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여름』을 읽고 나서, 솔직히 말해 캐드펠 시리즈를 오래 따라온 추리소설 마니아로서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이번 18권은 기존의 ‘수도원 안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라는 익숙한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 웨일스의 광활한 자연과 정치적 소용돌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평소 캐드펠 특유의 치밀한 추리와 수도원 내부의 인간 군상,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긴장감을 기대했었는데, 처음부터 정치적 상황에 대한 설명과 수도원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 설명들이 덧붙여지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야기의 중심은 수도사 캐드펠이 교회의 사절로 웨일스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번엔 살인사건보다는, 웨일스 왕 오와인과 그의 동생 카드왈라드의 권력 다툼, 그리고 덴마크 용병까지 얽힌 정치적 음모가 주 무대다.
여기에 정략결혼을 피해 도망친 헤레드라는 여성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추리’보다는 ‘역사 드라마’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물론, 인질극과 배신, 협상 같은 요소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니, 긴장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범인은 누구인가’ 하는 전통적인 미스터리의 쾌감은 확실히 약해졌다.
그래도 캐드펠 시리즈의 매력은 여전하다. 캐드펠은 이번에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다만, 이번엔 탐정이기보다는 중재자, 관찰자, 심지어 인질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그래서인지 사건을 해결하는 짜릿한 한 방보다는, 각 인물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과정이 더 부각된다.
특히 헤레드라는 인물은 꽤 신선했다. 시대의 한계에 맞서 자신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요즘 시대 독자에게도 충분히 공감과 응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웨일스의 풍경과 역사적 분위기 묘사다. 엘리스 피터스가 그려내는 12세기 웨일스는 정말 생생하다.
실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마치 그 시대를 직접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오와인 왕의 리더십, 덴마크 지도자 오티르와의 팽팽한 신경전, 그리고 각 인물의 내면적 갈등이 꽤나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다만, 추리소설 마니아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도 있다.
미스터리의 본질인 ‘누가, 왜, 어떻게’의 퍼즐 맞추기보다는, 인물의 심리와 역사적 맥락에 더 많은 비중이 쏠린다.
그래서 시리즈 특유의 속도감이나 추리의 쾌감은 반감된다.
하지만, 그 대신 인간과 사회, 그리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있는 질문꺼리가 머리 속을 간지럽힌다.
『반란의 여름』은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틀을 기대한다면 다소 이질적일 수 있지만, 캐드펠 시리즈의 새로운 시도와 역사소설로서의 깊이를 맛보고 싶다면 충분히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다만, 이번엔 ‘범인 찾기’보다 ‘인간과 시대 읽기’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점, 미리 감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