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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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처음 마주한 장강명 작가의 책


<당선,합격,계급>,<한국이 싫어서> 등으로 유명한 작가 장강명님의 책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지 않았고 어디선가 기사는 읽어본적이 있을까 하는 정도에서 처음 든 그의 책은 에세이라고 하기엔 다른 에세이에 비해 무게감이 있게 느껴졌다. 어떤 사물을 보고, 현상을 보고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써내려가게 되는 일반적인 에세이들은 그들의 감성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반면, 그의 에세이는 자신만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01.에세이인데 쉽게 읽혀지지 않은 까닭


처음에는 표지를 보고 일반적인 에세이와 다를다 없겠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뭔가 밝은 분위기의 자신의 감성을 담은 에세이집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팟캐스트 <책,이게 뭐라고>의 에피소드를 담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점점 하나하나의 주제를 담은 에피소드를 읽어가면서 느낀 것은 책에 대해 정말 진중한 자신의 생각,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담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잠시의 어떤 기분을 같이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에세이에서 벗어나 나는 나 나름대로 작가의 생각과, 다른 작가들 그리고 요조님의 생각을 읽으면서 다른 분들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책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나 또한 책을 읽는 나의 행위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반추해보게 된 계기가되었다. 나는 책을 어떻게 생각하는걸까. 그리고 이제 보는 시대에 접어들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닌 보는 시대, 그리고 듣는시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므로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힘들다.그저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뿐. 하지만 글을 읽는 행위에 대해서는 깊에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어릴때부터 좋아했던 일을 지금까지도 해온다는 사실 그것하나만 생각하며 여기까지왔다 현실에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사실 현실이 너무 싫을 때에는 현실도피를 위해, 그리고 도무지 삶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을때 혹시나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갔다.


나의 책읽기는 사실 그 정도에 그쳤던 것 같은데, 이 에세이를 읽고나서 내가 느낀 점은 책 읽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책읽기를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나 또한 깊게 생각해보니 책 읽기란 어쩌면 나에게도 커다란 인생의 한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책 종이에 대한 냄새를 좋아해서 그리고 전자책을 보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종이책만을 고집하다보니 집에 책이 넘쳐 골치아프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했는데, 작가가 이야기하는 줄간격을 내가 조절할 수 있고,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으니 또 그것 또한 전자책의 매력의 하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02.책을 읽는 것에 대해,말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책을 읽고 책을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웹소설 작가와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독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작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온전한 자신의 글을 쓰고 싶은데 독자의 말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인기의 가이드에 따라 결말을 어찌할 수도 없는 위치의 작가들을 보면서 온전히 자신의 글을 쓰기란 참 힘든 일이구나. 그래서 작가들은 대중적인 글을 어떤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쓰기도 하고, 또 자신만의 글을 쓰는 시간을 따로 투자하기도 하면서 사는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나만의 창의력을 펼쳐, 글을 쓰는데 있어 자신의 역량을 맘껏 펼치기보다는 어느 선에 갇혀있게 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요즘 댓글이란 것의 역효과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편 한편 결제하면서 보는 웹소설을 나도 즐겨보긴 하지만 사실 나는 결말이나 다른 내용에 대해 터치는 하지 않고 보는 편이다. 댓글을 사실 잘 남기지도 않지만. 나 같은 경우 웹소설도 하나의 창작의 영역이라 생각해 작가의 역량과 스토리구성을 믿고 보는 편이다. 결말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달라도 상관없고, 서브 남주가 죽든, 작가가 보여주는 스토리가 나는 "찐" 스토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결말과 구성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들의 경우 사람들이 책을 많이 보지 않고, 생활비등등의 금전적인 부분이 힘들어 휘둘리는 경우들도 많이 있다고 하고, 또 인기있는 소설이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들이 있으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그에 휘둘려 정말 독자들을 위한 소설을 쓰는 분들도 있으리라.


무엇이 되었든, 책이란 무릇 나의 경우 읽는 사람이 있어야하는 것이고, 작가들도 내 책을 내가 소장하는 느낌으로만 출판하는 것이 아니니 독자들은 책이나 웹소설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고 자신의 생각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작가들은 더 나은 스토리짜임새와 글을 위해서 자신만의 길을 가되, 독자들을 너무 고려하지 않는 책을 쓰는 것은 조금 생각해줬으면 하는게 나의 개인적인 바램이다.


나는 종이책이라는 것에 갇혀서 사실 전자책, 혹은 팟캐스트,오디오북은 시도만 해보다 결국은 매번 실패를 하게 되는데 어쩌면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 이러므로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내가 다양한 방법으로 글을 읽는 것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그리고 책을 보는 것으로 동영상으로 많이 건너가는 시대에 , 이젠 책쓰기도 꼭 활자가 아닌, 말하는 역량으로 더 글쓰기만큼 풍부한 사실, 정보, 그리고 생각을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또 다른 영역으로 발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책을 대하는게 이젠 대세인 것 같으니 말이다.


03.내가 책을 읽는 이유


책을 읽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된다라거나, 뭐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이 없다 이런 것은 그냥 하나의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가 나에게 이야기했듯이 책을 읽는다고 끝나는게 아니라 그 책에서 내가 흡수할 것은 흡수하고 실천을 해야 사실 좋은 삶, 좋은 생각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실천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매번 깨닫기 위해서 책을 읽고 있다. 저자처럼 가끔은 무언가 잘안될때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책에 파고드는 경우들도 많다. 바닥에서 일어나기 위해서, 더 나은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다 각각 다르다고 보지만. 지금의 나와는 다른, 발전하는 더 나은 내가 되려고 읽는 것은 아닐까 이점은 공통적이지 않을까 하고 나 자신은 한 번 생각해본다. 장강명작가의 에세이는 처음 읽어보았지만. 개인의 철학이 담긴 책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가벼운 마음보다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이게 뭐라고>는 나 자신이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말하는 책, 읽는 책, 쓰는 책 다양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의 에세이들은 한두시간이면 다 읽어내었는데, 이 책은 생각의 구렁텅이에 매번 빠뜨려서 일주일은 넘게 읽고 곱씹고 했던 것 같다. 작가말마따나 에세이를 정말 잘 쓰시고, 어떤 상황에서든 에세이를 뚝딱 써낼 것 같은 작가고, 그렇지만 그 글은 가볍지는 않을 것 같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한 번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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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헝거 게임 시리즈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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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은 소설을 통하기보다는 먼저 영화로 만나봤었다. 캣니스 역할의 제니퍼 로렌스는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참 탁월했던 캐스팅이라고 생각이 될만큼 소설의 주인공과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영화를 보면서 환타지 요소가 많은 일반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고, 영화로 보았을때는 계급사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책을 마련해서 1~3권의 헝거게임을 다 읽어내었을 때 소설의 깊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 전투의 씬이 중요했던 영화가 아니었구나 , 시각적인 효과뿐만이 아닌 사회적인 메세지를 담은 소설이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헝거게임>하면 나는 <설국열차>를 많이 떠올리게 된다. 최고의 열차칸은 판엠의 캐피톨에 해당이 되고, 나머지는 12구역으로 보여진다. 물론 차이점은 있지만 최상위층이 자신들의 권력,부를 가지기 위해 다른 구역의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고, 잔인하게 대한다는 사실은 동일하단 생각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헝거게임은 자신들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12구역의 사람들이 캐피톨의 사람들보다 현저히 낮은 계급임을 자주 알려주고 공포심을 불어넣어 캐피톨 사람들에게 항거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번 <헝거게임>의 신작,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는 이전작에서 헝거게임 트릴로지에서 판엠을 통치한 악랄한 독재자 코리올라누스 스노우의 젋은 날(18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명예는 있지만 돈이 없어 점점 몰락해가고 있는 가문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 헝거게임을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킬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헝거게임에서 우승만 한다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스노우 가문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멘토로서 가장 최약체의 여성인 '루시 그레이 베어드'를 배정받게 되고, 우승에서 멀어지게 된 것 같아서 절망하던 끝에 그녀가 너무 매력적이고 또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알게된 후,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게임시작 전부터 주변에서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서 경쟁자였던 조공인들은 절반의 숫자가 줄어든 채 본격적인 게임을 하게 되고, 그녀는 몸을 숨기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버티고, 남게 된다. 그 사이 코리올라누스 스노우는 세금의 압박을 받게 되고, 집을 팔아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더더욱 우승을 간절히 바라게는데...


여기서 우선 같은 점이 있다면, 이전의 헝거게임과 비슷한 점은 처음에 최약체인 여성으로서 출발을 한다는 점과, 그녀는 다른 조공인들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는 루시 그레이베어드가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녀는 캣니스의 강인한 면과는 조금 다르게,아름다움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 특히 목소리의 아름다움으로.


스노우가 집권했던 시절과는 달리 어릴때의 스노우가 존재하였던 시대에는 그래도 어린 아이들에겐 도덕심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지금은 헝거게임으로 , 또 12구역 사람들에게는 잔인한 지도자 스노우는 어릴 때 가문의 몰락이 어떤 것인지 알았고, 또 돈이 없다는 것이 어떤 위치에 처해지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알았다. 자신의 생존이 위험에 처해진다는 것. 자신이 지켜내지 않는다면 12구역의 조공인들의 삶과 다르지 않은 노예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여 현재의 위치까지와서 캐피톨을 지배하고 잔인하다 불리우는 헝거게임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마 이 신작을 통해서 사람들은 알 수 있을리라 생각한다. 가난에서 허덕이는 몰락한 가문에서, 그가 권력을 지기까지 그의 마음의 변화를 따라가보는 것도 이 소설을 보는 재미 중의 하나이며, 어쩌면 헝거게임이라는 게임 자체가 캐피톨의 잔인한 사람들과 동일한 사람이 되어가는 하나의 과정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조공인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두려워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지금의 캐피톨의 사람들처럼 잔인함을 점점 갖추게 되는 것이 아닌지. 스노우처럼 어떤 층의 아래에 있다가 최후의 승자가 되면 달콤한 부의 맛을, 권력을 맛을 그래도 알아가게 된다는 그것이 말이다. 헝거게임은 12구역의 사람들에게는 캐피톨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동시에, 잔인한 또 다른 캐피톨의 사람을 탄생시키는 엔터네인먼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 소설을 보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오랜만에 본 헝거게임, 소설의 뒷맛은 쓸쓸함을 항상 남기지만, 그래도 소설 속에서 항상 희망의 불씨는 존재하고 그러므로 너무 어둡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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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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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아마 이 소설에 나오는 보경과 같은 사람들. 남편이 사고로 죽게 되고, 내 아이가 다리를 다치게 되고, 그러다보니 나의 꿈을 포기하고 식당을 차려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것에만 급급한 날들처럼. 이처럼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진 않았다고 한들. 현대를 살아며 하루살이 같은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지도 모른다. 보경에겐 미래를 보기보다는 현재를 살아내기도 버거웠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을 시간도, 자신의 상처를 보듬을 시간도 없이, 남편이 죽었던 그때, 자신이 화상을 입게된 그 때, 딱 그 때 시간이 멈춰버렸다. 그녀의 시간은 흐르지 않고 정지한 것이다.


미래는 밝지 않고 어둡기만 하다. 코로나19와 연이은 태풍의 공격. 경제적 상실 등 힘든 일을 계속 겪꼬 있고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 지금 우리도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고 밝은 미래를 꿈꾸기가 어렵다. 코로나19는 이제 우리 인생과 공존해야할지도 모른다. 라고 하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다른 바이러스의 위험에도 우린 계속 노출이 될 지도 모른다. 미래에는 그래도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바이러스를 퇴치할 약도 , 인공의 다리도, 팔도 , 눈도 지금과는 다르게 발달할 것이며 장애라는 것은 어떠한 장애물도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은혜처럼 가난해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댈 수 없을 때는 기술의 발달도 모두 필요없을 것이다. 가난은 미래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어려울 때에 많은 사람들은 '도박'이나 '사행성'이 짙은 일에 빠지기 마련이다. 미래에도 도박이 있을까? 사행성을 띤 일들이 있을까?했더니, 경마경주가 있다. 물론 현대와는 다르게, 말은 살아있는 동물이지만. 기수는 로봇을 택했다. 말에게 무리를 체중으로 무리를 주지 않는 로봇기수들은 쓸모가 없어지면 폐기되고 만다. 말들도 죽어라 뛰지만 그들의 연골이 닳아 더 이상 뛰지 못한다면 안락사 외에 말들의 또 다른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푸른 초원에서 뛰던 경험도 없고 , 주로를 달리는 일 밖에 하지 못했던 말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때까지 초원을 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투데이와 콜리. 그들은 다른 기수와 말과는 달랐다. 서로 호흡하며 달리고 콜리는 투데이가 달리면서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계속 달리다보니 투데이가 아픈 것도 알았고, 아파서 자신의 체중이 무리가 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콜리는 투데이가 더 행복해하며 달릴 수 있도록 낙마를 결심힌다. 콜리는 어느 기수들과 달랐다. 로봇이지만 파란하늘이 예쁘다 라는 것을 알았다. 낙마하면서 행복함을 느끼려고 했던 로봇은 콜리외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콜리를 알아보고 폐기되기 전에 불법으로 연재는 콜리를 사왔다. 하반신은 없지만. 자신이 고쳐주리라.

 

알바를 해서 받은 돈 모두를 주고 온 콜리는 연재에게는 보경의 배우의 꿈 같은 것이지만 동시에 상처이기도 해서 감히 근접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소설에서 보경,은혜,연재는 서로 따로 살아간다. 서로의 상처를 꼭 안은채 티내지 않고 자신 스스로 깊은 구덩이에 감추고 만다. 하지만 연재가 고쳐 말을 할 수 있게 된 콜리는 우선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가 되고, 또 가족들에게 여러 질문을 함으로써 그들의 깊은 수렁에서 조금씩 현실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상처를 헤집고서라도 이젠 지금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가 된다.


<천 개의 파랑>은 콜리를 통해 보경의 가족들이 과거의 상처를 딛고, 다시 가족으로서 힘을 합쳐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빨리 달리는 투데이는 천천히 달리는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천천히 달리는 힘을 모른다. 간신히 얻은 경기참여 기회에서 콜리와 민주,복희,그리고 은혜,연재 모두는 투데이에게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달리는 법을 알려준다. 그렇게라도 달리는 기쁨을 다시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경주에서 1등 말이 아닌, 천천히 달리는 투데이에게 사람들은 깡통을 던지고, 야유를 퍼붓지만 콜리는 투데이가 행복해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콜리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 또한 행복을 느낀다.


과학소설이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행복과 위로, 애도와 회복, 정상성과 결합, 실수화 기회, 자유로움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는 것을 , 그리고 나만 애쓰는 것이 아닌 주변을 돌보고 같이 힘을 합쳐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자칫 바빠서 보지 못했던 것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조차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 천천히 나아가면서 하늘을 바라보라고 한다. 그리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라고 한다. 소설을 읽으며 천천히 호흡을 함께 하는 동안 나도 파란 하늘을 오랜만에 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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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말 -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선 불꽃 인생
나혜석 지음, 조일동 옮김 / 이다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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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영원한 신여성으로 불리는 사람. 나혜석.

그녀는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서양화가이자, 작가로서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운동가라고 한다. 그녀의 글들을 엮은 집 나혜석의 말은 그녀의 글을 통해 당대에는 얼마나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는지 알 수 있다.


그녀 자체가 자신은 신여성의 대표인물이라 여겼으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자신이 개척하여 뒤따라오는 이들이 고통 속의 삶을 살지 않기를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래왔다. 이는 그녀의 글인 설산을 걸으며 남긴 글에서 잘 나타나있으며 그녀가 가는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길이 얼마나 캄캄했던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산 정상을 향하고 푹푹 빠지는 길도 모르는 데를 아무려나 밟아 올라갔소. 올라가다가 나는 깜짝 놀랐어요.이 추운 아침에 누가 벌써 이 험한 길로 이 두려운 눈을 밟고 올라간 발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남들이 다 따뜻한 자리에서 단꿈에 취했을 때에 얼마나 바쁘기에 이 추운 아침에 여기까지 왔고, 얼마나 부지런하기에 남들이 다 자는데 벌서 이 꼭대기에가지 다녀갔나?


-중략-


믿건데 먼저 밟으시는 언니들이여! 푹푹 디디어 뚜렷이 발자취를 내어 주시오. 좀체름하게 또 눈이 오더라도 그 발자국의 윤곽이나 남아있도록. 깔려있는 백설 위로도 만곡 요철이 보이건마는 그 속에 묻혀있는 탄탄대로는 보이지 않는구려


다행히 누가 먼저 밟아 놓은 발자국을 따라 길을 찾게 되었소마는 그 사람도 몇 군데 헛디딘 자국이 있는 것을 보니 이 두터운 눈을 한 번 밟기도 시리거든. 그 사람은 길을 찾느라고 방황하기에도 얼음도 밟게 되고 구렁이이에도 빠지게 되었으니 그 사람의 발은 꽁꽁 얼었을 것 같소. 동동 구르며 울지나 아니 했는지 몹시 동정이 납디다.


-중략 -


큰 돌멩이에 발부리도 채이고, 굵은 가시가 발바닥도 찌르오. 이렇게 벌써 걸음을 옮기기가 힘들어서야 언제 저기를 올라간단 말이오. ..중략.....아무려나 미끄러져서 머리가 터질 각오로 밟아나 볼 욕심이오."


그녀의 삶은 이러하지 않았을까. 그냥 다른 사람들과 같이 따뜻한 곳에서 잠을 더 자고, 하라는대로 순응하며 살면 되는 것을 미끄러져 머리가 터질 각오로 걸어야하는 백설위로 그녀는 걷기를 다짐한다. 앞서 나간 언니들도 힘내어 더 해주기를 바라지만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이도 있을터 그때는 나혜석 자신이 길을 만들어가면서 발자국을 희미하게나마 남기리라 뒤따라오는 사람이 발자국을 따라 올 수 있도록.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의 지위가 많이 낮았다. 아버지를 따르고 지아비를 따르고 지아비가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라야했던 여성의 삶. 그녀들에게는 투표권도 없었고 사회적인 활동에도 제약이 많았으며 복종하는 삶만을 살아야했던 그때. 여성의 권리, 여성도 사람이외다를 외치며 살아온 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나혜석을 꼽을 수 있는데 그녀는 자신이 개인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였고 또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여성의 삶이 변화하길 바랬다.


그 시대에는 당연했었던 조혼에도 아버지에게 맞서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하며 "경희"를 발표하고, 1919년 3.1운동에서는 여성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활동을 하다 5개월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그녀는 결혼을 하면서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고 늘 선구자로서의 의식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글로 결혼을 하고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경험도 솔직하게 토로하였고 그 당시에는 굉장히 손가락질을 받았을 이혼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혼고백장'이란 글을 발표하면서 조선 사회의 가부장제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당시 사회는 이 글로 인해 많은 충격을 받았고 사회는 이를 비난하면서 나혜석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하게끔 만들었다. 그녀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고통을 받으며 살았는지는 그녀의 죽음에서도 알 수 있는데 영양실조로 인해 무연고자로 명을 달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사람들의 비난과 조소를 받으면서도 선구자적인 길을 걸어간 나헤석. 그녀가 바라는 것은 여자는 사람이라는 것. 여성도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라는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했겠지만 그 이후로 사회가 변화하면서 선거권도 갖게 되고, 여성들이 주체적인 존재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남성과 동등하게 살아가는 사회까지 오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녀가 남겨준 발자국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은 그 길을 밟아 나가게 되었고 지금의 여성들은 그들의 수고를 누리게 되었다. 나는 한없이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은 항상 깨어있어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생각이 든다.

큰 돌멩이에 발부리도 채이고, 굵은 가시가 발바닥도 찌르오. 이렇게 벌써 걸음을 옮기기가 힘들어서야 언제 저기를 올라간단 말이오. ..중략.....아무려나 미끄러져서 머리가 터질 각오로 밟아나 볼 욕심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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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말 -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선 불꽃 인생
나혜석 지음, 조일동 옮김 / 이다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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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된데는 선구자인 그녀들이 있어서 가능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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