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박물관 I LOVE 그림책
린 레이 퍼킨스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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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있다.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나 거대하고, 소란스러우며 바쁘기만 하다. 그러나 소년은 크고, 거대하고, 시끄러운 것이 아닌 작고 고요한 것들에 더 관심이 간다. 소년은 자신이 찾은 세상의 작은 부분들을 수집하여, 마음속 상상 박물관에 차곡차곡 전시하기로 한다. 소년은 이제 박물관의 관장이 되었다. 이 박물관은 소년의 ‘상상의 박물관’이자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의 박물관’이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우리는 특별한 박물관에 입장하게 된다. 이 세상엔 없는, 오로지 책 속에서만 만나는 이 특별한 박물관에는 한 아이가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어 낸 이 세상 모든 것이 담겨있다.


◈ 뉴베리 대상을 수상한 ‘크리스 크로스’의 작가님이 펴낸 신작 그림책이다. 사실 ‘뉴베리 대상’ 타이틀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기존의 시각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한 권의 책 속에 옮겨둔 만큼 이 책은 독특하고 기발하다. 시와 같은 함축적 의미를 가진 그림책 속 글은 무심코 페이지를 넘기려던 독자의 손길을 멈칫하게 한다. 이 타이밍을 주인공은 놓치지 않는다.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의 가이드에 따라 박물관의 전시를 천천히 살핀다. 2차원의 평면으로 이루어진 종이 속이지만, 그림은 마치 3차원의 공간처럼 입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익숙하지만, 자세히 눈여겨보지 않았던 온갖 자연물, 사물들이 가득한 독특한 전시를 살피며 우리는 주인공의 ‘상상 속 박물관’을 흠뻑 음미하게 된다.

◈ 섬 박물관부터 덤불 박물관, 은신처 박물관, 그림자 박물관, 하늘 박물관까지. 책 속의 주인공은 세상을 바라보며 궁금해진 모든 것들을 자신의 마음속 상상 박물관에 차곡차곡 전시한다. 주인공 아이가 만든 특별한 박물관은 사실 가까운 곳에서도 실제로 만날 수 있다. 이 특별한 박물관의 관장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주머니, 작은 상자, 책상 서랍, 사물함 등 아이들은 늘 저마다의 박물관을 마련하고 그 안에 이 세상의 작은 것들을 전시해둔다.

◈ 이 전시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아이가 성장해가며, 어느 순간 사라질 수도 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지속될 박물관이기도 하다. 아이는 이 박물관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을 수도, 친구와 가족을 잔뜩 초대하여 자신의 전시를 보여줄 수도 있다. 이 책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신만의 박물관을 선뜻 초대하게 할 용기를 준다. 아이가 이 책을 보며 누군가를 자신의 박물관에 초대하고자 한다면, 선뜻 받아들이자.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림책의 장면들처럼 신비하고, 독특하며, 기발할 것이 분명하다. 아이 저마다의 눈으로 본 세상 ‘모든 것의 박물관’. 이 책을 통해 아이들도 저마다의 박물관을 마음껏 만들어내고, 여러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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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터 허블청소년 1
이희영 지음 / 허블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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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꼬리로 어두운 동굴을 환하게 비추는 멸종새 '레인보우 버드'를 복원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인간들의 욕심은 결국 RB바이러스라는 무서운 감염병을 불러 일으켰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모두가 100일 안에 사망했다. 그런데 이런 무서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도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다. RB바이러스로 인해 햇빛 알레르기가 생겨 평생 숲속 집안에 갇혀 사는 16세 소년 마오. 이런 마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또 다른 RB바이러스 생존자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마오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사는 듯한 18세 소년 하라. 치명적인 감염병 RB바이러스의 생존자인 마오와 하라를 통해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은 책을 읽는 독자들을 단숨에 멍하게 만들어 버린다.>

◈ 페인트와 나나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희영작가님의 신간, 테스터. 역시 베스트셀러 책을 내신 작가님답게 이번 신간 ‘테스터’역시 흡입력이 매우 좋았다. 책은 초반부터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지구를 벗어나 화성으로 떠나려는 인간들, 멸종된 동물을 관광 목적으로 복원하는 기업가들, 스킨 피그와 같이 오로지 인간을 위해 동물 유전자를 조작하여 연구, 개발하는 모습 등은 미래 사회를 사는 인간들의 모습이 어떠할지 잠시나마 유추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 또 다른 RB바이러스의 생존자 하라 역시 눈길을 끄는 인물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전혀 상반되는 모습과 행동을 보여주는 하라. 이 책이 청소년소설인 이유이기도 하겠다. 앞으로 미래사회를 살아가게 될 우리 아이들에게 작가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셨을까. 나는 이 하라의 모습으로 작가님이 하려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

◈ 얼마 전 읽은 오세란 평론가님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 책에서 포스트 휴머니즘과 관련한 글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와의 공생, 인간으로서의 인간적인 삶을 고민하던 찰나에 만난 이 책은 아주 시기적절했다고나 할까. 작가님이 그려내는 미래 사회는 무궁무진할 정도로 발전된 사회이나, 그 중심에 있는 ‘인간’들의 행동, 태도, 사상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하다.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지금 우리는 어떤 가치관과 사상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현재를 살아가야 할까. 요새 하고 있던 나의 질문에 대한 깊이 있는 대답을 이 책을 통해 들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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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스 Wow 그래픽노블
배리언 존슨 지음, 섀넌 라이트 그림,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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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프랜신과 모린. 서로 꼭 닮은 쌍둥이인 두사람은 언제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늘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옷을 입으며 지내왔던 두 사람.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턴 둘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자신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듯한 프랜신의 행동에 자꾸만 상처받는 모린. 프랜신에게 서운함이 쌓인 모린은 결국 학년 회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프랜신을 따라 홧김에 자신도 학년 회장 선거에 출마하고 만다. 결국 쌍둥이 자매가 학년 회장 선거 대결을 하게 된 이 황당한 상황탓에 모린과 프랜신의 관계는 점차 나빠지기만 한다. 가족이자 영원한 친구인 쌍둥이 자매를 잃게 될 것만 같은 모린과 프랜신. 둘은 과연 우정을 회복하고, 이전과 같은 자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역시 믿고 보는 보물창고의 그래픽노블이다. 이 작품은 ‘코레타 스콧 킹’ 상 수상 작가인 배리언 존슨의 첫 그래픽노블로,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 담긴 이야기라고 한다. 그만큼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생생한 학교생활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친구이자 가족인 쌍둥이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가족이기에 가까운 만큼, 조금은 거리를 두고 싶은 미묘한 마음의 갈등을 아주 잘 표현해 준 책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안절부절, 조마조마,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게 된다.

프랜신과 모린은 쌍둥이이자 세상의 둘도 없는 친구다. 워낙 비밀이 없고 가까운 사이인 쌍둥이. 평생 단짝 친구같은 관계를 유지할 것 같은 두 사람은 성장할수록 점차 마음의 짐이 늘어난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워서 때로는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가족 관계. 너무 똑같아서 오히려 서로가 비교 대상이 되어 버리는 프랜신과 모린의 상황은 친한 친구 사이에서 종종 벌어지는 갈등의 요소이다. 친한 친구일수록 쌍둥이처럼 매일 붙어 다니고 늘 함께 하길 원하는 시기인만큼, 상대방에 대해 더 자세히 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관찰의 초점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를 탐색하고, 성찰하는 자아 탐구의 시기인만큼 어쩔 수 없는 화살표의 방향이다. 쌍둥이 프랜신과 모린은 여타의 친구들과 달리 외모까지 똑같이 닮았다. 어쩌면 이 두 소녀가 서로를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일지도 모른다.

쌍둥이자매의 특별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 그래픽노블은 의외로 보편적인 이야기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결국 타인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발견하는 과정은 인간이라면, 특히 청소년이라면 누구든 거치게 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쌍둥이’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중학교 학창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프랜신과 모린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더 자세히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재미난 그래픽노블, 트윈스. 역시, 보물창고 그래픽노블 시리즈답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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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뮤지컬 - 전율의 기억, 명작 뮤지컬 속 명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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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나에게 뮤지컬이란 감히 넘볼 수 없는 문화생활과도 같았다.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뮤지컬은 10여년 전 내한공연을 했던 '캣츠' 오리지널. 학생 신분에 거금을 들여 본 그 뮤지컬은 화려하고, 반짝였으며, 빛이 났다. 공연 시간 내내 나는 다른 세상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공연장을 나오며 내 평생 이런 공연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러한 첫 기억 탓인지 여전히 뮤지컬은 나에게 머나먼 문화생활이다. 뮤지컬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다는데, 그런 말 조차도 나와는 머나먼 세계의 이야기였다. 한번쯤은 보고 싶은데,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낯선 세상을 들어가는 것부터 너무 막막하니, 시도 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 뮤지컬이란 이름 석자가 주는 거리감은 생각보다 컸다.

<방구석 뮤지컬>이란 책 소개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책이 어쩌면 나에게 뮤지컬이란 세계의 문을 열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짐작은 아주 훌륭하게 맞아 떨어졌다. 당장 뮤지컬을 보러 가겠다고 장담할 순 없으나, 적어도 이전보다 뮤지컬이 주는 거리감이 덜한 것은 사실이니까!

방구석 뮤지컬은 <운명의 앞에서, 개척하는 인생>, <때로는 유쾌하게, 인생은 우리만의 것>, <격동의 시대, 영원한 사랑>, <어둠 속, 빛나는 인간의 마음>, <흘러가는 시간, 나아갈 역사> 라는 5개의 소주제를 가지고 각 주제당 6편씩 총 30편의 뮤지컬 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캣츠', '빌리 엘리어트',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노트르담의 곱추' 등과 같이 대중에게 잘 알려진 뮤지컬부터 '디어 에반 헨슨', '뉴시즈',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처럼 이름부터 생소한 뮤지컬까지 총망라한다.

특히나 이 책은 각 뮤지컬의 줄거리와 노래 가사를 아주 자세하게 담고 있다. 그저 단순한 줄거리의 나열이 아닌 인물의 상황과 배경, 주제를 깊이 있게 소개하기 때문에 뮤지컬을 직접 보지 않고도 방구석 한켠에서 뮤지컬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뮤지컬의 유명한 음악들을 큐알코드로 담아 들을 수 있게 해두었으니,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을 일일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갖추었다.

30여편의 뮤지컬 이야기를 담은 <방구석 뮤지컬>은 뮤지컬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이기도 하지만, 뮤지컬로 엮어내는 인문학 서적이기도 하다. 굳이 뮤지컬을 볼 목적이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사랑받은 뮤지컬들을 문학 작품처럼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기에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빛난다. 가난한 신문팔이 소년들과 거대한 자본가들의 대립을 그린 뉴시스, 남성성과 여성성을 넘어 인간이라는 본질 자체를 이야기하는 킹키부츠, 전쟁과 사랑, 전쟁과 가족을 고찰하게 하는 '아이다'와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이 책이 담고 있는 인문학적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뮤지컬을 기반으로 인간의 삶과 문화, 사상을 이해해 보는 것도 색다른 묘미일 것이다.

<방구석 뮤지컬> 속에 담긴 30여편의 뮤지컬을 읽어가면서 훗날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 싶다고 생각한 뮤지컬도 몇 편 생겼고, 비단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뮤지컬 영화나 음악, 원작으로 만나보고 싶은 작품도 생겼다. 뮤지컬 세계를 기웃거리고 싶은 마음에 읽은 책에서 나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었다. 이 책은 '뮤지컬'이란 주제로 한정짓지 않고 보아야 더 좋다. 뮤지컬을 몰라도, 뮤지컬을 볼 계획이 없어도 충분히 읽고 즐기며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는 책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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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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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과 올 봄, 독서 모임을 통해 사피엔스와 총균쇠를 연달아 읽었다. 필독서이지만, 감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던 두툼한 벽돌책을 연달아 두 권 격파하고 나니, 다음 책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사피엔스와 총균쇠만큼 필독서라 여겨지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싶었고, 두 권의 맥을 잇는 책이면 좋겠다는 개인적 욕심도 생겨났다. 오랜 시간 책을 탐색하던 중 마침 딱 적절한 책이 등장하였다. 책의 이름은 ‘위어드’. 무려 최재천 교수님께서 특별 추천사를 써주신 책이란다. 읽지 않았지만, 벌써 무한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몇달 전 최재천 교수님의 ‘공부’ 책을 읽고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남아 있기에...)

역시 두툼한 벽돌책인만큼 술술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혼자 읽기가 늘어지거나 밀리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수 없음을 알기에 이 책은 시간 텀을 두지 않고 연달아 일주일 정도 밤시간을 투자해서 단번에 읽었다. 나는 혼자 읽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 또한 사피엔스와 총균쇠처럼 독서 모임으로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며 천천히 읽어야 더 깊이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피엔스가 인류의 기원과 역사를 총망라해서 한 권으로 담아내었고, 총균쇠는 지리학과 생태학의 측면에서 다양한 인류 문명의 발달 차이를 설명했다면 이 책은 오늘날 현대 서구 문명의 독특한 특징의 만들어지기 시작한 기원과 발달 과정, 그리고 오늘날의 모습을 인류학, 심리학, 경제학,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 심도 있게 담았다.

위어드의 역사는 총균쇠에서 주장하는 생태와 번성의 상관관계가 느슨해지는 서기 1200년 무렵에서 시작한다. 물론 1장부터 서기 1200년대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역시 사피엔스와 총균쇠처럼 인류의 기원에서 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책을 읽기 전 사피엔스, 총균쇠를 읽기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은 모두 같지만, 세 권의 책에서 모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해 나간다. 무언가의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지니, 독자로서는 하나의 주제를 생각해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는 눈이 덩달아 생기는 것이다.

사피엔스, 총균쇠와 같이 이 책 역시 1장에서는 인류의 역사가 작은 무리 생활에서 시작해 집단생활, 국가로 이어져 나감을 소개한다. 그리고 2장에서는 본격적인 위어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2장의 소제목은 다음과 같다. ‘위어드,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집단의 탄생’. 친족 기반의 제도로 이루어진 역사는 서기 1200년이 지나 생겨난 중세 교회로 인해 지나면서 점차 해체의 길을 걷는다. 중세 교회는 집약적 친족 관계를 빠르게 해체하고, 인간이 가족 중심의 사고에서 개인 중심의 사고로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교회의 친족 기반 제도의 해체’이다. 위어드의 탄생의 시작이 된 이유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교회가 현대 서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기존의 친족기반제도가 빠르게 무너진 중세 유럽은 비개인적 시장이 확대되고 빠르게 도시화되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개인들은 점차 자신의 특성과 의도, 성향에 초점을 두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위어드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

현대 서구 문명을 대표하는 사람들, 서구의 West, 교육수준이 높고 Educated, 산업화된 Industrialized, 부유하고 Rich, 민주적인 Democratic 사회에서 자란 사람인 WEIRD 위어드. 우리는 현대인들을 일컬어 갈수록 개인주의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 부른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 또한 갈수록 개인적, 자기중심적으로 자란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저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닌, 우리는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적응하고 변화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위어드의 역사는 깊었다. 서기 1200년대에 씨앗이 움텄고, 오랜 기간 문화적 진화를 이루어 점차 발화된 것이 드디어 만연하게 꽃 핀 것뿐이다.

여전히 친족 기반 제도가 강하게 드러나는 한국 사회에서 자라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관계 중심적 사고가 만연하고, 중시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구 문명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변화에 발맞추고 있다. 그런 양면성을 동시에 가진 나라이니만큼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는 위어드이지만, 위어드가 아니었다. 책에서는 ‘혁신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인간 본성에 관한 연구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 (548쪽)’ 라고 말한다. 혁신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는 자아를 탐색하고, 발전해나갈 미래 지향적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역사를 알고, 그 안에서의 나는 어디쯤 서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개인적으론 최재천 교수님의 말씀처럼 위어드는 사피엔스와 총균쇠의 맥을 잇는 대작이 맞다고 생각한다. 읽기 난이도는 사피엔스와 총균쇠의 중간즈 음이고, 책의 구성 또한 사피엔스처럼 전체적인 역사를 서술하나 총균쇠처럼 같은 주제를 여러 시각에서 반복하여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닮았다. 벽돌책 인문학 읽기를 목표로 하여, 독서력을 높이고 싶은 사람들에겐 적극 권하고 싶다. 사피엔스나 총균쇠를 한 권이라도 읽었더라면 특히나 더욱 추천한다. 우리는 위어드이자 위어드가 아닌 한국인이기에 책 속의 내용들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벽돌책을 한 권 더 격파했다. 다음 책은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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