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작은 마을 - 앙증맞고 소소한 공간,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
서순정 지음 / 살림Life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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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일본 여행에 실증을 느낀다면 <일본의 작은 마을>만큼 반가운 책도 없다. 일본 주부(中部), 간사이(關西), 주고쿠(中國), 홋카이도(北海道), 오키나와(沖繩) 지역의 작은 마을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아기자기한 산책길이 있는 도코나메(常滑) 마을, 삼나무 향이 가득한 키부네(貴船)와 구라마(鞍馬) 마을, 거대한 갤러리 같은 섬마을 나오시마(直島), 라벤더가 흐드러진 후라노(富良野) 마을, 전통을 이어가는 섬마을 쿠다카지마(久高島)까지 31개 마을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 서순정이 여행한 일본의 작은 마을을 사진과 함께 실은 책이다. 전문 사진가가 찍은 사진이 아니어서 일부 사진은 초점이 맞지 않거나 흔들리기까지 했다. 또 일부 사진은 너무 작거나 중복되어 눈에 가시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각 마을을 소개할 때마다 친절한 관광가이드를 붙여두었다. 교통편은 어떻고, 숙박은 어디가 좋다는 식이다. 또 그 마을을 좋아할 만한 사람의 취향까지 곁들였다. 여유를 찾아 소소한 일본 마을을 여행할 사람이라면 이 책을 바이블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그렇지만, 이 책이 일반 독자에게도 그런 느낌을 전할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 이 책 내용은 인터넷 블로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글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을 때 여행기라기보다 수필로 대하면 좋겠다 싶다. 바쁜 현대생활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자신이 일본의 한 작은 마을을 거닐고 있는 느낌도 받을 수도 있다. 더 운이 좋으면 아예 보따리 싸들고 일본으로 날아갈 여유가 생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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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 2009 제9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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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문학상 수상작을 잘 읽지 않는다. 뭐랄까, 마치 패션쇼에서 극찬을 받은 옷이지만 나에게는 왠지 편하지 않은 옷 같다고 할까. 좋은 작품이니까 상까지 받았겠지만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무언가를 나는 견딜 수 없다. 그럼에도, 2009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은 이유는 순전히 박민규 작가의 <근처> 때문이다. 
 

그를 알게 된 것은 몇 달 전 이외수 작가를 만났을 때이다. 그는 괜찮은 작가로 박민규 등을 꼽았다. 역시 그랬다. 박민규 작가는 지난해 황순원 문학상을 받더니 최근에는 이상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도대체 그의 글에는 어떤 마력이 있는 것일까.
 
그의 소설 <근처>는 한 40대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결혼도 하지 않은 그가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 고향으로 온 후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이다. 그 주인공은 다음과 같은 독백을 한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저쪽은 죽음… 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

 

이 책의 핵심을 잘 표현해주는 글귀이다. 책 제목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해준다.

 

여기까지는 일반 소설과 다름이 없다. 저자의 글은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개성이 강하다. 쉼표를 아무 곳에 붙이고 따옴표도 없다. 설명글인가 싶으면 대화 글이다. 이를 나쁘게 표현하면 글 장난이다. 독자를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저자의 글에 독자가 적응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경우 자칫 주관적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작가의 의도가 불명확하면 독자는 작품을 분해해서 재조립하고 분석한다. 사실 저자는 아무런 의도도 없이 쓴 단어에 독자가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마치 초등학생이 그려놓은 그림을 유명 화가가 그렸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시 보고 뜯어 보고 분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한 예술가는 이렇게 말했다. 일반 대중이 느끼는 것이 정답이라고... 느낌이 좋은 작품이 걸작이라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근처>는 알듯 모를 듯한 독립영화와 같다. 애매하면 처음에는 좋아보이지만 나중에는 물리게 마련이다. <근처>를 읽고 모처럼 새로운 시각을 가진 작가를 만난 기분이다. <근처>를 읽으면서 앞으로 그의 작품이 애매한 채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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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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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영 작가에게 고맙다. 책 <덕혜옹주>를 써주어서 그렇다. 이 책 덕분에 덕혜옹주에 세심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에 대한 책은 거의 없다. 소설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이 세상에 나와서 다행이다. 그만큼 우리는 덕혜옹주를 잊고 살았다.
 

덕혜옹주는 유령 같은 삶을 살았다. 궁에서 태어나서 궁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대부분의 삶을 국적도 없이 일본에서 살아야 했다. 그것도 강제로...

 

1912년 5월25일 덕수궁에서 출생해서 1989년 4월21일 창덕궁에서 유명을 달리했던 여인. 77년 삶 중에 37년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었던 여인. 1925년 4월 일본으로 연행된 후 1962년 1월 귀국할 때까지 37년 동안 한을 품으며 살아야 했던 여인. 그나마 15년은 정신병원에 갇혀 지냈던 여인. 그녀가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이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던 덕혜옹주는 항상 조선을 그리워 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왕정 복고를 두려워한 나머지 덕혜옹주의 귀국을 애써 모른 척했다. 신문기자 김을한의 도움으로 덕혜옹주는 일본을 탈출하다시피 빠져나와 창덕궁 땅을 다시 밟았다. 정부조차 왕족을 천대했으니 일반 국민이 덕혜옹주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잊혀졌던 덕혜옹주를 부활시켰다. 그렇지만, 이 책의 독자는 헛헛하다. 조선의 황녀로 태어났지만 황녀로서 살지 못했던 그 당시 현실이 떠올라 그렇다. 구한말 격변의 시대 속에서 덕혜옹주는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다. 조선도 그녀를 잊었고 일본도 그랬다.

 

이 책을 통해 읽는 동안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어쩔 수 없는 그 답답함에 여러 번 차례 책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했다. 덕혜옹주는 망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 있는 글귀를 인용하면 이렇다.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차를 마시거나 마시지 않거나, 매화를 치거나 치지 않거나 하는 정도였다."

 

이 책의 표지는 아름답다. 도라지꽃 색이 은은한 치마를 입은 덕혜옹주 그림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슬프다. 자신의 처지보다 망국의 현실을 아쉬워하는 모습이 서렸다. 잊힌 역사를 되살리는 의미만으로도 이 책은 값어치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오점이 있다. 오탈자가 있고 역사적 사실이 잘못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고종이 덕혜옹주를 위해 유치원을 세운 곳은 준명당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즉조당이라고 되어 있다. 

 

강제로 맺은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책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마지막 황녀을 통해 그 때의 국치를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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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三國志 세트 - 전10권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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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 북페스티벌에서 <고우영 삼국지>를 무척 싼 가격에 샀다. 전 10권이 한 세트인 이 책은 가격이 만만치 않아 평소 군치만 흘렸었다. 이 책을 당장 읽지 못하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다. 최근까지 이 책을 째려보았다. 언제 읽을지 호시탐탐 노려보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이번 설 연휴 때 들입다 읽었다. 삼국지는 한 번 읽을 때 연달아 읽어야 제맛이기 때문에 기회를 기다렸던 것이다.
 

기다리기를 잘했다 싶다. 이 책은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 했을 때부터 제갈공명이 죽을 때까지 위ㆍ촉ㆍ오 삼국의 역사를 그려낸 만화다. 만화라고 해서 '삼국지 맛'이 덜하지 않다. 고우영 화백의 만화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가벼울 때는 한없이 가볍고 무거울 때는 상당히 무겁다. 이 때문에 '진지한 삼국지'를 읽어 본 독자에게 이 책은 적당히 무겁다.

 

만화는 시각적이다. 각 인물의 개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원작 삼국지는 방대하다. 역사가 길고, 등장인물도 많다. 게다가 유비, 조조, 공명 등의 두뇌싸움까지 보태진 삼국지는 단박에 이해하기 어렵다. 삼국지를 2~3번씩 읽는 이유다. 고화백은 이를 만화로 쉽게 풀어냈다.
또 그 오랜 옛날의 역사적 사실을 현대적 의미로 설명해서 감칠맛이 난다. 이 책에는 무전기가 등장하고 탱크도 등장한다. 무전기는 빠른 통신을, 탱크는 기동력을 상징한다.

 

삼국지는 베스트셀러다. 1세기 때의 이야기가 21세기를 사는 사람에게 감흥을 준다. 이 책에도 같은 이치가 통한다. 고우영 화백이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독자를 사로잡는다. 방대한 량에 질진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은 무삭제판이다. 1978년 일간지에 연재되었으나 당시 군사정권의 검열로 인해 삭제, 수정되었던 100여 페이지를 20여 년 만에 복원한 책이다. 약간 잔인하거나 야한 장면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18금'은 아니다.

 

이 책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 수많은 삼국지가 서점에 있다. 각 삼국지에 담겨 있는 역사적 사실은 동일하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평가하는 시각이 다양한 것처럼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시각은 작가에 따라 다르다. 이 책도 그렇다. 유비를 '쪼다'로 그렸고, 관우와 조자룡을 충직한 장군으로 표현했다. 제갈공명은 불패의 지략가이자 충직한 신하로 나타냈다. 이런 점은 삼국지를 처음 읽는 독자에게 강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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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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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작가는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이 있다. 거침없는 비판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대게 이런 비판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좋아하는 파와 그렇지 않은 파이다. 좋아하는 파는 이외수 골수팬이 된다. 이 사회의 비정상, 비상식인 것에 내뱉는 그의 독설은 대리만족거리이다. 게다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은 몸부림이다.
 

이런 몸부림은 그가 2001년 펴낸 우화집 <외뿔>에도 잘 나타나있다. 당시 10만 부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는 저자가 초대형 작가의 자리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2008년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외뿔>은 그 인기를 오랜 기간 동안 잃지 않았다. 옛날에 출판된 <외뿔>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분명 깊은 깨달음과 환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 <외뿔>을 읽었던 독자라면 외면해도 좋다.

 

저자의 감각적인 문체가 좋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도 불만이 없다. 그래서 돈을 주고 그의 책을 즐겁게 산다. 그러나 이 책을 돈을 주고 사보라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재탕이기에 그렇다.
 
저자는 2009년 12월 같은 제목의 우화집을 내놓았다. 이 책 <외뿔>에 꿈틀대는 촌철살인은 8년 전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신선하지는 않다. 제목만 같은 것이 아니라 내용도 같다. 심지어 삽화도 같다. 다만, 삽화에 컬러를 입혔고 책 판형을 작게 만들었다. 즉, 포장만 바꾼 우화집을 또 낸 셈이다. 자동차 제조회사가 신차랍시고 선보인 차가 엔진 등 주요 기능은 그대로 두고 디자인만 살짝 바꾼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도 차 값을 올려 받는다면 많은 사람으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다. 이 책이 그렇다.

 

저자의 새로움을 기대했던 독자에게 이 책은 실망스럽다. 작가는 매년 <청춘불패>, <하악하악>,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등과 같은 에세이를 냈다. 그런데 이번에도 비슷한 종류의 책을 냈다. 그것도 예전의 것을 그대로 냈다.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증이 작용했을까. 아니면 소설을 내기까지 버틸 시간이 필요했을까. 실제로 그는 2005년 장편소설 <장외인간> 이후 이렇다할 소설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 책을 왜 이 시점에 내놓아야 했는지 궁금해진다.

 

얼마 전 한 유명작가 낸 책이 그저 신변잡기에 그친다며 혹평을 받은 일이 있다. 아니나다를까, 그 책은 출판사가 저자의 이런저런 원고를 묶어 돈벌이용으로 만든 책이라고 했다. 이 책 <외뿔>도 그런 경우인지 아니면 저자가 다시 펴낼 의도가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외수 작가님, 이 책 왜 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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