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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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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세계사/ 2020.12.07, p,288>
- 올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올겨울의 희망도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 나이를 먹고 세상인심 따라 영악하게 살다 보니 이런 소박한 인간성은 말짱하게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문득 생각하니 잃어버린 청춘보다 더 아깝고 서글프다. 자신이 무참하게 헐벗은 것처럼 느껴진다.
- 남부럽지 않게 거두어주는 집은 있을지 모르지만 타인과 제대로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가족이 있는 집은 없는 아이처럼 보였고, 괜히 백화점 안을 쏘다니는 소년 소녀들의 태반이 완전한 집은 못 가진 아이들이 아닐까 하는 근거없는 생각도 들었다.
- 자연히 내 집이 제일이다. 자주 여행을 다니는 것도 내 집에 돌아올 때의 감격을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 '넉넉하다'는 후덕한 우리말이 사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음의 부자가 늘어나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태껏 만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은나에게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공상하게 했지만 살날보다 산 날이 훨신 더 많은 이 서글픈 나이엔 어릴 적을공상한다.
- 부족한 것 천지였습니다. 넉넉한 건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움받거나 야단맞은 기억은 없고 칭찬받고 귀염받은 생각밖에 나는 게 없습니다. 그게 이른 새벽잠 달아난 늙은이 마음을 한없이 행복하게 해줍니다.
-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神의다른 이름이 아닐까.
- 하루를 살아낸 만큼 내 아들과 가까워졌다는 생각 때문에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저만치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죽음과 내 아들과의 동일시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면 요새도 가슴이 설렌다.
-☻ 발췌하고 싶은 글이 너무너무 많아서 추리느라 힘들었다. 게다가 필사까지 하고 싶은 글까지 많아서 이번엔 좀 문장이 길어졌다.
사실 이 분의 작품은 고등학교 때와 대학생 초기에 한 3권 정도 읽었던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은 거 보면, 내가삶의 경험치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리라.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선호하진 않는다. 재밌거나,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의 글이 아니면 하염없이 늘어진다. 근데, 이 책은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에세이 중에선 내게 단연 1등이었다(물론 읽은 에세이 수가 적긴 하지만, 아 한국한정)
에세이를 읽고 작가의 다른 소설책을 검색해서 찾아보기는처음이었다. 글마다 있는 그녀의 생각과 삶에 마음 깊이 스미는 뭔가가 자꾸 느껴졌다. 그녀의 글에 따라 나는 한없이 어렸던 옛날 외할머니 댁에서 놀던 내가 생각나기도 했고, 나보다 앞선 세대를 사신 분의 생각과 아이들을 키우는 가치관, 일상의 소란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소박하고 다정하게 풀어놓는 이야기에 감동받고 또 받았다.
남편 옆에서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엎드려서 글을 쓰고, 흠칫 놀라 급히 원고지를 숨기고 상금으로 자랑하고 싶었다는 귀여운 작가님, 아들을 일찍이 여의고 죽음에 가까울 수록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는 글엔 어미의 절절한 슬픔이.. 핸드폰이 없던 시절 그 시절의 이야기, 외할아버지에게 서당에서 가장 잘 외워 귀여움 한껏 받은 개성에서의 어린시절 이야기,신여성이 되어야한다며 짧게 자른 똑디단발머리로 학교를 가는 그녀의 어린시절, 외손주에게 민들레꽃 향을 맡는 냄새와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바라봤을 그녀의 눈빛..
아, 정말 정말 좋았다..💜
* 협찬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