자신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은 어떤 어려운 일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이라고 대답하겠지요. 그녀는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빌과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나서도 이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빌은 그녀의 아이에게 삼촌 역할을 충실히 하며 앞으로도 많은 연구를 함께 하겠지요. 멋진 배우자와 평생 갈 친구를 가족으로 둔 그녀가 부럽습니다.

 

연꽃 씨는 가만히 기다릴 줄 압니다. 싹을 틔울 적절한 환경이 될 때까지 꼼짝 않고 그저 기다립니다. 몇 천 년만에 연구실에서 움튼 연꽃 씨를 보면서 그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준비된 자세로 그 긴 시간 동안 치열하게 생명을 지키려 노력했을 것 같아 고개가 숙여집니다. 샛별처럼 나타난 여성 과학자의 고단했던 나날이 이와 겹쳐져 가슴 뭉클합니다. 지금도 땅 속에서는 여러 종류의 무수한 씨앗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어느 곳에선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과학자들이 힘을 내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들의 상황에 눈을 돌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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