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륜적인 죄를 지은 인간도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가?
죽어 마땅한 범죄자가 사형 당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사법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의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 나를 보호하고 대변하고 있나?
작가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질문은 작가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의미가 퇴색했다.
자기 의지로 죄를 지은 인간이 뉘우치고 죗값을 치렀다면 과거는 청산되나?
범죄에도 경중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헷갈린다.

성범죄를 불필요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스톡홀름 증후군을 가볍게 취급하고 있는 설정, 흉한 외모로 배척 당한 경험 때문에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서사를 끌어와서 주인공을 끝까지 연민하는 방식이 독자에게 혼란을 가중한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피해자를 온전히 보호하고 대변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속인 사법 제도를 말해야 했다. 그래야 했던 게 주인공에게 준 면죄부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 엉뚱한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를 가리키게 되었다.

중반까지 재밌게 잘 읽다가 밀려오는 당혹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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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전세주택에 막연히 관심이 있었는데 서울 시에서만 운영한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네. 이런 걸 학교에서 가르치면 좀 좋아.
청년 1인 가구 외에 예비 신혼 부부, 신혼 부부, 자녀가 있는 젊은 부부 등 가족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어 해당하는 이들이 30분만이라도 집중해 읽는다면 금방 개념이 설 듯.
정말 유용한 책인데 내가 저 그룹들에 하나도 해당하지 않아서 씁쓸할 뿐. 주거 정책 사각지대에 내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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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

야속한 시간,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중에서 (재인용)

-「프롤로그」에서

"저는 지루함을 좋아해요!"
농담이 아니다. 나는 지루함이 재평가받을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삶을 한 편의 시로 만드는 데에 가장 필요한 키워드는 놀랍게도 지루함의 대명사인 반복이다. 비슷한 음이 반복될 때 리듬이 만들어진다. 반복된 것 속에서 멜로디가 탄생한다.
잘 쓰인 시 속에서 노래가 들리는 건 비슷한 단어나 문장이 반복될 때 생기는 음악성 때문이다. 대구, 수미상관 같은 문학적 장치의 본질은 반복이다.
규칙적이라는 말이 가지는 무겁고 딱딱한 느낌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단순한 반복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반복을 지루함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반복을 음악으로 인식하는 사람의 삶이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매직」 리뷰 중에서 (재인용)

-「일상을 시로 만드는 마법」에서

뉴욕 맨해튼 중심에 센트럴 파크가 있습니다. 구글맵에서 보면 직사각형 모양의 녹색 공간이에요. 맨해튼의 도시 설계자였던 로버트 모지스는 설계 도중 누군가에게 이런 조언을 듣게 되었어요.
"만약 맨해튼의 중심부에 큰 공원을 설계하지 않으면, 5년 후에는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  
바쁠수록 우리에게는 빈 공간이 필요해요.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똑같은 일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어요. 동료의 실수를 그의 무능함이 아닌 피곤함으로, 짜증을 연민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죠.
만약 당신의 인생이 하나의 긴 문장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합니다.

-「가끔은 쉼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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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지막으로 존을 만나러 프린스턴에 갔을 때, 나는 그와 오랫동안 산책을 했다. 그의 목소리가 작아서 놓친 말들이 많았는데, 연로한 그에게 자꾸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나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도 없고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의 생각이 옳은 것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의 생각이 내 평생의 연구를 이끌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가 양자중력의 미스터리에 가장 먼저 근접한 사람이었다는 내 생각을 말할 수도 없다. 이제 그는 지금 이곳에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기억과 추억, 부재의 고통, 그것이다.

그렇다고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 부재는 아니다. 고통은 애정과 사랑에서 시작된다. 애정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부재의 고통도 없을 것이다. 결국 부재의 고통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성장하는 것이므로 선하고 아름답다.

-「08 관계의 동역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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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저는 그것이 사람이었든 물고기였든 혹은 네시였어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그가 저한테 한 번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저는 집에 가서 엄마를 돌보며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뿐이에요. 다음에는 정말 이런 일이 있으려야 있을 수도 없겠지만,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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