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자체가 지략으로 빛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조조의 모사들은 다른 주인공들의 모사들처럼 찬란한 빛이 나지 않았다. 유비에게 제갈공명이라는 모사가 있었고, 손권에게 주유, 노숙, 육손 같은 모사가 있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지만, 왠지 조조의 모사들은 비슷비슷한 느낌을 준다. 순욱, 순유, 정욱, 곽가, 가후 등 쟁쟁한 모사들이지만 제갈공명이나 주유 등이 주연급 비중을 가졌다면, 조조의 모사들은 조연급 위치를 갖는다. 조조는 여러 모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중 1개를 택하는 전략을 많이 취했기 때문인것 같다. 조조의 위나라가 경영전략실을 갖춘 대기업이라면, 손권의 오나라는 영업과 기획이 함께 움직이는 중견기업, 유비는 조직 구분이 모호한 벤쳐기업 같다. 자기 주장이 강한 제갈공명이 유비를 주군으로 선택한 것은 단순히 유비가 3번 찾아온 정성 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공명입장에서는 위나 오로 가봐야 이미 자기 자리가 없음을, 그리고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임해주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조조의 모사들 중에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한자가 순욱이다. 조조가 전쟁을 치를때마다 수도 허창을 맡겼으며, 관도대전때는 모두가 후퇴를 주장할때 홀로 진군을 주장하여, 승리의 1등 공신이 되기도 한 순욱. 민감한 후계자 책정 문제에도 조심스럽게 처세를 잘 해나갔던 순욱이지만, 한왕조의 지속을 꿈꾼 순욱과 황제가 되고 싶은 말년의 조조 사이에 틈이 생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이들처럼 대세를 따를 수도 있었건만, 그는 뜻을 꺽지 않았고, 결국 조조가 보낸 빈도시락을 보고 자살로 생을 마친다.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는 평생 일관적이지 않다. 10년전에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이미 내앞에 있는 그사람이 아닌것이다. 흔히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쉽게 망각하여, 다른이에게 상처를 받게 된다. 사람이 변했다면서. 그러나 내가 변하듯이 남들도 변한다는 사실을, 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은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일등공신으로 평생을 살아오다가 말년에 오너와 틈이 생겨 자살로 생을 마친 순욱을 보며, 이 땅의 수많은 중년의 직장인들은 어떤 울컥하는 감정을 느낀다. 굽히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굽힐 수가 없는것, 아닌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직장인의 마지막 자존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