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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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30일 민망한 일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당시 일본 작가 마쓰모토 하지메가 한국 입국을 거부당해 강제 출국했다. 그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이유였다. 무엇 때문에 그의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측할만하다. 그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다. 한마디로 가난뱅이 전문가이다. 가난하게 사는 법을 연구하는 전문가다. 그런데 연구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보니 정부가 싫어하는 일을 많이 한다. 그러니 G20 정상회담을 앞둔 한국이 그의 입국을 거부할만하다. 괜스레 시끄러운 일이 생기기 전에 차단하자는 조치였을 터이다.

 

한국이 지레 겁을 먹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작가는 몸을 뉘어 잠을 자는 방값을 벌기 위해 하루 8시간씩 10일 동안 일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에 반기를 들었다. 그 후 스스로 노숙인으로 살았고 일반적인 직업을 거부했다. 자신을 가난뱅이라고 부르는 그는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사는 법을 체험했고 그것을 정리해 책으로 냈다. 그 책이 '가난뱅이의 역습'이다.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가 1830년에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패러디한 그림을 표지에 실었다. 내용도 기상천외하다. 싼 방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가 하면 노숙하는 방법도 구체적이다. 밥값을 절약하는 방법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거지는 되지 말란다. 또 남에게 빌붙어 먹되 자신도 남에게 베풀면서 살라고 한다. 한마디로 당당하게 없이 사는 법을 설파한다.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그는 실천할 것을 주장한다. 특히 사회적 모순에 대해 항거하잔다. 그가 실천한 과거 데모 내용을 이 책에 풀어놓았다. 예컨대, 밥맛은 없고 양도 적으면서 밥값이 비싼 대학 식당을 대상으로 데모를 했다. 데모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고등어를 구워 썩은 내가 진동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적(?)을 항복시켰다. 한번은 선거기간 동안 국회의원들은 트럭을 끌고 다니며 확성기로 시끄럽게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데모할 때는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던 경찰도 선거 활동에는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 그는 구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랩퍼, 가난뱅이 등을 총동원시켜 카니발까지 열었다. 물론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선거 활동이므로 경찰의 제재를 받지 않은 점에 만족했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사회를 전복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는 법을 지키라고 호소한다. 저자 자신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다만, 사회의 모순에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바꾸자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강조한다.

 

 

이 책이 나온 배경을 추측할만하다. 이런 책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는 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중류층보다 하류층이 늘어나면 일본의 사례처럼, 나라는 잘 살지만 국민은 허덕이는 모순된 사회가 정착한다. 대다수의 국민보다 소수의 상류층이 부를 독점하는 기형적 사회 구조가 자리 잡는 것이다. 굳이 마름모꼴 사회구조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강변하지 않더라도 이 사회를 받치는 중류층이 없어지면 사회는 건강성을 상실한다. 이 점을 이 책은 강조하는지도 모르겠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은 이런 책이 달갑지 않을 것 같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이 책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책이 달갑지 않을까 아니면 희열을 느끼게 할까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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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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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달의 바다>는 루빅큐브 같다. 이리저리 돌려서 여섯 면의 색상을 맞추는 정육면체 말이다. 이 책에는 두 조각의 글이 있다. 하나는 주인공의 고모가 할머니에게(그러니까 딸이 엄마에게) 쓴 편지이다. 또 다른 하나는 주인공인 '내'가 쓴 글이다. 이 두 조각이 루빅큐브처럼 잘 짜여 있다. 저자 정한아의 소설 구성 능력이 발휘된 부분이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탔다.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인데다 많은 독자도 좋은 평을 쏟아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당시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유명한 책에 움찔하는 고약한 습성 탓이기도 하지만 표지가 썩 맘에 들이 않았다. 빨간 머리에 빨간 입술, 피에로 분장을 한 여자가 우주복을 입고 무표정하게 시선을 주고 있는 장면이다. 사람은 간사해서 표지에서 선입견이 생긴다. 유치 찬란한 하이틴 소설 느낌이 강했다.

 

어느 날 우연히 이 책이 손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째려보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조금 읽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집어던질 요량이었다. 그렇게 해서 읽기 시작한 책은 마지막 장을 넘기고서야 내 손을 떠났다.

 

주인공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조카와 한 집에 산다. 조카는 어릴 적 고모 손에 이끌려 그 집에 들어갔다. 고모는 미국으로 떠나 15년 정도 자취를 감췄다. 주인공은 신문사 기자 시험에 도전하지만 번번이 낙방한다. 자살하려고 감기약 수백 알을 구해 집에 왔다. 그때 할머니가 주인공을 불러 미국을 다녀오란다. 생사조차 불분명했던 고모를 만나고 오란다. 사실 고모는 그동안 할머니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미국항공우주국 소속 우주인으로 잘 살고 있다고 내용이다. 우주선을 타고 훈련하는 과정이 너무 생생해서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주인공은 미국으로 가서 고모를 만났다. 고모는 모의우주센터 내 매점에서 일하는 점원일 뿐이었다. 이 사실을 가족에게는 비밀에 부쳤다. 고모가 거짓말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모는 폐병을 앓고 있었다. 고모는 비밀리에 건설된 달 기지에서 살면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달나라 여행이 가능해져서 할머니(고모의 엄마)가 고모를 만나러 올 때까지 달에서 기다리겠다는 편지를 남겼다. 주인공은 부모보다 먼저 죽을 운명을 알고 있는 고모로부터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렇게 가기 싫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일하기로 했다.

 

내용은 이렇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줄거리이지만 우주인을 등장시킨 점, 조카에 대한 고모의 모성, 주인공의 인식 전환 방식 등이 색다르다. 내용 전개도 흐느적거리지 않고 빠르다. 또 주인공의 동네 남자친구는 벼르고 벼르던 수술을 통해 여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런 점들이 삶의 의미를 던져주는 소도구로 작용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을 청소년에게 권하고 싶다. 특히 방황하는 청소년이라면 한번쯤 읽고 삶의 소중함을 음미하길 바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렇게도 꼴불견이던 책 표지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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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우연히, 아프리카 - 프랑스 연인과 함께 떠난 2,000시간의 사랑 여행기
정여진 글, 니콜라 주아나르 사진 / 링거스그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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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팔자를 역마살이라고 한다면, 저자 정여진은 역마살이 낀 것이 틀림없다. 책 <그와 우연히, 아프리카>를 읽으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녀는 25살, 젊은 나이에 서아프리카를 떠돈다. 그 나이라면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대도시의 화려함을 동경할 법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모래바람이 목구멍까지 들이치는 사막을 횡단하며 희열을 느낀다.

 

그녀의 역마살은 자신의 집으로 잘못 배달된 책 한 권으로 발동이 걸렸다. 그 책의 저자 랭보를 흠모한 나머지 그의 흔적을 따라 동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그 와중에 프랑스의 한 작은 도시 기차역에서 한 프랑스 남자를 만났다. 사랑에 빠졌고 그와 함께 인도와 서아프리카를 여행했다. 그 남자친구와 서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쓴 글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녀는 자신의 역마살을 감추지 않는다. 이 책 소개에서 자신은 조만간 어디든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책을 출판한 때가 5월이니 지금쯤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거나 이미 지구 반대편 어느 골목을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시작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 시기에 아프리카 여행기는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저자가 여성이라는 점과 남자친구와 험난한 여정을 함께한다는 내용은 뭇 여성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 책의 표지에도 석양을 배경으로 하트가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도 '프랑스 연인과 함께 떠난 2천 시간의 사랑 여행기'이다. "우연은 언제나 필연이 되는 과정을 거쳐 운명이 된다"고 저자는 이 책에 적어두었다. 아마도 자신의 남자친구를 두고 한 말인 듯싶다.

 

저자는 운명처럼 느끼는 남자 친구와 파라다이스를 찾기 위해 서아프리카로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파라다이스는 어느 한 장소를 특별히 여기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라는 결론을 낸다. 눈썰미가 있다면 눈치 챘겠지만 이 책의 색깔이 모호하다. 뻔한 결론을 어설프게 내린 것이 그렇다. 이 때문에 남자 친구와 서아프리카를 여행한 것이 뭐 대수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사실 요즘은 여행에 대한 책이 넘친다. 웬만한 여행기로는 독자의 손길을 끌지 못한다. 여행에 사랑이라는 소재를 도입한 점은 새로운 시도이다. 저자는 여행기 중간에 자신의 감성과 사랑을 녹여 넣었다. 그러나 여행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에는 실패한 듯하다. 여행기란 현지의 느낌이 전해져야 맛이 난다.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팔딱거림이 있어야 한다. 여행 생각이 없던 사람도 가방을 싸서 벌떡 일어나게 할 만큼 그들의 역마살을 콕콕 건드려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이 약해 아쉽다. 한마디로 밋밋하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자의 생각이 너무 많다. 사랑과 감성이 넘쳐 여행기를 희석시킨 것 같다.

 

고백하건대 서평을 쓰면서 부럽기가 그지없다. 모래 바람을 새하얗게 뒤집어써도 예쁘기만 한 25살이 부럽고 아프리카 오지를 헐떡거리며 다니는 용기가 그렇다. 아프리카는 개인적으로 가고 싶은 곳이다. 아프리카라는 말만 들어도 호흡이 거칠어지고 내 마음 속 역마살이 꿈틀댄다. 이 역마살을 억누르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을 어쩌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 미칠 것 같다. 이 책은 부끄러운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어 미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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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천천히 태어난다 - 우리 시대 명장 11인의 뜨거운 인생
김서령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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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11명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 <삶은 천천히 태어난다>이다. 소설가 최인호, 소리꾼 장사익, 시골의사 박경철, 한국화가 박대성, 가나아트 회장 이호재, 리얼리즘 사진가 최민식, 목수 이정섭, 건축가 김석철, 광주요 대표 조태권, 현대음악 작곡가 강석희, 서예가 김양동이 그들이다. 모두 관심을 끌만한 인물들인데다 딱딱하지 않은 문체여서 술술 읽을 수 있다. 특히 저자와 개인적으로 나눈 사담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본래 야화가 더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소설가 최인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인호는 수호신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잘 달라던 자신의 차가 동호대교에서 불이 났고 마침 지나가던 차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차 운전자가 두레박을 꺼내 한강물을 퍼 올려 불을 껐다는 것이다. 차에 두레박을 싣고 있는 것이나 그 길이가 한강물까지 닿은 것이나 믿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니 수호신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이 책을 맛있게 포장하고 있다. 특히 가나아트 회장 이호재, 사진가 최민식, 광주요 대표 조태원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회장은 한국 예술 발전에 한 몫 한 인물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예술가가 돈에 신경 쓰지 않고 작품활동을 하도록 10~20년 동안 돈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계약서는 물론 아무 조건 없이 말이다. 그 결과는 20~30년이 지난 지금 나타나고 있다. 현재 눈길을 끄는 예술인 중 상당수가 수십 년 전 이회장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으며 예술에만 전념했던 사람들이다. 조대표의 예술가에 대한 지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또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에 원화 한점 없는 것을 아쉬워한 그는 그동안 모아왔던 이중섭 유화 2점, 드로잉 1점, 은지화 2점, 엽서화 2점 등을 기증했다. 이와 같은 조대표의 예술사랑은 이 책에서 눈부시게 표현되어 있다.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은 암울한 한국 현실을 담고 있다. 등이 갈가리 찢어져 살이 다 드러난 러닝셔츠, 이빨이 듬성듬성 빠진 채 밝게 웃는 지게꾼, 마른버짐 핀 아이에게 국수 가닥을 걷어 먹이는 젊은 엄마 등이 사진의 주인공이다.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하다 사진의 매력에 빠져 사진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한국 시대의 어두운 면에 앵글을 맞췄다. 그러다 보니 군부시절에는 간첩으로 몰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때문에 사진 인생 50년 중 35년은 순탄치 않았다. 그의 사진은 일본, 독일, 미국 사진 잡지에 실리면서 최민식이라는 이름이 알려졌다. 

 

광주요의 조태원 대표는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전념한 사람이다. 전 세계 IT산업보다 훨씬 큰 식품 산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대표는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한국 음식장사는 전쟁을 거치면서 생계수단으로 전락했단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음식을 문화로 승화시킨 점과 비교할 때 한국은 정반대 행보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밥집도 저급한 직종으로 전락했다. 그러니 '원조'니 '최저가격'니 하면서 경쟁이 심해지면서 음식 품질은 추락했다고 한다. 일본 스시는 본래 고급음식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미국 뉴욕의 고급 스테이크보다 2배 이상 비쌀 정도의 최고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대표는 한식도 제대로 만들어 비싸게 팔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에 한식의 고급스러움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조대표의 우직한 한식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이 책에 수북하다. 11명의 유명인을 책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그 특징을 잘 잡아 칼럼리스트인 김서령 작가는 글을 맛깔스럽게 썼다. 할리우드 영화가 '미국 영웅 만들기'에 뛰어난 만큼 저자도 이 책에서 11명을 '명장'으로 표현해 사실상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은 거북할 정도로 미화(美化)되어 있기도 하다. 화장이 짙을수록 속살은 가려진다. 객관적으로 인물을 판단하려는 독자의 눈을 가릴 수 있는 부분이다. 또 한가지 짚어야할 점은 저자가 11명과 인터뷰한 때이다. 이 책의 글은 2005~2008년에 11명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2~5년 전의 인터뷰 내용이어서 신선하지 않다. 11명을 다시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냈어야 한다. 과거 인터뷰 내용을 묶어 책을 낸 정도라면 실망스럽다. 최고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맛있는 구미 당기는 이야기를 잡아 올렸지만 팔딱거리지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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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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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잡지 엘르(elle) 편집장이던 장 도미니크 보비가 쓴 책이 <잠수복과 나비>이다. 일개 잡지 편집장이 쓴 책이 대수인가 싶겠지만 저자가 식물인간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전신마비 상태가 된 그가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쓴 책이다. 그의 투병기이자 유작인 셈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즉 locked-in 신드롬 상태에서 이 책을 썼다. 다른 사람이 알파벳을 읽으면 저자는 눈꺼풀만 깜박거려 한 글자 한 글자를 썼다. 하루에 반쪽 분량씩, 15개월 동안 20만 번 깜박거려 완성한 책이라고 한다.
집필의 배경으로 이 책은 유명세를 탔고 몇 년 전에는 영화로도 소개되었다.
 
단순히 식물인간 상태에서 책을 엮은 사실 때문에 이 책이 높이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시쳇말로 잘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중환자로 전락한 점은 누구나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마음은 나비처럼 훨훨 날지만 몸은 갑옷 같은 청동 잠수복에 갇힌 상태가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잠수복과 나비라는 단어는 그런 관계로 제목이 되었다.
 
싫든 좋든 병원에 갇혀 지내던 저자는 이 책에서 일요일이 가장 싫다고 했다. 일반인이라면 일요일처럼 달콤한 날도 없으련만 그에겐 일요일이 잔인한 날이다. 의사나 간호사가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일요일의 잔인임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나는 창가에 쌓인 책들을 바라본다. 오늘은 아무도 나에게 책을 읽어줄 사람이 없으니, 그저 쓸모없는 도서관처럼 생각된다. 세네카, 졸라, 샤토, 브리앙, 발레리, 라르보가 겨우 1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가혹하게도 나는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검은 파리 한 마리가 내 콧잔등에 와서 앉았다. 나는 파리를 쫓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본다. 그래도 놈은 버티고 있다. 올림픽 때 구경한 그레코 로만형 레슬링 경기도 지금처럼 처절하지는 않았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그의 삶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 책은 후자에 대한 자서전 성격의 글이다. 건강할 때의 시각과 입원하고 있을 때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저자는 병원에서의 삶을 잔잔한 시각으로 들려준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경험을 들려준다. 과거에 대한 애절함을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점점 멀어진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멀어지고 있다. 항해중인 선원이 자신이 방금 떠나 온 해안선이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광경을 바라보듯이, 나는 나의 과거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느낀다. 나의 내부에서 불타오르고 있지만 점차 추억의 재가 되어 버린다."
 
저자의 투병기라고 해서 내용이 무겁지 않다. 책 부피도 얇다. 부담 없이 나의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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