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들조차 경쟁자로 삼는 접근은 트럼프 때 본색을 드러냈다. 그 트럼프는 지금도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다. 바이든도 이런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트럼프의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체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뜻했다. 트럼프 취임 초기에 그의 최고위 보좌관 두 사람이 "미국 우선"이 무슨 뜻인지 정의하면서, 세계는 "공동체" 가아니라 "국가들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경쟁하는 경기장"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이러한 경쟁에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도덕적 힘"으로써 임해야 한다. 그들은 이를 "국제관계의 자연적인 속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과거에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전후 외교정책의 핵심 전제는 미국이 동맹국들과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동참한 나라들과의 경쟁에 "아무도 대적할수 없는 힘으로 응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국제관계학자 대니얼 W. 드레즈너가 지적한 바와 같이,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나라가 자국의 동맹국을 상대할 때조차 그러한 홉스적인 시각을 취하면 다른 모든 나라들도 하나같이 홉스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핵심적인 계약이 파기되면, 이 질서에 참여하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더 이상 자기들이 신뢰하고 협력할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오바마의 정책이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금이 가게 했다면, 트럼프의 발언과 행동은 그 질서에 구멍을 뚫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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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카드로 중국을 묶으면서도 미국이 언제든 지역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역할을 기대하다 결정적인 뒤통수를 당한 ‘우방국‘들이 한둘이 아니다.
속이려는 의도가 아니라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미국의 외교 현실을 충분히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은 이처럼 부상하는 국가주의 정서를 잠재우기보다 부추기는 데 일조해왔다. 미국은 일본과 지역 안보를 보장한다고 거듭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장할 믿을 만한 주체가 아니라는 인식이 점점 높아졌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위협적인 환경에 놓여 있고, 위협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중국은 동중국해에서 일본에 대해 보이는 태도를 비롯해 보다 공격적이고 다툼을 야기하는 길을 추구하고 있고, 김정은 정권이핵무기 개발과 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서 계속 진전을 이루면서 북한으로부터의 위협도 상당히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이 두 가지 난관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서, 적어도 일본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힘이 이 지역에서 계속 작동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이미 만연해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미국을 쇠락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해상력이 한계에 도달했고, 미국 의회는 미국의 역량을 증강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의 지출을 계속 막고 있는 현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일본도 많은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에 들어선 게 아닌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조지 W. 부시 시절에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은 중동에서 전쟁을 수행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듯했지만, 공교롭게도 일본의 생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는 사건은 오바마가 2013년 시리아에서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었다. 아베의 한 보좌관이 훗날 말했듯이,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더 이상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주리라고 믿을 수" 없었다. 그러한 우려 때문에 일본이 더욱더 서둘러 국가주의의 길을 택하게 되었고 이는 지역 평화와 중국과의 갈등 가능성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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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앞선 세대가 잘못 끼운 단추.
전후 세대를 위해서라도 독일 같은 끝맺음이 필요하지 않나.

(일본에서) 처음에는 미국의 점령으로, 그리고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으로 침잠하고 억눌려온 과거 국가주의 충동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는 어찌 보면 불가피한 면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처절한 패배를 겪은 세대는 꾸준히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1954년생이다. 신세대는 당연히 일본이 다시 "정상" 국가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묻게 되고, 이는 보다 강력하고 제약을 덜 받는 군사력과 외교정책에서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보다 폭넓은 독립을 누리겠다는 뜻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경제호황에 뒤이어 긴 침체를 겪으면서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국가로 손꼽히면서 누렸던 자부심과 명예-전쟁 이전의 시대에 일본이 지정학적인 입지로 누렸던 자부심을 대체할 대상-를 박탈당했다. 새로운 세대들은 "사죄 피로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들은 끊임없는 사죄 요구, 특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동안과 그 전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과하라는 중국과 한국의 요구에 넌더리를 낸다. 일본인들은 중국의 이러한 요구를 일본의 역내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로 보고 있고,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일본인들이 사과할 거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역사 교과서는 과거의 잘못을 누락하거나 최소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들이 "전쟁과 무관한 자신의 자녀, 손녀손자, 앞으로 등장할 세대가 사죄할 운명에 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라고 주장해왔다. 독일에서는 극우 단체들이 비슷한 견해를 표명하지만 국가 지도자 가운데 아무도 감히 그런 견해를 피력하지 못한다. 독일에서는 금지된 과거에 대한 국가주의자들의주장이 일본에서는 점점 확산되고 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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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열매를 따먹고 큰 중국은 러시이와는 다르다. 판을 깰 필요는 없지만, 과거 대국의 지위를 되찾고자 하는 내부의 욕구는 러시아만 못하지 않다.
바이든이 중국을 둘러싼 한미일 안보협력체 구상에 목을 멜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발은 막되,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열매는 나누게 관리하는 저글링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에게 중요한 문제는 과연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신이 구축한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 전쟁을 감수할 의지가 여전히 있는지, 아니면 1945년부터 지배해온 이 지역에서 물러날지 여부다. 미국이 역내에서 질서를 수호할 의지가 확고하다면 중국은 여전히 상당한 장애물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힘과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동맹국도 없고, 다른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동맹관계이거나 안보협정을 맺고 있다. 미국이 강하고 의지가 굳고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여전히 건강하고 참여국들이 일치단결되어 있다면, 중국의 도전은 실패할 수 있고, 이는 중국 지도부의 정권을 위협하게 된다. 중국은 미국에 대들었다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일본의 사례를 상기한다. 야마모토 제독이 예언한 바와 같이, 일본은 초창기의 승리에 도취해 한동안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고, 역시 야마모토 제독이 예언한 대로, 미국의 압도적인 산업역량과 공격을 막아내는 무적에 가까운 위력과 많은 동맹국들로 인해 결국 박살이 났다. 중국도 대만이나 남중국해를 놓고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초기에는 승리할지 모르지만 또다시 잠든 거인 을 깨우게 되고, 그 거인이 산업역량과 세계 동맹국들을 총동원해 반격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은 패배한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잠든 거인이 두 번째로 깨어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만약, 그리고 실제로 중국 지도자들이 미국을 너무 약하다고 인식하거나,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유주의 질서를 계속 수호할 의지가 없다고 인식하면 위험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중국에게는 도박이지만, 부상하는 국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도박을 거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문제는 지정학이 귀환한 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이 한동안 중단했던 과거의 야망을 다시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불가피했다. 문제는 자유주의 세계질서 자체가 더 이상 지난 70년 동안 해왔듯이 그러한 야망을 봉쇄하고 꺾을 만큼 건강하고 튼튼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러한 세력에 맞설 의지와 역량이 미국을 비롯해 도처에서 쇠락하고 있다.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속한 국가와 국민들조차 과거의 전철로 되돌아가고 있고, 어찌 보면 미국이 이러한 과정을 재촉해왔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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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은 판을 흔들어야 살 수 있는 자들의 무모하지만 잃을 게 별로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이런 도발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글의 귀환이다.

러시아가 직면한 문제는 푸틴과 같은 많은 러시아인들이 추구하는 위대함이 안전하고 안정된 세계에서는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질서가 일관성 있고 응집력 있는 세계에서는, 특히 유럽에서는, 그리고 미국이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보장들을 계속 제공해줄 의지와 역량이 있는 세계에서는 도달하기 불가능한 목표였다. 오늘날 러시아의 경제는 그 규모가 스페인의 경제와 맞먹는다. 핵전력을 제외하면 러시아 군사력은 더 이상 초강대국이 아니다. 인구 변화 추세를 보면 러시아는 쇠락하고 있는 나라다. 현재의 세계질서에서 러시아는 안전을 유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초강대국이 될 기회는 없다. 세계무대에서 위대함을 성취하려면 러시아는 러시아도 그 어떤 나라도 안보를 누리지 못하는 과거로 세계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 러시아가 과거에 세계무대에서 행사했던 영향력을 되찾으려면 자유주의 질서는 약화되고 무너져야 한다.
그런 세상에서 러시아는 위대함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뿐만 아니라 푸틴의 개인적 야망을 달성할 기회도 얻게 된다. 그런 세상은 강력한 통치를 정당화하고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러시아 역사에서, 특히 20세기 역사에서, 국가의 안보 불안 혹은 안보가 불안하다는 인식은 강력하고 억압적인 정부를 정당화했다. 과거의 황제들처럼 푸틴은 러시아 국민에게 "방대한 영토"를 수호하고 "세계 문제에서 중요한 입지를 확보하려면 "러시아 국민이 어마어마한 희생과 고난을 견뎌내야 한다."라고 말한다. 스탈린도 이와 거의 비슷한 발언을 했고, 푸틴은 미국을 나치 독일과 비교하고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도처에 있는 적수들을 나치라고 주장하면서, 대조국전쟁(the Great Patriotic War)과 과거 러시아의 영광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스탈린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선동한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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