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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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마지막 날에 읽은 책은 <유럽의 책 마을을 가다>이다. 2020년 1월에도 읽고 싶은 책이다. 10년 동안 한국의 책방(서점보다 이 말이 정겹다)과 독서문화가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하고 싶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을 여행기쯤으로 치부할 수 있다. 유럽에 대한 동경과 그럴듯한 음식 사진을 기대감을 가진 독자는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 실망한다. 이 책은 우리의 독서 문화에 대해 반성을 이야기 한다. 

 

이 책의 저자 정진국은 2007~2008년까지 유럽의 책 마을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스위스, 프랑스, 베네룩스 3국,  스칸디나비아, 독일, 영국과 아일랜드의 시골 책 마을만 돌아다녔다. 단순히 농촌에 서점이 많다거나 그곳 사람들이 모닝커피를 마시며 우아하게 책을 읽는다는 내용은 이 책에 없다. 농촌 마을이 어떻게 책 마을로 바뀌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농촌에 책방이 생긴 이유를 찾고 어떻게 운영하는 지에 담아냈다. 예를 들어 이 책에 소개된 한 프랑스 마을은 한 때 살길이 막막했다고 한다. 싼 농산물이 외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데 분노한 농민이 트랙터를 몰고 대로로 나서고, 생우유를 길바닥에 쏟아붓고, 토마토 산을 쌓아 시청 앞을 피범벅으로 만드는 시위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그 시골을 책 읽는 마을로 변모시켰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네 농촌 풍경과 다르지 않다. 농사를 지어도 돈이 되지 않자 수확한 쌀에 불을 질러 보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을 자아내는 뉴스는 새롭지도 않을 정도이다. 힘든 농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문화체험, 자연체험, 관광마을 등 그럴 듯하지만 특징은 없다. 여름이면 청정지역이라는 면을 홍보하고 겨울이면 죄다 얼음낚시터를 개장한다. 숙박시설과 식당만 늘려놓고 한철 벌어 일년을 나게 만든다. 유치한 체험행사 몇 번 쫓아다니다 보면 경기도와 전라도 농촌마을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쉽게 느끼게 된다. 고장은 다른데도 기념품은 열쇠고리 일색이다. 그것도 싸구려여서 1년 후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쯤되면 지자체는 '서울 따라하기'에 나선다. 성공사례가 검증된 방법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시가 청계천을 복구하자 거의 모든 지자체가 일제히 복개천을 뜯어냈다. 한반도가 굴착기 소리로 뒤덮였고 온 나라가 공사판이다. 폭이 5미터도 되지 않는 실개천을 뒤집어 엎고 옆에 1.5m씩 모두 3m짜리 인도와 휴식공간을 만들었다. 폭 5m짜리 개천이 2m로 줄었으니 비만 오면 넘치기 일쑤이다. 주민들 원성이 대단하다. 그럼에도, 지자체는 일자리를 늘렸고 시민 복지공간을 만들었다며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린다.

 

유럽의 일부 농촌은 생각을 달리했다. 책방을 만들고 고서적을 유지했다. 특히 대문호와 관련 있는 마을은 책 마을로 유명세까지 탄다고 한다. 어떤 마을은 농한기에 술만 먹고 노는 꼴을 보던 한 사람이 책을 읽자며 책방을 낸 것이 책 마을로 변모하게 된 계기가 되었단다. 모든 농촌 마을이 책 마을로 변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책마을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럽 책 마을을 돌아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마을에 있는 책도 중요하지만 책이 있는 마을도 중요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그다지 새로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문화를 실험하고 있다." 
"수치상으로 경제 수준과 교육 수준이 대단히 높은 우리나라에서 도서 문화는 참으로 쑥스럽다. 유럽 사람들은 우리가 펴낸 번듯한 사진첩 하나 없으니, 우리의 전통문화가 얼마나 고상하고 세련되었으며, 화려하기까지 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동남아나 아프리카와 남미의 고대와 전승문화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하는 이 사람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아메리카의 속국이거나 분단되어 비참한 대치 상태에 있거나, 잘 훈련되고 동원되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체육대회 같은 것을 잘 치른 나라로 알지, 개성적이며 독창적인 문화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우리는 수 천년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임을 자랑한다. 이 정도면 그 역사를 기록한 책만으로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도 남는다. 그런데 우리는 책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책 가격만 보아도 그렇다. 분명 5만 원짜리 값어치가 있는 책이지만 1만 원짜리 바코드가 붙어 있다. 비싸면 안 팔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20~30% 세일딱지에 기념품까지 증정한다. 이런 책이 헌책방으로 넘어가면 책이 아니라 종이 취급받는다. 저자도 이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 현실에서 책은 헌신발짝 값만도 못하다. 중고 서적은 대체로 무게로 저울에 달아 유통된다. 출판인이나 저자 편에서는 국민 수준이 낮다고 하고, 국민은 책이 제값을 못한다고 의심한다. 아무튼 도서의 하향 평준화는 분명하다. 수많은 시간과 지성을 쏟은 저자나 역자의 책이든, 시정잡배가 대필시켜 쓴 책이든 종잇값이나 쪽수로서 정가를 맞춘다."

 

책을 읽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도 있다. 삼겹살 집은 어디가 잘하는지 꿰고 있지만 동네 서점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책방이 편의점만큼 흔해야 하고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는 것만큼 책에 몰두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도 이 생각에 동감인 듯하다. 

 

"독서 운동은 추상적인 구호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상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책을 아끼듯이, 책방이 곁에 없는데 어디서 책을 구할 것인가. 대도시 중심가, 쇼핑센터에 가서 책을 찾는 것과 동네에서 책을 접하는 것은 다르다. 아침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뒤적이며 하루를 시작하듯이, 방과 후나 일을 끝낸 오후에는 서점에 들르는 게 일상이어야 한다. 누가 너절한 잡지와 참고서만 그득한 동네 서점에서 문화를 운운하겠는가. 담배 가게나 빵집이나 카페처럼 책방 또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래전 본 영화 중에 <you've got mail>에 'the shop around the corner'이라는 작지만 오래된 책방이 인근에 새로 생긴 대형 서점에 밀려 결국 문을 닫는 장면이 있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the shop around the corner라는 책방에서는 주인이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는 정이 묻어났다. 모든 것이 대형이다. TV, 자동차, 냉동고 등은 물론이고 커피숍과 서점도 그렇다. 적어도 서점은 대형일 필요가 없다. 3~4평짜리 편의점이 20평짜리보다 매출이 많은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군소 책방이 대형 서점보다 유리한 점을 찾아 부각시켜야 한다. 또 독자는 그런 서점을 찾아 주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자주 들르는 헌책방이 있는데 앉을 곳도 별로 없어 불편하다. 그렇지만, 햇살이 좋다. 지하에 있어 사계절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는 대형서점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그것이 나를 이끈다.

 

사진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필름카메라 자리를 디지털 카메라가 대신하고 있다. 사진을 인화하기도 하지만 컴퓨터로 감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책만큼은 디지털로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ebook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손으로 넘기는 책을 대신하지는 못한 듯하다. 개인적으로 책만큼은 잉크냄새 나는 종이책이 정겹다. 원하는 단어를 찾을 때 컴퓨터 자판에서 'ctl+f'키를 눌러 찾을 수 없는 것이 불편하지만 종이 귀를 접어 두는 즐거움이 더욱 크다.

 

오늘 많이 주절거렸다. 가만있는 사람을 주절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이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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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러브 - 사랑스런 로맨스
신연식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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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이다, 아니다. 25살짜리 여대생과 50살의 중년 남자 사이에 생긴 사랑이야기 <페어 러브>에 대한 평은 극명하게 갈린다. 50살 먹은 남자의 친구가 죽는다. 그 친구에게는 25살 된 딸이 있다. 서로 사는 집이 한 동네라는 이유로 50살 먹은 남자는 친구의 딸을 보살펴 준다. 그 딸은 빨래를 핑계로 그 남자와 가까워진다.

나이가 대수인가. 남녀간에는 언제든지 사랑이 싹틀 수 있다. 문제는 친구의 딸이라는 점이다. 미묘한 관계 때문에 그 남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그 여자는 그 남자에 대한 사랑을 당돌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 남자는 그 여자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 여자 "왜 항상 그래요? 만날 때 헤어질 거 걱정하고 해 뜰 때 해질 거 걱정하고, 태어나서 죽을 거 걱정하면서 사는 거 아니잖아요?"

그 남자 "만나면 헤어지는 게 당연하고, 해 뜨면 지는 게 당연하고, 태어나면 죽는 게 당연하지만, 니가 왔다가 니가 날 다시 떠나는 건 당연한 게 아니야."


그런데 사실 친구의 딸이라는 점을 잊으면 그렇게 문제될 것도 아니다. 그 여자도 처녀이고 그 남자도 총각이다. 나이 차가 있지만 순수한 사랑을 하기에 무리가 없다. 이 책에서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결국 사랑에 빠진다. 아빠 친구가 애인이 된 셈이다. 아저씨에서 오빠로 호칭도 바뀐다.


그 남자 "그러니까, 너랑 나랑 같이 있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거지.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피해를 주는 사람도 없는데. 내 얘기 무슨 얘긴지 알겠니?"
그 여자 "그게 지금 프로포즈 하는 거예요?"


이와 같이 나이를 초월한 순수한 사랑을 저자 신연식은 이 책에 그렸다. 제목에 있는 영어 fair에는 동등하다는 의미가 있다. 사랑은 나이 앞에서도 동등하다는 것이 제목 속에 담긴 의미이다. 저자는 '동등한' 사랑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뽑아냈다. 무거움에서 오는 불륜이라는 인식을 없앨 의도가 엿보인다. 그 남자의 말과 행동이 이따금 독자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어눌하지만 순수한 그 남자와 진지하지만 어둡지 않은 그 여자 사이의 사랑은 경쾌해보이기까지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은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최근 개봉했다. 배우 안성기가 그 남자, 이하나가 그 여자를 맡았다. 같은 사람이 책도 쓰고 영화도 만든 셈이다. 현재 영화에 대한 평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영화를 본 지인들은 이 영화가 결코 경망스럽지 않다고 평한다. 일반 스크린으로는 성공한 것 같다. 2009년 부산국제영화는 이 소설과 동명의 영화를 '역대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라고 치켜세웠다.


이 책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궁금하다. 책을 읽고 난 후 영화 예고편과 스틸 사진을 살폈다. 책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다만, 위트와 상큼함을 느끼기에는 영화가 우세한 듯 보인다. 그 남자가 그 여자를 기다리며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모습, 그 여자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불꽃을 터뜨리는 장면 등은 책보다 영화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저자가 영화감독이므로 영상으로 표출해내는 데에 더 익숙한 때문이지 모르겠다.


책 내용 중에 그 남자의 과거 이야기도 중간 중간 나온다.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이다. 못 이룬 첫 사랑에 대한 애틋함이 그 여자를 더 순수하게 사랑하게 하는 모티브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전개 방식에서 독자는 어지럽다. 글 중간에 느닷없이 과거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현재와 과거가 마치 페이드인, 페이드아웃되면서 겹치는 느낌이다. 영상으로 처리하면 무리가 없는 장면이지만 글로 읽기에는 껄끄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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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이강
박종윤 지음 / 하이비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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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의친왕 이강>은 의친왕(1877년3월20일~1955년8월16일) 이강(李堈)의 삶에 허구를 적절하게 섞은 소설이다. 이강이 누구인가. 이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다. 얼마 전 <덕혜옹주>라는 책을 읽었는데 덕혜옹주가 이강의 이복 여동생이다. 조선 마직막 임금 순종은 이강의 이복형이다. 그의 자녀는 현재 전주에 살고 있는 이석(李錫) 선생을 포함해 12남 9녀이다. 절반은 사망했고 생존해 있는 절반의 대부분은 미국 등 외국에 살고 있다.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이강은 덕혜옹주와 비슷한 비운의 삶을 살았다. 1894년에 대사로 일본에 다녀오고 이듬해 6개국 특파 대사로 영국, 프랑스, 도이칠란트,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1899년 미국 유학 길에 올라 1905년 귀국했다. 이후 육군 부장, 적십자사 총재 등을 지냈다. 한일 합방 이후 독립운동가들과 가까이 지냈다. 1948년 8월15일 정부가 수립되자 황실을 배척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왕족을 대우하지 않았다. 1955년 8월16일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의 별궁에서 79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이강은 독립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그런 내용이 이 책의 골자이다. 이강은 임금의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독립에 관심을 가졌다. 이 책에서 이강은 독립운동 자금을 대는 상인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조국 독립을 위해서라면 백정도 만났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서양의 부친 박성춘이다. 박서양은 조선 최초 양의사 7인 중 한 명이다. 백정의 아들이 조선 최초의 의사가 되는 이야기가 책 <제중원>에 있다. 그는 독립의지를 행동으로도 옮겼다. 대표적인 행동이 조선 땅을 벗어나려는 '탈출 시도'였다. 의친왕 이강은 1919년 안창호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 임시정부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만주 안동(단동)에서 조선인 형사 김태석에게 발각되어 강제 송환되었다. 그가 탈출에 성공했다면 한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 탈출 시도가 실패로 끝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최근 이 책을 포함해 조선 말기를 배경으로 쓴 책을 여러 권 접했다. 당시 나라 잃은 왕족의 삶은 민초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일본의 억압을 막아내야 했고 백성의 원성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믿을 만한 신하는 임금을 배신하고 일본 천왕에 무릎을 꿇었다. 오히려 이들이 고종 등 왕족을 압박하는 개(犬) 노릇을 했다.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의 별미이다. 이완용과 송병준이 대표적인 인물로 이 책에 등장한다. 특히 친일파 이완용과 송병준의 알력 게임이 볼만하다. 이강이 그 세력 다툼을 역으로 이용하는 장면에서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허구는 송병준의 외동딸 나미에(소희)에 대한 부분이 아닌가 한다. 송병준의 딸 나미에는 아버지의 매국행동에 반기를 든다. 심지어 상해 임시정부에 소속되어 독립운동을 돕는다. 그녀와 관계 깊은 인물이 채우만이다. 그는 매국 활동과 일본의 고급 정보를 빼내기 위해 송병준의 비서로 활동했다. 그의 뒤에는 국환(본명 전협)이라는 인물이 있다. 국환은 실재인물인데, 제주와 부평 군수를 지낸 이강의 측근 심복이다. 일본의 억압으로 자유롭지 못한 이강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참모 역할을 했다. 이강, 국환, 우만이 펼치는 독립활동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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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도 -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 키워드 한국문화 3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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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슨트(docent)와 같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처럼 저자 정병설은 소설 구운몽을 설명한다. 책 <구운몽도>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림(圖)에 대한 내용이다. 구운몽을 소재로 그린 민화(民畵)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20년 동안 40여 점의 구운몽 민화를 접했다고 한다. 저자는 그 구운몽도를 독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 설명이 도슨트처럼 상세하다. 저자도 책 머리말에서 "이 책은 구운몽도를 가지고 구운몽을 읽는 것이지, 구운몽을 가지고 구운몽도를 읽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혀두었다.


 

소설 구운몽은 조선 숙종 때 김만중이 지은 장편소설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도 유명한 고전물이다.

 

구운몽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 주인공 성진(性眞)이라는 자는 육관대사(六 觀大師)의 제자이다. 그는 8명의 선녀(팔선녀)에 마음을 빼앗겨 수도에 정진하지 못한다. 스승은 성진을 인간세상에 태어나는 벌을 내린다. 성진은 인간으로 환생하여 여덟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하고 입신양명하여 부귀영화를 누린다. 노년에 성진은 모든 부귀가 물거품임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꿈에서 깨어난다. 결국, 인간세상을 꿈을 통해 경험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성진은 스승에게 잘못을 용서받고 불도에 정진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구운몽은 인간세상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이라는 깨우침을 주는 내용이다. 제목의 '구운'은 주인공 성진과 팔선녀를 가리킨다. 인간의 삶을 생겼다가 사라지는 구름에 비유한 소설이 구운몽이다. 구운몽은 임금부터 기생까지 읽었던 소설이라고 한다. 그만큼 유명세를 탔으니 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려는 화가들도 많았을 것 같다. 실제로 같은 장면이라도 서로 다른 시각에서 그린 민화가 있다. 그런 민화를 비교하면서 저자는 구운몽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구운몽을 음란소설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부다처제를 접어두고라도 주인공 성진의 호색 취향이 외설스럽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권할만한 내용이 아니므로 교과서에 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생각이 다르다. 구운몽은 교훈을 전하기보다 인생의 아름다움, 낭만, 사랑, 자유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또 구운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고 받은 말에서 예절을 배우고 화법을 익일 수 있다고 한다.

 

구운몽이 판타지 소설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운몽은 그 옛날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였던 셈이다. 몽환적인 구름이 등장하고, 꿈과 현실이 뒤섞여 환상적인 상상을 유도한다. 생계가 각박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려운 현실을 잠시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 구운몽이다. 저자는 구운몽도를 통해 이런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그림도 감상하면서 구운몽도를 읽을 수 있는 책이 <구운몽도>이다. 부제는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이다. 오랜만에 신선한 문학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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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배용준 지음 / 시드페이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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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눈을 뜨고 한 참 동안 째려보았다. 읽을까, 말까를 망설였다.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나름대로 베스트셀러라는데 손길이 가지 않았다. 서점에서 책을 선택할 때 눈길을 주지 않는 책들이 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누워서 표지를 내보이는 책들이다. 오히려 좋은 책이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빛을 보지 못하는 것들을 찾는데 열중한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좋지 않은 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좋은 책이니까 베스트셀러까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뜻 이 책을 들지 않은 이유는 저자가 배용준이기 때문이었다. 일부 유명인의 책은 내용은 형편 없으면서, 그 이름값에 편승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도 그런 책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유명인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책치고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책이 드물다는 경험이 작용했다.
 

선입견이었다. 처음에는 여행지의 사진이나 감상하자는 심보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여차하면 중간에 포기할 생각을 품고서 말이다. 책은 두툼하다. 4백 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박에 읽어버렸다. 솔직히 저자의 시각과 문체에 놀랐다. 프랑스는 에펠탑이,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이 대표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대표 상징물을 찾으려 고민한다. 그 고민을 이 책에 담아 여러 사람이 함께 고민하기를 독려한다. 이 책은 가정식, 김치, 한복, 옻칠, 차, 도자기, 한글, 술, 한옥까지 다양한 것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각각의 최고수를 찾아 전국에 다녔다. 최고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직접 체험도 했다. 그런 내용이 이 책에 오롯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사람을 만나서 나눈 말을 글로 표현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아마 이 책은 저자의 처녀작인 것 같다. 초자 저자치고 그의 글은 비범했다. 단어며 문체가 한두 번 글을 써본 솜씨가 아니다. 바쁜 생활을 사는 저자가 책의 내용 전체를 직접 썼는지는 모르겠다. 저자는 일부만 쓰고 나머지는 출판사 직원이나 전문가가 썼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책에 엎드려 있는 글과 사진은 심심하지 않다. 오히려 감칠맛이 나서 독자의 책탐을 부추긴다.

 

저자가 사진 찍는 것에 취미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의 사진은 글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어지럽지 않다. 사물이나 풍경 사진이 특히 좋다. 옥의 티라면 저자 자신이 나온 사진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저자의 홍보책자나 화보처럼 보일 정도로 다른 사진작가가 찍은 '배용준 사진'이 많다. 

 

책 뒷부분에는 저자가 돌아다녔던 장소, 주소, 전화번호가 지도와 함께 표기되어 있다. 그 곳에 한번 가보고 싶은 독자에 대한 배려라고 본다. 그런데 어떤 장소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다. 저자는 유명인이므로 환대를 받았겠지만 일반인은 그렇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비구니들이 사는 백흥암이 대표적인 곳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도 했지만 일반인은 평소에 접근할 수조차 없다. 석가탄신일에만 일반인에 개방한단다. 유명인인데다 책을 쓰는 목적이었으므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대표 상징물을 찾아보려는 노력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외국인 입장에서 대한민국이라면 당장 떠오르는 이미지가 마땅치 않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미지는 김치, 불고기, 남대문, 한복, 한옥 등 제각각이기 일쑤이다. 김치를 일본 음식으로 아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 한복도 일본 옷이나 중국 옷과 구분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한옥도 그렇고 한글도 예외는 아니다.

 

저자는 대한민국 대표 상징물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옛날에 저자를 직접 만난 적이 있지만 그를 잘 모른다. 대화를 나누거나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주변에서 유명하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한다. 유명하다면 일정이 많이 바쁠 것 같다. 그런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소재를 찾아 글로 옮긴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저자는 대한민국의 대표 상징을 무엇으로 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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