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10년 1월 마지막 날에 읽은 책은 <유럽의 책 마을을 가다>이다. 2020년 1월에도 읽고 싶은 책이다. 10년 동안 한국의 책방(서점보다 이 말이 정겹다)과 독서문화가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하고 싶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을 여행기쯤으로 치부할 수 있다. 유럽에 대한 동경과 그럴듯한 음식 사진을 기대감을 가진 독자는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 실망한다. 이 책은 우리의 독서 문화에 대해 반성을 이야기 한다. 

 

이 책의 저자 정진국은 2007~2008년까지 유럽의 책 마을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스위스, 프랑스, 베네룩스 3국,  스칸디나비아, 독일, 영국과 아일랜드의 시골 책 마을만 돌아다녔다. 단순히 농촌에 서점이 많다거나 그곳 사람들이 모닝커피를 마시며 우아하게 책을 읽는다는 내용은 이 책에 없다. 농촌 마을이 어떻게 책 마을로 바뀌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농촌에 책방이 생긴 이유를 찾고 어떻게 운영하는 지에 담아냈다. 예를 들어 이 책에 소개된 한 프랑스 마을은 한 때 살길이 막막했다고 한다. 싼 농산물이 외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데 분노한 농민이 트랙터를 몰고 대로로 나서고, 생우유를 길바닥에 쏟아붓고, 토마토 산을 쌓아 시청 앞을 피범벅으로 만드는 시위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그 시골을 책 읽는 마을로 변모시켰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네 농촌 풍경과 다르지 않다. 농사를 지어도 돈이 되지 않자 수확한 쌀에 불을 질러 보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을 자아내는 뉴스는 새롭지도 않을 정도이다. 힘든 농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문화체험, 자연체험, 관광마을 등 그럴 듯하지만 특징은 없다. 여름이면 청정지역이라는 면을 홍보하고 겨울이면 죄다 얼음낚시터를 개장한다. 숙박시설과 식당만 늘려놓고 한철 벌어 일년을 나게 만든다. 유치한 체험행사 몇 번 쫓아다니다 보면 경기도와 전라도 농촌마을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쉽게 느끼게 된다. 고장은 다른데도 기념품은 열쇠고리 일색이다. 그것도 싸구려여서 1년 후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쯤되면 지자체는 '서울 따라하기'에 나선다. 성공사례가 검증된 방법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시가 청계천을 복구하자 거의 모든 지자체가 일제히 복개천을 뜯어냈다. 한반도가 굴착기 소리로 뒤덮였고 온 나라가 공사판이다. 폭이 5미터도 되지 않는 실개천을 뒤집어 엎고 옆에 1.5m씩 모두 3m짜리 인도와 휴식공간을 만들었다. 폭 5m짜리 개천이 2m로 줄었으니 비만 오면 넘치기 일쑤이다. 주민들 원성이 대단하다. 그럼에도, 지자체는 일자리를 늘렸고 시민 복지공간을 만들었다며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린다.

 

유럽의 일부 농촌은 생각을 달리했다. 책방을 만들고 고서적을 유지했다. 특히 대문호와 관련 있는 마을은 책 마을로 유명세까지 탄다고 한다. 어떤 마을은 농한기에 술만 먹고 노는 꼴을 보던 한 사람이 책을 읽자며 책방을 낸 것이 책 마을로 변모하게 된 계기가 되었단다. 모든 농촌 마을이 책 마을로 변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책마을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럽 책 마을을 돌아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마을에 있는 책도 중요하지만 책이 있는 마을도 중요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그다지 새로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문화를 실험하고 있다." 
"수치상으로 경제 수준과 교육 수준이 대단히 높은 우리나라에서 도서 문화는 참으로 쑥스럽다. 유럽 사람들은 우리가 펴낸 번듯한 사진첩 하나 없으니, 우리의 전통문화가 얼마나 고상하고 세련되었으며, 화려하기까지 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동남아나 아프리카와 남미의 고대와 전승문화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하는 이 사람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아메리카의 속국이거나 분단되어 비참한 대치 상태에 있거나, 잘 훈련되고 동원되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체육대회 같은 것을 잘 치른 나라로 알지, 개성적이며 독창적인 문화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우리는 수 천년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임을 자랑한다. 이 정도면 그 역사를 기록한 책만으로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도 남는다. 그런데 우리는 책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책 가격만 보아도 그렇다. 분명 5만 원짜리 값어치가 있는 책이지만 1만 원짜리 바코드가 붙어 있다. 비싸면 안 팔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20~30% 세일딱지에 기념품까지 증정한다. 이런 책이 헌책방으로 넘어가면 책이 아니라 종이 취급받는다. 저자도 이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 현실에서 책은 헌신발짝 값만도 못하다. 중고 서적은 대체로 무게로 저울에 달아 유통된다. 출판인이나 저자 편에서는 국민 수준이 낮다고 하고, 국민은 책이 제값을 못한다고 의심한다. 아무튼 도서의 하향 평준화는 분명하다. 수많은 시간과 지성을 쏟은 저자나 역자의 책이든, 시정잡배가 대필시켜 쓴 책이든 종잇값이나 쪽수로서 정가를 맞춘다."

 

책을 읽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도 있다. 삼겹살 집은 어디가 잘하는지 꿰고 있지만 동네 서점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책방이 편의점만큼 흔해야 하고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는 것만큼 책에 몰두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도 이 생각에 동감인 듯하다. 

 

"독서 운동은 추상적인 구호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상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책을 아끼듯이, 책방이 곁에 없는데 어디서 책을 구할 것인가. 대도시 중심가, 쇼핑센터에 가서 책을 찾는 것과 동네에서 책을 접하는 것은 다르다. 아침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뒤적이며 하루를 시작하듯이, 방과 후나 일을 끝낸 오후에는 서점에 들르는 게 일상이어야 한다. 누가 너절한 잡지와 참고서만 그득한 동네 서점에서 문화를 운운하겠는가. 담배 가게나 빵집이나 카페처럼 책방 또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래전 본 영화 중에 <you've got mail>에 'the shop around the corner'이라는 작지만 오래된 책방이 인근에 새로 생긴 대형 서점에 밀려 결국 문을 닫는 장면이 있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the shop around the corner라는 책방에서는 주인이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는 정이 묻어났다. 모든 것이 대형이다. TV, 자동차, 냉동고 등은 물론이고 커피숍과 서점도 그렇다. 적어도 서점은 대형일 필요가 없다. 3~4평짜리 편의점이 20평짜리보다 매출이 많은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군소 책방이 대형 서점보다 유리한 점을 찾아 부각시켜야 한다. 또 독자는 그런 서점을 찾아 주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자주 들르는 헌책방이 있는데 앉을 곳도 별로 없어 불편하다. 그렇지만, 햇살이 좋다. 지하에 있어 사계절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는 대형서점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그것이 나를 이끈다.

 

사진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필름카메라 자리를 디지털 카메라가 대신하고 있다. 사진을 인화하기도 하지만 컴퓨터로 감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책만큼은 디지털로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ebook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손으로 넘기는 책을 대신하지는 못한 듯하다. 개인적으로 책만큼은 잉크냄새 나는 종이책이 정겹다. 원하는 단어를 찾을 때 컴퓨터 자판에서 'ctl+f'키를 눌러 찾을 수 없는 것이 불편하지만 종이 귀를 접어 두는 즐거움이 더욱 크다.

 

오늘 많이 주절거렸다. 가만있는 사람을 주절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이 책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