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어떻게 잡고 써야 하는지부터 어떤 종이에 쓰면 번지지 않고 좋은지, 내가 쓴 글씨를 스캐너를 사용해 이미지로 만들고 보정하는 과정을 상세히 알려 준다. 예를 들면 해상도를 몇 dpi 로 받아야 인쇄물에 활용할 수 있는지 등... 평생을 캘리그라피를 즐기며 살아온 저자가(서예가 좋아서 대학도 미술대학의 서예과에 진학했다고) 캘리그라피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꿀팁을 알려 주고 싶어서 펴낸 책이란 느낌.
어떤 일을 겪은 후로 책을 못 읽겠단 말을 귀 기울여 들어 준 사람이 선물한 그림책. 글씨 없이 그림만 있는 그림책이다. 마침내 세상이 망했나? 장대비가 내리는 바다에서 흰곰이 나무집을 향해서 헤엄쳐 가고 있다. 뭍이 나오지 않는 망망대해가 무섭지도 않은지 흰곰의 미소에는 여유까지 비친다. 비가 그치고 나자 이번에는 갈색곰이 조각배를 타고 온다. 시간이 또 얼마나 흘렀을까? 바다의 수위가 훌쩍 내려간 어느 날, 살아남은 동물들이 나무집을 찾아온다. 흰곰과 갈색곰만 살던 집이 시끌벅적해졌다. 모두가 돌아가고 나무집엔 또 다시 두 곰만이 남는다. 한바탕 먹구름이 몰려오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겨울을 나야 하는데 흰곰과 갈색곰 여전히 유유자적하다. 고요한 달밤, 두 곰이 나란히 앉아 달을 올려다본다. 내가 본 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두 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적어도 내일 우리가 멸종할 거란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달빛을 받은 두 곰의 표정이 무척 평화로웠고 자포자기했단 얼굴도 아니었으므로. 판도라 상자 속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건 희망이었다. 이 책을 선물한 사람은 길 없는 곳에 길을 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두려울 때도 있고 지칠 때도 있을 터인데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너는 걸어간다. 네가 예전에 내게 이런 말을 했지. 나도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너를 응원할 거야. 내가 보내는 구조신호에 응답해줘서 정말 고마워.
˝난......˝마지막 장의 테오 대사다당구대 위에 뉘인 제 형의 주검을 보며 테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빈센트에 감정을 이입하고 테오의 시점으로 빈센트를 보았기 때문일까?책을 읽는 내내 캄캄한 밤에 웅크리고 돌아누운 내 뒷모습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어 슬펐다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본 건 중학생 때였다미술 책에 실린 해바라기 그림이 맘에 들어 색종이 모자이크를 했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관심 가진 화가인데 지금까지 내가 알던 빈센트 반 고흐의 얘기는 그의 동생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들, 고갱과의 에피소드 정도였다고흐의 그림이 그토록 이글거리는 건 아를의 태양 때문이었다그의 그림 속 소용돌이는 바람이었다고흐는 북서풍을 영원히 캔버스에 붙잡아 놓은 것이다파리에서 지낼 적에 매일 밤 동생 테오의 침대 맡에서, 생 레미의 정신 병원에서 백치에게, 세상을 향해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았던 고흐...여운이 몹시 오래 남는 책이다이 책을 추천한 이에게 고맙다2014년 4월 7일 카스에서
황정은 작가의 파씨의 입문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이번에 느낀 점은 이 책의 각 단편을 정말로 단편으로 인식하고 읽어도 될 것인가, 였는데 `개수 구멍 없는 개수대`가 세 단편 <야행>, <낙하하다>, <뼈 도둑>에 계속해 등장한 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뼈 도둑>에서 조가 부동산 중개인에게 개수 구멍 없는 개수대에 말라 붙은 채소 조각들을 내려다보며 이 집에 누가 살고 있냐고 묻는 장면에 이르러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고씨 한씨 곰과 밈 네 가족이 살던 외딴 집과 한 노인이 지내던 집, 조가 머물던 집은 모두 같은 집인가? 삼 년째 떨어지고 있다는 <낙하하다>의 주인공은 <대니 드비토> 단편에 재등장해 깊이 깊이 상승하고 있단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사라지기도 한다 황정은 작가의 소설 속에 사는 화자들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걸까?2014년 3월 27일 카스에서
봄비가 어룽어룽 번지는 10권 풍경... 레이가 긴긴 폭풍우 속을 지나온 뒤라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처럼 언제고 또 폭풍우가 몰아쳐도 레이는 이제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