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열매를 따먹고 큰 중국은 러시이와는 다르다. 판을 깰 필요는 없지만, 과거 대국의 지위를 되찾고자 하는 내부의 욕구는 러시아만 못하지 않다.
바이든이 중국을 둘러싼 한미일 안보협력체 구상에 목을 멜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발은 막되,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열매는 나누게 관리하는 저글링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에게 중요한 문제는 과연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신이 구축한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 전쟁을 감수할 의지가 여전히 있는지, 아니면 1945년부터 지배해온 이 지역에서 물러날지 여부다. 미국이 역내에서 질서를 수호할 의지가 확고하다면 중국은 여전히 상당한 장애물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힘과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동맹국도 없고, 다른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동맹관계이거나 안보협정을 맺고 있다. 미국이 강하고 의지가 굳고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여전히 건강하고 참여국들이 일치단결되어 있다면, 중국의 도전은 실패할 수 있고, 이는 중국 지도부의 정권을 위협하게 된다. 중국은 미국에 대들었다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일본의 사례를 상기한다. 야마모토 제독이 예언한 바와 같이, 일본은 초창기의 승리에 도취해 한동안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고, 역시 야마모토 제독이 예언한 대로, 미국의 압도적인 산업역량과 공격을 막아내는 무적에 가까운 위력과 많은 동맹국들로 인해 결국 박살이 났다. 중국도 대만이나 남중국해를 놓고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초기에는 승리할지 모르지만 또다시 잠든 거인 을 깨우게 되고, 그 거인이 산업역량과 세계 동맹국들을 총동원해 반격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은 패배한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잠든 거인이 두 번째로 깨어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만약, 그리고 실제로 중국 지도자들이 미국을 너무 약하다고 인식하거나,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유주의 질서를 계속 수호할 의지가 없다고 인식하면 위험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중국에게는 도박이지만, 부상하는 국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도박을 거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문제는 지정학이 귀환한 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이 한동안 중단했던 과거의 야망을 다시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불가피했다. 문제는 자유주의 세계질서 자체가 더 이상 지난 70년 동안 해왔듯이 그러한 야망을 봉쇄하고 꺾을 만큼 건강하고 튼튼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러한 세력에 맞설 의지와 역량이 미국을 비롯해 도처에서 쇠락하고 있다.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속한 국가와 국민들조차 과거의 전철로 되돌아가고 있고, 어찌 보면 미국이 이러한 과정을 재촉해왔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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