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앞선 세대가 잘못 끼운 단추.
전후 세대를 위해서라도 독일 같은 끝맺음이 필요하지 않나.

(일본에서) 처음에는 미국의 점령으로, 그리고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으로 침잠하고 억눌려온 과거 국가주의 충동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는 어찌 보면 불가피한 면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처절한 패배를 겪은 세대는 꾸준히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1954년생이다. 신세대는 당연히 일본이 다시 "정상" 국가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묻게 되고, 이는 보다 강력하고 제약을 덜 받는 군사력과 외교정책에서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보다 폭넓은 독립을 누리겠다는 뜻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경제호황에 뒤이어 긴 침체를 겪으면서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국가로 손꼽히면서 누렸던 자부심과 명예-전쟁 이전의 시대에 일본이 지정학적인 입지로 누렸던 자부심을 대체할 대상-를 박탈당했다. 새로운 세대들은 "사죄 피로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들은 끊임없는 사죄 요구, 특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동안과 그 전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과하라는 중국과 한국의 요구에 넌더리를 낸다. 일본인들은 중국의 이러한 요구를 일본의 역내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로 보고 있고,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일본인들이 사과할 거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역사 교과서는 과거의 잘못을 누락하거나 최소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들이 "전쟁과 무관한 자신의 자녀, 손녀손자, 앞으로 등장할 세대가 사죄할 운명에 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라고 주장해왔다. 독일에서는 극우 단체들이 비슷한 견해를 표명하지만 국가 지도자 가운데 아무도 감히 그런 견해를 피력하지 못한다. 독일에서는 금지된 과거에 대한 국가주의자들의주장이 일본에서는 점점 확산되고 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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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열매를 따먹고 큰 중국은 러시이와는 다르다. 판을 깰 필요는 없지만, 과거 대국의 지위를 되찾고자 하는 내부의 욕구는 러시아만 못하지 않다.
바이든이 중국을 둘러싼 한미일 안보협력체 구상에 목을 멜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발은 막되,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열매는 나누게 관리하는 저글링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에게 중요한 문제는 과연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신이 구축한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 전쟁을 감수할 의지가 여전히 있는지, 아니면 1945년부터 지배해온 이 지역에서 물러날지 여부다. 미국이 역내에서 질서를 수호할 의지가 확고하다면 중국은 여전히 상당한 장애물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힘과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동맹국도 없고, 다른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동맹관계이거나 안보협정을 맺고 있다. 미국이 강하고 의지가 굳고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여전히 건강하고 참여국들이 일치단결되어 있다면, 중국의 도전은 실패할 수 있고, 이는 중국 지도부의 정권을 위협하게 된다. 중국은 미국에 대들었다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일본의 사례를 상기한다. 야마모토 제독이 예언한 바와 같이, 일본은 초창기의 승리에 도취해 한동안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고, 역시 야마모토 제독이 예언한 대로, 미국의 압도적인 산업역량과 공격을 막아내는 무적에 가까운 위력과 많은 동맹국들로 인해 결국 박살이 났다. 중국도 대만이나 남중국해를 놓고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초기에는 승리할지 모르지만 또다시 잠든 거인 을 깨우게 되고, 그 거인이 산업역량과 세계 동맹국들을 총동원해 반격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은 패배한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잠든 거인이 두 번째로 깨어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만약, 그리고 실제로 중국 지도자들이 미국을 너무 약하다고 인식하거나,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유주의 질서를 계속 수호할 의지가 없다고 인식하면 위험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중국에게는 도박이지만, 부상하는 국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도박을 거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문제는 지정학이 귀환한 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이 한동안 중단했던 과거의 야망을 다시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불가피했다. 문제는 자유주의 세계질서 자체가 더 이상 지난 70년 동안 해왔듯이 그러한 야망을 봉쇄하고 꺾을 만큼 건강하고 튼튼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러한 세력에 맞설 의지와 역량이 미국을 비롯해 도처에서 쇠락하고 있다.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속한 국가와 국민들조차 과거의 전철로 되돌아가고 있고, 어찌 보면 미국이 이러한 과정을 재촉해왔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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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은 판을 흔들어야 살 수 있는 자들의 무모하지만 잃을 게 별로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이런 도발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글의 귀환이다.

러시아가 직면한 문제는 푸틴과 같은 많은 러시아인들이 추구하는 위대함이 안전하고 안정된 세계에서는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질서가 일관성 있고 응집력 있는 세계에서는, 특히 유럽에서는, 그리고 미국이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보장들을 계속 제공해줄 의지와 역량이 있는 세계에서는 도달하기 불가능한 목표였다. 오늘날 러시아의 경제는 그 규모가 스페인의 경제와 맞먹는다. 핵전력을 제외하면 러시아 군사력은 더 이상 초강대국이 아니다. 인구 변화 추세를 보면 러시아는 쇠락하고 있는 나라다. 현재의 세계질서에서 러시아는 안전을 유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초강대국이 될 기회는 없다. 세계무대에서 위대함을 성취하려면 러시아는 러시아도 그 어떤 나라도 안보를 누리지 못하는 과거로 세계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 러시아가 과거에 세계무대에서 행사했던 영향력을 되찾으려면 자유주의 질서는 약화되고 무너져야 한다.
그런 세상에서 러시아는 위대함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뿐만 아니라 푸틴의 개인적 야망을 달성할 기회도 얻게 된다. 그런 세상은 강력한 통치를 정당화하고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러시아 역사에서, 특히 20세기 역사에서, 국가의 안보 불안 혹은 안보가 불안하다는 인식은 강력하고 억압적인 정부를 정당화했다. 과거의 황제들처럼 푸틴은 러시아 국민에게 "방대한 영토"를 수호하고 "세계 문제에서 중요한 입지를 확보하려면 "러시아 국민이 어마어마한 희생과 고난을 견뎌내야 한다."라고 말한다. 스탈린도 이와 거의 비슷한 발언을 했고, 푸틴은 미국을 나치 독일과 비교하고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도처에 있는 적수들을 나치라고 주장하면서, 대조국전쟁(the Great Patriotic War)과 과거 러시아의 영광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스탈린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선동한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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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와 8년의 이라크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인들이 하게된 고민은 <어벤저스>의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한다. 우리가 개입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꼬이고 민간의 피해만 늘어가지 않는가.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 자체가 문제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 시절의 미국인들의 고민인 듯하다.
2016년 봄 <어벤저스:시빌워>가 개봉됐고, 늦가을에 트럼프가 당선됐다.


(트럼프에게 백악관의 열쇠를 주고만)2016년 선거는 기존의 전략에 대한 심판이었고 이는 도널드 트럼프 때문이 아니다.
그는 단지 미국에 만연한 그러한 정서의 수혜자에 불과했다. 공직 경험이 일천하고 외교정책 경험은 전혀 없는 인물을 미국 국민이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인들이 세계에서 미국이 하는 역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보여주는 징후였다. 그들은 자유주의 세계질서와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의 역할을 폄하하는 트럼프에게 환호했다. 클린턴이 당선됐다고 해도 미국에 팽배한 이러한 정서를 바꾸기는커녕 그러한 정서에 맞설 수있었을지조차 의문이다. 그녀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재능이 있는 선임자들도 하지 못한 일을 말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0년대에 하지 못한일을 오늘날 힐러리 클린턴이 무슨 수로 하겠는가?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지금에 이르렀다. 기존의 대전략에 대한 정치적, 국민적 합의는 붕괴되었다. 트럼프 지지자와 반 트럼프 보수주의자에서부터 오바마 정권의 전직 관료들, 버니 샌더스지지자들, 과거를 참회하는 "외교정책 엘리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 지형을 아우르는 새로운 합의가 도출되었다. 지난 4반세기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은 참사였다는 합의에 이른 이들은 세계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미국의 역량에 대한보다 비관적인 시각을 토대로 한 새로운 현실주의를 요구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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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신들이 채택한 민주정체를 다른 나라에도 권할 만큼 확신한 건 채 50년이 되지 않는다.
그전에는 자신들이 관리하기 좋다면 정체는 의미가 없었다. 우리니라의 경우도 헌법에 명시된 민주정체를 지키라는 미국의 압력이 행사된 것은 1980년대 후반 들어서니까.

미국은 냉전시대 기간 동안이나 그 이후에나 일관성 있게 헌신적으로 민주정체를 채택한 정부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자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핵심지역에서-전후 초기에 일본, 독일, 서유럽에서, 그리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동유럽과 아시아의 다른 지역들에서 민주정체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리고 냉전시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은 좋게 해석해도 민주정체에 무관심했다. 리처드 닉슨은 민주정체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딱히 가장 바람직한 정부 형태는 아니다."라고 솔직한 견해를 밝혔는데, 이는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이 공감하는 시각이다. 미국인들은 독재체제보다도 급진주의(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 오늘날은 이슬람)를 훨씬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란의 왕조와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또는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예멘, 이집트의 통치자들과 같은 믿을 만한 독재자들을 대놓고 지원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미국은 민주주의적으로 선출되었으나 못 미더워한 정부- 1953년 이란의 모사데그, 1954년 과테말라의 아르벤츠, 1973년 칠레의 아옌데, 2013년 이집트의 모르시-를 전복시키는 데 가담하거나 정부 전복을 용인했다.
냉전시대 말기인 카터와 레이건 정권하에 가서야 미국 정부는 보다 일관성 있게 민주정체를 지지하는 쪽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전략적인 이유도 있었다. 레이건 정부는 진 커크패트릭(Jeane Kirkpatrick)이 주장한 접근 방식을 거부하고 결국 급진주의를 막는 보루로서 "우호적인 독재자들보다 민주정체를 채택한 정부가 훨씬 낫다는 판단(미국이 아직 중동에서는 터득하지 못한 전략적 교훈)을 내렸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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