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패션 잡지 엘르(elle) 편집장이던 장 도미니크 보비가 쓴 책이 <잠수복과 나비>이다. 일개 잡지 편집장이 쓴 책이 대수인가 싶겠지만 저자가 식물인간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전신마비 상태가 된 그가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쓴 책이다. 그의 투병기이자 유작인 셈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즉 locked-in 신드롬 상태에서 이 책을 썼다. 다른 사람이 알파벳을 읽으면 저자는 눈꺼풀만 깜박거려 한 글자 한 글자를 썼다. 하루에 반쪽 분량씩, 15개월 동안 20만 번 깜박거려 완성한 책이라고 한다.
집필의 배경으로 이 책은 유명세를 탔고 몇 년 전에는 영화로도 소개되었다.
 
단순히 식물인간 상태에서 책을 엮은 사실 때문에 이 책이 높이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시쳇말로 잘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중환자로 전락한 점은 누구나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마음은 나비처럼 훨훨 날지만 몸은 갑옷 같은 청동 잠수복에 갇힌 상태가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잠수복과 나비라는 단어는 그런 관계로 제목이 되었다.
 
싫든 좋든 병원에 갇혀 지내던 저자는 이 책에서 일요일이 가장 싫다고 했다. 일반인이라면 일요일처럼 달콤한 날도 없으련만 그에겐 일요일이 잔인한 날이다. 의사나 간호사가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일요일의 잔인임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나는 창가에 쌓인 책들을 바라본다. 오늘은 아무도 나에게 책을 읽어줄 사람이 없으니, 그저 쓸모없는 도서관처럼 생각된다. 세네카, 졸라, 샤토, 브리앙, 발레리, 라르보가 겨우 1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가혹하게도 나는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검은 파리 한 마리가 내 콧잔등에 와서 앉았다. 나는 파리를 쫓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본다. 그래도 놈은 버티고 있다. 올림픽 때 구경한 그레코 로만형 레슬링 경기도 지금처럼 처절하지는 않았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그의 삶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 책은 후자에 대한 자서전 성격의 글이다. 건강할 때의 시각과 입원하고 있을 때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저자는 병원에서의 삶을 잔잔한 시각으로 들려준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경험을 들려준다. 과거에 대한 애절함을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점점 멀어진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멀어지고 있다. 항해중인 선원이 자신이 방금 떠나 온 해안선이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광경을 바라보듯이, 나는 나의 과거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느낀다. 나의 내부에서 불타오르고 있지만 점차 추억의 재가 되어 버린다."
 
저자의 투병기라고 해서 내용이 무겁지 않다. 책 부피도 얇다. 부담 없이 나의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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