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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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꽃님 작가님의 소설답게 글이 술술 넘어간다. 강한 자극이나 휘몰아치는 서사는 아니다. 그럼에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는 이야기의 속도는 꽤 빠르게 느껴진다. 마치 졸졸졸 흐르는 시냇가에 올려둔 종이 배가 단숨에 내 시야에서 멀어져 사라지는 듯한 그런 속도. 책을 읽는 내내 한 여름 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한가롭게 앉아있는 것처럼 기분 좋은 여유를 느꼈다.

◈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빠르지만, 넘기려던 책장을 멈추게 하는 문장은 많았다.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나뭇잎이 초록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어떤 잎은 아주 연한 연두색이었고 어떤 잎은 짙은 초록색이었다. 또 어떤 잎은 쨍한 초록색이었고 어떤 잎은 연둣빛이 사라져 가고 있었고 어떤 잎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그 모든 잎들이 하나하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그 순간 유찬의 머리 위로 그토록 다양한 초록 잎들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85쪽)

◈ 이 이야기는 슬프다. 끔찍한 일을 겪은 이들이 나온다. 어린 시절 큰 실수를 한 사람도 나온다. 내 행동이 의도하지 않은 잘못이 되어버린 사람도 나온다. 그런데 누구 하나 나쁜 사람이 없다. 주인공은 이런 게 짜증난다고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욕을 뱉고 싶다고. 화가 나고, 슬프고, 억울한데, 그 감정을 뱉어낼 이유도, 뱉어낼 곳도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사람 일이, 우리 삶이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 나의 기준으로, 타인의 고통을 지레 짐작하고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큰 폭력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한다. 비단 강자가 약자에게가 아닌, 동등하거나 가깝다가 여겼던, 그래서 더욱 스스럼 없고 편한 관계에서도 이는 가능하다. 친구가 친구에게, 부모가 아이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입을 꾹 다물어야 했던 유찬이와, 마음을 둘 곳 없어 이리 저리 흔들리던 지오가 서로를 만나 서로를 위로할 때, 우리는 진짜 위로를 배운다.

“놀라운 건 이런 거다. 내 온 마음을 다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는 거. 그리고 나는 그걸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다.” (171쪽)

◈ ‘먹구름 뒤에 밝고 빛나는 무지개가 떠 있다는 것을, 혼자인 줄 알았던 이들 곁에 너무도 따뜻한 이들이 언제나 함께 였음을 알게’ 되었음을 한다며 이 글을 썼다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앞에 펼쳐질 세상이 잿빛일지, 찬란한 푸른 빛일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우리는 한걸음 나아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달라진 점이라면, 그저 이전보다 온 마음을 다해 세상을 마주하고 싶다는 것. 그러면 내 세상은 지금과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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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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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선우혁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형과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세상을 떠난 형과 열세 살의 나이 터울이 있는 혁은 형에 대한 그리움보단 호기심으로 고등학생 시절의 형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혁은 형이 메타버스 게임 ‘가우디’에 형의 계정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되고, 형의 아바타로 계정에 접속하게 된다. 10여년이 지난 시간임에도 형이 만든 정원이 멀쩡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곰솔’이라는 이가 형의 정원을 관리중인 것을 알게 된 혁. 혁은 형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곰솔’의 존재를 찾아나서고, 그 과정에서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 역시 이희영 작가님! 쉼 없이 책장이 넘어갔다. 늘 느꼈지만 작가님의 책은 독자들을 순식간에 책 속의 내용으로 데려가는 힘이 있다.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책. 이희영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 (페인트, 나나, 테스터 등)에서도 느꼈듯 이번 작품 또한 초반부터 빠르게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 메타버스 게임 ‘가우디’ 와 ‘난’이라는 공간을 주 배경으로 하며 진행되는 이야기인 만큼 SF 소설 분위기가 물씬 난다. 그러나 서정적인 제목과 내용처럼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이기보단, 정말 머지않은 우리 현실에서 있을 법한 느낌.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가상 공간을 주 배경으로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날 너의 진짜 모습과 마주했는지도 몰라.”

* 오래 전 세상을 떠난 형 ‘진’에 대해 묻기 위해 혁은 여러 사람을 만난다. 형과 친한 친구였던 수민, 부모님, 형의 고등학생시절 담임이었던 교감 선생님까지. 그들이 기억하는 형의 모습은 모두 혁이 알게 된 형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한 사람이 가진 다양한 모습이 결국 그 사람 자체임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무척 세밀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랑 이야기다. 마음이 아릿한, 조금은 가슴 아픈, 그럼에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겨울의 귤보단 여름의 귤을 보면 이 책이 문득 떠오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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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봉이와 꼬미의 술술 동의보감 1 - 의사, 한의사를 꿈꾸는 우리 아이 필독서 곰세마리 가족 고전 1
오창희.김해완 지음, 니나킴 그림, 여인석 감수, 고미숙 추천 / 곰세마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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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에게 ‘동의보감’은 낯선 내용이다. 소아과가 익숙한 아이들에게 몸을 치료하는 일은 서양 의학 방식을 주로 떠올릴 것 또한 자명한 사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도 예로부터 몸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전통적인 방법이 있었다. 조선시대 의관 허준이 쓴 의학서 ‘동의보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도 등재되었을 만큼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 ‘깨봉이와 꼬미의 술술 동의보감’은 우리 아이들에게 낯선 동양 의학을 어린이의 시선에서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역사를 배운 어린이, 혹은 위인전을 읽은 어린이는 허준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듣고, 곧장 동의보감을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알려진 책이지만, 정작 어린이를 위한 동의보감 책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 이 책은 아이들에게 낯선 동양 의학의 지식을 아이들이 흥미롭고 재미있게 볼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몸은 왜 아플까?’, ‘얼굴은 왜 중요할까?’, ‘침, 땀, 눈물은 왜 나올까?’, ‘똥과 오줌은 왜 싸야 할까?’ 등의 목차만 보더라도 아이들이 궁금해할 의학 지식이 무척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음. 내용 또한 몸과 마음, 자연과 인간의 조화, 순환하는 동양 의학의 관점으로 설명해주기에 기존의 서양 의학 중심의 설명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다양한 의학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학년에서 아이들에게 ‘얼굴은 매우 중요한 신체 기관이야. 절대 함부로 만지거나 때리면 안 돼’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책에서 얼굴은 우리 몸 안에 있는 구멍 중 항문과 요도를 뺀 모든 구멍이 존재하는 곳이며, 얼굴은 세상과 내 몸의 기운이 드나드는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소개해주는 부분이 무척 새로웠음. 나도 아이들에게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 의학 지식과 더불어 이 책은 다양한 지식 정보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론 어휘와 관련된 부분에서 새롭게 알게된 점이 많았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신체와 관련된 어휘, 예를 들어 ‘정신’, ‘기운’ 등과 같은 표현이다. ‘정신이 없다’, ‘기운이 없다’라는 말은 일상어로도 자주 쓰는데, 동의보감에서 이 뜻을 의학적 관점으로 해석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 몸과 기운, 마음이 조화를 이루고, 세상과 건강하게 순환하는 것을 지향하는 동의보감의 내용은 사실 우리 부모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늘 하는 조언과 맥이 닿아 있다. 몸과 마음이 튼튼해야 함을 좀 더 우리 고유의 의학으로 쉽고 재미나게 소개해주는 이 책,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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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캐스피언의 우주 탐험대 1 : 외계 행성의 종말을 막아라! 서사원 중학년 동화 7
조나단 메신저 지음, 알렉세이 비츠코프 그림, 조이스 박 옮김 / 서사원주니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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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키즈&패밀리 부분 수상작으로 TV애니메이션 계약까지 마친, 입소문 톡톡히 난 도서다. 국내에선 엄마표 영어 원서로 더 잘 알려진 책인 듯싶다. 실제로 책의 판형이나 두께가 영어 동화 원서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함.

◈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받은 이야기인 만큼 가독성이 매우 좋다. 분명 이 동화가 벌어지는 세계관이나, 우주 행성 등 낯설고 신기한 배경이 가득함에도 구구절절 자세한 묘사 없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진행된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아이들이 이 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춰준다고 할까. 책을 읽다 보니 탐사 대원들의 이야기나 폭발하는 행성들의 이야기가 저절로 쑥쑥 이해가 된다.

◈ 무엇보다 예측할 수 없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뒤범벅된 이 동화는 앞 내용을 짐작조차 못하겠음. ㅎㅎ 와, 눈이 네 개에 입이 없어도 마음을 읽고, 생각을 전달함으로써 의사 표현을 하는 우주인들이나, 17분 뒤 코코넛처럼 반으로 쪼개져 버리는 행성, 행성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용암을 피해 탐사선을 구해내고 탈출하는 과정까지 너무나 흥미 진진하고 재미있다.

◈ 우리나라 동화는 영어 원서들처럼 단계별 책읽기로 구체적 단계가 세분화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선 원서와 같은 단계별 책읽기 도서가 좀더 전문적으로 나와도 괜찮겠는걸? 하는 생각도 든다. 원작은 몇 학년 수준의 읽기 도서로 권장되는지 모르나, 우리나라 말로 된 동화책은 2학년 후반~3학년 초반부터 재미나게 읽을 것 같다. 부모나 어른이 읽어준다면 2학년부터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고! (나는 1학년 아들에게 읽어줄 계획)

◈ 1권은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2,3권은 나에게 빌려가서 스스로 읽어보라 할 예정. (현재 1권만 읽었는데, 2권, 3권도 이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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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즐의 봄 여름 가을 겨울 I LOVE 그림책
피비 월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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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요정 마을에서 살고 있는 꼬마 마녀 헤이즐의 사계절 이야기가 담긴 아름다운 그림책. 우연히 발견한 부엉이 알을 부화시키고, 보살펴 야생으로 돌려 보내주는 봄의 이야기, 분주한 일과중 찾아온 갑작스런 휴식이 주는 행복함을 알게 해주는 ‘여름 이야기’, 외로움에 울부짖는 친구를 찾아가 따뜻하게 위로하는 ‘가을 이야기’, 늘 주기만 했던 도움을 되돌려 받는 이야기인 ‘겨울 이야기’가 담겼다.

◈ 이 책 제목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라고 계절과 관련한 책이라고 오해해선 안된다. 오히려 변화하는 계절마다 벌어지는 헤이즐의 사건 모음집에 가깝다. 그러나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 또한 이 책은 놓치지 않는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나 할까. 100쪽에 가까운 장수이지만 그림책을 넘겨보는 부담이 전혀 없다. 오히려 헤이즐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다는 간절함과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뿐이다.

[ 달이 뜨고 나서야 헤이즐과 웬델과 네이딘은 이제 유리처럼 반짝이는 고요한 연못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참 멋진 날이야.’

작은 마녀 헤이즐은 만족스럽게 생각했어요.

‘그래, 뭐든 내일 해도 될 거야.’

-헤이즐의 여름, 여유로운 날 중- ]

◈ 사계절을 품은 숲속에서 헤이즐에게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자연, 계절, 생명, 우정, 공동체를 모두 느끼게 하는 이야기가 한 편 한 편 모두 아름답고 따뜻하다.

◈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그림체! 이 책을 쓰고 그린 피비 월 작가님은 수채화와 콜라주에서부터 패브릭 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예술가라고 한다. 아기자기 예쁜 그림체에 선명한 색감, 독특한 질감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헤이즐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독자들의 시선을 확 잡아 끌어당기기 충분하다. 헤이즐 캐릭터로 만든 굿즈를 갖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림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컬러링 북 등 연계 제품이 나와도 좋을 것만 같다는 작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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