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기타노 다케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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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책이 있다.
추천할지언정 빌려주기는 싫은 책.
꼭꼭 숨겨두었다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책 <생각 노트>가 그런 책이다.

 

작가는 기타노 다케시이다. 기타노 다케시가 누군가. 일본 코미디언, 영화 배우에 이어 영화 감독의 자리를 굳힌 사람이다. 이름이 낯설어도 사진을 보면 "아, 이사람"할만큼 유명하다.
일개 연예인이 쓴 책이 뭐 대단할까만, 그의 거침없는 언행을 떠올리면 이 책에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다.

 

독자의 말초신경을 건드리기 위해 엉뚱하거나 4차원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내놓는다. 그의 생각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그렇더라도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논제를 툭 던진다. 예컨대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명제에 돌을 던진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노력하면 뭐든 이루어진다고 자식을 위하는 척하면서 부모의 체면을 차리는 말을 하지 말고,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재능이 없는 아이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부모가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런 말을 하면 아이가 위축되지 않겠느냐고? 위축되지만 않으면 운동신경 둔한 녀석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나?
자식이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음을 가르치는 것은 조금도 잔인한 일이 아니다. 그게 괴롭다면, 어떻게든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무기를 아이가 찾도록 도와줘라." (67쪽)

 

휴대전화와 인터넷에 대해서도 통렬한 시각을 세웠다.

 

"들판에 방목 되어 있는 양들 역시 자기들이 속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목장의 양을 보고 자유롭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양들은 자기들이 가축이라는 것을 모를 뿐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중략)
휴대전화 덕분에 생활이 편리해졌다고 해서 제대로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 데이트가 즐거웠습니다 라든가 엄청나게 큰 개똥을 밟아버렸어 정도의 말들이 오갈 뿐이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게시판에 남의 험담이나 쓰고 읽고, 나처럼 야한 사진이나 보고. 그런가 하면 영문 모를 사기꾼의 쇼핑몰에 걸려들고. 거의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거나 이메일을 주고받고 정보 교환을 하기 위해 매번 쓸데없이 돈을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중략)
교육 기본법을 개정하면 나라라는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다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도, 휴대전화의 어두운 면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쪽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90쪽)

 

또 서로 윈윈(win-win)하는 우정은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옛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는데 너는 지금 왜 날 도와주지 않는 거야 하고 생각한다면, 그런 건 처음부터 우정이 아니다. 자신이 정말로 곤란할 때 친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우정이다.
요컨대 우정은 내가 저쪽에다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지, 저쪽에서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아니다. 우정이란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다.
애초부터 우정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다. 손익으로 따지자면 우정은 손해만 볼 뿐인 것."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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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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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천년의 금서>는 특히 역사학자가 읽으면 좋겠다 싶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서 한(韓)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이 물음에 이 책은 답을 제시한다.

중국의 한나라를 숭배하기 위해 '한'을 국호로 사용했을 리 없다. 삼한(三韓)의 '한'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저자 김진명은 이 책에서 '한'의 기원을 밝혔다. 물론 공식적인 역사로 인정되지는 않을 것 같다. 최소한 사학계에 중대한 화두를 던진 것만은 틀림없다.

 

고조선 이전의 역사는 웅녀와 단군 할아버지로 얼버무려져 있다. 5천년 역사라고 하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 3천년은 신화로 치부되어 있다. 이 책은 '한(韓)'이라는 고대국가가 존재했고 그 주인은 우리 조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조상은 중국 춘추시대의 한나라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16세기부터 우리 민족이 동북중국과 한반도에 걸친 영토를 거느린 나라를 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확실한 근거가 없으면 소설을 쓰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또 사학계에서 이 소설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주문한다. 비록 소설 형식을 빌렸지만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만큼 역사학자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는 일본에 의해 훼손된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나라 최초 고대국가는 기원전 40년 전 삼국시대부터 세워졌다는 역사를 저자는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일본인 학자들이 철골을 세우고 국내 학자들이 콘크리트를 친 결과"라며 그 이전 역사를 되찾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잃어버린 고대사'를 찾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리타분하지 않다. 한 여교수의 죽음이 발단이 되는 소설이다. 시대도 과거가 아니라 현대 시점이다. 역사 스릴러물을 좋아한다면 추천할만하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것도 사실이다. 소설과 사실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분위기기 풍긴다. 소설적 흥미는 증발했고 역사적 사실은 다소 약하다. 속도가 경쾌하고 빠른 만큼 줄거리는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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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힘이 세다
이철환 지음 / 해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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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무언가를 찾는 사람은 읽으면 후회한다. 반전도, 그 흔한 쾌감도 없다. 책 <눈물은 힘이 세다>는 오히려 '비극 엔딩'이다. 저자는 <연탄길>로 유명세를 떨친 이철환 작가다. <연탄길>은 독자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저자는 <눈물은 힘이 세다>에서도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려 애쓴다.
 
책 속 주인공은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피곤한 삶을 산다. 공장에서 기름때에 찌든다. 리어카에서 사과를 판다. 거친 삶을 살지만 주인공은 소설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삶 차제와 주변 상황을 그 꿈을 포기하도록 종용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보여준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가족 부양에 힘이 부친다. 가난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지만 언감생심이다.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자신을 부숴버리고 만다.
어릴 때부터 정신적 지주였던 이웃집 아저씨도 점점 더 어려운 삶을 살아간다. 맹인으로서 안마 일을 하지만 점차 걸인으로 변해간다. 세상은 장애인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주인공은 결국 소설가의 꿈을 이룬다. 첫 번째 소설은 인기를 끌지 못한다. 대신 두 번째 소설이 유명해진다. 주인공이 이 과정에서 소설가가 되려는 주인공의 의지는 더욱 강해진다.
 
주인공의 의지를 담금질했던 것은 그의 짝사랑이었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그녀를 성인이 되서도 잊지 못한다. 15년 공백기 끝에 만나지만 서로 다른 가정과 삶을 살고 있다는 현실을 넘지 못한다.

이 책은 이런 내용이다. 주인공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의 삶은 우리네 삶과 닮았다. 돈이 없어 피곤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삶이 닮았고, 힘이 없어 구차하게 눈치보는 삶도 그렇다. 그 삶 속에는 눈물이 있다.
 
저자는 거친 삶을 이겨내는 배경에 눈물이 있다고 주장한다. 눈물이 없다면 꿈도 의지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소설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내세운 책 속 주인공은 돈도 없고 ‘빽’도 없다. 학력도 없고 능력도 없다. 비전은 더더욱 없다.
"죽어라! 죽어라!"라는 세상을 살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희망을 현실로 승화시키는 것은 눈물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눈물은 힘이 세다"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위 공직자의 위장전입, 다운 계약서, 탈세, 편법 군 면제 등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날이 갈수록 우리의 지갑은 얇아진다. 흔히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하지만 희망이 아련하다. 이런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청량제 같다.
 
톡 쏘는 맛은 없다. 덤덤하다. 무언가 깨부수어 희망을 쟁취하는 따위를 기대할 수 없다. 다만 희망의 줄을 놓지 않은 우직함을 보여준다. 이런 시각에서 이 책을 보면 주인공이 소설가로 성공한 것은 운(運)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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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배상문 지음 / 북포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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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대학 교수는 박식하다. 잡학박사라는 닉네임도 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글로 풀어내면 엉킨다.
모 지역 군수에 출마하려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정책 아이디어를 글로 표현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둘은 자신의 지식과 주장을 말과 글로 표현한다. 말은 별문제 없어보이지만 글은 심각하다. 시쳇말로 ‘말발’은 있는데 ‘글발’은 안 선다. 언론사에 보내는 칼럼이 퇴짜를 맞는다. 연설문은 지루하다.

 

비단 전문가만 글을 쓰지 않는다.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다.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글 쓰는 일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책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의 저자 배상문은 소위 개나 소나 글을 쓰는 시대에 당신도 글을 쓰라고 주문한다. 눈치챘겠지만 이 책 제목은 오히라 미쓰요 작가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책 제목을 패러디했다.

 

글을 쓰더라도 제대로 쓰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글자만 나열한다고 글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블로그에 일기 형식으로 쓰는 글이라면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남이 보는 글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신의 교양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글’이다. 요리를 못 하거나 사진을 못 찍거나 옷을 못 입는다고 해서 지성이나 교양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말을 꺼낸 사람이 수준을 의심받는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이다. 따라서 글을 잘 쓰느냐 못 쓰느냐는 그 사람의 지성과 교양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15페이지)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어한다. 글을 잘 쓰기란 쉽지 않다. 소위 ‘글발’을 세우려면 글을 많이 쓰면 된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 책은 그 시간을 단축해주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무엇보다 블로그를 개설해서 글쓰기를 시작하라고 권한다. 자신 있는 한 분야에 집중해서 꾸준히 글을 쓰라고 한다. 무엇보다 글 쓰는 습관을 몸에 베게하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질보다 양”이라는 말로 글 쓰는 시간과 글의 분량을 늘리라고 주장한다.
글쓰기 습관이 붙으면 자신만의 글쓰기 규칙을 만들라고 한다. 예를 들면 형용사와 부사를 쓰지 않는 글쓰기이다. 

이 책에는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가 부록으로 붙어 있다. 실제 글쓰기에서 실수할만한 것을 모았다. 예컨대, ‘글씨 따위를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끄적거리다’가 아니라 ‘끼적거리다’이다. 마찬가지로 ‘끼적이다’, ‘끼적대다’처럼 쓴다.

 

이 책은 작가 지망생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일반인이 읽어야 할 책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그 말을 글로 표현하라고 하면 진땀 뺀다. 글을 쓰다 보면 정화되지 않은 단어를 세탁해야 하고, 조사를 맞추고, 맞춤법과 띄어쓰기까지 신경 써야 한다. 또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글로 쓰라고 하면 원고지 5장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다 쓰더라도 앞뒤 문장이 맞지 않거나 어딘가 이상한 글이 되어 버린다. 

 

책은 글을 쓰되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추라고 한다. 글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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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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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우동 한 그릇>을 다시 읽었다.
1989년 1쇄를 냈으니 20년을 넘긴 일본 소설이다.
한마디로 스테디셀러다.
 

내용은 단순하다.
그러나 그 내용을 요약하는 짓은 이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하다.
자칫 소설의 맛을 반감시킬 수 있다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면 코끝이 찡해진다.
오래되어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책이지만 여전히 감동이 묻어난다.

이 책에는 <마지막 손님>이라는 소설도 있다.
역시 감동을 주는 내용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설명할 때 이 책을 인용했다.
첫 번째 소설 <우동 한 그릇>이나 두 번째 소설 <마지막 손님>은 일본인의 의식을 그만큼 잘 그려내고 있다.
우동집 주인이나 과자점 종업원이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있다.
또 우동집이나 과자점에 오는 손님도 예의를 지킨다.

이 책에서 감동을 받고, 일본인의 배려와 예의를 취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얇다.
게다가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도 좋은 책이다.
시쳇말로 '19금' 책이 아니고 천박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마음이 헛헛한 현대인이 꼭 읽어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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