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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국
정호승 지음 / 책읽는섬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어른들에게 필요한 따뜻한 위로
우리는 흔히 동화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하다고 착각한다. 아동기를 지난 후, 더 이상 동화같이 뭉클뭉클한 이야기는 접할 기회가 없다. 아이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한 줄의 문장이 지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가.
정호승 작가의 시 수선화에게는 힘들고 지칠 때 내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을 위한 동화집 <못자국>은 2010년 출간 한 <의자>의 개정판으로 24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담고 있다.
평소 너무 보잘 것 없고 의미를 두지 않았던 사물을 의인화하여 삶의 의미를 찾고, 사랑을 부르짖는다.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함박눈은 가장 멸시받는 노숙자들에 의해 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의 기쁨이 된다. 그는 더 큰 기쁨이 되고 싶어 자신을 존재하게 한 노숙자들의 찬바람을 막아준다.
논두렁에 내던져진 피는 벼가 되고 싶었지만 보잘 것 없는 취급을 당하며 내쳐진다. 삶의 의미를 잃고 말라 죽어갈 때, 바람의 다정한 음성으로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피야, 너무 슬퍼하지 마라. 넌 지금 거름이 되는 거란다. 네가 썩어 거름이 되지 않으면 이 땅에 풀 한 포기 살 수 없단다. 그러니까 넌 죽는 게 아니라 다시 사는 거란다.” (p37)
벼가 되리라 생각했던 피처럼 사람은 누구나 세상의 주연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은 반짝이는 주연보다는 이름 없는 조연이 넘치고 이를 깨닫는 순간,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픔을 알고도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게 아닐까....
내가 이 세상에 별 쓸모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의미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 곧 인생이니까. 피가 없다면 이 땅에 풀 한포기 날 수 없다는 걸, 피도 생각보다 쓸모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통해 나를 투영해본다.
<못자국>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막연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반짝이는 주인공의 이야기도 아니다. 생각한 것처럼 일이 안 풀리는 경우도 다반사고 끝끝내 의미 없이 사라지거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 조차 위로가 되었다. 세상에 나 혼자 외톨이가 아니라는 동질감이 고독함에 맞서 싸우는 어른들에게도 필요하다. 동화의 따스함과 간결함으로 고통 속에서 사랑을 찾고, 고난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24편의 동화 하나하나, 수만 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나의 일부 같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책을 통해 혼탁했던 영혼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예전에 작가님의 강연회를 간 적이 있다. 시는 인간의 눈물이라던 작가님의 한 문장. <못자국>도 인간의 눈물이 모여 고통 속에서 사랑이 피어난다는 진부한 진리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한 권의 작품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