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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뛰쳐나온 인문학 - #스포츠로 거침없이 세상을 읽다
공규택 지음 / 북트리거 / 2019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깟 공놀이”
프로야구팬을 꽤 오랜 시간 자처하며 야구에 심하게 몰입할 때 읊조리는 말이다. 지극히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스포츠를 보며 나도 모르게 흥분할 때면 고작 이게 뭐라고, 자조적이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스포츠를 볼까? 단순히 재밌으니까, 만약 이 명제가 많은 대중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이유의 전부라면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도 모르게 스포츠에 몰입하는 이유를 인문학적으로 설명해준다.
단순히 그깟 공놀이로 치부했지만 스포츠에는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세상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p23)을 꿈꾸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세상의 벽에 좌절하며 울부짖지만 적어도 스포츠를 보는 순간만큼은 공정함을 기대할 수 있다. 세상에 지친 이들이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각본 없는 드라마’의 현장인 것이다.
세계 4대리그 중 하나인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는 승강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1부 리그 하위3팀은 2부 리그인 챔피언스리그로 강등되며, 2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팀들은 1부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게 된다. 시즌 말미에 누가 강등될 것인지는 프리미어리그의 볼거리 중 하나인데 저자는 이 승강제 시스템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트릴 수 없는 장벽인 ‘유리천장’을 없앤 일례로 보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아무리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심리학적 용어로 ‘학습된 무력감’에 빠진다. 하지만 노력으로 상향이동이 가능할 때, 사람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2015-16시즌, 아무도 예상치 못한 레스터시티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을 때 많은 축구 팬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상징적인 메세지를 전달해 줬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역시나 세계 4대리그 중 하나인 라리가의 가장 큰 묘미는 단연 엘클라시코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두 팀의 매치인 엘클라시코를 보고자 나도 새벽잠을 설치곤 했다. 메시와 호날두처럼 화려한 스타들을 보는 재미로도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의 이승우 선수가 FC바르셀로나의 유스팀에 뛰었던지라 그 이름이 더 익숙하다. 바르셀로나는 우수한 선수들을 모아 키워쓰고 레알 마드리드는 훌륭한 선수를 사서쓰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종목을 막론하고 팀을 꾸려 시즌을 보내려면 훌륭한 선수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감독마다 선호하는 타입의 선수가 있는데 이는 어떻게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흔히 입야구, 입축구를 하는 마구와 피파 유저들은 게임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로 팀을 꾸리는데 비록 시뮬레이션이지만 선수 선발과 기용을 통해 어떻게 인재를 등용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스포츠는 정정당당하며 승부의 세계는 냉정해야 한다. 하지만 야구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야구는 ‘희생’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유일한 스포츠 종목(p100)인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더 큰 환희를 보내기도 한다. 1982년, 김재박의 희생번트는 경기의 균형을 맞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우승을 일궈냈다. 팀 스포츠에서 희생은 아름답다. 자신의 기록보다는 팀의 승리를 우선시 하는 모습에서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하지만, 저자가 명시했듯 평창올림픽에서 개인전인 매스스타트에서 나이가 더 어린 선수가 보인 희생은 과연 아름다울까? 희생의 선택권은 당사자에게 주어져야 하는데(p106), 우리나라의 스포츠계의 현실이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루에 무려 864,000초를 소비하는 우리에게 단 ‘1초’는 짧디 짧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스포츠에서는 굉장히 긴 시간이다. 즉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1초는 승패가 갈릴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p131).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변수가 일어나며 수영이나 빙상스포츠에서는 0.001초로 매달의 색이 바뀌기도 한다.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찰나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시간을 금같이 쓰라는 격언도 우리에게 울림을 주지만, 짧은 순간을 다투는 스포츠의 급박한 긴장감을 통해 시간에 대한 감상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야구에서는 벤치 클리어링이라는 과격행위를 할 때가 있는데 상대가 비신사적인 행동을 보였을 때 팀 전체가 우르르 뛰쳐나가 몸싸움을 벌이곤 한다. 이는 야구만의 전유물은 아니고 특히 북미아이스하키 리그에서는 이 또한 묘미로 손꼽히고 있다. 팀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제일 먼저 선봉장에 서서 맞서 싸워주는 선수의 모습을 보며 팬들은 통쾌함과 든든한 감정을 느낀다. 요즘에 들어서는 벤치 클리어링을 폭력행위라 규정하고 외면하는 팬들도 있는데 즐기러 오는 스포츠 경기에서 난투극을 보면 기분이 찝찝할 때도 분명 있다. 하지만 안전한 선에서 벌어지는 적당한 난투극은 경기의 일부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애당초 스포츠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포츠에 열광한다. 4년에 한번인 올림픽, 월드컵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를 보며 하루의 고단함을 풀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단순하게 보면 조금은 신사적인 싸움이다. 하지만 이 책은 큰 의미 없이 넘겼던 많은 현상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동안은 스포츠니까로 통용된 많은 현상들을 인문학적 이론과 접목시켜 생각할 거리는 던져주었다. 이 책이 아니라면 감히 스포츠를 생각하며 노자의 유무상생과 와이너의 귀인이론을 떠올리기나 하겠는가?
스포츠를 좋아한다면, 앞으로 좀 더 깊이 있게 스포츠를 즐기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스포츠를 통해 이 시대의 문제점을 짚어주고, 숨어있는 다양한 학문적 이론을 배울 수 있다. 사람, 그리고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생각까지 인문학 본연의 임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통해 광활한 인문학적 통찰을 느껴볼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든 생각은, 저자분과 맥주 한잔 마시며 같이 스포츠 경기를 보고 싶다. 내가 보면 그깟 공놀이지만, 저자분과 함께라면 우아한 공놀이가 되지 않을까 ㅎㅎ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