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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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와 펠릭스


 이 책의 제목인 <포르투나의 선택>에서 말하는 포르투나는 로마 신화 속 행운의 여신이다. 그리고 술라의 별칭인 펠릭스는 라틴어로 행운을 뜻한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3부의 제목인 <포르투나의 선택>은 3부에서“펠릭스” 술라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를 암시하고 있다. 사실 1,2 부에서부터 술라는 포르투나의 가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술라의 ‘포르투나’는 바로 그 자신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연이은 행운같았던 것은 모두 술라가 안배한 것이었다. 오히려 마리우스와 술라는 모두 노년에 포르투나의 질투라도 받은듯이 불행을 여러차례 겪는다. 사실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서 불행을 겪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을, 재산을, 심한 경우 자신의 목숨까지 잃었다. 술라는 포르투나의 사랑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행운 자체였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누가 뭐래도 술라는 이 소설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주요인물이다. 특히 이번 <포르투나의 선택>에서 술라의 비중과 카리스마는 다른 인물들을 압도한다. 1,2 부의 마리우스와 비교했을때 술라의 사회적인 위치는 그와 비슷하다. 그러나 마리우스와 술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성을 갖고있다. 마리우스는 술라에 비하면 예측가능하다. 명예와 권력을 중요시하며, 말년이 되기 전까지 어느정도 상식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술라는 트릭스터이다. 그는 남을 속이는 데 능숙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짓도 서슴치 않는다. 또한 외설적인 것, 즐거운 것,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사랑한다. 그럼에도 그는 로마의 전통, 모스 마이오룸을 수호하고자 하며, 혈통과 역사를 존중한다. 그는 불확실성의 화신이다.

 이것만 봐도 술라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다크나이트>의 빌런인 조커처럼 어떤 목적은 가지고 있으나, 거기에 대한 자신의 태도,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행동, 남을 대하는 태도 모두 예측이 어렵다. 왜 그는 아우렐리아에게 그런 것을 갑자기 즉흥적으로 요구했을까? 왜 카이사르에게 그런 처분을 내렸을까? 거기에 뭔가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술라 특유의 즉흥적 선택이었는지는 좀 더 시리즈를 읽어봐야 알 것 같다.


영웅 혹은 괴물


 시리즈를 계속 읽어온 사람이라면, 3부 에서는 이전의 영웅들이 퇴장하고 새로운 영웅들이 일어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영웅들의 마지막을 보면서 <다크나이트>의 대사를 떠올렸다. 하비 덴트와 지인들의 대화에서 배트맨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왔던 대사인데, 대강 ‘그는 영웅으로 죽거나, 살아서 괴물이 될거야’라는 내용이었다. 마리우스와 술라의 뒷모습을 보면 이 대사에 딱 들어맞는다. 그들이 만약 로마의 일인자가 되고나서 일이 어그러지기 전에 죽었다면, 그들은 영웅으로 남았을 것이다. 마리우스는 로마를 지킨 영웅으로, 술라는 그보다는 덜 했겠지만 아폴론같은 모습의 빛나는 전쟁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행운인지 불행인지 그들에게는 수명이 조금 더 허락되었다. 그들이 완전하게 뜻을 이루기에는 모자라지만, 괴물이 되기에는 충분할 만큼.

 그래도 아무리 괴물이 되었다지만 정들었던 인물들이 떠나는 것은 아쉽다. 이것은 삼국지에서 전반부 장수들이 하나씩 세상을 뜰 때마다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1권부터 마리우스와 술라의 눈부신 활약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시리즈 전체로 보면 초반부의 인물일 뿐이지만, 마리우스와 술라는 자기들 이후의 로마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는 이들이 없었다면 카이사르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카이사르는 그들이 기존의 법칙을 뒤흔들어 놓은 곳에서 태어났고, 그들이 보여준 길을 자신의 방식으로 변주했다. 결국 카이사르는 괴물들이 키워낸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상아 대좌의 게임


 미드 <왕좌의 게임>의 원작으로 잘 알려진 <얼음과 불의 노래>라는 판타지 시리즈가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명확한 주인공이 없고, 스토리 전개가 작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나 작품 내 주요인물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어떻게든 위기를 빠져나온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들의 생존을 위해 무리수를 두다보니 스토리가 허술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왕좌의 게임에는 그런 부분이 적다.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인기가 많은 등장인물도 가차없이 죽여버리고, 상대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을 계속 궁지에 몰아 넣는다. 창조주인 작가가 이렇게 어느 인물의 입장을 봐주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소설 안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시리즈도 이와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일단, 이 작품에도 주인공이 특정되어 있지 않다. 1,2부를 읽어본 독자들에게 술라와 마리우스 중 누가 주인공이냐고 물어보면 아마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어느 부분에서는 실로나 미트리다테스 같은 인물들도 주연급의 존재감을 내뿜는다. 이렇게 많은 주요인물은 때로 독자의 기억력에 부담을 주기도 하지만, 소설 속 로마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기도 한다.

 또한 <마스터스 오브 로마> 역시 등장인물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1부 <로마의 일인자>에서부터 유혈이 낭자하고, 작가가 공들여서 묘사해 놓은 인물들도 순식간에 스틱스 강을 건넌다. 물론, 인물의 생사여부는 역사책에 이미 쓰여있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콜린 매컬로는 그 인물이 죽을 것이라는 암시조차 주지 않고 갑자기 죽여버림으로써 충격을 최대화한다. 그렇다보니 나는 이제 읽는동안 누가 죽을지 몰라서 겁까지 난다. 하지만 이 덕분에 이야기의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 할 수 있었다.






대충 쓴 역사소설과 비교했다가는 큰 호통을 들을 것이야!


 내가 군복무 중이던 몇 년전에 한창 김모 작가의 역사소설이 유행했었다. 여기저기 광고도 많이 나오고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올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서인지 부대 내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아무리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해도 내 취향에 안맞는 것은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 작가가 예전부터 워낙 유명했던터라 궁금하기도 해서 한 번 읽어봤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100쪽 정도 읽고나서 바로 덮어버렸다. 읽으면서, 읽고 나서도 짜증까지 났던 것 같다. 일단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문장은 물론이고 구성이 너무 허접하고 유치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끊은 지 오래 됐지만 학창시절에 무협지 깨나 읽었던 사람으로서, 중학교때 수도 없이 읽었던 불쏘시개와 그 소설의 차이점을 모를 정도였다. 고등학교때 조악한 문장이 싫어서 무협지를 다시는 안읽었는데 거기서 지뢰를 밟을 줄이야….

 솔직히 그 소설을 읽고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이런 작가를 이렇게까지 띄워주지? 그리고 왜 이렇게들 많이 읽지?’하는 것이었다. 아무리봐도 대여점에나 꽂혀있어야 할 책인데 책에 대한 반응만 보면 무슨 민족의 자랑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 책을 왜 그렇게 많이 읽었을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역설적으로 그 허접한 문장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소설은 역사소설의 탈을 쓴 무협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머리를 식히려고 읽는 무협지가 깊은 문장으로 채워져있고, 엄격한 역사적 사실을 들이민다면 타겟 독자층에게 외면받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다 필요 없고, 결국 주인공이 짱먹어서 우리민족 화이팅’이렇게 되는 것 아닐까? 작가의 문장력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니 언급할 부분이 아닌 것 같다.

 역사소설은 시청자들이 요즘 사극을 소비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읽힌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역사적인 고증이나 작품성보다는, 쉬우면서도 흥미롭고 자극적인 내용을 원한다. 그러다보니 작품 퀄리티는 점점 떨어져서 말도 안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역사소설은 흥미위주의 콘텐츠라는 인식이 박혀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그런 태도로 접근한다면, 큰 코 다칠 것이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문장에서는 그리스 고전 같은 고풍스러움이 느껴진다. 인물들의 대사 한 마디에도 로마인의 철학이 담겨있고, 인물이 가진 복잡한 심리가 드러난다. 그렇기에 설렁설렁 읽어서는 작품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분명히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하지만 집중해서 한문장 한문장 곱씹으며 읽다보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그저 정신차리고 소설의 인물들을 꽉 붙들고만 있으면, 이번 편은 술라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것이다.

이 소설을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것이야!


*본 리뷰는 포르투나의 선택 독자 원정단 제공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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