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사람 공부 - 우리 시대의 언어로 다시 공부하는 삶의 의미, 사람의 도리
이황 지음, 이광호 옮김 / 홍익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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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에 대해 알고 싶다면

 

퇴계 이황 선생을 말하자면 대부분 천 원짜리 지폐의 인물을 연상할 것이다. 지폐에 선정된 인물이기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성학십도 이외에는 그의 업적을 알지 못했다. 왜 후세의 학자들이 퇴계를 주목하는 것일까. <퇴계의 사람 공부>를 통해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퇴계집에 나온 내용 몇몇의 주제를 선정하여 이광호 역자의 해석을 통해 퇴계의 학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퇴계가 바라본 사람됨과 인간의 도리, 임금에게 간하는 조언, 학문에 관한 견해와 도의 부재를 꾸짖으며 퇴계를 평하는 시선을 담았다.

 

퇴계 선생이 꿈꾼 이상적인 삶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조용한 곳에서 거처하면서 주경야독을 하는 한적한 삶(p26)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조정에 나아가기 보다는 자연을 찾아 낙향을 했다고 한다. 개인의 수양을 중시여기며 무언가를 위한 학문이 아닌 학문 그 자체의 학문에 전념했다. 이는 퇴계집에 쓴 교육에 관한 그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교육기관의 존립 목적을 출세를 위한 도구가 아닌 진리를 탐구하는 장소로 보았다. 스승의 나태함과 그들의 권위가 무너짐을 한탄한 내용을 읽다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고 참된 교육의 실현은 이루기 어려운 이상이구나 싶다.

 

퇴계선생은 앙숙과도 교류를 하며, 자신과 이념과 정치적 노선이 다른 이이와도 서찰을 주고받았다. 제자들과 서찰로 학문적 토론을 즐겼으며, 그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을 주었다. 지금 당장 세상이 그의 뜻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이때 남은 서찰들은 대대손손 그의 사상을 전파하는 교두보가 되었다. 역자는 퇴계 선생을 대기 만성형이라 표한다. 세월을 쌓으면서 인간의 도리를 점차 깨우쳐가서 그런 것일까, 퇴계 선생이 대기만성형이라면 조선시대의 수많은 학자들은 뭐가 되는 것인가 범인의 시선에서 항변해본다.

 

자기 식구뿐만 아니라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고 혼례식도 못 올리고 청상이 된 며느리를 재가 시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것으로 보아 단순히 학문만을 논하는 선비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도를 찾고자 노력한 학자로 느껴진다.

 

퇴계집의 내용만 수록되어 있었다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을 텐데 역자의 풍부한 해석이 곁들어져서 읽는 재미가 더한 책이다. 퇴계 선생에 대한 역자의 박식함을 느낄 수 있다. 아직은 가보지 않았지만 훗날 소백산에 갈 일이 있다면 그 전에 꼭 소백산유람기를 읽어보고 싶다.

 

<퇴계의 사람 공부>를 읽고 나니 퇴계 선생은 단순히 천 원짜리에 새겨진 인물 이상으로 내게 다가온다. 고작 일 회독으로 퇴계 선생의 깊은 진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평생을 옆에 두고두고 볼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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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 왜 그럴까? 어떤 마음일까?
나응식 지음, 윤파랑 그림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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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야, 너는 왜 그러니?

 

냐옹신 나응식 원장님과 윤파랑 작가님의 그림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한권의 책,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도도하고 까칠하기 그지없는 고양이님의 속마음이 궁금한 집사라면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다.

 

어찌 보면 고양이는 애교도 없고 맨날 잠만 자는 것 같다.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동물처럼 느껴지다 보니 섬세하기 그지없는 고양이님의 심기가 어떠한지 한낱 인간은 참 알기 어렵다. 우리 고양이가 왜 그러는지 궁금한 집사들을 위해 냐옹신이 나섰으니!!

 

우선 고양이가 한없이 잔다면 자는 모습도 귀엽다며 감탄할게 아니라 왜 그런지 고양이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봐야한다. 고양이의 사소한 행동은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다 이유가 있다. 건강상의 이유일 수도 있고 정서상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전문가와의 상담은 건강한 반려모와의 관계를 위해 추천한다.

 

 

개는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면 (아마도?) 좋아한다. 고양이를 볼 때 가장 매력적으로 만져보고 싶은 부위는 어디일까? 바로 적당하게 살이 오른 배다. 그런데 고양이는 배를 만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자신의 배를 드러내며 우리를 유혹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그게 아니니 고양이님의 심기를 함부로 거스르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이 책을 통해 고양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고양이한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이렇게 하면 고양이가 좋아 할거야 싶은 것들이 전지적 고양이시점에서는 절대, 결코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양이가 좋아 할 거라 믿으며 한 행동이 도리어 고양이에게 엄청난 미움을 살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하길 바란다.

 

고양이가 이상행동을 보일 때, 도대체 고양이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될 때, 이 책과 함께라면 완벽한 답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고양이의 마음에 쏙 드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책 마지막에 수록된 집사역량테스트는 잡시가 되기 위한 자격을 갖췄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지표다. 모든 고양이를 대변하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고양이를 대변하는 시험인 만큼 집사들은 성실히 시험에 임해 고양이의 복지를 위해 힘써 주길 바란다.

 

집사가 얼마만큼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주느냐에 따라 반려묘의 행복도는 달라질 것이다. 초보 집사라면 무조건 읽어야 할 필독서! 프로 집사라도 꼭 읽어야 할 필독서, 랜선 집사라면 더더욱 읽어야 할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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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정민 산문집 2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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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통해 만나는 사람이야기

 

글은 사람의 됨됨이를 표현한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사람도 글을 통해 이런 사람이겠거니 상상해보곤 한다. 정민 교수의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는 그가 시공간을 초월해 만난 사람과 책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가깝게는 정민 교수님의 지인에서 멀게는 옛 선현들의 지혜를 글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살면서 꼭 읽어야 할 책들을 왜 읽어야 하는지, 단지 유명해서가 아닌 진정한 독서의 의미를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금은 든든한 거목 같은 그도 한때는 여리여리한 새싹 같던 시절이 있었고 그를 지켜주었던 스승이 있었다. 제자를 바라보는 따스한 마음과 학자들의 괴짜스러움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는 진솔한 책이다.

 

하나의 사물, 매화를 통해 문봉선 화백과 퇴계선생, 이덕무, 박지원, 유득공 등 한국사에 쟁쟁한 인물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청나라의 공자진이 바라본 매화는 어떤 것일까? 정민 교수님은 과거의 인물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현재의 우리들에게 전해준다.

 

그러니까 이 병신 매화는 바로 너희다. 하고 싶은 일 하려 들면 잘라버리고 솎아 내버린다. 값비싼 상품이 되려면 온전히 제 성질대로는 안 된다.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생각지 않고 돈 많이 벌고, 남들이 하고 싶어 하고 되고 싶어 하는 것만 쫓아다닌다. 나는 너희가 화분을 깨고 두 팔을 쭉쭉 뻗으며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는 젊은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글을 함께 읽었다.(p159)”

 

매화를 통해 정민 교수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무도 명명백백했다. 김춘추 시인의 꽃처럼, 내게 매화가 의미가 생기자 그 동질감은 새로운 시선을 창조해냈다. 그저 한 송이의 꽃이었던 매화는 나와 참 비슷했고 매화를 통해 우리가 성장하길 바라는 교수님의 마음도 느껴졌다.

 

사실 정민 교수님은 내가 어렸을 적 느낌표란 프로그램에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란 책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나도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사실 쉽지는 않았다 ㅎㅎ 그 책 이후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교수님의 근황을 알 수 있어서 반가웠다. 내가 훌쩍 클 만큼 긴 시간 동안 교수님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책을 내셨나보다. 책의 에피소드 중,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지카시 편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만남의 인연이란 이런 것일까. 두 학자는 우연한 계기로 수세기가 지나 조우했다. 어둠 속에 묻힐 뻔한 후지쓰카의 연구를 한국의 학자가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낼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교수님이 이런 일을 하시는 구나, 왜 한시를 쓰시고 사람과 책을 가까이 하는 분인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걸 알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쫓는 배움보다는 단순 암기가 된다. 잘 외워지지 않고 헷갈리는데 시험 볼 때는 그렇게 외워지지 않던 백제의 흑치상지가 그의 평전을 설명하는 글을 읽으며 가슴 속에 절절히 다가왔다. 2부 향기 나는 책 편은 참 맛깔나게 글을 잘 쓰신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솔직히 이 책에 소개된 책 들 중 읽어본 책보다 안 읽어본 책이 더 많은데 다 읽어보고 싶은 욕심에 또 서점 장바구니에 책을 차곡차곡 쌓았다. 조금이라도 읽어본 책이 나오면 왜 이리도 반갑던지 ㅎㅎ 내가 책을 읽는 건 조금 1차원적이지만 고차원적으로 접근하는 팁을 알게 되어 어깨가 으쓱해진다.

 

1부는 사람, 2부는 책, 사람과 책을 바라보는 정민 교수님의 시선에서 따스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분은 사람과 책을 참 좋아하시는구나.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하는지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인생의 진리도 곳곳이 배울 수 있다. 사람과 책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 사랑의 향기가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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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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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부모상은?

 

<페인트>를 읽기 전에 부모 면접이라는 파격적인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깜짝 놀랐다. 상당히 패륜적인 접근이 아닌가? 부모는 당연히 선택할 수 없는 존재지만 물심양면으로 우리를 아끼고 돌본다는 점에서 내 부모에 대해 평가를 하는 건 금기시해왔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단순히 이상적인 부모에만 다루는 책이 아님을 깨달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처럼 다산을 하지 않는다. , 두 명의 아이를 낳아 성심성의껏 최고의 지원을 해주며 키우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다. 한쪽에서는 책임감이 넘쳐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꿈꾸지 않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한다. 버려지는 아이들의 숫자는 늘어가고 국가는 특간의 조치를 취한다.

 

부모가 낳은 아이를 키우기 원치 않을 때 정부에서 그 아이를 데려와 키우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NC센터가 세워졌고, 우리는 국가의 아이들(nation’s children)이라고 불렸다(p20).

 

NC센터에서 자란 제누 301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 이름에는 큰 뜻이 없다. 그저, 1월에 태어난 아이란 뜻에 번호로 순서를 매긴 것, 축복 속에서 태어났어야 하는 한 생명의 삶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며 철저한 관리 속에 자란다. 이들의 생활에 소홀함이 있는 건 아니다. 국가는 철저히 이들의 인성과 성적, 체력까지 모든 부분을 관리하고 온순하며 똑똑한 아이들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신의 양부모를 찾아야 한다. 열아홉이 되어도 양부모를 찾지 못해 NC센터에서 퇴소한다면 NC센터 출신이라는 그 자체가 차별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NC센터에서 퇴소하기 전 양부모를 찾는다면 이전까지의 기록은 모두 삭제되고, 온전히 친부모의 손에서 자란 평범한 아이로 탈바꿈하게 된다.

 

제누 301NC센터의 골칫덩어리다. 그의 행실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적극적으로 양부모를 구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센터 사람들은 그가 양부모를 구하지 못한 채 센터를 나가게 되는 미래를 걱정하지만 그는 덤덤하다. 오히려 가식적인 양부모 희망자들에게 회의감을 느낀다. NC센터의 아이를 입양하는 것, 그 자체로 양부모들은 상당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어른으로서 이런 말,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어 있고,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 힘 있는 자들은 끊임없이 연약한 존재들을 짓밟지. 특권 의식을 누리려는 거다. 힘 있는 자들만이 아니다. 힘이 약한 사람들도 그런 특권 의식을 지니고 있어. 자신도 약하면서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들을 짓밟는 거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 누구나 기피하는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 등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친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은 국가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 너희들에게 묘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너는 영리하고 매력적인 아이다. 누구라도 너를 보면 호감이 생길 거야.그러나 네가 NC출신임을 밝히는 즉시 사람들은 너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거다. 그건 제누, 너도 잘 알잖아. 이곳에서 부모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어떤 불이익을 당하고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지(p193).

 

센터장 박은 그 누구보다도 제누 301을 염려한다. 그가 선택한 가시밭길이 어떨지 눈에 선하기에 가슴아파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제누 301은 고직지계를 거부한다.

 

“NC출신에 대한 차별을 없앨 수 있는 건, 오직 NC출신들 밖에 없어요.(p194)”

 

짧고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마음이 무겁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란 것에 상관없이 친부모 아래서 자랐다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차별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데 말이다. 가상의 세계지만 어쩌면 우리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더 안타깝다.

 

폐쇄적인 공간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NC센터의 비화, 다 큰 아이를 입양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탐욕, 숫자로만 능력을 평가하는 실적주의, 친부모의 자격 등,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사회의 문제를 담고 있다. 단편적이지만 애늙은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제누 301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그의 도전을 응원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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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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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현학자의 요리하는 모습이 궁금하다면!

 

단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사람임에도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의 저자 줄리언 반스가 얼마나 까칠할지 책만으로도 느껴진다. 그간 나는 요리를 하면서 실패해도 단지 내 실력이 부족하다며 감히 레시피를 탓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요리 실력이 부족한건 객관적으로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리언 반스는 요리의 실패가 단지 우리의 잘못이 아님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준다.

 

또 거짓이잖아! (p96)”

 

요리책을 쓰는 요리사들이 얼마나 거짓말쟁이인지 일반인들은 모른다. () 우리 일상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중요도에 비해 노력해서 요리를 하는 사람의 숫자는 드물다. 그렇기에 시판되는 요리책들은 애매한 언어와 예쁘게 꾸며진 촬영용 사진으로 직무유기를 해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껏 철저하게 요리사들에게 농락당한 것이다. 우리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점도 무시할 수 없음은 알지만 그렇다고 치자,)

 

달걀 노른자 20그램은 얼만큼이죠? 그걸 어떻게 재죠? 무게가 너무 나가면 반으로 줄일까요? (p141)”

 

이 독자의 물음이 남 일처럼 느껴지진 않을 거다. 당신은 잘 모르지만 대충 이정도지 않을까 가늠하여 요리를 만들었을 뿐 의문점에 그러려니 넘어갔을 거다. 생각해보면 독자가 쉽게 알 수 없는 불친절한 책이 정말 좋은 책일까? 요리책을 보며 따라했지만 생각만큼 맛도 나지 않고 요리 시간도 지켜지지 않으며 만들면서 어떻게 하라는 소린가 갸우뚱 했다면, 이건 독자의 잘못이 아닌거다.

 

언어는 명확해야 하고, 요리의 레시피도 명확해야 한다. 무엇보다 레시피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따라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사이다를 원 샷 한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역시 맨부커상 수상자의 촌철살인은 글재주가 없는 일반인들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그의 요리는 실패했지만 그의 글은 길이길이 남아 독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그의 까칠함에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대충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레시피에 왜 이렇게 목숨을 걸어?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에게 음식이란 어떤 의미인지, 왜 그가 완벽한 요리를 하고 싶은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레시피 앞에서 분노하는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이해될 것이다.

 

일상 속에서 찾는 납득되는 앵그리함, 부엌 앞에서 당황하는 한 남자의 고군분투가 궁금하다면, 레시피를 따라해도 대참사를 일으키는 똥손이라면, 당신에게 필요한건 바로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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