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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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랬다. 서툰 삶이 반드시 나쁜 것 만은 아니라고. 그러나 사회 생활에 서툴면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세상이다. 약육강식이 존재하는 정글 같은 현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삶 자체가 고단해진다. 이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책 <인간 실격>의 내용이다. 저자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 실격이라는 단어로 사회 부적응자를 지칭했다. 그러나 서툰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를 고발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이 빛을 발한다.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공책 세 권과 사진 세 장을 접했다. 그것이 소재가 되어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저자의 삶도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사회생활 적응에 서툰 점이나 자살을 여러 차례 시도한 점이 닮았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가정, 학교, 사회에 적응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일부터 남의 눈에 들기 위해 튀는 행동을 했지만 주인공 자신의 진심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사람들과 호흡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점차 사회로부터 멀어져만 갔다. 가족 특히 아버지는 주인공을 방치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3류 잡지에 만화를 그려주는 일로 밥벌이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료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모르핀(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되어 갔다. 지인들이 주인공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버지가 위궤양으로 사망한 후에나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시작했다. 27살인 주인공은 마흔 살이 넘어보일 정도로 폐인이 되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지난해 이맘때쯤 읽었던 <참 서툰 사람들>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만화 <광수생각>으로 유명한 작가 박광수의 에세이이다. 이 책도 독자에게 비슷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사회는 여러 인격체가 모여 사는 동네임에도 획일성을 강조한다. 법, 정치, 교육, 돈이 사람을 하나로 만든다. 하나 되는 사회에 잘 적응해야 훌륭한 인격체라는 소리를 듣는다. 때가 묻는다는 말이 있다. 순진했던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회에 적응해가면 때가 묻었다고 표현한다. 사회가 그렇게 지저분한 곳이라면 순진함을 간직한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더러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만큼 순수한 사람이 되도록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런 고민거리를 던진다. 모르긴 해도 저자도 이런 고민으로 다섯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르겠다.

 

첫 키스의 설렘이 남아 있는가? 서툴면서 서툴지 않은 척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 사람은 서툰 티가 나는 사람을 비난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첫 키스마저도 능수능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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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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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라는 열네살짜리 꼬마는 엄마가 누군지 모른다. 다만, 창녀라는 것밖에 모른다. 그 아이는 로자라는 뚱뚱한 아줌마 집에서 또래 아이들과 지낸다. 한때 창녀였던 로라 아줌마는 나이가 들고 몸매가 뚱뚱해지면서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젊은 창녀들은 이 아줌마에에 아이를 맡기고 매달 양육비를 보낸다. 모모도 그렇게 로자 아줌마와 살게 되었다. 로자 아줌마는 각종 병에 시달리다 결국 사망한다.

 

책 <자기 앞의 생>은 이처럼 짧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짧은 과정 속에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사랑이 순수하게 녹아 있다. 모모가 떠날까봐 열네살을 열 살이라고 나이를 속일 정도로 모모를 사랑했던 로자 아줌마. 모모 역시 죽은 로자 아줌마 옆에서 잠을 자며 지낼 정도로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다. 생모도 모르고 도둑질도 하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모모라는 아이의 순수함을 책 <자기 앞의 생>에서 느낄 수 있다. 이 책 속에는 명언이 있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는 글귀가 생생하다.

 

저자 에밀 아자르는 모모의 시점으로 이 소설을 썼다. 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가 우습기도 하고 모순투성이다. 때로는 어린 아이 같은, 때로는 늙은이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모모의 시각을 쫓다 보면 내가 모모인 듯한 착각이 든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만 나쁜 짓을 할 때는 꿀밤을 먹이고 싶다. 사랑에 굶주린 모모를 보면 가슴이 다 먹먹해진다. 이런 다양한 감정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요동친다. 납작 엎드린 감정을 깨우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 나는 웬만해서는 '먼 훗날 또다시 읽어볼 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이 책은 그 표현이 아깝지 않다. 한편, 저자 에밀 아자르는 <하늘의 뿌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저자 로맹 가리의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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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미술관 1
김범 외 지음, 강태희 기획 / 시공아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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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에서 몇 차례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결국 구입한 책이 <향>이다. 말 그대로 향기를 의미하는 제목이다. 그런데 책 표지에는 ‘책 속의 미술관’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향은 후각이고 미술관은 시각이다. 향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책이라는 말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지은이는 11명의 화가이다. 이들은 글 또는 그림으로 향기를 표현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2008년 화재로 전소된 남대문을 두고 한 화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숭례문이 전소된 다음날, 현장을 찾아가던 길에 만났던 향기. 그것은 육백 년 역사를 담은, 밤새 타올랐던 노송의 향기였다. 그러나 불길 속에 남아 있던 그 향기는 묘사될 수 없다. 노송의 향기가 온몸으로 스며들던 순간은 인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 슬픈 아름다움이 오늘도 생생하다.”
 이 글과 함께 멀쩡한 남대문, 전소된 숭례문 그림을 그려놓았다.
 
 한 작가는 향기를 직접 지칭하는 언어가 없다는 것은 후각기관과 언어중추기관이 무관하기 때문이라는 글을 썼다. 그리고 향기는 기억을 환기시키는 시간여행의 도구라고 결론내렸다. 노래를 듣고 과거를 회상하듯 향기를 맡고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향기를 시간여행의 도구라고 했을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냄새가 난다. 사람은 없는데 향수 냄새가 나고 자장면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한 작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향기를 그림과 글로 표현했다.
 
 김치, 메주에서는 자연 향기가 난다. 한 작가는 이 자연향과 샤넬 향수와 같은 인공향을 대조했다. 이런 향기가 뒤섞인 것이 현대의 향이라는 말이다.
 
 이 책은 미술가가 맡은 향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글보다 그림이 많다. 그래서 책 속의 미술관이라는 부제를 붙였나 보다. 그림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난해한 그림도 있다. 그러나 향기를 시각적으로 또 그토록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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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머신, 길자 - 환상 스토리
김창완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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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보면 난감하다. <사일런트 머신 길자>란다. 사일런트 머신, 조용한 기계 정도로 해석되는 단어이다. 그런데 또 '길자'는 뭐란 말인가. 한 북카페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다가 제목에 끌려 집은 책이다. 두께도 얇아서 단숨에 읽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가 김창완이다. 그룹 산울림 리드보컬 출신이고 동그란 안경에 헝클어진 머리에 치아를 드러낸 채 씩 웃는 그 김창완 말이다.


그답다. 머리말을 쓰는 페이지에 낙서를 해놓았다. 머리말 쓰기 싫다는 내용의 낙서이다. 책장을 넘겨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대여섯 가지 짧은 이야기를 묶었다. 사일런트 머신 길자가 그 첫 번째 이야기이다. 한 남자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먹어버리는 기계를 발명한다. 그 기계 이름이 길자이다. 그 남자의 부인 이름에서 땄다. 아내의 잔소리, 흉악한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 자동차 소리 등 세상의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고자 이 기계를 발병했다. 이 책에는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민하다 결국 자신도 그 뒤를 따라가는 '유니'의 이야기도 있다. 또 진실과 거짓과 위선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한 판사의 이야기를 다룬 '윤 판사와 소매치기'도 있다.

 

책이 잡스럽다. 그러나 저자는 이 작은 책에 위트, 풍자, 감동을 담아냈다. 이 책의 서평이 길어지면 잡스러워질 것 같아 이쯤 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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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반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29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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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싱커>는 영화 <아바타>와 신종플루(H1N1) 음모론을 잘 버무린 것 같다. 저자의 책은 영화 <아바타>가 국내 개봉되기 전에 탈고되었다고 한다. 영화<아바타>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도 일본 작품에서 소재를 얻었을 같다.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즉, 저자의 독창력의 산물이라면,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싱커(syncher)는 동기화 또는 동조라는 말이다. 영화 <아바타>를 본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생명체에 접속하면 그 생명체와 동일시되어 장소를 이동뿐만 아니라 오감으로 느낄 수도 있다. 이 소설 속 배경은 2160년 경의 이야기이다. 인류는 급속히 변화하는 기후의 위협 속에서 한반도 일대에 거대 돔을 씌우고 전 세계의 동식물을 공수받아 신(新)아마존이라는 관광 특수 지역을 개발한다. 그런데 빙하기가 오면서 신아마존은 폐쇄되고 사람들은 지하세계를 건설해 살아간다.

신아마존의 동식물들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생태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신아마존은 통제구역이었다. 바이러스 감염 등의 이유로 지하세계 사람들은 신아마존에 갈 수 없었다. 한 제약회사는 사람들에게 약을 무료로 나눠주면서 신망을 얻지만, 신아마존으로의 접근을 통제한다. 지상세계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지하세계에 있는 인류는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오랜 기간 받아들여졌다. 지하세계는 사실상 이 제약사가 통제하는 셈이다.

싱커는 신아마존의 동식물을 아바타로 삼아 즐기는 게임이다. 주인공이 이 게임을 즐기다가 제약사의 음모를 발견한다. 제약사의 주장처럼 신아마존과 지상세계가 그렇게 위험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제약사는 자신들의 권력 유지하기 위해 신아마존에 불을 질러 없애려한다. 이 장면은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과 닮았다. 이 과정에서 제약회사 회장은 죽고, 지하세계 인류는 지상세계의 밝은 태양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유행했다. 옛날부터 전염병이 유행할 때면 음모와 소문이 무성했다. 제약회사가 치료제와 백신을 만들 수 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표적인 음모론이다. 또 독점으로 돈을 벌기 위해 병원균 퍼뜨렸다는 소문도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저자는 이 음모를 이 책에 접목시켰다. 인류가 지하세계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지상세계의 질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제약회사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장면이 이 책에 나온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의 머리에는 상상력이 샘솟는다. 독자 머릿속에 소설 내용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그런데 그 영상이 중간마다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용의 전개가 빠르거나 각 장면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표지 디자인이다. 한눈에 반할만한 디자인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다. 창비는 몇 해전부터 청소년문학상을 선정해오고 있다. 올해 선정작품은 <싱커>다. 5월17일이 출간 예정인데, 그보다 몇 주 앞서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주어진 것은 행운이다. 그것도 가제본 상태로 말이다. 가제본은 마치 드라마나 영화 대본처럼 생겼다. 이런 기회를 준 창비에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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