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수도원에 새로 기증된 밭, ‘도공의 땅’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예전 같았으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추리가 시작되는구나!’ 하고 기대했겠지만, 이번엔 사건의 실체보다 인물들의 내면과 사연에 더 눈길이 갔다.
캐드펠은 여전히 논리적이지만, 그가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추리 이상의 무언가였다.
그는 각 인물의 고통과 욕망, 그리고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이해하려 애쓴다. 20대 때는 몰랐던 이 ‘공감’의 깊이가, 40대가 된 지금은 더 크게 다가온다.
사실, 요즘 나오는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욕망의 땅』은 좀 느릿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건의 실마리가 반복되고, 반전이나 속도감보다는 인물들의 심리와 분위기에 더 집중한다.
예전엔 ‘이제 좀 다음으로 넘어가자!’ 싶었던 장면들이, 지금은 오히려 그 시대의 공기와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음미하게 해준다.
수도원의 일상, 중세 영국의 풍경,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선까지, 캐드펠 시리즈 특유의 ‘느림’이 주는 맛이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범죄의 동기가 단순한 악의나 탐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고통, 질투, 자기합리화,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들이 사건의 바탕에 깔려 있다.
캐드펠은 범인을 찾아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까지 고민한다.
이 점이 20년 전엔 그저 ‘특이하다’고만 느꼈던 부분인데, 이제는 오히려 이 시리즈가 가진 가장 큰 미덕으로 다가온다.
물론, 빠른 전개와 강렬한 반전을 기대한다면 약간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캐드펠 시리즈는 원래부터 퍼즐 맞추기보다 인간의 내면과 시대의 분위기를 천천히 풀어내는 데 강점이 있었다.
『욕망의 땅』은 그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20년 전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여운이, 이제는 더 깊고 진하게 남는다.
결국, 『욕망의 땅』은 추리소설의 외형을 빌려 인간의 복잡한 마음과 시대의 한계를 보여주는, 캐드펠 시리즈만의 깊고 따뜻한 미스터리가 아닐까.
2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책을 두고 이렇게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이 시리즈의 진짜 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