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같은 건보 적자의 해법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의료 정상화라는 고지를 어떻게 넘어야 할지 길은 있다.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그런데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의사의 고유한 행위, 즉 환자 문진 과 진찰, 상담, 각종 시술과 수술 등과 첨단 기계 장비를 동원하는 검사 간에는 큰 격차가 있다. 의사의 고유 행위들 중에는 시간당 수가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것들도 있다. 반면 검사들은 일반적으로 높은 이윤이 보장된다. 제대로 코스트 시프트(cost shift, 수입을 이전해서 전체 수지를 맞추는 행위)가 일어나는 것이 한국 의료다. 일단 암을 진단받으면 PET-CT라는 고이윤 검사를 여러번 할 수 있다. 그리고 병원 경영진은 이런 고이윤 검사를 많이 한 의사들에게 혜택을 주는 반면 이윤도 없는 양질의 진료(긴 진료 시간과 환자에게 하는 자세한 설명 등)를 하는 의사들에게는 불이익을 준다. 많은 병원들이 의사들의 수입을 순전히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에 연동해서 결정한다. 심지어 보직이나 승진 심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도 흔하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정확히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 내지 조장을 해왔다. 지금도 의료수가 협상을 할 때 진찰료에 대해서는 인상 절대 불가라는 경직되고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보건복지부 공무원들도 소위 신의료 딱지를 붙이고 들어오는 가치도 알 수 없는 검사들의 수가를 만들어주는 데에는 터무니없이 관대하다. 이런 현실을 알아야 큰 그림을 볼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세울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건강검진은 대형병원들이 코스트 시프트를 할 수 있는 창구로 작용해왔고 여기에 걸려든 것 중의하나가 갑상선암이었던 것이다. 이런 의료행위를 하는 것으로 높은 연봉, 인력 충원, 풍부한 진료 지원을 해주는 시스템 속에서 의사 개개인에게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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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죽음을 재촉하는 치료일 수도...

나는 CT촬영으로 방사선 폭탄을 투하할지를 다시 한번 보호자와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쉽게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CT촬영의방사선 피폭량은 자연 상태에서 노출되는 피폭량을 고려할 때 짧게는 3년, 조영제를 쓰는 경우 7년 동안 맞을 양을 한번에 맞는 것과 같다. 암 환자가 흔히 찍는 양전자방출 컴퓨터 단층촬영PET-CT은 8년 치를 한번에 맞는 수준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검사하다가 암에 걸릴 가능성은 잘 모르고, 조기 암 진단을 받을 수 있게 정밀 촬영을 해달라고 한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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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죽음의 길을 질병으로 보느냐의 문제.
임종의 치료행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본인인가 자식들인가 아니면 병원인가.

임종치료의 두갈래 길: 연명치료와 완화치료

오랫동안 임종의 경과를 지나온 노인에게 이런저런 검사를 실시하면 당연히 검사한 숫자만큼의 이상을 발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으로 옮겨지는 즉시, 의료진은 기관지에 고인 분비물을 뽑기 위해 흡인기를 연결한다. 폐렴 소견이 발견되면 항생제 치료를 하고 산소포화도가 나쁘면 인공호흡기를 달 수도 있다. 전해질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곧장 정맥으로 수액 공급 치료가 들어가고, 신장기능이 나쁘면 투석을 하게 된다. 혈압이 낮으면 혈압을 높이기 위한 여러 약제를 동원한다.
완화의료를 선택하는 경우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앞에 기술한 일반적인 치료들이 죽음의 각 단계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모두 치료해야 하는 질환으로 보는 반면, 완화의료는 이 모든 증상을 죽음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환자가 통증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것을 최소화하는 치료를 목표로 한다.
흔히 완화의료라고 하면 환자를 포기하는 치료 정도로 폄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큰 오해다. 환자를 전인적으로 보고 접근해야 하는 완화의료의 경우 매뉴얼화되어 있는 일반적인 치료에 비해 훨씬 더 고도의 판단력과 기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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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치료해야 할 질병이 되면서 환자, 가족, 사회가 치러야할 대가는 너무 크다.

문제는 이런 급성 치료에 중점을 두어온 의료기술이 전혀 다른 문제인 만성 질환자의 치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 부상병, 사고 부상자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개발된 기술들이 아무런 기준 없이 삶의 마지막 길을 걷고 있는 환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심한 경우 의료소송의 빌미까지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환자와 가족에게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연장시키고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제한된 의료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또한 반드시 이런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치료의 기회를 박탈함과 동시에 의료비용의 천문학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중환자실 자리가 없어서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하는 아이의 예는 상당히 많으며, 보건의료 통계로 보면 한 개인이 사망하기전 한달간 쓰는 의료비가 그 이전 평생에 걸쳐 쓴 의료비보다더 많다. 결국 선진국들에서는 이런 불행한 결과를 막기 위해 완화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죽음의 질 향상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국가는 그 구성원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쓰는 만큼 죽음의 질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인구 집단의 변화를 겪고 있다. 유사 이래 5세 이하 어린이의 수가 65세 이상 노인의 수보다 적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역전되지 않고 더욱심화될 것이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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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 누가 냉정해질 수 있을까. 온정신일 때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다. 허둥지둥하며 더 끔찍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18살에 중환자실을 경험했었다. 그때 중환자실에 간호사 누나들이 어린 나를 그렇게 예뻐했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 아무 희망 없이 죽음을 준비하는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며 도와야 했던 그들에게 하루하루가 달라지며 중환자실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나는 그 희망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이뻤을 것 같다.

병원 중환자실은 일시적인 문제로 생명이 위독해진 환자들이 의학적인 시술의 도움으로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원칙은 그렇지만 현대의료에서는 이런 원칙이 너무나 빈번히 깨져버린다. 누구도 "이제 그만"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을 말하기 싫어하는 의사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 가족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중환자실은 환자가 임종을 맞기 위한 장소로 급속히 변질되어가고 있다. 그 결과 정말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입원하지 못하고 돌려보내지는 일이 발생한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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