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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차영차 영국축구 ㅣ 앗, 이렇게 짜릿한 스포츠가! 88
마이클 콜먼 지음, 박성준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니들이 축구를 알아? 오늘날의 축구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다리를 부러뜨렸는지... 경기 한 번 치르고 나면 선수들이 전부 병원에 입원하거나 감옥에 가야 했던 시대. 초창기 축구의 무시무시한 괴담을 한번 들어 볼래???
"선수들은 여기저기서 쓰러지고 자빠지고 상대편 선수에게 채이고 밟혀 피를 줄줄 흘렸다." - 1829년 앙글랜드 더비셔 지방에서 아주 큰 축구 시합이 벌어진 뒤 한 신문에서.
"나는 축구라는 패싸움을 일종의 친선을 위한 운동 경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항의하고 싶습니다." - 1583년 필립 스텁스라는 한 청교도
전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축구의 역사를 낱낱이 파헤친 충격 보고서!!
쿵!! 스포츠 엔 축구!! ㅋㅋ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긴 하다. 특히 축구를!!! 그럼 영국축구를 한 번 살펴보시죠.
영국의 축구는 8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때는 마침 색슨족과 바이킹이 대판 싸음을 벌이고 난 직후였다. (우와! 첫 번째 국제 경기??)이 싸움에서 색슨족이 승리했다.
피배한 바이킹 군대는 빈손으로 자기 나라에 되돌아갔다. 그런데 그 중에는 빈손뿐만이 아니라 빈 목을 가지고 돌아간 바이킹 전사가 적어도 한 명은 있다. 왜냐하면 색슨족의 한 전사가 기념품으로 그 바이킹의 머리를 잘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쓸모 어뵤을 것 같은 잘린 머리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이 때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외쳤다. "바로 그거야! 발로 차고 돌아다니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들은 걸국 바이킹 전사의 머리를 축구공으로 가지고 놀았다.(전설은 전설이므로 따라 하지 말자!!)
하지만 '풋볼(foot-balle)' 로 얄려진 축구 경기가 진정으로 시작된 때는 중세 시대였다. 그리고 그 시대의 축구는 정말로 험한 반칙들이 난무하는 끔찍한 경기였다.
아마 에드워드 2세로 하여금 월드컵 우승팀에게 메달을 내리도록 설득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14세기 초그는 축구 경기를 금지시키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초그의 포고령 : "큰 공을 놓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 때문에 이 도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혼란스럽다. 많은 폐단을 일으키는 이 경기를 법으로 금지하는 동시에 앞으로 축구를 하는 시민은 징역형을 받게 될 것임을 포고한다."
하지만 200년이 지난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이 경기는 더욱 과격해졌다. 1583년 필립 스텁스라는 한 청교도는 축구에 대해 이렇게 썼다.
필립 스텁스의 쓴 말 : "나는 축구라는 패싸움을 일종의 친선을 위한 운동 경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항의하고 싶습니다."
1829년, 잉글랜드 더비셔 지방에서 아주 큰 축구 시합이 벌어졌다. 이 경기에 대한 신문 기사에 의하면 선수들은 '여기저기서 쓰러지고 자빠지고 상대편 선수에게 채이고 밟혀 피를 줄줄 흘렸다.'
어쨌든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축구를 계속 했다. 왕족이나 귀족은 축구를 싫어했을지 몰라도 보통 사람들은 축구를 사랑했다.
그들은 주로 일요일날 축구를 했다. 축구 시합은 일주일 내내 귀족들의 등살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단 하루만이라도 힘껏 뛰어다니고 소리지르며 기를 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16세기와 17세기 영국의 콘월 지방에서는 '공대에다 날리기' 라는 경기가 유행했었고 17~18세기에는 '캠프(camp) 차기' 라는 시합이 동부 앵글리아 지방에서 성행했었다. (아마 camp 성을 가진 사람들은 기분 나빴을 것이다.)
이 경기들은 이웃한 두 마을간에 치러갔다. 그들은 1년애 한번씩만 (축구를 한번 하고 나면 골병이 들었기 때문에 회복하려면 1년이 꼬박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날을 잡아 시합을 벌여서 시합을 하곤 했다.
역시나 책은 재미가 이주 많다. 앞으로도 나도 책을 많이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