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 행복은 숨바꼭질을 좋아해 둘리 에세이 (톡)
아기공룡 둘리 원작 / 톡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는 둘리를 참 좋아했다. 지금은 한번 봤던 걸 두 번 보는 일이 드문 데 그때 우리 집에 있던 둘리 비디오테이프는 수백 번, 수천 번은 봤을 거다. 당시에는 귀여운 우리 둘리한테 매일같이 호통 치는 고길동 아저씨가 참 못되고 고약해보였다.

 

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해진다면, 당신은 어른이 됐다는 말이 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고 성인이 된 나는 그 말을 절감하면서 산다. 사고만치는 객식구를 내쫓지 않고 책임진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세상에 치이며 고단함을 넘어 다이나믹한 일상을 사는 고길동의 어깨위에 얹어진 짐들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연민을 가지게 된다.

 

 

둘리는 누가 봐도 민폐 캐릭터이다. 심지어 자신이 민폐라는 걸 모르는 게 더 충격적이다. 그런데, 이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서 어른이 된 내가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점을 알게 됐다. 어렸을 때, 둘리가 안타까웠던건 엄마도 없는 낯선 땅에서 홀로 살아가는 모습이 불쌍해보였기 때문이다. 둘리의 주제곡에서도 일억 년전 옛날이 너무나 그리워 보고픈 엄마찾아 모두 함께 떠나자라는 가사가 있다.

 

, 둘리는 아무도 모르는 지구라는 낯선 땅에 홀로 떨어진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둘리를 제대로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을 테다. 둘리를 공룡이라 명명한 것도 인간이 한 것이지 둘리가 사는 곳에서는 자신들을 공룡이라 칭하지 않을 것이다.

 

둘리, 너에게 이 세상은 얼마나 낯설고 무서웠을까.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도 이 세상이 낯선 데 오랜 시간 빙하에서 잠들고 깨어난 네가 이곳에서 적응하며 살기위해 몸부림치는걸, 지금의 우리는 나쁘다고 규정한다.

 

문득 정채봉 시인의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가 떠올랐다. 백두산 천지에서 이렇게 웅장한 산도 이렇게 큰 눈물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시는 내가 힘들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위로를 전해주었었다. 둘리에게는 슬픔 없는 공룡이 어디 있으랴라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말이다.

 

 

둘리도 슬펐을 거다. 기억조차 희미한 과거가 사무치도록 그립고 세상이 무서웠을텐데도 둘리는 씩씩하게 살았다. 둘리, 행복은 숨바꼭질을 좋아해는 씩씩한 둘리가 우리에게 위로를 전한다. 매일의 삶이 고단한 이 시대의 고길동들에게 행복하게 살자고 용기를 준다.

 

 

힘들고 지친다면 잠시 쉬어가고, 외로움이 몰려올 때면 그 감정을 인정하라고 말해준다.

행복은 꼭꼭 숨어있는 행복이지만 아무도 못 찾게 숨지는 않는다. 결국 행복은 우리 마음먹기에 달린 거라고, 위로가 필요할 때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

 

 

행복은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숨길 좋아하죠.

그렇다고 아무도 찾지 못하게 꽁꽁 숨지는 않아요.

옷자락을 보여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요.

행복의 옷자락은

친구와 보내는 시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

책을 읽는 시간 속에 있을 수도 있어요.

그 옷가락을 살짝 잡아봐요.

그럼 못 이기는 척,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p107

 

 

둘리가 마냥 불쌍해보이던 시절에는 적어도 불행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결국 같은 나일뿐인데, 왜 나는 그때처럼 행복할 수 없는걸까, 그때는 사소한 것도 마냥 즐겁고 행복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된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둘리가 민폐캐릭터로 느껴지지 않던 그 시절의 동심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조금은 더 행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싶다.

 

호잇! 호잇!을 외치며 잊어버렸던 동심과 숨어있는 행복을 찾아 떠나고 싶다. 둘리와 함께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