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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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 가족>

이 제목을 보고 있자면 정상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상한이라는 말이 꾸밈이 되면서 정상 가족이 이미

정상의 범주가 아님이 느껴지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정상 가족이란 무얼까 ? 라는 물음을 책을 읽기도 전에 생각하게끔 해주는 책.


책의 서두는 아이들에 대한 학대와 체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부모의 책임과 의무, 아이들의 개별성, 가족이란 울타리. 세계의 가족의 형태와 공동체의 책임과 역할 등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과연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이며, 가족은 어떠한 형태이며 어떤 책임과 의무를 띄고 있나를 생각해보게 하고

가족을 넘어 국가란 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우선 첫번째로 나는 체벌,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도 체벌이라는 것을 경험해온 한 사람으로서 , 가끔은 또 체벌이 필요하다 생각해온 사람으로 이 글을 보고 참 많은 반성을 했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왜 아이에게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느 정도의 체벌은 필요하다 생각을 했을까. 꽃으로라도 때리지말라는 어떤 분의 말처럼 누구나 사랑이란 이름으로 체벌을 할 자격이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체벌하는 이유는 어떤 식으로라도 아이들이 내 소유이고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때문이라고 한다. 내 소유물로 보고 하나의 인격체나 개별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학대나 체벌, 그리고 동반자살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기보다, 혹은 아이들을 개별성을 인정하기보다는 나의 소유물로 생각해서 체벌을 하고 학대를 하고 또 나아가서는 동반자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해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은 내 소유라는 ,생각에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가족동반자살을 부모가 자식을 살해를 하고 자신은 자살을 하는 아주 끔찍한 일로 여기기보다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동반자살을 했을까로 조금의 동정을 잊지 않았던 나의 생각에 일침을 가했던 책


아이들은 선택할 수가 없었는데 부모믜 입장에서 자신이 없으면 아이들도 살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리고 살해를 연민으로 포장한 많은 사건들.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을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은데서 왔다는 말에 참 많이 공감했다

이것은 학대나, 체벌, 동반자살에서만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늦은시간까지 학원을 돌고 돌고, 중학생이 되면 더 늦게, 고등학생이 되면 더더 늦게. 부모가 원하는대로 공부만 죽어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에 행해지는 ,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던 .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데 자식을 위한다는 마음에서 행해지는 부모들의 행동이 따지고 보면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생각하고

아이들의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은데서 온다.

어른의 책무는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협박, 위협에 기대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며 정부의 책무는 비폭력적으로 아이를 키우는게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서두의 글들만 인용해서 말이 많이 길어졌는데 ,사실 이 점이 우리가 가장 알아야할 점이라서 그렇다. 우리는 가족이라면 이래햐한다 라는 의무와 책임만 있고 권리가 없는 삶을 많이 살아간다. 믈론 부모들도 서로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경험하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똑같이 예전 우리 부모들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이고

또 우리나라의 경우 , 모든 책임과 의무를 가족에게 짊어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회가 더 나아가기 위해, 저출산을 해소하고 평등을 보장하고 가족들이 더 잘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개별성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필요하고, 국가는 가족에게 책임을 지우려 하지 말고 공동체가 나서서 그런 짐들을 덜어주려 노력해야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리고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생활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의 개개의 가족들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 공동체의 책임과 역할이 크다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족만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했던 구조였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왔고 사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현재는 개별성을 존중하고 공동체의 책임과 의무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왔으니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앞으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개별의 가치를 존중하고 공동체가 가족의 짐을 덜어주어 가족이 없으면 책임져줄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살아가는 이가 없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기대는 아이들이 아닌 미래엔 성숙한 청소년들 자신이 미래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촛불집회에서 또 하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장면은 대거 참여했던 청소년들이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촛불은 든다"라는 어른들에게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한 촛불을 드는 광장에선'아이'가 존중받는 시민으로 설 틈이 없다. 성숙한 '어른'과 미성숙한 '아이'로 구분하지 말고, '우리 모두를 위한 촛불을 들자'라고 화답하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아 우리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기 어려운 민주주의 학습을 광장에서 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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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과학 - 복잡한 세상의 연결고리를 읽는 통계물리학의 경이로움
김범준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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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등학교때 이과를 갔음에도 과학선택과목에서 물리는 거르고 보는 사람이었다. 

화학을 선택했던 나는 화학외에 시간은 딴짓러였고 물리는 소수의 사람만이 선택과목으로 지정하곤 했다. 인기과목은 외우기만 했던 생물이 가장 많았고, 사실 화학도 소수였는데 그나마 화학을 중학교때부터 좋아해서 선택했던듯. 


물리는 힘,가속도,파동 등...계산의 문제가 끊임없이 나왔고 물리를 선택했던 자들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게 F=MA (물리책 처음에 나왔던듯..), 그리고 관성의 법칙(버스를 예를 들어 이야기해서 기억이 나는) 그 외에는 공부를 안해서 모르겠고 지렛대도 나왔던듯 하다...뭐 힘을 덜들이고 물건을 드는 방법등을 물리적으로 풀었던듯. 

아무튼 물리는 너무 머리아파서 나와는,나의 생활과는 밀접하게 관련이 없는 일이라 치부해왔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범준 작가의 저서 <관계의 물리학>을 읽고나서 물리가 생활과 밀접하지 않은 과목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꼭 어려운 계산을 통해서 알아가야하는 학문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난 물리학자는 아니고 물리학자를 꿈꾸진 않으니 


요즘은 과학을 실생활에 연결해서 알려주는 작가들을 많이 만나고 , 그러면서 과학에 대해 쉽게 접근 할 수 있게끔 되었는데 어찌보면 이 책에서 나오는 촛불집회의 성공적인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이와 같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시민저항운동은 폭압적인 권력에 대항해 폭력적인 저항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사실 상당히 위험하고 사람들의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부상의 위험이나 목숨을 잃는 등의 위험이 도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폭력적인 저항운동의 경우 참여에 대한 진입장벽도 낮고 방법도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다. 진입장벽이 낮으면 더 많은 참여자를 모으게되고 늘어난 참여자수는 또 진입장벽을 더욱 낮춘다. 


이에 비폭력저항운동은 성공확률이 높으며 어떤 연구에 따르면 저항의 성공 후 민주적인 정부가 출현할 가능성도 비폭력적인 저항일때가 폭력적저항일때보다 훨씬 더 컸다고 한다. 

변화는 소수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으며 이런 현상을 물리적으로 접근했을때 '상전이'라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상전이'는 물질의 상이 변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나는 현재의 과학계도 변화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사실 논문에서나 확인할 수 있었던 과학적인 활동들을 다수의 깨어있는 과학자들이 사람들이 알기 쉽게 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과학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들이 많이 늘면서 독자들은 과학서적에 대한 진입장벽이 서서히 낮아지고 있으며 , 진입장면이 낮아져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또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상전이 현상을 겪고 있다고 말이다. 


물론 "과학자는 알고자 하지 쓰고자 하지 않는다 P323" 라고 한다. 

쓰이는 것보다는 "점심을 굶더라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100년뒤 , 아니 1,000년뒤에도 여전히 의미이는 질문을 지금 시작해야한다"라는게 과학자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렇게 과학을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일은 , 우리의 미래의 아이들이 과학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더 많은 과학자를 배출해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원리를 과학으로 알아보고 또 다른 현상에 대해 궁금해하고 , 질문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질문을 갖게 되고 호기심이 늘어나면 미래의 꿈이 유튜버가 아닌 과학자라고 외치는 아이들이 지금보다 많아지리라 생각된다. 


그 외에도 잠잠과 후다닥이라는 사람들은 잠잠히 있다가 후다닥 하고 일을 처리하거나 카톡에서도 사람들이 한 명이 말을 시작하면 또 후다닥 다들 대화를 하는 '버스트'현상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고, 국회의원 누가누가 친할까 라는 '커뮤니티'개념의 이야기도 읽어볼만 하다. 

다양한 통계물리학으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더 쉽게 읽을 수가 있고 물리학을 친하게 지낼 수 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책에서의 핵심은 세상은'연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가장 핵심으로 다가오는 책이며, 모든 사례들은 점과 점을 연결하여 복잡계로 형셩된다는 것이다.모든것은 하나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고 나와 너가 연결되어 세상이 되어가듯이 세상의 이치는 상호작용에 의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도 ,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갈때 더 빛나는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물리학도 알고 있는데 말로만 알고 있는 우리가 실천해야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요즘 나만 아는 세상에서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사회현상을 물리로 풀어내고 또 물리의 이론에서 사회적인 가치를 찾아낸 책. <관계의과학>물리를 싫어하던 나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인지 다른 분들도 한 번쯤 읽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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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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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태어나서 길에서 자란 길고양이들.

그들은 골목골목을 누비며 애교를 뽐내기도 하고, 먹을 것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위험에 처해 사람들은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고양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고양이와 할머니>

우연히 고양이를 찍게 되어서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고, 또 책까지 내게 된 전형준 작가는 아예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듯한다. 작가는 자신처럼 고양이에 빠져 고양이와 평생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의 사연을 듣고 그들의 삶을 관찰하는데 푹 빠져있다.

길고양이와 함게 웃고 우는 삶. 그걸 <고양이와 할머니>책에 담아내었다.


#01.어릴적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책

우리 외할머니는 경상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초가집에 사셨는데 외할머니댁에 놀러가면 항상 집을 찾아와 물을 먹고 먹이를 먹던 고양이를 보곤 하였다. 할머니는 매번 찾아오는 고양이를 위해 음식을 밥그릇에 담아 마당에 놓으셨고 물도 마시라며 물그릇도 항상 곁에 같이 두셨다. 어릴적의 나는 고양이의 매력을 모르고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영물이라는 말과 , 공포책에 나오는 고양이의 모습 때문에 무서운 동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지라 할머니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 나비야~나비야~ 하면서 모르는 고양이를 챙기는 할머니를 보면 문득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따뜻함을 느꼈던 것 같다. 겨울에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았던 고양이는 할머니 덕분에 배를 곯지 않고 늘 든든했고 꽝꽝 언 물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햇빛이 잘 드는 날엔 밥을 먹고 한 참 낮잠도 자고 갔던 , 자신의 집이 아님에도 자신의 집처럼 할머니 집을 드나들었던 뻔뻔한 고양이.

길고양이들을 볼때면 가끔 그런 고양이를 챙겨준 마음따뜻했던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02.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히했던 할머니들

우리 외할머니나 책에 나오는 고양이를 소중히 했던 할머니들은 모두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함을 아시는 분들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이상 사람이든 동물이든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것을 할머니들을 통해서 알게 된다.


또 어쩌면 할머니들을 찾는 고양이들은 할머니들의 도움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들도 외로움을 고양이들을 통해서 달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대신하고 있는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는 든든한 지원군 같은 고양이들. 그런 자식같은 고양이였기 때문에 할머니들은 자신의 몸보다는 고양이를 더 챙기고, 한 번 거둬들인 생명은 평생을 책임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03.자식자랑과도 같은 할머니들의 고양이자랑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할머니들은 각자가 고양이를 한마리씩 키우고 있다. 작가가 고양이를 따라다니며 셔터를 누를라치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들은 우리집 고양이도 찍어달라며 사진찍기를 서슴치않고 요청하신다. 이 모습이 흡사 내 자식자랑을 하니라 침이 마를리 없는 영락없는 우리네 할머니같다.

그리고 밥을 안먹는다고 걱정하는 모습도 , 집을 나가서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이루는 모습도 우리네 자식들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의 모습과도 너무나 똑같아 그 따뜻한 마음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04.죽는 날까지 함께 있기를.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찐과 할머니. <고양이와 할머니>책에서는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거기서 마음아픈 이야기도 담겨져 있는데 바로 찐과 할머니 이야기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몸이 아픔을 알고 있어서 계속 찐을 걱정하고. 자신이 잘못되면 고양이를 잘부탁하노라고 계속 이야기하셨다. 그때까지는 몰랐고, 할머니의 건강은 잠시 아픈 것뿐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폐암이셨다. 찐이를 두고 먼저 가야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말을 못하는 고양이지만 평생의 동반자로 여기며 의지했던 할머니를 떠나보낸 찐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른 할머니들은 고양이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죽는날까지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고. 먼저 떠나보낸 우리집 강아지들이 떠올라 개인적으로는 너무 슬펐다.


15년이상을 나와 함께 했지만 떠나보내야했었던 미미와 엄지. 특히 떠나는 날 곁을 지키지 못했던 엄지에게는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리고 지금 집에 잘 적응하고 한 참 예쁨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우리 설이. 설이는 오랫동안 같이 함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이고 죽는 날까지 곁에 같이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가처럼 나도 설이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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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피쉬
대니얼 월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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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피쉬>는 팀버튼의 영화제목으로 알고 있었던 소설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지는 못했고 (개인적으로 팀버튼의 영화자체가 난해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이렇게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빅피쉬>는 영화 뿐만 아니라 뮤지컬로도 나왔는데 아직 공연을 시작하고 있진 않고

2019.12.04~2019.02.09 이 기간동안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니 <빅피쉬>를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이라면 혹은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서 한 번쯤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뮤지컬 공연을 꼭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다.아버지와 함께 보면 더 뜻깊은 공연이 될 것 같다.


소설 <빅피쉬>는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의 생전의 삶에 대한 내용이 번갈아가며 나온다.세일즈맨으로 밖으로만 돌다가 죽음을 앞두고 에드워드볼룸은 집으로 돌아온다. 어른이 된 월리스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보고여태껏 아버지와 진정한 대화를 해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래서 그는 생전에 아버지가 했던 이야기들의 진실과 거짓의 증거를 찾으려고 하고 이를 토대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 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버지는 인간의 존재보다는 신의 존재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하는 일마다 성공을 시키고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무서운 검은 개를 한 손으로 물리치고 마을에 비가 많이와서 위험에 처해있을 때 그는 구름을 몰고 마을 밖으로 나가 비를 멈추게 하는 신비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하나의 건물, 하나의 땅이 아닌 마음에 드는 마을을 통째로 5년에 걸쳐서 구입하고 마을 사람들이 그대로 살게 하였으며자신이 마을을 사겠다 마음을 먹으면 알려지지 않은 늪에 있는 집까지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결국 마을을 통째로 다 사야만(?)하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미래를 보는 유리눈 이야기, 머리가 둘 달린 창녀 이야기등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아버지의 삶에는 가능했다. 그렇게 신비로운 사람이었고 사람들에게 위대했던, 환영받았던 아버지는 집으로만 들어오면 한낱 볼품없는 인간으로 느껴졌다.


이제껏 아들인 월리스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현실속에 아버지가 아닌 신화에나 나오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영원히 죽지도 않을 것 같은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것도 병에 의해 죽어가고 있음을 보고 월리스는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래서 그는 아버지에게 천국은 있는지, 신을 믿는지 죽음이 두려운지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만 아버지는 평소와 같이 허무맹랑한 농담만 할 뿐이었다.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그는 평생을 거북이처럼 살아왔다. 감정의 등껍질 속에 숨어서 완벽한 방어를 한다.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절대 없다. 재가 바라는 건 마지막 순간에나마 그가 그 딱딱한 껍질 속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이야기를 밟아가다보면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위대한 사람이고 싶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큰 물에서 노는 큰 물고기 가 되고 싶었고 이야기를 통해 아들에게 아버지가 위대하게 느껴지게 했던 것이다.


아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아버지의 위대함과 실패를 깨닫게 되고 아버지에 가려져 한 남자, 한 인간으로서 살아온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허무맹랑한 농담이나 이야기들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삶을 견디는 웃음과 상상력을 전달해준다.진실된이야기, 정치이야기 등 보다는 아들이 유머나 상상력에서 삶의 출구를 찾길 바란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모든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른사람들의 의견도 참고하고 , 또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읽었던 이야기들을 다시금 곱씹어보면 이해가 되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닫으면서 결국 우리의 아버지들이 원했던 것은 "아들,딸에게 좋은 아버지"였나라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유머와 상상력으로 일관했지만 좋은 아버지였냐 라는 질문만큼은 아들과 진실로 마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 아버지로서 나는 아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나가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소설을 읽다보면 , 아니 다 읽어갈 무렵에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나 라는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아버지가 아닌 찌꺼기의 꿈을 향해 달리고 자식에게는 위대해보이고 싶어온 몸에 방어막을 둘러친, 그러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면 왜소해지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오늘은 왠지 아버지에게 달려가 "당신은 좋은 아버지였고 지금도 그런 분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날이었다. 

"진정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넌 아니?" 에드워드가 묻는다. "한 남자가 자기 아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위대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아버지는 그 위대함을 더 넓은 세상에서 추구했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내내 바로 여기 , 집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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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뇌, 남자의 뇌 따윈 없어 - 송민령의 공감과 소통의 뇌과학
송민령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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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남자의뇌와 여자의뇌의 구조는 다른듯이 알고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소통이 안되고 공감되지 않는 일들도 원래 태어난게 그렇게 태어나서(?)라는 이유로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실제 남자의뇌와 여자의뇌는 크기면에서도 모양면에서도 다를바가 없고 뇌만 봐서는 남자나 여자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공간에 대한 능력이 여자라 부족하고 수학적인 면도 여성이라 남자보다는 잘하지 못한다 생각했는데 이게 모두 편견때문이라니.


저자 송민령은 뇌과학이 올바르게 사회에 쓰이기를 바라면서 뇌과학에 대한 에세이나 책 등을 쓰고 여러가지 활동을 해왔다. 그녀가 이 책을 쓴 이유도 뇌과학을 단순한 '앎'이 아니라 '삶'을 사는데 가치있게 쓰이기를 바라는데서 썼다고 한다.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뤄지려면 시만과 소통하는 과학, 과학과 소통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시민과 소통하는 과학,과학과 소통하는 시민을 통해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실현해가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이뤄가고 싶은 목표다." p268


사실 이 책을 집어든 것은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해줄 것 같은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읽어가면서 축삭돌기니,,DNA니,,,도파민이니 여러가지 과학적인 용어를 대할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하였으나 내가 잘 알지 못했던 뇌에 대해서 (뇌과학에 대해서) 나를 이해하는 측면으로 , 사회를 이해하는 측면으로 이해하기 쉽게 , 친근하게 글이 쓰여있어서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도파민'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도파민은 보상이 따를때 활성화된다는 것. 움직여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모두 '도파민'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최근에 읽은 '작은목표'에 대한 책이 생각났다. 보상이 따른다고 해서 모두가 바로 행동을 옮기는 것이 아니며 작은목표, 그리고 압력을 받지 않는 정도의 보상정도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전에 읽었던 '작은 목표'에 관련된 서적에서는 큰 목표보다 작은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고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잘게 잘라서 성취하는게 더 달성하기 쉽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먼 미래보다는 당장 내가 목표를 위해 해야하는 일에 집중해야 더 달성하기 쉽다 라는 이야기가 들어있었는데 그 내용의 근원을 살펴보니 모두가 '도파민'에 의한 것이 아닌가.

도파민의 경우 먼 미래의 목표를 세워 해야지~라고 하면 분비가 잘되지 않고 곧바로 행동에 옮겨지는게 잘안된다고 한다. 쥐에게 종소리가 난 후 5초후에 빵을 주는 것, 그리고 종소리가 난 후에 10초후에 빵을 주는 것을 생각해보면 도파민은 5초후 빵을 받는 것에 반응을 하고 종소리부터 흥분하고 설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위의 예시처럼 도파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나는 왜 목표를 세우면 계획대로 잘되지 않는지, 왜 중도에 자꾸 포기하게 되는지 알게 해주면서 작은목표로 잘게 나눠서 실천하게끔 삶의 궤도를 수정할 수 있게 해준다. 뇌과학을 앎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삶에 적용할 수 있게 해주며 나를 알아가게 또 세상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전달해준다.

"사람,쥐,돼지같은 포유류뿐만 아니라 까마귀와 같은 조류도 공감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감은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나의 행동을 수정하도록 안내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도파민의 내용을 포함하여 뇌과학을 통해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법, 인공지능을 통해서 인간을 바라보는 내용,상호작용에 대한 내용, 뇌과학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등 흥미로우면서도 삶에 가치를 더하는 뇌과학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져있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여 만들어지는 인공지능의 능력이 인간의 고유능력이라 이야기하는 창의적인 부분, 이성적인 부분 등을 넘어선다면 인간도 그냥 위대한 존재가 아닌 동물처럼 그저 자연그대로의 그런 존재라는 이야기에서 인간은 생물중에 가장 위대하다 라는 생각의 편견이 깨져버리면서 약간 위기의식이 느껴지기도 했고,미래의 음울한 면만을 보여주는 SF영화들의 이야기가 나올때는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그려질까?라는 생각도 , 또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하였다.


예전에 '카타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유전적으로 우월한 유전자만을 결합하여 인공적으로 인간을 창조하여 그런 우월유전자만을 가진 사람만이 기득권을 갖고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자연임신을 통해서 태어난 사람들은 청소부정도의 생활만을 할 수 있었고 유전자가 우월하지 못하면 생활도 우월한 생활을 가질 수 없었다.

물론,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사회의 빈틈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신분을 사서 그들과 동등하게 살아가게 되고 결국 꿈을 이루는 부분이 나오지만 그 부분이 통쾌하다 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과학의 진보를 제대로된 사회를 만드는데 사용하지 않고 사회적합의를 이루지 않은 채로 기득권들의 이익을 토대로 과학을 이용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면에서 이 책은 과학을 어떻게 잘 사용해야하는가. 과학의 잘못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가. 등등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었던 것 같고 그런면에서 저자의 의도대로 책은 잘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소통하는 과학의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딱딱한 뇌과학 이야기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 뇌과학의 의미에서 사회적인 의미를

찾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느낌이었다.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뤄지려면 시만과 소통하는 과학, 과학과 소통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시민과 소통하는 과학,과학과 소통하는 시민을 통해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실현해가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이뤄가고 싶은 목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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