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꽃향기 -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과 함께한 침묵의 고백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재형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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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미술관에서 하룻밤 머무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적막한 미술관에 홀로 앉아 그림과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거쳐온 삶을 관조하는 기분은 어떨까. 꼬리를 무는 질문에 자답하며 사색하는 그녀만의 시간은 어쩐지 몽롱하고 아름답다.

모로코에서 살던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여성의 자리는 집 안에 있고 집에 머물러야 안전하다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마음이 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기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로 강요되는 여성의 역할은 타의에 의한 것이니 유쾌할 리 없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왜 스스로 선택할 수 없나. 그러나 미술관에서 어린 시절의 야래향나무 꽃향기를 맡으며 눈물짓는 저자는 그 시절을 잊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유를 맛보려고 밤에 몰래 나가던 소녀는 이제 묻혀 버린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다. 그게 문학의 역할이기도 하므로.

저자는 일상을 지배하는 이슬람교 문화권에서 자랐지만 믿음이 없어 힘들었다는 고백을 한다. 왜 안 그랬겠는가. 자신만 다른 것 같았을 텐데. 대부분의 종교는 선을 표방하고 죄를 뉘우치는 사람을 포용한다. 사람들은 종교 단체 안에서 좋은 말을 듣고 나누며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을 만끽한다. 나쁠 건 없다. 다만 어떤 종교든 종교가 삶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언덕 정도면 적당하리라. 종교가 없다면 저자처럼 문학에서 위로를 받아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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