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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당신을 괴롭힐 때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 지음, 칸앤메리 옮김 / 대장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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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혼의 밤을 지날 때>를 읽다 검색을 통해 구입했다. 얇지만 단단한 책이라고 할까? 딱 필요한 것만 진실된 언어로 적힌 책이다.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고, 꾸미거나 돌려서 말함도 없다. 이것은 지은이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의 성품일지도 모르지만 참된 가르침은 여타의 미사어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잡다한 지식이나 이론,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리인 말씀으로 권면하는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의 가르침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기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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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보이지 않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싸움에 "대하여 적고 있다. 총 18개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지만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아주 얇은 책으로 작정하고 있으면 한 두시간 안에 충분히 읽기를 마칠 수 있다. 그렇다고 읽고 흘려버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이 얇은 책에 꼽힌 포스트잇만 20개 가까이 되고 줄은 더 많이 그어졌다. 모르거나 새로운 정보가 아닌 너무 많이 듣고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어쩌면 버무려지고 조미된 장식된 음식이 아닌 본디의 날것들이다. 알지 않는가? 조미된 맛에 길들여지면 날것은 이미 익숙해진 맛이 아니라 밋밋하고 무시하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가끔은 이런 원색?적인 글들을 읽어 초심으로 돌아가야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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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싸움 / 유혹 / 죄 / 의지 / 암시의 힘 / 자기 암시 / 생각의 덫 / 억눌린 생각 / 믿음 / 하나님께 자신을 내드리기 / 죄 고백 / 최상의 무기, 기도 / 고요한 마음 / 회개하고 다시 태어나다 / 치유 / 정결한 마음 / 십자가 /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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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영적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생각. 감정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내적의 상태를 다루는데 지금 우리에게 새롭게 필요성이 불러일으켜지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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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것은 내가 착하거나 신앙이 좋아서가 아니라 유독 예민한 심령이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기가 고통스러워 미리 피하거나 빨리 떨쳐버리려 애썼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지속적으로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이가 있었다. 상황적으로 억울했고, 여론몰이에서도 억울함이 느껴져 참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마음안에 불순물이 떠 다니듯 잊혀질만하면 떠오르고 나를 괴롭혀왔다. 상황과 형편이 나아지면 억울함도 덜어지고 다른 이들을 품는 품도 넉넉해질지 모르나 여전한 나의 삶은 감정조차 어둠으로 몰아갈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제목에서 끌렸다. 하지만 책이 나를 부를 때 난 그것조차 우연이라는 생각은 갖지 않는다. 주께서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시는 바가 분명히 있었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깨끗이 씻음받고 다시는 나를 괴롭히는 그사람이 떠오르지 않거나 떠오르는 생각에도 그를 향한 악한 마음이 들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시금 나의 마음과 심령을 주님께 가져갈 용기를 갖게 되었음을 틀림없다. 주께 피하는 자가 영적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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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 한 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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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유혹하는 생각 자체는 죄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 그러므로 우리 안에 들어온 악한 생각을 방치하고 키우느냐 아니면 그것과 맞붙어 싸워서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가가 아주 중요한 문제다. 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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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는 유혹이 찾아올 때 생각이나 욕구를 억제하려고 시도하는 반면 양심(초기 퀘이커 교도들은 이를 내면의 빛이라고 불렀습니다.)은 우리를 순결한 마음으로 돌이키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양심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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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을 방 청소하듯 정리정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내면의 깊은 곳을 살피시는 그분은 우리 마음에 평화를 주십니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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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문제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 가슴 속 깊이 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시다는 표시입니다.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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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치유의 과정에서 절망할 수 있어도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일을 완성하시리라"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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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분께 권합니다. >

* 마음과 생각의 문제로 고민하시는 분.
* 억눌림을 느끼시는 분.
* 세상의 유혹가운데 서 계신 분.
* 영적전쟁을 싸우는 신앙인.
#생각이_당신을_괴롭힐_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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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랑 - 사치코 이야기
엔도 슈사쿠 지음, 김승철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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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한두명즘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역시 좋아하는 작가가 몇명 있다. 그 좋아하는 것이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쓴 작품이라면 어떻게든 구해서 읽으려하고 빚을 내어서라도 그 책을 소장하려고 한다. 살아가면서 그런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행운일지 가산을 탕진하게 하니 불행일지 알 수 없으나 내게는 "엔도 슈사쿠"와 "알베르 카뮈" 두 사람이 그러하다. 아마 동시대에 태어나 이웃하고 살았다면 어쩌면 일생을 그와 지내고 싶어했을지도 모를만큼 작품속에 드러난 그들의 삶과 사상을 연모했다. 그들이 출간한 대부분의 책을 소장해 우울하거나 삶의 위로를 구하려할 때마다 가장 가까운 책장에 이웃해 앉아있는 그들에게 손길이 가는 것을 보면 곁에있는 남편보다 더 나의 마음을 앗아간 남자들인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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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철 교수님의 번역으로 엔도 슈사쿠의 작품이 또 한편 세상에 태어났다. 얼마나 기쁘던지. 설레는 마음이 컸다. 600페이지가 넘는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지만 엔도특유의 문체와 그의 작품속에 흐르는 통일된 고뇌와 질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겉도는 것이 아닌 바로 나의 고뇌. 나의 질문이 되어 고도의 집중력을 갖고 책에 몰입시킨다. 전쟁과 사랑. 어쩌면 3류 소설로 몰고 갈 수 있는 식상한 주제의 이야기라 추측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격상시켜 예측한다면 인류애정도로 추측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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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전쟁과 사랑>은 사실, 엔도슈사쿠의 <여자의 일생>이라는 작품의 2부에 속하는 이야기로 1부의 주인공 기쿠의 사촌 동생으로 등장하는 미츠의 손녀인 사치코를 주인공으로 한다. 엔도의 문학에는 주된 색깔이 있는데 그것은 서구의 그리스도교 사상이 일본특유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과 사랑>에도 그러한 엔도특유의 사상이 작품 근저에 깔려 있다. <사랑과 전쟁>에는 하나의 주제와 두가지 질문 그리고 두 사람의 일생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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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주제 :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두 개의 질문 : 1. 신은 어린아이와 여자. 아무런 죄 없는 자들이 전쟁으로 죽어가는 것에 침묵하는가?
                   2. 그리스도 교인이 전쟁에 나가 적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가? 교회는 왜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가? 
두 사람 : 1. 전쟁의 모순과 비극의 시대를 살았던 사치코의 사랑이야기.
            2. 나가사키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본국으로 돌아가 아우슈비츠에서 순교한 콜배신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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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야기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사랑은 없다"라는 주제로 응집되어 사치고와 콜배신부의 이야기가 잘 엮어 교차로 진행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콜배신부와 사치코와의 만남은 나가사키의 오우라 성당에서 이루어진다. 어린 사치코는 나가사키로 선교를 온 콜배신부와 제노신부를 만나게 된다. 그 만남속에 사치코의 손에 남겨진 것은 콜배신부가 자국으로 떠나면서 준 성모님과 일본어성구가 인쇄된 책갈피였다.
"친구들을 위하야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어린 사치코는 성장하면서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슈헤이를 사랑하게 되고, 징집대상인 자신은 사치코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마음을 억누르지만 슈헤이 역시 사치코를 사랑한다. 제 2차세계대전 한복판 그리스도교인들은 적국의 종교를 믿는 "비국민"이라고 불리면서 감시와 모멸의 대상이 된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슈헤이는 끊임없는 의문을 품게된다. 징집된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적국의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가? 전쟁터로 가야만 하는가? 교회는 왜 침묵하고 있으면 그 누구도 자신의 의문에 왜 답을 해 주지 않는가? 그의 고민이 깊어질 수록 이야기는 무러익어가고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채 징집되어 슈헤이는 가장 일본인다운 답을 안고(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일본인 특유의 나카마 의식-동료의식-이 느껴지니까) 가미카제특공대로 전사하게 된다. 고뇌와 번민속에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슈헤이는 왜 선택하였을까?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동기중 하나는 "동기나 동료와 운명을 같이하고 싶다는 마음, 함께 생활하고 때로 차이는 있었지만 똑같은 운명을 나눈 그들과 최후를 같이하고 싶다는 마음p558이었다. 또한 슈헤이가 징집전 만났던 나카조와의 말에도 영향이 있다. "나라를 위해서 싸워달라.나라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것도 납득하지 못한 채 국가의 폭력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게 괴로워해주게p463" 결국, 슈헤이는 친구를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것이다. 사치코는 전쟁 중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랑을 실천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슈헤이가 전쟁에서 죽지 않기를 매일 기도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의 밥을 챙긴다. 사치코의 친구를 위한 사랑의 행위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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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으로 돌아가 아우슈비츠에 끌려간 콜배신부는 날마다 죽어가는 생명들을 바라보며 노역에 시달린다. 콜배신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비아냥거리며 이곳이 지옥이라고 말하는 이에게 "여긴 아직 지옥이 아니다. 지옥이란 사랑이 완전히 없어진 곳이다p206"말한다. 탈주범이 생길 때마다 연대책임으로 같은 조원들이 죽게되는데 콜배신부는 지목된 이를 대신해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악한 행동도 서슴치 않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가볍게 생각하던 수용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콜베 신부가 처형장으로 끌려간 후 주변 사람들에게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그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마다 냉소적이었던 이들이 달라진 것이다. 하루에 하나밖에 받지 못하는 빵을 쓰러져가는 다른 이에게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는, 남아 있는 그들을 지탱시켜줄 사랑을 실천하고, 이중 인격자였던 마르틴 소장은 콜베 신부를 생각하며 전쟁과 사람,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은 이전과 다르게 사망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도를 바친다.

이렇듯 <사랑과 전쟁>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가 비그리스도인이라도 인류의 보편적 사랑에 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전쟁과 교회와 형제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림이라는 명제에 깊이 사고해볼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의 비극과 모순 속에서 신의 사랑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전쟁속에서도 숭고한 사랑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전쟁속 우리들의 유한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하여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드러나기를 원하신다. 여기서 다시금 슈헤이가 고민했던 아니 동시대를 살아낸 엔도의 고민이기도 한 그들의 고민에 읽는 독자들도 기꺼이 동참해보아야 할것이리라.

첫째, 과연 국가는 우리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강요할 권리가 있는가?
둘째,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교회는 왜 인정하지 않는가?
셋째. 전쟁에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될 때 그리스도교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p556.

과연 독자들은 어떤 답을 내리게 될까. 
2차세계대전 이후 8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전쟁의 소요가 끊이지 않고 우리나라는 분단의 아픔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전쟁은 우리와 먼곳의 이야기나 나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엔도의 고민은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해결되지 않은 고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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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구약편) - 낮은 자의 하나님을 만나는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김동문 지음, 신현욱 그림 / 선율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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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기만 하고 질문은 하지마세요.”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히고 싶은 것이 부모마음이다. 하지만 제일 두려운 것 한 가지가 있다. 이 녀석들이 그냥 읽기만 하면 되는데 질문을 한다. 사람 곤란하게 말이다. 성경은 읽히고 싶지만 질문은 사절. 아이들의 질문에 당혹했던 순간, 이런 것들이 자녀들에게 성경을 읽히고 싶지만 읽히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 일 것이다. 왜 어른들의 눈에는 의심이 생기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아이들은 의문을 품고 왜? 뭐예요? 라고 물어오는 것일까?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자라면서 그 의문들은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성장에 따른 앎의 체계인 것일까? 아니면 믿음이 자라고 깊어지면 도()를 깨치듯 알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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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사기(詐欺)치지 마세요..”

 

성경을 읽다 의문이 생기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라,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부끄러운 일도, 믿음이 부족한 일도 아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나라의 비밀이다. 모스부호처럼 해독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탁월한 지식을 가진 학자도 성령의 충만한 아이보다 성경을 더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즉 세상의 지식으로 깨달아지는 책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책을 가지고 너무 많은 사기(詐欺)친다. 읽기만 하면 자연스레 통달하고 기도가 깊어지면 하늘의 지혜로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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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모른다고 말하세요.”

 

우리는 성경의 1차 독자가 아니다. 성경이 기록된 시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익숙한 눈으로 그냥 다 아는 척 흘려가 버린 것들. 이제는 그 성경을 낯설게 읽기를 권한다. 아니 낯설게 읽기보다 솔직하게 읽기를 권한다. 그렇게 읽어 나가도록, 성경에 대하여 무리하게 아는 척해 어깨 근육이 뭉친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는 책 한권이 있다. 그것이 바로 김동문 선교사님의 글과 신현욱 목사님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 선율출판>이다. 자 이 책을 읽어보자. 그리고 자신 있게 웃으며 이거 저 잘 모릅니다. 빨리 신약편도 출판해주세요.”라고 함께 압력을 모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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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하나님을 만나는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에서 장년에 이르기까지 힘들이지 않고,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일지라도 하하”“어머”“그랬구나”“ㅋㅋㅋ을 연발하며 읽게 될 만큼 흥미진진하다. 그렇다고 성경의 거룩성을 해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책 절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지게 되는 흥미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다. 성경으로 가까이 이끄는 흥미다. 이 책을 읽으며 입술이 초생달이 되는 이유는 깨달음에서 오는 미소다. “ 그래 나 이 부분 궁금했어.” “이런 배경을 가졌구나.” “... 이런 뜻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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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약편의 출간을 염두에 두고 구약의 내용만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방대한 내용속 우리들의 궁금증이 어디 한 두가지겠냐만은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낮은 자의 하나님을 만나는 으로 통일성을 엮고 있다. “낮은 자의 하나님은 이 책에 소개된 부분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약 성경 66권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낮은 자의 하나님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 김동문 선교사님은 그 낮은 자의 하나님을 익숙한 통념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낯설게 읽기를 하면서 더 깊이, 더 가까이 만나길 소망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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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보자. 세상에 이렇게 귀여울 수가!!!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작은 문이 열려 있다. 그 문 앞에는 양의 옷을 입은 아이가 앉아 있다. 감은 눈이 여간 평화로워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덮인 산. 그 하얀 산에 빛이 들고, 그 반사된 빛이 방안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이상하다. 그렇게 등 뒤에서 빛이 비취면 양 앞에 그림자가 생겨야 하는데 그림자가 없다. 아마도 완전한 빛이신 하나님께서 이 양 뒤에 서 계시는가 보다. ()함만 있는 밝음이 책을 펼치기도 전에 입술 끝이 올라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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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18개의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그 각각의 이야기들 하나하나 다 소개하고 싶지만 두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는 성막의 아이러니편이다. 아이들에게 성막에 대하여 설명을 했던 적이 있다. 친절하게 성막 모형도 만들었다. 동영상도 보여주면서 엄청 열심히 설명했던 것 같다. 그것이 다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웅장하고도 거룩한 cg가 깔리고 연기가 올라가는 엄숙한 그 성막의 동영상을 보면서 나를 압도시킨 그 웅장함이 과연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도 있었을까? 현대의 교회건물이 익숙한 아이들이 광양의 성막을 바라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의 생각과 똑같지 않을까? 이 책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 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은 대부분 신의 능력은 신전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생 각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당시 이집트의 대표적인 신전인 카르낙 신전은 폭이 800미터, 길이가 1.5킬로미터였다. 이런 신전이 이집트 곳곳에 있었는데 대리석 화강 암 석회암 등의 돌로 정교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져 그 웅장함을 더했다. 이렇게 웅장한 신 전을 보면서 신의 능력이 그 웅장함만큼 강력하다고 믿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성된 성 막을 보면서 받았을 충격은 어떠했을까? .... 완성한 성막은 ..... 자신들이 매일 모았던 이집 트 신전에 비해 960분의 1 정도의 크기였다.” p100-101

 

왠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심과 불안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나 역시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그리고 여러분들이 상상한 성막 이집트의 신전보다 작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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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는 대부분 카페를 갖고 있다. 그 카페의 이름들도 대표적인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로뎀나무.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도망가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구하는 부분에서 나온다. 쉬기 좋은 카페. 그 카페의 이름은 로뎀.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서 쉬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설교에서 듣고 성지 순례등 여행을 통해 알고 있겠지만 이 로뎀 나무는 뜨거운 태양을 쉬게 해 줄 수 있는 가지 울창한 나무가 아니다. “너무나 비참했던 로뎀나무 아래에 소개되고 있는 이야기는 우리들의 눈은 쉴 수 없었던 로뎀나무에 주목시키지 않고 엘리야와 함께하신 임마누엘 하나님에 머무르게 한다.

로뎀나무를 찾은 엘리야가 선택한 것은 쉼이 아니었다. 우리는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 를 보면서 쉼이나 회복을 떠올린다. 그러나 엘리야에게 로뎀나무는 비참함의 장소였고 죽음의 장소였다. 엘리야는 낮잠을 자고 잠시 쉬면서 회복을 기대하고 로뎀나무를 찾아간 것이 아니다. 절망이 극에 달해 죽음의 장소로 선택한 곳이 로뎀나무였다. 그러나 하나님 은 절망과 죽음의 잘이에 찾아오셔서 구운 떡과 물을 주면서 참 안식을 누리게 하셨다. 엘리야에게 왜 절망하느냐 왜 죽으려고 하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절망한 엘리야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다. .... 생의 끝자락에 있던 엘리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안식이었다. 죽음의 장소로 선택한 로뎀나무가 안식의 장소로 뒤바뀐 것이다.”p206-207

이 모든 의미를 알고 교회카페 이름을 로뎀나무라 지은 것이라면 그 장소에는 이런 생명의 역사가 회복의 역사가 함께 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이뿐 아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한 잘못사용된 용례에 대한 바른 가르침과 음탕한 여인인 고멜이 바로 하나님의 위로가 머무는 사회적 약자임을, 바른 십일조관과 안식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개념을 쉬운 그림으로 읽는 이들에게 자상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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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다. 성경전체가 이렇게 나온다면 현대인들이 외면하는 성경이 아니라 즐겨 읽게 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신약편이 기대된다. 아무쪼록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오해하고 있었던 잘못된 지식들은 바로 잡아지고 아이들의 질문에 당당히 대답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아니 솔직히 엄마도 몰랐어.” 이야기하며 자녀들과 함께 읽어나가며 성경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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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들의 하나님: 룻기 일상을 변화시키는 말씀 7
캐롤린 커스티스 제임스 지음, 이여진 옮김 / 이레서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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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들의 하나님 : 룻기 / 캐롤린 커스티스 제임스 지음 / 이레서원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룻기는 아름다운 이방여자의 로맨스입니다. 룻기는 착한 며느리 이야기입니다. 이방여자가 이스라엘 민족으로 들어와 복 받게 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룻기를 이렇게만 읽는다면 당신은 룻기의 100분의 1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된다.

 

그렇다. 이레서원에서 제 3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한 룻기가 나왔다. 소외된 이들의 하나님.- 룻기. 룻기를 소외된 이들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모두가 룻의 헌신과 보아스의 넉넉함에 주목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나오미의 고통이다. 나오미를 가부장적 제도속에 함몰된 이스라엘의 소외된 이웃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오미를 여자 욥으로 바라보며 시작하는 이 책은 서론을 포함하여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바르톨로뮤시리즈가 그러하듯 2시간이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작은 책이다. 2시간이면 충분한 책. 그럼에도 우리들에게 오래도록 울림을 남긴 이 책을 드려다 보자.

 

최악의 상실을 경험한 나오미

룻기의 첫 다섯 절은 이스라엘 백성인 나오미의 삶에 의미를 주던 모든 것을 텅 빈(empty)상태로 만들어 버린 계속된 비극을 서술한다. 이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욥과 나오미는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퍼부으신 고난의 부당함에 대해 항의하며 부르짖는다.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을 의심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항의에 아무런 설명을 해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항의는 우리들에게 복되다.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앞에 침묵하지 않도록, 진실하게 감추임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귀한 본이 되는 까닭이다.

저자는 룻기가 갖는 성경위치를 통해 룻기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해준다. 잠언과 사무엘상 사이에 위치한 룻기를 거시적 관점으로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1:1)와 다윗 왕정(4:18-22)을 견고하게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이야기로 미시적 관점으로는 이삭줍기, 계대 결혼, 기업 무를 자에 대한 룻의 재해석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로 바라본다. 또한 제 3의 포괄적 관점으로 곧 신약과 그 이후 시대에서만 깨달을 수 있는 포괄적 관점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평범하면서도 사회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각 사람을 통해 일하심으로써 세상을 향한 당신의 목적을 진척시킨다는 것이다.

 

가부장제라는 렌즈.

가부장제 세계에 있는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나오미의 가치평가는 가족 중 남자 구성원으로부터 비롯된다. 남편에 의해 아들에 의해 평가되는 나오미. 그녀는 0점이다. 나오미의 가치가 되어줄 남편이 없다. 두 아들이 죽었다. 그녀의 가치는 제로다. 나오미의 가치만이 아니라 남겨진 두 명의 불임 며느리 역시 0점이다. 그녀들에게 남겨진 것은 가난에 허덕이고 상처 입기 쉬우며 고통뿐인 두려운 미래만이 보장된다. 사별과 불임을 겪으면서 이 과부들에게 부여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던 모든 것과의 단절.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어느 누구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런데 하나님도 이들을 그렇게 보시는가? 하나님이 보시는 이 여자들과 이들의 가치는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판이한 성격의 견해 그것이 룻기의 근간을 이룬다. 성경에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분명하게 명령하는 데 반해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오늘날에도 신부가 남편 가족에 흡수되어 버린다. 가부장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분명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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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실행 헤세드

두 며느리를 자신들의 신과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한 나오미는 앞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고통을 며느리들만큼은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피할 수 없을지라도 며느리들만큼은 피하게 해 주고픈 헤세드. 나오미의 며느리를 향한 마지막 사랑이었다. 그 나오미의 헤세드는 나오미를 위한 룻의 사심없고, 수그러들줄 모르는 헌신을 통해 다시금 나오미에게로 닿게 한다. 누가 헤세드의 은혜를 누릴 수 있을까?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 아닐까? “당신의 밭에서 이삭줍는 것을 허락하소서라는 룻의 말에 보아스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 이삭줍기를 허락함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라는 율법 너머의 본질을 꿰뚤게 한다. 이삭줍기 마당은 치열한 생존의 장소다. 그 곳에서도 룻은 절대적으로 소외된 이방인이며 위험에 놓인 과부이며 젊은 여자다. 보아스를 통한 하나님의 헤세드는 예상외의 풍성한 보리를 통해 나오미를 회복시킨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산 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룻기에는 매 장마다 엘리멜렉과 그의 아들들이 등장한다. 또한 룻이 구원하고자 한 사람은 돌아가신 자기 시아버지 엘리멜렉이다. 엘리멜렉의 기업인 밭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헤세드는 죽은 자에게까지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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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남성다움이 이룩한 복 받은 연합

보아스는 자기를 희생하더라도 올바른 일을 할 정도로 통이 큰 사람이었지만 룻기가 주목하는 그의 진정한 남성다움은 그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보아스의 행위는 가부장제 속에서의 남성다움의 기준을 뒤엎는 전복적인 것에 있다. 그는 평등을 넘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모색했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며 여성들에게 법적 발언권을 준다. 법이 요구하는 바를 자발적으로 넘어서는 하나님의 헤세드의 실현은 여자를 지으신 하나님의 계획함에 부응하는 완벽한 복 받은 연합의 전형을 보여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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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뿌리에서 새롭게 돋아난 영광 - 일곱 아들보다 나은.

새로운 출발은 언제나 우리가 쓰러진 그 자리로부터 시작된다. 넘어진 곳에서 일어서야 한 걸음을 나아갈 수 있다. 나오미의 새로운 시작은 나오미의 고통에 뿌리를 박고 있다. 룻은 나오미에게 받은 헤세드를 최상의 것으로 되갚는다. 자기 아들을 나오미에게 줌으로써 나오미의 텅빈 상태를 되돌린다.“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나오미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헤세드는 중대한 왕국의 임무를 위해 그녀의 고통을 재배치하고 계신다. 오벳의 탄생이다.

보아스를 통하여 진정한 남성다움과 복 받은 연합에 관하여 룻과 나오미를 통하여 제도와 환경에 얽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헤세드야말로 복음을 실행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룻기를 통하여 배우게 된다. 한국사회, 한국교회는 가부장제에 함몰된 이스라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까닭에 소외된 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룻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외된 이들에게 머무르는 하나님의 헤세드. 그 하나님이 바로 당신과 나의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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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고양이 - 박물관 관장 집사와 여섯 고양이들의 묘생냥담
마웨이두 지음, 임지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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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의 고양이. ........마웨이두 지음. 위즈덤 하우스.>>


고양이만큼 시공을 초월한 매력덩어리들이 있을까?

그런까닭에 고양이는 박물관과 잘 어울리는 생명체임에 틀림없다.

아니 모든 것들이 죽어있는 박물관에 생명을 입히는 것이 고양이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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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관푸 박물관에는 여섯마리의 고양이들이 있다.

바로 이들이 박물관을 관장하는 관장역을 맡고 있다는 것. 이들의 존재는 이미 중국 sns에 인기스타로 존재한다.화페이페이, 헤이파오파오, 황창창, 란마오마오, 마티아오티아오, 윈뚜어뚜어. 이들은 길냥이 유기묘 입양묘 출신성분은 달라도 이제 그들은 관푸 박물관의 식구로 더불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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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히 6마리의 고양이이야기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의 역사와 6마리 관장고양이들을 향한 마웨이두회장의 아름다운 칠언시를 만날 수 있다. 6마리의 고양이를 통해 소개되는 중국 팔기군에 관하여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사진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 중국의 유물과 고양이들의 멋진 사진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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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소장가치 높은 책 중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만물의 영장이 지구상의 다른 종(種)앞에서 자신들의 나약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때론 악랄한 짓을 꾸민다. 이것이 과거 패권주의자들의 용렬한 악행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p187

헤이파오파오를 위한 칠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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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년의 탐스럽고 검은 윤기는 현옥보다 아름답고
온몸에 흘러넘치는 기품은 아스라한 신선계의 존재로구나
마침 쥐의 등장으로 숨은 재주가 드러났으니
과연 관푸의 고양이 가운데 군계일학이라네.
의협심과 충심 어린 성품, 겸양의 예까지 갖추었으니
골수에 새겨진 올곧고 정의로운 마음, 참되고 굳세고 진실하네.
성별을 초월하여 검디검은 털은 이토록 짙고 푸른데.
못 다 핀 꽃송이여, 부디 맑은 바람 속에 고요히 잠들기를.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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