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랑 - 사치코 이야기
엔도 슈사쿠 지음, 김승철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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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한두명즘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역시 좋아하는 작가가 몇명 있다. 그 좋아하는 것이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쓴 작품이라면 어떻게든 구해서 읽으려하고 빚을 내어서라도 그 책을 소장하려고 한다. 살아가면서 그런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행운일지 가산을 탕진하게 하니 불행일지 알 수 없으나 내게는 "엔도 슈사쿠"와 "알베르 카뮈" 두 사람이 그러하다. 아마 동시대에 태어나 이웃하고 살았다면 어쩌면 일생을 그와 지내고 싶어했을지도 모를만큼 작품속에 드러난 그들의 삶과 사상을 연모했다. 그들이 출간한 대부분의 책을 소장해 우울하거나 삶의 위로를 구하려할 때마다 가장 가까운 책장에 이웃해 앉아있는 그들에게 손길이 가는 것을 보면 곁에있는 남편보다 더 나의 마음을 앗아간 남자들인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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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철 교수님의 번역으로 엔도 슈사쿠의 작품이 또 한편 세상에 태어났다. 얼마나 기쁘던지. 설레는 마음이 컸다. 600페이지가 넘는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지만 엔도특유의 문체와 그의 작품속에 흐르는 통일된 고뇌와 질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겉도는 것이 아닌 바로 나의 고뇌. 나의 질문이 되어 고도의 집중력을 갖고 책에 몰입시킨다. 전쟁과 사랑. 어쩌면 3류 소설로 몰고 갈 수 있는 식상한 주제의 이야기라 추측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격상시켜 예측한다면 인류애정도로 추측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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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전쟁과 사랑>은 사실, 엔도슈사쿠의 <여자의 일생>이라는 작품의 2부에 속하는 이야기로 1부의 주인공 기쿠의 사촌 동생으로 등장하는 미츠의 손녀인 사치코를 주인공으로 한다. 엔도의 문학에는 주된 색깔이 있는데 그것은 서구의 그리스도교 사상이 일본특유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과 사랑>에도 그러한 엔도특유의 사상이 작품 근저에 깔려 있다. <사랑과 전쟁>에는 하나의 주제와 두가지 질문 그리고 두 사람의 일생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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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주제 :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두 개의 질문 : 1. 신은 어린아이와 여자. 아무런 죄 없는 자들이 전쟁으로 죽어가는 것에 침묵하는가?
                   2. 그리스도 교인이 전쟁에 나가 적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가? 교회는 왜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가? 
두 사람 : 1. 전쟁의 모순과 비극의 시대를 살았던 사치코의 사랑이야기.
            2. 나가사키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본국으로 돌아가 아우슈비츠에서 순교한 콜배신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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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야기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사랑은 없다"라는 주제로 응집되어 사치고와 콜배신부의 이야기가 잘 엮어 교차로 진행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콜배신부와 사치코와의 만남은 나가사키의 오우라 성당에서 이루어진다. 어린 사치코는 나가사키로 선교를 온 콜배신부와 제노신부를 만나게 된다. 그 만남속에 사치코의 손에 남겨진 것은 콜배신부가 자국으로 떠나면서 준 성모님과 일본어성구가 인쇄된 책갈피였다.
"친구들을 위하야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어린 사치코는 성장하면서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슈헤이를 사랑하게 되고, 징집대상인 자신은 사치코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마음을 억누르지만 슈헤이 역시 사치코를 사랑한다. 제 2차세계대전 한복판 그리스도교인들은 적국의 종교를 믿는 "비국민"이라고 불리면서 감시와 모멸의 대상이 된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슈헤이는 끊임없는 의문을 품게된다. 징집된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적국의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가? 전쟁터로 가야만 하는가? 교회는 왜 침묵하고 있으면 그 누구도 자신의 의문에 왜 답을 해 주지 않는가? 그의 고민이 깊어질 수록 이야기는 무러익어가고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채 징집되어 슈헤이는 가장 일본인다운 답을 안고(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일본인 특유의 나카마 의식-동료의식-이 느껴지니까) 가미카제특공대로 전사하게 된다. 고뇌와 번민속에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슈헤이는 왜 선택하였을까?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동기중 하나는 "동기나 동료와 운명을 같이하고 싶다는 마음, 함께 생활하고 때로 차이는 있었지만 똑같은 운명을 나눈 그들과 최후를 같이하고 싶다는 마음p558이었다. 또한 슈헤이가 징집전 만났던 나카조와의 말에도 영향이 있다. "나라를 위해서 싸워달라.나라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것도 납득하지 못한 채 국가의 폭력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게 괴로워해주게p463" 결국, 슈헤이는 친구를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것이다. 사치코는 전쟁 중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랑을 실천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슈헤이가 전쟁에서 죽지 않기를 매일 기도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의 밥을 챙긴다. 사치코의 친구를 위한 사랑의 행위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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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으로 돌아가 아우슈비츠에 끌려간 콜배신부는 날마다 죽어가는 생명들을 바라보며 노역에 시달린다. 콜배신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비아냥거리며 이곳이 지옥이라고 말하는 이에게 "여긴 아직 지옥이 아니다. 지옥이란 사랑이 완전히 없어진 곳이다p206"말한다. 탈주범이 생길 때마다 연대책임으로 같은 조원들이 죽게되는데 콜배신부는 지목된 이를 대신해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악한 행동도 서슴치 않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가볍게 생각하던 수용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콜베 신부가 처형장으로 끌려간 후 주변 사람들에게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그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마다 냉소적이었던 이들이 달라진 것이다. 하루에 하나밖에 받지 못하는 빵을 쓰러져가는 다른 이에게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는, 남아 있는 그들을 지탱시켜줄 사랑을 실천하고, 이중 인격자였던 마르틴 소장은 콜베 신부를 생각하며 전쟁과 사람,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은 이전과 다르게 사망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도를 바친다.

이렇듯 <사랑과 전쟁>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가 비그리스도인이라도 인류의 보편적 사랑에 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전쟁과 교회와 형제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림이라는 명제에 깊이 사고해볼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의 비극과 모순 속에서 신의 사랑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전쟁속에서도 숭고한 사랑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전쟁속 우리들의 유한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하여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드러나기를 원하신다. 여기서 다시금 슈헤이가 고민했던 아니 동시대를 살아낸 엔도의 고민이기도 한 그들의 고민에 읽는 독자들도 기꺼이 동참해보아야 할것이리라.

첫째, 과연 국가는 우리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강요할 권리가 있는가?
둘째,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교회는 왜 인정하지 않는가?
셋째. 전쟁에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될 때 그리스도교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p556.

과연 독자들은 어떤 답을 내리게 될까. 
2차세계대전 이후 8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전쟁의 소요가 끊이지 않고 우리나라는 분단의 아픔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전쟁은 우리와 먼곳의 이야기나 나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엔도의 고민은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해결되지 않은 고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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