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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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은 식물학자인 호프 자런의 인생이 담긴 책입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여성 과학자가 권위적인 과학자들 틈에서 생존하려 노력한 생생한 경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 흥미진진합니다. 또한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나무, 풀, 꽃, 이끼 등의 식물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읽는 내내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게 느껴지기는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과학자가 쓴 글이라 지루한 부분이 있을 테니 감수하고 읽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몇 장 읽기도 전에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과학자라는 말을 들으면 흰 가운을 입고 연구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저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과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무언가를 위해 야외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연구실에서 크고 작은 기계들을 이용해 쉼 없이 실험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3년에 한 번씩 연방정부로부터 계약을 따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식물을 연구하는 것이 엄청난 인내력과 체력을 요하는 일이라는 것과 멋져 보이기만 하는 과학자들의 삶이 험난한 여정을 거친 결과라는 사실도 더해서 말입니다.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요? 저자는 팽나무의 씨를 강화하는 물질이 오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진정한 연구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실험 결과표를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증명했다는 사실에 행복해합니다. '나의 오팔'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그녀를 보니 과학자들은 이런 순간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는 그 뒤로 많은 이론을 제시하고 수없이 많은 탐사여행과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합니다. 땅을 파고 숲을 헤매면서 샘플을 채취합니다. 옻이 올라 응급실에 가고 사고를 몇 번이나 겪으면서도 연구를 계속해 나가지요. 처음으로 과학적 발견을 했던 가슴 벅찬 그 순간이, 지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듯 보입니다.

 

저자는 종신 교수가 될 때까지 오랜 기간을 힘들게 살아갑니다. 새벽까지 연구를 하고 낡은 집으로 돌아가 몇 시간 눈 붙이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전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고 탐사 여행까지 다녔던 걸 생각하면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해냈나 싶은데 그녀는 친구인 빌 덕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석박사 조교시절에 운명적으로 만난 빌과 모든 일을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지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빌은 저자를 걱정의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려주고, 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그녀는 신체적인 장애 때문에 냉소를 발산하는 빌이 자신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은 어떤 어려운 일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이라고 대답하겠지요. 그녀는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빌과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나서도 이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빌은 그녀의 아이에게 삼촌 역할을 충실히 하며 앞으로도 많은 연구를 함께 하겠지요. 멋진 배우자와 평생 갈 친구를 가족으로 둔 그녀가 부럽습니다.

 

연꽃 씨는 가만히 기다릴 줄 압니다. 싹을 틔울 적절한 환경이 될 때까지 꼼짝 않고 그저 기다립니다. 몇 천 년만에 연구실에서 움튼 연꽃 씨를 보면서 그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준비된 자세로 그 긴 시간 동안 치열하게 생명을 지키려 노력했을 것 같아 고개가 숙여집니다. 샛별처럼 나타난 여성 과학자의 고단했던 나날이 이와 겹쳐져 가슴 뭉클합니다. 지금도 땅 속에서는 여러 종류의 무수한 씨앗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어느 곳에선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과학자들이 힘을 내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들의 상황에 눈을 돌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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