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시시콜콜한 디테일이 쌓여야 whole size의 쾌감이 있지!

야금야금 야구를 알아가다보니, 야구가 아니라. 스스로에 관해 알게 된 것도 있다. 나는 짧게 편집된 경기를 못 보는 사람이었다. 안 보면 안봤지 , 볼거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만 직성이 풀렸다. 제아무리 지루하고 긴 경기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이라이트 편 집 영상이나 문자 중계는 내게 감흥이 없었다.

삼진을 당한 타자의 어깨가 어떤 표정인지, 감 독의 사인을 타자가 어떻게 오해했는지, 선발투수의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한 게 언제부턴지, 카메라에 잠 깐 잡힌 관중석 응원판에 어떤 우스갯소리가 적혀 있 는지. 그 모든 시시콜콜한 디테일을 내 눈으로 직접 봐야만, 그래야만 결정적인 장면에서 온전히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만루홈런이든, 9회 말 역전승 이든. - P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직적 사랑은 수평적 사랑으로 돌려드려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새 계명에는 하나님 사랑이라는 수직적 계명이 빠져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수직적 계명의 자리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십니다. 하나님 께 받은 사랑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리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수직적 계명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 드리는 사랑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고, 그 사랑을 받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받은 수직적 사랑을 수평적 사랑("서로 사랑")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 전체의 방향 전환을 선언하는 대목입니다. - P2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평적 선행과 정의는 수직적 거룩의 필수요건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이사야 1:16- 17). 여기서 "선행"과 "정의"는 단지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로 제시됩니다. 수평적 관계의 온전함은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에게 요청되는 특질입니다
이사야는 거룩의 본질을 수평적 정의 회복에서 찾습니다. 예배가 이웃을 외면한 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수직적 예배의 진정성은 타자와의 수평적 관계 속에서 입증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분명히 거룩의 수평성을 강하게 외치는 예언자입니다. 그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옵니다.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하다. 정의를 회복하라. 그래야만 너희의 예배가, 너희의 기도가 다시 들릴 것이다." - P2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낯선 이를 환대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열린 수평적 태도는 수직적 믿음의 표현이다.

그러나 고대 가나안에서의 ‘환대‘(hospitalisy)란 타인의 인정을 받고 공동체 안에서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는 수단이 아니다. 낯선 이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던 환경에서 일면식도 없는 이의 생명을 살리려는 것이 환대였다. 환대의 문화가 신적 명령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세상은 약육강식 세계가 된다 성경은 낯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태도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를 명확히 구분한다. 타인에게 열린 수평적 태도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믿음의 표현이다. - P1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동성애이기 전에 폭력이다. 이방인에 대한 거부감, 환대의 결여였다.


창세기 18장의 아브라함은 낮의 열기를 무릅쓰고 달려 나가 낯선 이를 맞이하고, 창세기 19장의 롯은 밤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방인 을 지켜 내며, 사사기 19장의 노인은 아무 연고 없는 나그네를 위 해 자기 집을 개방합니다. 반면 소돔 사람들(그리고 베냐민 지파)은 외부인을 배척하고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진노하신 진정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예언자 에스겔 과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비판한 ‘소돔의 죄‘가 바로 이것이기도 합 니다. 환대를 거부한 사회, 타인을 항해 문을 닫고 폭력을 정당화 한 공동체는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고발입니다. - P1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