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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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유시민 작가의 글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만해도 나는 지금처럼 사회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모바일 조선일보로 스포츠 기사도 재미있게 읽던 학생이었다. 어쩌면 그렇기때문에 유시민 작가의 저서를 아무 편견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처음 그의 글을 읽고 든 생각은 “참 글을 조리있게 잘 쓴다”는 것이었다. 글 잘쓰는 사람이 흔하지 않은 한국에서, 매끈하고 조곤조곤 하면서도 재미까지 갖춘 그의 글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토론프로그램에서 그를 다시 봤을 때는 “이 사람 말도 조리있게 잘하네”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유시민이라는 사람의 글은 대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당장 그의 예전 저서들을 구해서 읽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예의 그 “매끈한”문장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을때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소위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야 고급진 문장으로 상대방을 살살 비꼬고 약점을 꼬집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 그의 말과 태도가 좀 “껄렁”했던 것은 사실이다. 거친말로 깡마른 안경잡이가 말로 사람을 줘 패는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얼마나 얄미웠겠는가.


그리고 세월이 빠르게 흘렀다. 내가 세월에 떠내려가던 와중에 세상에는 많은 일이 있었고, 유 작가에게도 커다란 사건들이 찾아왔다. 특히 “그 사건” 당시 그의 모습은 한마리 야수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는 껄렁한 유시민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월은 생각보다 힘이 센 모양이다. 몇 년후에 활동을 다시 시작한 그의 모습은 예전보다 훨씬 유해져있었다. 그가 싸가지 없음을 벗어던진 것이었다. 변화는 글에서도 나타났다. 그의 글은 예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졌고, 곳곳에 숨어서 읽는 사람을 약간 긴장하게 만들었던 가시도 사라져 있었다. 나는 세월이 마사지 해놓은 유시민 작가의 글이 예전보다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 출간된 <표현의 기술>은 부드러워진 유시민을 잘 보여준다. 그 날카롭던 정치인 유시민이 은퇴하고 나자 진짜 부드러운 작가 유시민으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그의 글이 힐링전도사들의 것처럼 흐물흐물 해진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글이 좀 더 소화가 잘 되는 조리법으로 바뀐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자, 이 책의 공동저자인 정훈이(?)를 오해했던 것이 미안했다. 나는 공동저자를 보고 그냥 분량채우기용 삽화나 그리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유작가의 신작에 왠 이상한 양반이 끼어드는게 싫기도 했던 것 같다. 씨네21을 구독했을 때 그의 만화를 재미있게 읽었는데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정훈이 파트는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메인인 유작가에 얹혀져 있는 떨거지가 아니라, 책의 지분을 당당히 나누고 있는 독립적인 파트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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