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피쉬
대니얼 월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빅피쉬>는 팀버튼의 영화제목으로 알고 있었던 소설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지는 못했고 (개인적으로 팀버튼의 영화자체가 난해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이렇게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빅피쉬>는 영화 뿐만 아니라 뮤지컬로도 나왔는데 아직 공연을 시작하고 있진 않고

2019.12.04~2019.02.09 이 기간동안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니 <빅피쉬>를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이라면 혹은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서 한 번쯤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뮤지컬 공연을 꼭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다.아버지와 함께 보면 더 뜻깊은 공연이 될 것 같다.


소설 <빅피쉬>는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의 생전의 삶에 대한 내용이 번갈아가며 나온다.세일즈맨으로 밖으로만 돌다가 죽음을 앞두고 에드워드볼룸은 집으로 돌아온다. 어른이 된 월리스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보고여태껏 아버지와 진정한 대화를 해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래서 그는 생전에 아버지가 했던 이야기들의 진실과 거짓의 증거를 찾으려고 하고 이를 토대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 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버지는 인간의 존재보다는 신의 존재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하는 일마다 성공을 시키고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무서운 검은 개를 한 손으로 물리치고 마을에 비가 많이와서 위험에 처해있을 때 그는 구름을 몰고 마을 밖으로 나가 비를 멈추게 하는 신비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하나의 건물, 하나의 땅이 아닌 마음에 드는 마을을 통째로 5년에 걸쳐서 구입하고 마을 사람들이 그대로 살게 하였으며자신이 마을을 사겠다 마음을 먹으면 알려지지 않은 늪에 있는 집까지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결국 마을을 통째로 다 사야만(?)하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미래를 보는 유리눈 이야기, 머리가 둘 달린 창녀 이야기등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아버지의 삶에는 가능했다. 그렇게 신비로운 사람이었고 사람들에게 위대했던, 환영받았던 아버지는 집으로만 들어오면 한낱 볼품없는 인간으로 느껴졌다.


이제껏 아들인 월리스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현실속에 아버지가 아닌 신화에나 나오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영원히 죽지도 않을 것 같은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것도 병에 의해 죽어가고 있음을 보고 월리스는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래서 그는 아버지에게 천국은 있는지, 신을 믿는지 죽음이 두려운지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만 아버지는 평소와 같이 허무맹랑한 농담만 할 뿐이었다.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그는 평생을 거북이처럼 살아왔다. 감정의 등껍질 속에 숨어서 완벽한 방어를 한다.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절대 없다. 재가 바라는 건 마지막 순간에나마 그가 그 딱딱한 껍질 속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이야기를 밟아가다보면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위대한 사람이고 싶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큰 물에서 노는 큰 물고기 가 되고 싶었고 이야기를 통해 아들에게 아버지가 위대하게 느껴지게 했던 것이다.


아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아버지의 위대함과 실패를 깨닫게 되고 아버지에 가려져 한 남자, 한 인간으로서 살아온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허무맹랑한 농담이나 이야기들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삶을 견디는 웃음과 상상력을 전달해준다.진실된이야기, 정치이야기 등 보다는 아들이 유머나 상상력에서 삶의 출구를 찾길 바란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모든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른사람들의 의견도 참고하고 , 또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읽었던 이야기들을 다시금 곱씹어보면 이해가 되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닫으면서 결국 우리의 아버지들이 원했던 것은 "아들,딸에게 좋은 아버지"였나라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유머와 상상력으로 일관했지만 좋은 아버지였냐 라는 질문만큼은 아들과 진실로 마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 아버지로서 나는 아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나가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소설을 읽다보면 , 아니 다 읽어갈 무렵에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나 라는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아버지가 아닌 찌꺼기의 꿈을 향해 달리고 자식에게는 위대해보이고 싶어온 몸에 방어막을 둘러친, 그러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면 왜소해지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오늘은 왠지 아버지에게 달려가 "당신은 좋은 아버지였고 지금도 그런 분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날이었다. 

"진정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넌 아니?" 에드워드가 묻는다. "한 남자가 자기 아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위대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아버지는 그 위대함을 더 넓은 세상에서 추구했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내내 바로 여기 , 집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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