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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텃밭 - 작은 밭을 일구며 주운 시적 순간들
긴이로 나쓰오 지음, 박은주 옮김 / 차츰 / 2025년 3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에서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그 시작은 갑자기 찾아왔다. 어느 날 티브이를 보며 밥을 먹다 홀로 덩그러니 있는 모습에 이름 모를 쓸쓸함과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장성해버려 집을 떠난 아이들, 집은 텅 비어있다.
홀로 도쿄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시인이자 책의 작가는 다시 혼자인 삶으로 돌아간 자신에게 진짜 본인의 인생을 시작하고 고독감을 떨치려 고향 집에 내려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소 즐겨보았던 유튜브 '섬의 자연농원'의 선생님처럼 자신만의 텃밭을 일구어 보자고 결심한다.
소를 적게 수확해도
거기에는 질 높은 생명이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이 질 높은 생명을 섭취한다면
아주 적은 양으로도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요.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생명이 필요하지 않아요.
이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게 중요합니다.
이 점을 이해하면 아주 깊은 안도감을
얻게 될 거예요
섬의 자연농원' 선생님의 말은 작가에게도 안도감을 주었고 귀차니즘이 가득한 자신에게 걸맞은 '자연농'이라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자연농의 기본은
1) 경작하지 않지
2) 비료, 농약 사용하지 않기
3) 풀이나 벌레를 해롭게 여기지 않기
초보자의 텃밭 재배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하다. 물론 씨를 촘촘히 뿌린다던가 싹이 올라오지 않는 것 같은 실패는 당연히 있지만 작가는 그것을 통해 체득되는 것들에 대해 감사히 여길 줄 안다. 작게 올라오는 잎에도 보람을 느끼고 재배의 재미를 느끼며 하루하루 나만의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이토록 작은 잎에 만족하는 이유,
'생명이 응축되어 있으니까!'
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시금치인 줄 알고 열심히 키웠던 수영이라는 풀, 그 덕에 배추벌레가 두렵지 않게 되었고, 많아 보이지만 먹을 것이 없어 보였던 땅콩도 실제로 생으로 먹어보니 고소한 맛에 놀랐다는 등의 텃밭을 키우면서 경험하는 새로운 일과 기쁨에 대해 있는 그대로 기뻐하는 작가를 보며 문득 텃밭 키우기에 관심이 생긴다.
작가는 텃밭 재배를 시작하고 난 뒤, 메뉴를 고르고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닌, 그때마다 나오는 채소의 상태와 양을 보고 메뉴를 결정하게 되었다. 제철에 먹고 싶은 채소더라도 자라는 상태나 쓰임이 좋지 않다면 먹을 수 없었다. 내가 키운 채소들만 먹자는 확고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다 팔 정도의 야채는 아니지만, 어느덧 아이들에게도 야채를 보내 줄 수 있을 만큼의 수확과 결실을 맺기도 한다. 보내주는 기쁨보다 야채를 고르고 씻는 일이 더 고되기는 했지만 함께 이 초보자의 텃밭 여정을 지켜본 독자는 뿌듯하다. '벌써 작가님이 이렇게까지 수확을 하게 되다니!' 하면서 말이다.
이 텃밭 일기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힐링이 된다. 자연농하는 사람의 일기가 무엇이 그렇게 힐링이 될까? 할 수도 있지만 작가가 본인의 텃밭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처음 텃밭을 시작했던 이유도 '안도감을 텃밭에서 찾기 위해' 였기에 조금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텃밭 재배를 하는 초심자라 부딪히는 실패도 많을 것이고 모르는 일 투성이지만 (책에도 고스란히 나온다), 작가는 그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본인의 경험으로 삼고, 우울해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잘 넘어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텃밭에 임한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텃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텃밭에서 받은 감동, 나와 이어진 야채들에게 가지는 고마움과 평온함, 그리고 행복함. 이런것들을 느낄 때, 나 정말 잘하고 있구나. 해서 다행이구나하는 '안도감'을 또 받게 되지 않을까?
그동안 노력해 왔던 것들을 펼쳐보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기에 이 일이 보물과 같다는 작가의 말에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일들이 떠오른다. 나 역시 귀찮음이 많지만 안도감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이라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새롭게 시작한 일을 통해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경험에서 소중함을 느꼈던 것처럼, 나도 의미 있는 것이라 느끼는 일들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채소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통해 자기성찰을 가지며 독자에게도 공감을 일으키는 책 <시인의 텃밭>
모든 일은 그 순리대로 일어난다. 욕심을 내지 않고 본인이 취할 정도로만 해내는 삶. 과하지 않게 나아가는 방법. 무엇이든 본연의 멋이 제일 좋다는 것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집에서 키우는 것이라고는 작은 화분 몇 개가 전부인 내가 이 책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화분에 식물이 자라나는 것을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화분도 이렇게 뿌듯한데, 내가 키우는 야채에는 얼마나 더 애정이 가고 보람찰까?라는 생각에 읽었지만 작가의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더 많은 에세이였다. 단지 야채 키우는 이야기가 아닌 텃밭 재배라는 경험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의 나침반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머리가 복잡하고 쓸데없는 생각이 가득할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작은 것이라도 강한 생명력이 깃든 따뜻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