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1 -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
브랜든 심스 지음, 곽영완 옮김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요즘 갑자기 유럽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교보문고 어플을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충동구매를 하고 말았다. 저자가 캠브리지 대학교 역사학 교수라는 점이 내가 이 책을 선택하는데 큰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유럽사를 다룬 책인만큼, 유럽의 전문가가 집필한 책이 좀 더 나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BBC에서 논픽션 부문 상도 받았다고 하니, 기본적으로 말도 안되는 퀄리티의 책은 아닐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이 책은 두 권짜리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1453년부터 1차대전 직전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고, 2권은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나의 관심사는 근대사였기 때문에 일단 1권만 샀는데, 처음에는 책의 두께에 약간 겁먹기도 했다. 
 내가 책의 분량때문에 긴장한 이유는 나의 습관인 책쇼핑때문에 쌓여있는 책들을 빨리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만져보니 다른 책보다 종이 재질이 약간 두꺼웠고, 뒤의 100쪽 가량은 참고자료 목록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책의 분량은 370쪽 가량이었다. 이것을 확인하고 나니 책의 분량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1453년은 동로마 제국의 멸망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해인데, 유럽사에서는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기점으로 중세시대가 마무리된다. 그러나 내가 세계사를 배울때를 생각해보면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비해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동로마제국을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부르면서 로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유럽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슬람 세력과 서유럽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던 제국이 무너지면서, 오스만 제국이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술탄 메메드 2세가 자신을 로마제국의 계승자로 자처하고 그 이름을 바탕으로 보편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제국이 무너지고나서, 동로마제국의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서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이로인해 동방의 각종 학문이 서유럽으로 전달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초반부에 동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기술된다. 나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정확히는 알지 못했지만 신성로마제국은 당시 유럽의 세력균형에 가장 중요한 무게추였다. 그렇기때문에 강대국의 왕들은 선제후 회의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기를 바랐고, 이를 위해 왕들은 갖가지 로비와 협박 등의 정치행위를 벌였다.
 동시에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독일 지역이 통일된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을 원치않았다. 당시 독일은 바이에른, 작센, 프로이센 등 여러 지역과 도시가 황제 아래에서 독자적인 지배권을 갖는 영방국가 체제였는데, 당시 유럽 국가들은 독일이 통일되어 단일한 국가가 된다면 유럽의 세력균형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독일의 분열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당시 유럽의 중요한 정책기조 중 하나였다. 
 이렇게 당시 유럽은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모두가 중부유럽의 지배자가 되고자 했지만, 그곳에 강력한 국가가 탄생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이것은 결국 하나의 목적성을 드러내는데, 오직 자신만이 유럽의 보편제국으로서의 영향력을 갖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특히 부르봉과 합스부르크는 대륙의 패권을 노리는 대표적인 세력이었다. 
 또한 신성로마제국 외에도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역은 낮은땅이라는 뜻의 플랑드르이다. 플랑드르는 프랑스 북부 지역 일부와 네덜란드, 벨기에를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키는데, 이 지역에는 여러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우선 영국의 입장에서는 플랑드르가 적대세력의 지배권에 들어갈 경우 본토를 위협하는 침공의 발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에게 이 지역은 신성로마제국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합스부르크의 대 프랑스 포위망의 일부이기도 했다. 반대로 합스부르크에게는 프랑스를 견제하는 거점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플랑드르는 상업의 중심지로서 많은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기 때문에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플랑드르 뿐만 아니라 강대국들의 사이에 위치한 사부아 왕국이나 알자스-로렌 지방에서도 나타난다. 각국은 서로 자신의 영토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국경 사이에 자치국 형태의 완충지대를 두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완충지대의 약소국들은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되곤했다.
 나는 이 당시 유럽 국가들의 전략이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국가의 등장을 막고, 적대국가와의 사이에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정리 해 보았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이 대원칙이 깨질 위기를 경험한 유럽의 국가들은 기존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 빈체제를 구성하였는데, 메테르니히가 혁명의 전파보다 보편제국의 등장을 더욱 두려워했다는 식의 서술을 보면 결국 빈체제의 목적 역시 기존 세력균형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유럽 근세사의 기본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아주 좋은 지침서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이전에 파편화되어서 머릿속에 널려있던 역사적인 흐름들을 하나로 꿰어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전반적인 역사를 긴 기간에 걸쳐서 다루고 있기때문에 각 사건에 대해 자세한 서술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또한 유럽의 정치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 만큼,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유럽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한 후에, 관심이 생긴 부분은 세부적인 분야의 책들을 통해서 깊게 파고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 알아두면 좋은 팁은 자주 등장하는 지명, 플랑드르나 사부아, 보헤미아 등의 위치 같은 것을 숙지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 지역들이 왜 중요한지를 지정학적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 땅들이 어디 붙어있는지, 어떤 민족/문화적 특징이 있는지를 모르면 몰입도 잘 안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점(4/5): 유럽 근세사 입문서로 아주 훌륭한 책. 그러나 자꾸 앞으로 돌아가거나 반복되는 듯한 서술이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를 지치게 만든다. 또한 특정한 사건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김이 빠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나폴레옹 전쟁 부분을 매우 기대했지만, 아주 간단한 서술로 넘어가 버려서 허무하기도 했다.
 결국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분량에 비해 재미의 요소가 다양하지 않은 것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