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서당 13 - 고려 시대 현종~인종편 맹꽁이 서당 13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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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어제 이 맹꽁이서당13이라는 책을 읽고 선종이 나와서 오늘 쓸 내용은 선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종 : 자 계천(). 시호 안성()·사효(). 이름 운(). 초명 증()·기(). 문종과 인예태후 이씨()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총명하고 효성스러웠으며 도량이 넓었다. 경서와 사서를 두루 연구하였고 문장에 뛰어났다. 1056년(문종 10) 국원후()에 봉해진 데 이어 상서령()에 제수되었다. 1083년 친형인 순종이 즉위한 후 수태사 겸 중서령 국원공에 올랐으나, 순종이 2달 만에 죽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1084년(선종 1) 승과를 설치하였으며, 1085년 이복남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1086년에는 요나라에서 압록강 부근에 각장(榷:국가에서 관리하는 시장)을 설치하고 교역을 하려 하자, 고주사 한형()을 보내어 폐지하기를 청하였다. 1086년 송나라에서 불교전적 3,000여 권을 가지고 돌아온 둘째동생 의천()을 태후와 함께 봉은사()에서 맞이하였다.

1088년 2월 요나라에서 재차 각장을 설치하려 하므로 중추원부사 이안()을 귀주()에 보내어 비밀히 대비하게 하였고, 9월에는 태복소경 김선석()을 요나라에 보내어 각장을 혁파해 줄 것을 청하였다. 1089년 회경전(殿)에 13층 금탑()을 세웠으며, 의천이 교종과 선종의 통합을 위하여 추진한 천태종 본산 국청사()의 건설을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시켰다. 1091년 서북면병마사 겸 중군병마사 유홍()이 제작한 병거()를 귀주에 배치하였고, 국자감의 벽에 유교 72현의 초상을 그려 붙였다.

1093년 소감 박원작()이 제작한 천균노()를 시험하였고, 병부상서 황종각()과 공부시랑 유신()을 송나라에 사은사로 보냈다. 이어 백관의 하례의식을 송나라의 조하식()에 맞추어 고쳤으며, 정포도감()에서 군복 3천벌~4천벌을 지어 동북() 양계()에 나눠 보내어 병영창고에 보관해 두도록 하였다 

1094년 2월 어사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병()을 하였고, 4월에 병이 들어 5월 연영전(殿)에서 죽었다. 재위기간 중 특별한 사건이 없어 평온하였으나, 사탑()을 짓는 토목공사를 일으켰으므로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하였다. 능은 개성에 있는 인릉()이다.


아하! 선종이 고려 제 13대 왕이였구나! 왠지 선종이라고 하길레 무슨 왕인가 싶었는데, 암튼 나는 오늘 이 책을 읽고 선종이 고려 제13대 왕이었던 것을 알아서 기쁘다. 나중에 또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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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대 삼국지 3
조병만 지음 / 수필과비평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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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이 삼국지3이라는 책을 읽고 여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알아보겠습니다. 

여포 : 중국 후한() 말기의 무장()으로 지금의 네이멍구자치구[内] 주위안구[]인 오원군() 구원현() 출신이며, 자()는 봉선()이다. <삼국지()>나 <삼국지연의()> 등에서 후한() 말기의 군웅() 가운데 무용()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궁술과 승마술이 뛰어나 전한() 시대에 흉노를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광(, ?~BC 119)과 함께 '비장()'으로 불리는 무명()을 떨쳤다. <삼국지()>에 주()로 인용되어 있는 '조만전()'에 따르면 민간에서는 그가 탔다고 전해지는 적토마()와 함께 "사람 가운데는 여포, 말 가운데는 적토마( 兔)"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절개가 없으며 물욕이 많아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수(, 233~297)가 편찬한 <삼국지>에 따르면, 여포는 하내(内, 지금의 )에 주둔했던 병주자사() 정원(, ?~189)의 가신()으로 그 무용이 높이 평가되어 주부(簿)로 중용되었다. 189년 후한의 영제(, 재위 167~189)가 죽은 뒤 십상시()를 제거하려 한 대장군 하진(, ?~189)의 부름으로 정원()과 함께 도읍인 뤄양[]으로 갔다. 조정의 실권을 놓고 정원과 동탁(, ?~192)이 대립하자, 동탁의 편에 서서 정원을 살해하였다.  

그 뒤 동탁의 신임을 받아 그의 양자가 되었으며, 기도위(),중랑장() 등의 벼슬을 하였으며 도정후()로 봉해졌다. 하지만 동탁이 뤄양을 파괴하고 장안(, 지금의 西)으로 천도하는 등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폭정을 하자, 사도() 왕윤()과 모의하여 동탁을 살해했다. 그리고 헌제(, 재위 189~220)에게 분위장군()으로 임명되고 온후(温)로 봉해졌지만, 동탁의 출신지인 양주(涼, 지금의 지역)의 군대를 이끌고 장안()을 공격해온 곽사(汜), 이각(傕)에게 패하여 무관()으로 퇴각하였다.

그 뒤, 여포는 형주()의 남양(, 지금의 )에 주둔하고 있었던 원술(, ?~199)의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하북()에서 흑산적(黒)과 대치하던 원소(, ?~202)와 합세하였다. 여포의 부대는 장연(, 153~?)이 이끌던 흑산적을 격파하였지만 약탈을 일삼아 원소의 불만을 샀다. 원소가 죽이려하자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진류태수() 장막(, ?~195)에 의지하였다가, 다시 하내(内)로 가서 장양()에 의지하였다. 193년, 조조(, 155~220)가 서주()의 도겸()을 공격하자, 여포는 장막과 함께 조조의 본거지인 연주(兗, 지금의 )를 공격해 그 대부분을 점령하고 연주목(兗)이 되었다.  

그러나 195년 조조의 군대에 패하여 연주에서 퇴각하여 도겸()에게 서주(, 지금의 일대)를 물려받은 유비(, 161~223)에 의지하였다. 그러나 유비가 원술과 전쟁을 벌이는 틈을 타서 유비의 본거지인 하비(邳, 지금의 )를 빼앗고, 스스로 서주자사()라고 칭했다. 소패()로 물러난 유비가 구원을 청해오자 여포는 원술의 무장()인 기령(霊)과 유비 사이의 화해를 중개하였으나, 그 뒤 다시 유비를 공격해 소패를 빼앗았고, 유비는 결국 조조에 의지하게 되었다.

서주()에 자리를 잡게 된 여포는 한때 혼담을 주고받으며 원술과 연합을 추진했지만, 혼담을 깨고 조조와 손을 잡았다. 화가 난 원술은 대군을 보내 여포를 공격했지만 크게 패하고 물러났으며, 여포는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조조에게 좌장군()의 직위를 받았다. 198년 여포는 다시 원술과 손을 잡고, 소패의 유비를 공격했다. 조조가 유비에게 원군을 보냈지만, 소패는 함락되었다. 그러자 조조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서주()를 공격했다. 여포는 하비성()에서 조조의 군대에 포위되었다. 3개월 동안 농성전()을 벌였지만, 결국 부하인 후성(), 송헌(), 위속()의 반란으로 조조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아하 여포도 꽤 대단한 사람이었었구나! 암튼 나는 오늘 이 대삼국지에서 여포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서 기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도 이런 삼국지를 많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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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대 삼국지 2
조병만 지음 / 수필과비평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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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대 삼국지2라는 책을 읽고 장비가 나왔길레 장비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장비 : 자는 ‘익덕()’으로 《삼국지연의》에는 ‘익덕()’으로 표기되어 있다. 성격이 호쾌하여 생각한 바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기질의 인물이었다. <삼국지연의>에는 유비()와 관우()를 만나 의형제를 맺었다는 도원결의()의 고사가 전해지지만 이는 창작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후한() 말 동란기에는 유비, 관우와 함께 공손찬, 공융, 도겸 휘하에서 장수로 참전하여 많은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다.  

아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장비가 그냥 삼국지3명 중에 1명인줄만 알았는데, 오늘 이 책을 읽고 쓰다가 장비를 알아서 기쁘다고 생각한다. 그럼 계속 알아보자.  

유비가 조조에게 패하자 3명은 흩어지게 되는데 이때 장비는 망탕산에서 탈출하여 고성현에 세력을 구축하고 눌러앉게 된다. 이후 다시 유비와 관우를 만나 합류하여 유비와 함께 제갈량을 찾아간다. 조조()가 형주()를 공격해 오자 당양 장판교() 위에서 기병 20기를 데리고 "내가 장익덕이다"라고 일갈하여 추격해 오는 조조군을 물리친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는 승리를 거두었다. 유비의 익주() 공략 때는 주력을 이끌고 큰 공을 세워 파서태수(西)가 되었다. 위()나라의 명장 장합()이 장로()를 무찌르고 파서로 밀고 들어오자 역전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거기장군()·사례교위()에 임명되었다. 장비는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였고 지나치게 부하들에게 엄격하여 원성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유비에게 훈계를 자주 듣기도 하였다. 유비가 형주에서 죽음을 당한 관우의 복수를 위하여 오()나라 동정()을 명했는데 종군할 준비를 하던 중 술에 취해 잠이 들었을 때, 자신의 부하였던 장달과 범강에게 암살되었다. 관우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용장으로 일컬어진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장비가 그냥 삼국지 중에 1명인 줄만 알았는데, 오늘 이 삼국지 책으 읽고 쓰다가 장비가 유비와 관우와 함께 공손찬, 공융, 도겸 휘하에서 장수로 참전하여 많은 전쟁에서 용맹을 펼친사람인 것을 알았다. 한국사와 삼국지는 왠지 같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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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12 - 고려시대 혜종~현종편 맹꽁이 서당 12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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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이 맹꽁이 서당12라는 책을 읽고  성종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종 :  휘() 혈. 시호 강정(). 세조()의 손자, 추존왕()인 덕종()의 아들. 어머니는 한확()의 딸 소혜왕후(), 비()는 한명회()의 딸 공혜왕후()이며 계비()는 우의정 윤호()의 딸 정현왕후()이다. 1461년(세조 7)에 자산군()으로 봉해졌으며, 1468년에 잘산군(乽)으로 개봉되었다.

1469년(예종 1) 13세로 왕위에 올랐는데, 7년간 세조비() 정희대비()가 수렴청정()하였다. 1476년(성종 7)부터 친정()을 시작하였는데, 세종()·세조()가 이룩한 치적을 기반으로 하여 빛나는 문화정책을 펴나갔다. 숭유억불() 정책을 철저히 시행하였으며, 1474년(성종 5)에는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이를 반포하였다. 1492년(성종 23)에는 《경국대전》을 더욱 보충하여 《대전속록()》을 간행하였다.

서적의 간행에 힘을 써서 《여지승람(輿)》 《동국통감()》 《동문선()》 《오례의()》 《악학궤범()》 등을 편찬·간행하였다. 한편 윤필상()·허종() 등을 도원수로 삼아 두만강 방면의 여진족 올적합()의 소굴을 소탕하였으며, 압록강 방면의 야인()을 몰아냈다. 또한 세종 때의 집현전(殿)에 해당하는 홍문관()을 설치하고, 문신 중의 준재()를 골라 사가독서()하게 하는 호당() 제도를 두어, 유자()·문인들로 하여금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였다.

더욱이 세조의 찬역()을 도와준 훈구파() 학자들과 대립 관계에 있는 이른바 사림파()에 속한 사람들을 과감하게 발탁하는 등 인재등용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조선 전기의 문물제도는 성종 때에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학문을 좋아하였고 사예()와 서화()에도 능하였다. 능은 선릉()이다.

나는 오늘 이 책을 읽고 성종이 조선 제 9대 왕인 것을 알아서기쁘다. 왜냐하면 책을 대충읽을 때에는 성종이 어디있는 지도 몰랐는데 다행히 책을 제대로 읽어서 성종을 기억해 쓴 것 같아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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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11 - 고려시대 태조편 맹꽁이 서당 11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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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어제 이 맹꽁이 서당11 이라는 책을 읽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 써보고 풍수지리설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겠습니다. 

고초 : 좋지 않은 일을 당하여 괴로움을 느끼는 상태 

기한 :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배고프고 추운 상태 

탐학 : 욕심이 많고 포악함 

접경 : 서로 맞닿은 두 지역의 경계 

탐관오리 : 욕심이 많고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 

문책 : 잘못을 묻고 꾸짖는 것 

변경 :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 

삼매 :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집중시키는 일 

모멸 : 업신여기고 깔보는 것 

혹세무민 : 세상 사람을 속여 세상을 어지럽힘 

와! 역시 내가 모르는 단어들은 수두룩 하네... 그리고 모르는 단어를 알아서 나중에 국어때 필요할 것 같아서 책을 읽은 보람이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럼 풍수지리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풍수지리설이란 산천의 형세, 물의 흐름, 땅의 모양을 두루 살펴 인간 사회의 길흉화복을 해석하려는 인문 지리학의 한 학설. 자연 현상적 변화가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이미 중국의 전국 시대에 출현했고, 한나라 때 음양오행설과 참위설을 받아들여 이론화되었으며, 당나라 때 널리 유포되었답니다. 

이것이 다시 선종과 결합하여 신라 말에 우리 나라에 유입되었고, 도선이 이를 널리 퍼뜨렸지요, 풍수지리설은 왕건이 개성을 중시으로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에 관한 저서로는 도선이 지었다는 <도선비기>, <도선답산가> 등 수십 종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모르는 단어가 아주 많기는 하지만 다행히 모르는 단어를 찾아 쓰고 풍수지리설에 대해서 써서 더욱 더 이해가 갔지만, 그 무엇보다 만화로 되어있는 한국사 만화이므로 더욱 이해가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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