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우연히, 아프리카 - 프랑스 연인과 함께 떠난 2,000시간의 사랑 여행기
정여진 글, 니콜라 주아나르 사진 / 링거스그룹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팔자를 역마살이라고 한다면, 저자 정여진은 역마살이 낀 것이 틀림없다. 책 <그와 우연히, 아프리카>를 읽으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녀는 25살, 젊은 나이에 서아프리카를 떠돈다. 그 나이라면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대도시의 화려함을 동경할 법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모래바람이 목구멍까지 들이치는 사막을 횡단하며 희열을 느낀다.

 

그녀의 역마살은 자신의 집으로 잘못 배달된 책 한 권으로 발동이 걸렸다. 그 책의 저자 랭보를 흠모한 나머지 그의 흔적을 따라 동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그 와중에 프랑스의 한 작은 도시 기차역에서 한 프랑스 남자를 만났다. 사랑에 빠졌고 그와 함께 인도와 서아프리카를 여행했다. 그 남자친구와 서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쓴 글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녀는 자신의 역마살을 감추지 않는다. 이 책 소개에서 자신은 조만간 어디든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책을 출판한 때가 5월이니 지금쯤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거나 이미 지구 반대편 어느 골목을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시작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 시기에 아프리카 여행기는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저자가 여성이라는 점과 남자친구와 험난한 여정을 함께한다는 내용은 뭇 여성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 책의 표지에도 석양을 배경으로 하트가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도 '프랑스 연인과 함께 떠난 2천 시간의 사랑 여행기'이다. "우연은 언제나 필연이 되는 과정을 거쳐 운명이 된다"고 저자는 이 책에 적어두었다. 아마도 자신의 남자친구를 두고 한 말인 듯싶다.

 

저자는 운명처럼 느끼는 남자 친구와 파라다이스를 찾기 위해 서아프리카로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파라다이스는 어느 한 장소를 특별히 여기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라는 결론을 낸다. 눈썰미가 있다면 눈치 챘겠지만 이 책의 색깔이 모호하다. 뻔한 결론을 어설프게 내린 것이 그렇다. 이 때문에 남자 친구와 서아프리카를 여행한 것이 뭐 대수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사실 요즘은 여행에 대한 책이 넘친다. 웬만한 여행기로는 독자의 손길을 끌지 못한다. 여행에 사랑이라는 소재를 도입한 점은 새로운 시도이다. 저자는 여행기 중간에 자신의 감성과 사랑을 녹여 넣었다. 그러나 여행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에는 실패한 듯하다. 여행기란 현지의 느낌이 전해져야 맛이 난다.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팔딱거림이 있어야 한다. 여행 생각이 없던 사람도 가방을 싸서 벌떡 일어나게 할 만큼 그들의 역마살을 콕콕 건드려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이 약해 아쉽다. 한마디로 밋밋하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자의 생각이 너무 많다. 사랑과 감성이 넘쳐 여행기를 희석시킨 것 같다.

 

고백하건대 서평을 쓰면서 부럽기가 그지없다. 모래 바람을 새하얗게 뒤집어써도 예쁘기만 한 25살이 부럽고 아프리카 오지를 헐떡거리며 다니는 용기가 그렇다. 아프리카는 개인적으로 가고 싶은 곳이다. 아프리카라는 말만 들어도 호흡이 거칠어지고 내 마음 속 역마살이 꿈틀댄다. 이 역마살을 억누르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을 어쩌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 미칠 것 같다. 이 책은 부끄러운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어 미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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